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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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장 장제가 참살되었다.
또한 2군을 이끌던 이각과 곽사는 제대로 싸우지도 전에 달아나버렸다.
연이어 군단들이 무너졌다.
그 모습이 마치 백척간두(百尺竿頭)와 같았다.
중원제일 검이 검을 휘두르며 지나는 곳마다 시산혈해가 펼쳐졌고, 병사들의 비명과 통곡만이 넘쳐흘렀다.
“카헉!”
“으아아악!!”
이성휘를 태운 군마가 마치 용마(龍馬)처럼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면서 좌중을 가로질렀다.
마치 패왕(覇王)이 된 것처럼,
단기필마로 달려들 때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겨우 한 명의 장수에게 12만 대군이 거대한 자중지란을 일으키면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이성휘가 피칠갑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동탁 군 병사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오, 오습 도위가 죽었다!”
“퇴각하라! 어서 퇴각하라!!”
군사들을 다독이며 반격을 꾀하던 오습이 이성휘의 손에 참살되었다.
줄행랑을 친 상관을 대신하여 병력을 지휘했던 충실한 부관은 중과부적을 이기지 못한 채 죽임을 당했다.
“위양군…?”
이성휘가 고개를 들어 위양군(渭陽君)이라 적힌 대장기를 바라보았다.
금실로 장식된 대장기,
분명 고귀한 신분이 틀림없었다.
핏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오습의 머리를 바닥에 내던진 이성휘는 ‘위양군’이 동탁의 손녀인 동백의 군호(君號)임을 떠올렸다.
“동탁의 혈육들은 모두 죽인다. 절대로 후환을 방치하지 않겠다.”
낙양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들었던 괴물의 혈육이라면 분명 또 다른 괴물일 터.
이성휘는 후환을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며 동백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살육을 계속해서 반복했던 탓일까.
이성휘는 철저히 살육에 의존하게 되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살육을 반복하였음에도 검을 거두지 않았다. 피와 살점에 더럽혀진 채 푸른 인광을 내뿜고 있는 보검을 치켜들면서 살의를 이어 나갔다.
그 귀기 어린 모습에 뒤를 따르던 무관들조차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동백을 죽여라!”
“천하를 훔친 역적의 손녀가 저기 있다!”
이성휘의 명령에 뒤따르던 무관들이 창검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동백,
동탁의 손녀가 저기 있다.
십만 대군을 이끌던 동탁이 황실과 조정을 접수했을 때, 농서동씨 일가가 조정의 요직을 꿰차고 전횡과 폭정을 저질러 온 바가 있었기에 그 분노와 증오는 손녀딸인 동백에게까지 향하게 되었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어서 쫓아라!!”
선봉이 전멸하고 후속부대들마저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동백은 측근들과 함께 도주를 택했다.
이각과 곽사가 도망쳤다.
동탁 군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두 장수들이 도주해 버린 이상 병력을 수습할 방법이 없었기에 동백은 깨끗하게 전투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성휘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동탁의 손녀딸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후환이기 때문이다.
“노, 놈이 쫓아온다!”
“빌어먹을! 지독한 놈 같으니라고!”
수만 명이 넘는 아군 병력들을 완파한 중원제일 검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백의 측근들은 비명과 절규를 토해내면서 말을 끊임없이 재촉했다.
잡히면 죽는다.
끔찍하게 살해당한 전우들과 똑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죽음이 쫓아오고 있음을 알게 된 동백의 측근들은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멀리 도망치지 못한 채 이성휘에게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 * *
동탁의 손녀딸,
위양군 동백은 냉철한 품성과 잔인한 심성을 겸비한 소녀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할아버지 동탁에게 여러 조언해줄 정도로 두뇌가 명석했으며, 또한 이치에도 매우 밝았다.
분명 조부의 뒤를 이어 세력을 이끄는 거두로 성장하게 되리라. 농서동씨 가문은 점차 날카로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동백을 상국(相國)의 후계자로 점지했을 정도였다.
“큭!”
할아버지의 총애를 듬뿍 받은 덕분에 곧바로 제후에 봉해진 농서군(隴西郡)의 재녀는 지금 온몸에 피칠갑한 괴물에게 쫓기고 있었다.
괴물,
저 사내를 달리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온몸에 피와 살점을 쏟은 것 같은 흉신악살의 모습을 한 이성휘는 동백의 눈에 괴물로 보일 뿐이었다.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죽음을 향한 공포와 두려움에 질린 동백은 그저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누, 누가 나를 지켜라! 저 괴물을 막아!!”
내달리던 말에 힘껏 박차를 가한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소리쳤다.
공포와 두려움이 명백했다.
명백하게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생전 처음으로 죽음을 목도하게 된 동백은 아연실색한 채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이성휘라는 존재는 원칙과 섭리를 완전히 초월해 버린 괴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감히 위양군을 노리다니!”
“우리가 대적해주겠다! 덤벼라, 괴물 놈아!!”
