2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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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 기병군단을 이끌고 이성휘의 뒤를 따르던 여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인지적(萬人之敵).
앞을 가로막는 장수들을 모조리 분쇄하고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마저 돌파해내는 이성휘의 무력은 가히 서초패왕(西楚覇王)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성휘가 단기필마로 달려들 때마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군세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좌우로 나뉘는 광경에 절대적인 경이를 품게 되었다.
‘동탁 군 놈들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맥을 못 추고 물러나고 있잖아! 낙양의 불바닷속에서도 혈전을 벌이던 독종들이 겁을 집어먹다니…!!’
절대로 동탁 군은 오합지졸이 아니다.
어떻게 그들이 오합지졸이겠는가?
서량은 난폭한 오랑캐와 반란군들이 전역에서 할 거하는 무법자의 땅이다. 동탁 군은 오직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그 무법자의 땅에서 최강의 자리를 제패했던 군벌 세력이었다.
그들에게 황실과 조정이 농단을 당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족과 저족이 당했다!”
“어서 놈을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큭! 등을 보이는 놈들은 내가 모두 베겠다! 우리는 서량 최강의 강병들이지 않은가!!”
혼란.
그리고 동요.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흔들리고 있었다.
사나운 맹수와도 같았던 서량의 강병들이 단기필마로 달려든 중원제일 검 한 명에게 전의를 상실한 채로 비명과 절규를 토해내는 것이다.
“누, 누님!”
마등의 아들, 마휴가 달려들어 바닥에 쓰러진 채로 혼절해 버린 누이를 황급히 둘러업었다.
이성휘는 수십 명에 달하는 장수들과 혈전을 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덕분에 마휴는 누이 마초를 안전한 곳까지 호송할 수 있었다.
“커억!”
“크하악!!”
이성휘는 기어코 서량의 장수들을 모두 쓰러트리고서 동탁이 있는 본진으로 난입했다.
동탁이 이끄는 4군.
상국(相國) 동탁을 호위하는 병력답게 4군에 속한 장졸들은 일당백에 맞먹는 용병이었다.
피칠갑한 장수가 단기필마로 달려들자, 이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사방에서 동탁의 근위병들이 쏟아졌다.
“죽어라, 중원제일 검───!!”
무려 7척이 넘는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동탁 군의 장수가 도끼를 번쩍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두 손으로 크게 휘두르는 육중한 도끼는 고목나무조차 단번에 쪼개버릴 것처럼 매서웠다.
“그하아악!!”
중원제일 검을 향해 달려들었던 장수는 날카로운 검에 반으로 썰려 나간 도끼와 함께 핏물을 쏟아 내면서 뒤로 쓰러졌다.
7척에 달하는 거인이 단 일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야, 양정 도위가 죽었다!”
“범처럼 용맹하던 양정 도위가 단 일격에 쓰러지다니!”
이성휘를 향해 날카로운 창검을 늘어뜨린 채 진형을 고수하던 근위병대가 움찔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다.
호기롭게 나선 양정이 죽었다.
거인을 단번에 쓰러트린 이성휘의 무위를 두 눈으로 목격한 근위병들은 긴장감에 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비켜라, 버러지들아.”
이성휘가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창검을 늘어뜨리고 있던 근위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윽고 비명이 난무했다.
피와 살점에 점철된 칼날이 계속 번뜩일 때마다 근위병들의 시체가 쌓여 갔다.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돌파한끝에 동탁의 본진에 도달하게 된 중원제일 검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찾아내기 위해 군진을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녔다.
* * *
선봉을 지휘하던 장제가 전사했고,
2진을 단속하던 이각과 곽사는 달아나버렸다.
이윽고 3진을 이끌던 강족과 저족, 서량의 군벌들마저도 중원제일 검의 맹공을 이기지 못한 채 패주하게 되면서 단숨에 전열이 무너지고 말았다.
공포에 질린 채 본진에 도착한 전령으로부터 그 믿지 못할 소식을 듣게 된 동탁은 혼비백산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겨우 3만에 불과한 놈들한테… 어떻게 12만에 달하는 군세가 무너질 수 있단 말이냐!!”
중용무쌍한 용맹을 자랑하는 서량의 군세가 이리도 쉽게 무너질 리 없다.
숭산을 시산혈해로 만들었던 중원제일 검이 당대 최강의 맹장이라는 것은 인정하나, 어떻게 3만에 불과한 군세로 그 4배에 달하는 12만 대군을 단번에 박살 낸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결코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사, 상국 어르신!!”
선봉부터 3진까지 이르는 모든 군단들이 패주했다는 전령의 보고에 동탁이 공황을 느끼고 있었을 때,
진원장군(鎭遠將軍) 단외가 온몸에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채로 달려왔다.
“지금 당장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성휘가 곧장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내가 왜 피해야 한단 말이냐! 나는 12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몸이거늘, 고작 한 놈 때문에 필부처럼 도망치란 말이더냐!!”
원통하고 치욕스러웠다.
중원제일 검에게 또다시 등을 보이며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분했다.
