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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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가 가득 일었다.
드넓은 평야를 뒤덮으며,
서량군(西凉軍)이 홍농군을 가로질렀다.
수개월에 걸쳐 서량에서 다시 힘을 기른 동탁 군은 예전의 위세를 되찾은 것처럼 위풍당당한 기염을 토해냈다.
“으하하하!”
“달려라! 바로 도착해야 한다!”
온몸에 짐승 가죽을 두른 채 요란한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이민족 두령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강족(羌族)과 저족(氐族)으로,
동탁의 부름을 받고 부족들을 이끌고 전쟁에 참전했다.
강족과 저족은 동탁이 종횡무진으로 서량을 휩쓸던 시기부터 교분을 나누던 동맹 관계로, 그들은 조정으로부터 고관대작의 벼슬과 드넓은 봉토를 받는 조건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맡겨 주십시오, 어르신!”
“중원을 어르신께 바치겠사옵니다!”
7척이 넘는 거구를 자랑하는 이민족 두령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동탁에게 용맹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매우 듬직했는지,
휘황찬란한 갑주를 걸쳐 입은 채 마차를 타고 있던 동탁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으로 다시 돌아가 천하를 다시 휘어잡게 된다면 그대들을 모두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임명하겠네!”
변방 출신의 장수였던 동탁은 강족과 저족이 품고 있는 강한 야욕을 알고 있었다.
거칠고 메마른 변경에서 약육강식을 반복해온 이민족들은 풍요로운 땅을 원했고, 그 땅에서 왕과 제후로 군림하기를 원했다.
동탁은 이민족 두령들을 모두 무관으로 임명하면서 야욕과 열망을 부채질했고, 그에 강족과 저족은 동탁 군을 도와 사예주 공방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상국 어르신, 어림총사 이성휘가 출진하여 낙양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그 빌어먹을 놈은 매번 내 앞을 막아서는구나!”
조조군 휘하의 이성휘가 출진했다는 소식을 동중랑장 동월로부터 듣게 된 동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분개를 토해냈다.
또다.
또 그놈이다.
총애하던 장수를 단칼에 죽였으며,
또한 몹시 아끼던 사위도 놈의 손에 살해당했다.
수족처럼 여기던 두 부하들을 모두 잃은 동탁은 이성휘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동탁은 반드시 그 원수를 죽여 화웅과 우보의 원수를 갚겠노라며 휘하 제장들에게 맹세했다.
“어르신, 놈들은 대군을 맞이하여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속전속결로 제압하여 사예주를 탈환하시지요!”
조조는 서주 침공을 끝내고 휴식기에 돌입했기 때문에 병력을 연주 전역에 분산시킨 상태였다.
또한 동맹하여 동탁 군에 맞섰던 관동 제후들은 크게 분열되어 있었다.
기주의 원소는 유주의 공손찬과 고군분투를 치르고 있었고, 남양군의 원술은 동탁 군이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양주(揚州)로 달아날 궁리를 했다.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서쪽으로 달아났던 동탁은 자기 목숨을 위협했던 관동 제후들이 제 풀에 무너지기만을 기다린 게 분명했다.
“이유, 자네의 말이 맞네!”
무리를 지은 승냥이에 불과했던 관동 제후들은 사분오열하여 흩어진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원소군과 조조군이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막강한 세력권을 자랑하게 되었으나, 중앙 권력을 제패한 적이 있는 동탁 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십만에 달하는 군세를 일으켰으며,
또한 강족과 저족의 지원군이 전쟁에 참전했다.
수개월 동안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던 동탁은 중원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먼저 조조군을 박살 내려 했다.
“감히 내 목에 검을 겨눴던 그 빌어먹을 연놈들을 결단코 용서치 않을 것일세! 중원 끝까지 쫓아가 구족을 멸할 것이야!!”
동탁은 우여곡절 끝에 거머쥐었던 부와 영광을 무너뜨렸던 관동 제후들의 이름을 뇌리에 똑똑히 각인해 두고 있었다.
주축이 된 조조와 원소는 물론,
서영에게 전사했던 지방관들의 가문을 모두 멸해 버리겠다며 포악함을 드러냈다.
부와 권력을 빼앗긴 채 다시 변방으로 쫓겨나는 굴욕을 겪은 동탁은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진격하라, 서량의 호걸들이여! 낙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으냐!! 우리 군세가 낙양에 도달하면 분명 백성들이 쌍수 벌리며 환영해 줄 것이다!”
제 손으로 낙양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동탁은 지난 악행들을 모두 잊었는지, 사예주의 백성들이 크게 환대해 줄 것이라며 얼토당토않은 말했다.
백성들의 고통과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동탁다운 행동이었다.
* * *
동탁이 직접 군세를 이끌고 사예주에 당도했다.
척후들을 이끌던 서황으로부터 급보를 듣게 된 이성휘는 길게 늘어뜨린 진을 재편성하면서 낙양에 전력을 집중했다.
3만의 병력이 모두 낙양에 집결했다.
당장에라도 동탁 군과 일전을 벌일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영예로우신 주군, 동탁이 직접 군세를 이끌고 왔다면… 기관에 주둔하는 병력과 합쳐 족히 십만은 될 것이옵니다.”
