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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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을 겹겹이 포위하는 동탁 군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놈들은 겨우 3만에 불과하다.
흙바닥을 걸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짓밟아버리듯이 처리해 버리면 완승을 거둘 수 있을 터였다.
완승을 확신한 마등과 한수는 서로 선봉에 서겠노라고 자청할 정도였으며, 강족과 저족의 두령들 또한 이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겠다며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무슨 안개란 말이냐!”
동백을 보필하면서 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교위 이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한 것을 분명 두 눈으로 보았건만, 어째서인지 물안개가 자욱하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낙양의 북부를 가로지르고 있는 사수(汜水)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였다.
“허둥대지 말게. 고작해야 물안개에 불과하지 않은가? 해가 떴으니 곧 걷힐 걸세.”
“끄응.”
교위 곽사의 말에 이각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이다.
숭산을 목불인견의 시산혈해로 물들였던 중원제일 검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여전히 이각의 심중을 괴롭히고 있었다.
벌벌 떨리는 자기 두 손을 본 이각은 홧김을 토해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아직 전면전이 벌어지지도 않았건만, 먼저 질겁하는 자기 모습이 실로 꼴사나운 추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교위!”
이각과 곽사가 공격 명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
선봉에 전령이 도착했다.
“방금 교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됐군.”
낙양을 웅거하던 중원제일 검이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장제의 선봉군에 응전했다.
마침내 낙양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각과 곽사는 신속하게 선봉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휘하 장수들을 집결시켰다.
위양군 동백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동백은 그저 허울뿐인 지휘관일 뿐, 휘하 군단의 지휘권은 이각과 곽사였다.
“집결하라!”
“지원요청이 떨어지면 곧바로 진격할 것이다!”
이각과 곽사가 창검을 들어 올리면서 장졸들을 향해 명령했다.
중랑장 장제가 중원제일 검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장수는 없었다. 분명 적의 공세를 이기지 못해 지원을 요청해 오리라.
그의 무능을 힐난하진 않는다.
중원제일 검은 실로 괴물 같은 놈이었으니.
휘하 병력들을 모두 집결시킨 이각과 곽사는 장제가 빨리 지원군을 요청하는 전령을 보내기를 기다렸다.
자신들이 용맹무쌍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여 오랜 접전으로 지친 중원제일 검의 목을 치겠다는 꿍꿍이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 위양군!!”
초조함과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던 이각과 곽사의 귀에 다급함에 찬 전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제가 뒤이어 보낸 전령이 분명했다.
혹시 못 전한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교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 전령이 도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전령이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이각이 소리쳤다.
말을 탄 채 군중으로 들어온 전령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냈다.
“서, 선봉이… 적의 맹공으로 선봉이 궤멸하고 중랑장이 전사했습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방금 전령이 도착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비보가 날아든단 말인가.
분명 거짓 정보가 틀림없다.
누구도 믿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급보였다.
선봉군의 전멸.
중랑장 장제의 전사.
그 믿지 못할 소식을 알린 전령을 불신에 찬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을 때,
“역적들을 모조리 분멸하라!”
“황실과 조정을 기만했던 역적들이다!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짙은 물안개 속에서 군세가 등장했다.
중랑장 장제를 척살한 뒤,
그가 이끌던 선봉군을 궤멸시킨 중원제일 검의 부대였다.
노성을 내지르면서 달려드는 군세를 본 이각과 곽사는 대응할 겨를도 없이 적의 공세를 받게 되었다.
* * *
중랑장 장제의 선봉군이 궤멸된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원제일 검의 맹공을 밀어내기 위해 투입한 중장보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졌다.
중장보병들을 뚫고 진영으로 난입한 이성휘는 앞을 가로막는 장수들을 모조리 도륙한 뒤에 중랑장 장제의 목을 날려 버렸다.
“수, 숙부님──!!”
솟구치는 피 분수와 함께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숙부의 모습을 본 장수가 경악에 물든 비명을 내질렀다.
숙부가 죽었다.
그토록 용맹하던 숙부가 단칼에 쓰러졌다.
중원제일 검이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단숨에 돌파한 뒤에 선봉장이었던 숙부를 살해한 것이다.
“네 이놈!!”
흠모해온 숙부를 눈앞에서 잃었다.
핏발 선 눈으로 숙부의 죽음을 목도한 장수는 분노로 물든 괴성을 내지르면서 무관들에게 명령했다.
“놈을 죽여라! 놈을 반드시 죽여라!!”
장수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검을 치켜든 무관들이 동시에 이성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앞에서 총대장이 목숨을 잃었다.
무관들은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이성휘에게 창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사방에서 내지른 창검들은 이성휘에게 닿지 못한 채 튕겨 나고 말았다. 이성휘가 검을 내지르면서 창검들을 모두 쳐 냈기 때문이다.
“커헉!”
“놈을 막아라!!”