울분에 찬 동탁의 부르짖음에 단외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착잡한 심정을 내비쳤다.
주군에게 철퇴를 종용해야 하는 부하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지금 당장에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무능을 사죄하고 싶을 정도였다.
“으아아악!!”
“주, 중원제일 검이 온다!!”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들이 맹수에게 쫓기는 소 떼처럼 우르르 도망쳤다.
통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더 이상 지휘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사기와 전의를 잃고 도망치는 아군 병력들의 모습에 동탁은 크게 통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토록 용맹하던 서량의 장졸들이 오합지졸이 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력을 다해 이룩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동탁은 깊은 회한을 느꼈다.
‘반평생 동안 서량을 누비면서 이룩했던 모든 것들이… 단 한순간에 무너진단 말이냐! 용맹한 장수들과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병장기마저 버린 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장졸들의 광경을 바라보던 동탁은 파멸의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수많은 장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패주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열이 무너지게 된 12만 대군은 우두머리를 잃어 버린 들개들을 보는 것 같았다. 꼬리를 말며 도망치는 모습이 실로 비참하고 끔찍했다.
“어르신,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전황을 살피고 돌아온 이유가 소리쳤다.
더 이상 전선을 유지하긴 어렵다.
패주와 와해를 반복하는 전선은 이제 곧 붕괴할 것이었다.
그 전에 한시라도 빨리 전선을 탈출해야 한다.
계속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간 다른 장수들처럼 중원제일 검의 손에 참살될 게 분명했다. 무질서하게 도망치고 있는 아군 장졸들에게 휩쓸려 압사당할 위험이 컸다.
“나더러 이대로 달아나란 말인가! 지금 공세를 포기하면 두 번 다시 천하를 도모할 수 없을 걸세!”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겁니다! 일단 장안으로 물러나 재기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 하는 동탁에게 이유가 간곡한목소리로 철퇴를 권유하고 있을 때,
마침내 피 칠갑의 괴물이 도달했다.
12만 대군을 모조리 뚫어내며 본진에 도달했던 검귀가 기어코 불구대천의 원수마저 찾아낸 것이다.
“어서 피하십시오!”
단외가 창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또한 동탁의 근위병들이 그 옆을 지켰다.
흉신악살 같은 모습을 한 채 맹렬히 접근해 오고 있는 괴물을 막아서고자 수백 명에 달하는 병력들이 움직였다.
“모두 목숨을 걸어라!”
“농서군의 장졸들이여, 지금이야말로 어르신의 은공에 보답할 때다!”
근위병들은 동탁과 같은 농서군 출신이었다.
동탁이 황건적의 난을 토벌할 당시부터 뒤를 따랐던 농서군 출신의 근위병들은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목숨을 버릴 때가 왔다.
지금까지 은공을 베풀어 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면 크나큰 영광일 터.
그렇기에 근위병들은 단외와 함께 흉신악살의 괴물에게 기꺼이 몸을 던졌다.
“더 이상은 용납지 않겠다!”
“주군을 노리려거든 우리들의 시체를 모두 밟아야 할 것이다!”
만인지적의 기염을 토해내는 괴물을 향해 부하들이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모습을 본 동탁은 이유와 함께 심복들을 이끌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괴물이다.
저것은 괴물이 분명했다.
내 목을 취하기 위해 12만 대군을 뚫어 내다니, 저게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예주 3군을 점령한 뒤에 천하의 패권에 도전하려 했던 동탁은 사냥개에게 쫓기는 사냥감처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신세에 내몰리게 되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일단 최대한 멀리 피해야 합니다! 용맹한 단외 장군과 근위병들이라면 능히 시간을 벌어 줄 겁니다!”
동탁을 호위하는 병력은 겨우 수십 기.
위풍당당하게 12만 대군을 이끌었던 최강의 군벌이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병력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금지옥엽처럼 아끼던 손녀딸은 물론,
나머지 부하들의 생사 또한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필사적으로 말을 재촉하면서 멀리 달아나는 것뿐. 일단 이유의 말대로 어떻게든 장안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 어르신!!”
동탁의 옆을 지키던 무관이 소리쳤다.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허공을 찢어발기면서 날아든 창이 동탁을 호위하던 무관의 머리를 꿰뚫었다.
“으, 으아아악!!”
동탁이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옆을 지키고 있던 무관이 다급함에 찬 표정과 함께 머리가 관통당해 죽었다. 제아무리 담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비명을 내지르는 게 당연했다.
대체 어디서 창을 던졌단 말인가.
그것이 의문이었으나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분명 날카로운 창은 바로 배후에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네놈을 죽여 낙양에서 죽어 간 백성들의 원한을 갚겠다───!!”
결사의 각오를 품고 달려들었던 맹장과 근위병들을 불과 극미만에 요절을 내버린 괴물이 질주를 시작했다.
말이 지면을 걷어차며 숨을 토해냈다.
맹렬하게 다리를 재촉하면서 그 뒤를 쫓았다.
중원제일 검을 태운 말은 전설상에 등장하는 용마라도 되는지 멀리 떨어져 있던 걸리를 단번에 좁히면서 만고의 역적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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