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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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예주와 인접한 형주 남양군에 거점을 두고 있는 원술군은 벼랑에 내몰린 심정으로 전황을 주시했다.
동탁 군이 대군을 움직였다.
그 규모가 무려 십만 대군에 달한다는 소식을 들은 원술은 양주(揚州)로 거점을 옮기려 했다.
이대로 계속 남양군에 잔류한다면 동탁 군이나 조조군, 둘 중 하나에게 노려질 게 분명했다. 양성 전투에서 이성휘에게 대패를 당한 적 있는 원술은 자신감이 크게 결여된 상태였기에 매우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원래부터 구강군에 세력을 두려 했다! 남양군은 대업을 달성하기 위한 땅이 못 되니, 당장 구강군으로 옮겨 대명문가 여남원씨 가문의 대업을 이루겠다!”
휘하 장수들을 소집한 원술은 거점을 양주 구강군으로 옮기겠노라고 천 명했다.
대업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동탁 군과 조조군이 벌이는 전면전에 휘말릴까 두려워 도망치는 것에 불과했다.
두 세력들이 낙양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경계가 줄어들었을 터. 원술은 이 기회를 노려 구강군으로 세력을 옮기려 했다.
“주군, 어찌하여 우여곡절 끝에 자리 잡으신 남양군을 버리려 하십니까!”
“구강군으로 세력을 옮기면 오히려 적들에게 사방으로 포위될 뿐입니다! 양주에는 원소를 따르는 세력들이 많습니다!”
원술을 보필해온 장훈과 교유가 문제점들을 들면서 거점을 옳기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원술의 의지는 이미 확고했다.
장훈과 교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물자들을 옮기는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남양군에서 쌓은 모든 성과들은 왕예와 장자에게서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원술은 손에 넣은 것들을 아무런 미련 없이 포기해 버렸다.
“내가 원하는 것은 환관 년과 더러운 역적의 공멸이다! 감히 내게 반기를 든 비천한 환관 년과, 여남원씨 가문에게 멸문지화를 내린 더러운 역적이 서로 싸우다가 무너지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조조와 동탁,
원술에게 있어 두 군벌들은 원수나 다름없는 관계였다.
그렇기에 원술은 하늘에 제사라도 치를 것처럼 조조와 동탁이 서로 공멸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했다.
조조군이 군세를 일으킨 덕분에 남양군에 있던 원술군은 동탁 군의 창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은혜를 원수로 갚을 정도로 후안무치한 성정을 가진 원술은 공멸을 바랄 뿐이었다.
“모르겠느냐? 이건 오히려 하늘께서 이 원공로에게 내리신 기회다! 환관 년과 더러운 역적이 제 살을 깎아 먹으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구강군으로 세력을 옮겨 천하의 패권에 도전하겠다!”
원술은 구강군에 세력을 잡은 뒤,
양주(揚州)와 예주(豫州), 형주(荊州)의 패권을 장악하여 천하의 절반을 차지하겠다는 야욕을 꿈꾸고 있었다.
이것은 전진을 위한 후퇴일 뿐이다.
결코 적들의 창검이 무서워 달아나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뇐 원술은 장수들을 소집하여 남양군을 약탈할 것을 명령했다.
다른 세력이 남양군을 차지하더라도 금방 포기하도록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질렀을 때처럼 청야전술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 * *
보낸 사절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날카로운 화살에 머리가 꿰뚫린 채 죽은 사절들을 본 동탁은 분개를 토해냈다.
기껏 동정과 아량을 베풀어 주었건만,
저 무례하고 야만적인 족속들은 절대로 사절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관습조차 모르는지 무자비하게 활을 쏘아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성휘, 이놈…!! 내 기필코 놈의 살점을 씹어 버리겠다!!”
폐허가 된 낙양을 등진 채 겨우 3만 밖에 안 되는 군세를 이끄는 주제에 대체 무슨 배짱으로 사절들을 죽인단 말인가.
하찮은 만용일 뿐이다.
한 줌도 안 되는 군세로 어떻게 십만 대군을 이길 수 있을까.
제아무리 무명 높은 중원제일 검이라도 결국 중과부적의 상황에 놓이게 될 터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중원제일 검의 명성은 무자비하게 짓밟히게 되리라.
“숙영, 너에게 홍농군의 수비를 맡기겠다! 후방 병참들을 관리해라. 지원군과 군량을 반드시 제때 보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형님!”
동탁은 좌장군(左將軍) 동민에게 보급을 일임했다.
홍농군은 중요한 거점이다.
사예주 정벌을 위한 병참기지들을 대부분 홍농군에 두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낙양을 포위하여 적들의 퇴로를 끊어 버리십시오. 필시 적들은 퇴로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일 겁니다.”
“사방이 포위를 당한다면 놈들은 사태의 불리함을 깨닫고 연주로 도망치려 하지 않겠나. 저 쥐 새끼 같은 놈들이 절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형양 방면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게!”
“알겠습니다.”
형양 방면의 길목들을 막아 버리면 낙양에 주둔하는 적들은 퇴로를 잃은 채 흔들리게 될 터.
동탁은 교묘하게 그 점을 파고들었다.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야전에서 직접 병력을 지휘했던 숙장답게 동탁은 전황의 판도를 이끄는 능력이 뛰어났다.
동탁의 명령에 이유는 공감하였는지,
별다른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맹장도 만인을 이기진 못 하는 법입니다. 분명 중원제일 검은 직접 군세를 이끌고 퇴로를 뚫으려 할 터이니 정예부대를 형양에 배치하십시오.”