검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그때마다,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던 동탁 군 무관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게 되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무관들이 겨우 한 명을 대적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뒤이어 여포와 조인이 이끄는 정예병들이 진형을 급습하면서 동탁 군의 선봉대는 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바로 여봉선이다! 나를 대적할 자는 내 앞에 썩 나서라!!”
“역적들을 격멸하라.”
방천화극을 든 여걸이 난폭한 미소를 지으면서 장제군을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흑발의 여인은 수십 기에 이르는 기병들과 함께 적진에 뛰어들어 장졸들의 사기를 이끌어냈다.
불과 3만 밖에 되지 않는 병력에게 선봉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적의 맹공으로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일단 이 전투에서 퇴각하셔야 합니다.”
“대체 어디로 물러나란 말인가! 숙부님께서 비명에 돌아가셨네! 나는 여기서 죽을 걸세!!”
휘하 무관들이 모두 이성휘에게 도륙당한 것을 본 장수는 직접 검을 휘두르며 돌격하려 했다.
그에 호거아가 막아섰다.
“어찌 소장이 중랑장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허나 지금은 후일을 위해서라도 굴욕을 참아내야 할 때입니다!”
무위장씨 가문의 대가 끊어져선 안 된다.
중랑장 장제의 심복이었던 호거아는 완강하게 장수를 만류하면서 퇴각을 진언했다.
선봉군은 궤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겨우 3만에 불과한 적들에게 저항 한 번 못 해 보고 무너지게 된 것이다.
실로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대장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버린 장졸들을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중랑장 장제가 중원제일 검에게 참살되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선봉군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 * *
단 일격에 선봉군이 무너졌다.
중랑장 장제는 전사했으며,
교위 장수와 호거아는 측근들을 이끌고 전선을 멋대로 이탈해 버렸다.
이성휘를 선두로 한 3만의 군세는 요원지화(爎原之火)와 같은 기세로 선봉군을 분멸한 뒤, 이각과 곽사가 이끄는 군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주, 중랑장이 정말 죽었단 말이냐?!”
이각이 놀라 소리쳤다.
조조군이 맹렬하게 밀려드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리가 없다.
중랑장 장제가 이끄는 선봉군은 2만에 육박하는 병력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변변찮은 저항조차 못한 채 단숨에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어서 피하십시오, 교위!”
“이성휘가 야차처럼 달려들고 있습니다! 필시 중랑장은 죽은 게 분명합니다!”
이각을 추종하는 부하들이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철퇴를 종용했다.
선봉군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또한 후속부대들마저도 중랑장 장제의 전사 소식을 듣고 빠르게 와해되고 있었다.
곽사의 부하였던 오습이 직접 장졸들을 지휘하면서 분전을 명령하고 있었지만, 선두에 선 이성휘가 광인처럼 달려들면서 전열을 무너뜨려 버렸다.
“젠장! 빨리 강족과 저족 놈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라! 당장 이성휘를 막으라고 해!!”
중랑장 장제와 선봉군이 무너진 뒤,
기세가 오른 중원제일 검을 막아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 이각은 그 역할을 강족과 저족에게 떠넘겨 버렸다.
숭산 전투에서 겪었던 지옥 같은 참상이 떠오른 것일까.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은 이각은 전령을 보내어 마등과 한수에게 당장 중원제일 검을 막을 것을 강요했다.
“곽사! 얼른 곽사를 불러라!”
“아까 전부터 곽사 교위의 모습이 도통 보이질 않습니까!”
“이런 육시랄 놈 같으니!”
이각과 곽사의 병력은 금세 혼란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설마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선봉군이 뚫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피칠갑한 채 달려드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동탁 군 장졸들은 적을 저지해야 한다는 임무조차 망각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빌어먹을! 일단 물러나서 전열을 정비한다!”
“그럼 위양군은….”
“젠장, 어서 위양군을 불러라! 이미 전열이 무너졌으니 일단 전선에서 퇴각해야 한다고 전해!”
일 점돌파로 12만 대군을 관통한 이성휘는 피와 살점이 묻은 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면서 전황을 주도했다.
실로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다.
지나간 길은 피와 시체로 가득했으며,
돌격을 감행할 때마다 철옹성처럼 견고하던 진형은 단숨에 와해되고 말았다.
이성휘가 뚫어낸 혈로를 여포와 조인이 더욱 크게 넓혔으며, 장료와 고순이 이끄는 병력이 전의를 상실한 동탁 군의 패잔병들을 처리하는 식으로 싸움을 이어 나갔다.
“동탁! 목을 내밀어라───!!”
온몸에 피칠갑한 중원제일 검이 쩌렁쩌렁한목소리로 사자후를 내질렀다.
그 사자후를 들은 동탁 군 병사들은 병장기를 내던진 채 바닥을 설설 기었다. 쩌렁쩌렁한 사자후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적진을 계속 돌파한다!”
“예!”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성휘는 다시 박차를 가하면서 돌격을 감행했다.
중원제일 검이 향한 곳은 동탁의 손녀인 위양군(渭陽君) 동백이 이끄는 부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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