패주와 퇴각을 반복하던 동탁 군 군세에도 나름 용맹한 장수들이 있었는지, 동백을 쫓던 이성휘를 향해 창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10여 명에 달하는 장수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목격한 동백과 측근들은 반색하며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저 괴물을 쓰러트리진 못할지라도,
분명 어느 정도는 시간 벌이를 해 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말의 희망마저도 짓밟아버리듯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던 장수들은 일초지적조차 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커헉!”
“크아아악!!”
서량에서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하나둘씩 낙마하면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목이 잘렸다.
육신이 찢겨나갔다.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수많은 장수들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계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괴물처럼 이성휘는 수만 명에 이르는 군중을 돌파하였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피와 살점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이성휘는 오히려 더욱 살의를 발산하면서 동백을 위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당장에라도 어린 소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찢어발길 것 같았다.
“아아악!!”
이윽고 이성휘는 후미를 뒤따르던 동백의 측근들을 참살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목을 쳐 버렸다.
목을 잃은 몸뚱이는 그대로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바로 옆에서 들린 비명 소리를 통해 동백은 방금 보았던 피투성이의 괴물이 바로 뒤까지 따라왔음을 알게 되었다.
“으으으…!!”
짙은 죽음의 공포를 느낀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채 눈물을 쏟아 냈다.
두려움에 찬 눈물이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눈물을 왈칵 쏟아 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으아아아…!!”
그만 힘이 풀리고 말았는지 하복부에서 시작된 맑은 액체가 하의를 축축하게 적시면서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푸쉬쉬쉬….
그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밤에 오줌을 못 가리는 어린아이처럼 바지에 그만 오줌을 싸버렸다.
중원제일 검이 가하는 공포에 질린 동탁의 손녀딸은 냉철한 면모와 잔인한 성정을 모두 망각해 버린 한낱 계집아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위, 위양군!!”
동백의 바로 옆을 보필하던 장수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끝장이다.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백은 곧 자기 차례가 될 것을 직감했다.
“이놈, 여기 마수성이 있다!”
“이 한문약의 이름을 들어 보았느냐!”
이성휘가 검을 치켜들었을 때,
마등과 한수가 이끄는 서량 기병대가 급습을 시도했다.
아수라장의 지옥과도 같은 서량에서 싸움을 반복하면서 실력과 경험을 쌓은 역전의 용사들이 중원제일 검을 사냥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었다.
북궁백옥, 이문후, 변장, 왕국 등의 군벌들과 모두 싸웠던 서량의 강병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말을 재촉하면서 이성휘를 향해 창검을 휘둘렀다.
“서량의 버러지들이….”
이성휘가 격노를 토해내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많은 장졸들을 바라보았다.
동탁과 동맹을 맺은 서량의 장졸들이다.
이각과 곽사가 이끄는 병력의 후열에 위치한 부대들이 위급한 급보를 듣고 전선에 가세한 것이리라.
동맹의 조건으로 벼슬과 봉토를 하사받은 서량 군벌들은 더 높은 관직을 차지할 욕심을 품고는 동탁을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너를 죽이고 무명을 빼앗겠다!”
“나약한 중원인 따위가 무슨 제일 검이냐!!”
마등과 한수를 따르는 장수들이 날카로운 창을 휘두르며 급습을 가했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이성휘는 사방에서 달려든 장수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중원제일 검의 수급을 베어 일등 공신에 임명될 것이라며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이던 마등과 한수는 피 분수를 일으키면서 쓰러지는 부하들의 모습에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내가 바로 마등의 딸, 서량의 마맹기다! 중원제일 검, 정정당당하게 결투다!!”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 장수가 날 선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성휘의 손아귀가 소녀의 목을 낚아챘다.
“컥!”
부러뜨릴 것처럼 소녀의 목을 강하게 낚아챈 이성휘는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언월도를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뛰어난 무력과 용맹을 자랑하던 마등의 장녀는 입에 게거품을 문 채 혼절하고 말았다.
“매, 맹기야!!”
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쓰러진 딸의 모습에 마등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서량의 장수들이 패주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달려든 강족과 저족의 용맹한 전사들 또한 이성휘를 막아서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양주(凉州)와 옹주(雍州)에서 내로라하는 맹장과 강병들이 모두 중원제일 검 한 명을 막아 내지 못하고 시산혈해를 쌓기 위한 제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동탁! 네놈을 죽이러 왔다──!!!”
마침내 마등과 한수가 이끄는 3군마저 돌파해낸 이성휘의 눈앞에 동탁의 대장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후(郿侯),
상국(相國) 동탁.
작위명과 관직명이 적힌 동탁의 대장기가 크게 펄럭였다.
수만 명에 이르는 병력들을 모조리 돌파해내는 기염을 토해낸 중원제일 검은 시뻘겋게 물든 눈으로 동탁의 대장기를 노려보았다.
“동탁, 내 기필코 네놈을 오늘 죽여 버리겠다.”
낙양을 불태운 불구대천의 원수.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죽였으며,
심지어 도망쳤던 장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살육했다.
온몸에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간신히 불바다가 되어 버린 낙양에서 생존한 백성들의 처량한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이를 빠득 갈면서 짐승 울음소리에 가까운 포효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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