무려 10만의 병력이 낙양을 위협할 것이라는 가후의 말에 장수들이 침음을 삼켰다.
동탁이 다시 돌아왔다.
빼앗긴 권좌를 되찾기 위해 십만 대군을 몰고 사예주로 온 것이다.
관동 제후들의 위세에 놀라 낙양에 불을 지른 뒤 장안으로 도망치는 꼴사나운 추태를 벌였지만, 동탁 군은 여전히 가장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는 세력이었다.
“그깟 놈들, 한 번 물리쳤는데 두 번이라도 못 물리치겠어? 나한테 맡겨만 줘!”
십만 대군이라는 말에 휘하 제장들이 잠시 위축되어 있었을 때,
오직 여포만이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놈들을 꺾은 바가 있다.
필시 놈들은 위풍당당한 척 용맹을 뽐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크게 두려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장안에서 수개월 동안 절치부심하면서 힘을 기르고 전력을 보충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일 전에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다는 전적은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일단 업성으로 파발을 보냈습니다.”
순유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업성?”
“원소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함이예요.”
여포의 물음에 장료가 답했다.
동탁은 한나라의 공적이며,
또한 관동 제후군에 참전했던 모든 군벌들의 적이기도 했다.
장안으로 물러났던 동탁 군의 세력권이 다시 사예주로 확대되는 것은 원소도 원하는 상황이 아닐 터. 어떻게든 동탁 군을 다시 몰아내야 했기에 지원군을 분명 보내줄 것이었다.
“동탁의 병력은 최소 10만… 그에 반해 낙양에 집결한 병력은 3만에 불과합니다.”
“연주에서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수비에 총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헌과 위속이 말했다.
그에 순유가 입을 열었다.
“아뇨, 주군께서는 이곳 낙양에서 전면전을 치르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이성휘가 수비에 의존한 채 동탁 군을 맞이할 생각이었자면 하내군에 진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휘는 3만의 군세들을 모두 낙양에 집결시켰다. 서쪽에서 몰려드는 십만 대군을 낙양에서 막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힘과 힘의 대결을,
동탁 군과 총력전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중원제일 검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총력전을 벌이겠다는 말에 송헌과 위속 등의 장수들이 위태로운 반응을 보이자 여포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중원제일 검은 단 한 번도 패한 바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이성휘를 향해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보이는 여포의 모습에 휘하 장수들은 불안에 찬 반응을 보이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효 님.”
“예.”
이성휘의 부름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책상 위의 지도에 손을 올린 뒤,
척후들을 이끌고 염탐해온 동탁 군의 동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의 선봉은 기관에 주둔하고 있으며, 동탁의 본대는 현재 홍농과 조양을 통과하여 영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낙양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동백의 병력은 기관에,
동탁의 병력은 영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성휘가 주둔하는 낙양을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한 뒤, 곧바로 하내군을 접수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놈들의 본대가 연계에 투입되기 전에 먼저 쓸어 버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선봉과 본대 중 어느 한쪽을 먼저 격파하여 기세를 꺾어놓는다면 적들의 사기는 단숨에 바닥을 칠 겁니다!”
후성과 성렴은 적들의 선봉과 본대가 둘로 나뉘어 진격해 오고 있음을 이용하여 단번에 기습할 것을 제안 했다.
비록 적들의 병력이 많으나,
중원제일 검과 병주의 비장이 이끄는 3만의 병력은 중원 최강의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강행군을 거쳐 사예주에 도착한 적들이 피로한 틈을 노려 단번에 총공세를 감행한다면 능히 궤멸시킬 수 있을 터였다.
“불가한 제안이옵니다.”
그에 가후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군이 낙양을 비운다면 나머지 한쪽 병력이 반드시 하내군을 치려 할 것이옵니다.”
조조 군에게 물자를 지원한 하내군을 동탁 군이 가만히 좌시할 리가 없었다.
분명 시가지를 모두 불태운 뒤,
사람들은 물론 가축들까지도 모조리 도살할 게 분명했다.
가후는 만약 일전을 노린다면 적의 선봉과 본대를 동시에 타격해야 한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은 곧 서량의 십만 대군과 전면전을 치르는 것 말고는 하내군을 지킬 방법이 없음을 뜻했다. 가후의 말에 장수들은 애석함이 담긴 침음을 흘렸다.
“소녀가 무대를 펼쳐보겠사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여우처럼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중원제일 검이 활약하기 위한 무대,
십만 대군을 무찌르기 위한 방책을 마련해 보겠노라고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사.”
이성휘가 휘하 장수들과 함께 방안을 수립하고 있었을 때,
무관이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동탁 군이 사절을 보내 왔습니다. 아마… 투항을 종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괘씸한!”
동탁 군이 투항을 종용하는 사절을 보냈다는 소식에 휘하 장수들이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씹어죽일 놈들!
수도를 불태우고 유린했던 역적들이 감히 조정군에게 투항을 종용한단 말인가?
병주 출신의 장수들은 당장 동탁 군이 보낸 사절들의 목을 베어야 마땅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눈이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문원.”
“네, 어림총사.”
이성휘의 부름에 장료가 활을 들어 올렸다.
입을 열기도 전에 생각을 짐작한 듯,
화살 세 대로 동탁 군을 무너뜨린 전적이 있는 백발백중의 여걸이 자신 있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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