“이를 말인가.”
동탁은 중군교위 동황에게 1만의 정예부대를 맡기면서 형양 방면을 철통처럼 지키게 했다.
놈들은 포위망을 뚫으려 할 것이다.
동탁과 이유는 이성휘가 형양 방면으로 공세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동황을 보내어 형양을 지키도록 명령한 한편, 장제와 장수가 이끄는 병력 또한 형양 방면에 투입시켰다.
“이성휘의 휘하에는 무도군 출신의 그 배신자 계집뿐만 아니라… 감히 어르신의 목숨을 노렸던 영천순씨 가문의 계집이 붙어 있습니다. 분명 지금쯤 포위를 걱정하며 특공을 벌이려 할 겁니다.”
당시 토로교위였던 가후를 천거했던 이유가 그녀의 뛰어난 지모와 군략을 모를 리 없었다.
가후는 정원군을 멸망시켰으며,
또한 여포와 함께 병군을 이끌며 중원 전역을 뒤흔든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유는 연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인 형양 방면을 봉쇄하려는 아군의 움직임에 필시 가후가 대처할 것이라고 여겼다.
분명히 이성휘를 준동하여 형양을 공격하리라.
‘본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법이지.’
우수한 참모일수록 기본을 중시하는 법이다.
퇴로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전투를 치르기 전에 퇴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필패로 이어질 뿐이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여 배수진을 치는 전술이 존재하겠지만, 배수진을 치게 되면 보급이 차단당한 채로 전열이 무너질 수밖에 없으므로 결코 좋은 상책이 아니었다.
“형양으로 이동한다.”
“필시 놈들은 형양 방면으로 온다. 우리는 형양에서 중원제일 검을 잡을 것이다!”
중군교위 동황의 정예부대와
장제와 장수가 이끄는 병력이 본대와 떨어져 형양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유는 동중랑장 동월에게 기병부대를 이끌고 주변을 크게 선회하여 병력의 이동을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차단하는 꾀를 부렸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테냐!’
기관에 주둔하던 병력과 영녕을 통과한 병력이 합류하여 낙양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성휘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꿈쩍도 않는 태산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부동을 이어 나갈 뿐인 이성휘의 행동에 꺼림칙함을 느낀 이유는 계속해서 척후병들을 낙양으로 보냈지만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들만 계속 올라왔다.
* * *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군을 대파하며 주도권을 거머쥔 원소군은 한껏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공손찬의 심복, 엄강이 전사했다.
또한 공손찬이 그토록 자랑하던 백마의종(白馬義從)은 원소의 휘하 장수였던 국의가 이끄는 강노병의 일제사격에 궤멸하고 말았다.
하북 최강의 군벌을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 원소는 기세를 몰아 공손찬의 유주를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도, 동탁이 움직였다는 보고일세! 방금 올라온 급보라는군!”
다급함에 찬 봉기의 말에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새하얀 얼굴에 경악이 물들었다.
낙양을 스스로 불태운 뒤 장안으로 도망쳤던 만고의 역적이 다시 군세를 모아 정벌군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절대’라는 것은 없겠지만,
동탁이 서량과 삼보 지역에 의지한 채로 두 번 다시 천하를 향한 야망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원소는 동탁 군의 공세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탁이 군세를 일으키다니!”
“대체 어느 곳이 공격받고 있습니까, 군사?!”
봉기의 말에 원소의 휘하 장수들 또한 경악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쳤다.
공손찬군으로부터 대승을 거둬내어 군중이 크게 뜨거워졌을 때, 이에 찬물을 끼얹듯 불길하고 꺼림칙한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다.
혹시라도 동탁 군이 사예주를 거쳐 기주의 업성이라도 공격할까, 장수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봉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 낙양에서 중원제일 검과 일전을 치르고 있다고 하네!”
“중원제일 검…!”
동탁과 이성휘가 폐허가 된 낙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는 “서, 성휘가….”라고 애달프게 중얼거리면서 걱정에 찬 모습을 보였다.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실로 사면초가의 위기가 아닌가.
이성휘가 이끄는 병력이 불과 3만, 그에 반해 동탁이 이끄는 병력이 십만 대군에 이른다는 봉기의 말을 듣게 된 원소는 깊은 심려를 내비쳤다.
“주군! 낙양에서 원군을 요청하는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흙먼지를 눌러쓴 무관이 다급함이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원소에게 보고했다.
그에 원소는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면서 고심에 빠지게 되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원소의 참모들 중 한 명인 치중종사(治中從事) 심배가 입을 열었다.
“지원군을 보내선 안 됩니다! 당장 여세를 몰아 공손찬의 세력권을 격파해야 합니다! 기주와 청주에 주둔하는 공손찬군을 몰아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말머리를 돌릴 순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거록군(巨鹿郡)에서 하북 최강의 세력을 상대로 승전을 거둬냈다.
사예주의 일이 시급하다고는 하나,
어렵사리 거둔 기회를 허공에 내던질 순 없었다.
심배는 사예주의 동탁 군보다도 하북 3주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공손찬군을 유주로 몰아내는 것이 급선무라며, 사예주에 지원군을 보내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치중종사의 말이 옳습니다. 일단 지금은 공손찬군과의 일 전에 사력을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심배의 말에 가세하여,
별가종사(別駕從事) 전풍이 말을 덧붙였다.
심배에 이어 전풍마저 지원군을 보내는 것을 만류하자, 원소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침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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