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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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침공이 종결된 이후,
계속 연주성에 머물던 이성휘는 두 참모들과 함께 예주 전선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극심한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었으며, 무려 사망설까지 나돌기도 했던 중원제일 검이 멀쩡히 전선으로 귀환하자 병주 출신의 장졸들이 모두 격렬하게 맞이해주었다.
“야, 이 나쁜 놈아!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기별이라도 보내줬어야 할 거 아냐!! 혼자서 불쑥 사라지기나 하고 말이야!!”
금발을 늘어뜨린 병주의 비장이 격노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전선으로 복귀한 중원제일 검을 향해 소리쳤다.
이성휘는 자기 잘못을 통감한 듯,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양해의 말을 전달했다.
본인의 무리한 행동으로 인해 많은 걱정을 했을 전선의 장졸들을 향한 사과이기도 했다. 본인의 잘못을 통감한 이성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하겠다. 선처를 부탁한다.”
한시라도 빨리 서주 대학살의 원인이 될 패국조씨 가문의 몰살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전선의 장수들에게 아무런 언질조차 없이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여포와 장료,
자신을 믿고 전선까지 종군한 병주군 장졸들의 공포와 불안감이 얼마나 컸을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정도였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매달린 여포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먼저 사과를 청했다.
“흥, 죽어 버리든가 말든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여포에게 용서를 받아 낼 수 있었다.
격렬하게 반응하는 비장의 옆을 지키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섬섬옥수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성휘의 콧등을 툭 치면서 장난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은 안 돼요? 봉선 님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거든요. 당장 서주로 가겠다고 어찌나 극성이시던지….”
“큭! 무, 문원!”
“아차, 비밀이었죠. 입을 꾹 닫고 있을게요.”
“이미 다 말했잖아!!”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소리치는 여포의 모습을 본 장료는 배시시 웃으면서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건만,
은연중에 짝사랑하는 남성에게 부끄러운 치부를 홀라당 알려 버린 장료를 수치심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고맙다. 걱정해 줘서.”
“으으으!!”
이성휘가 웃으면서 감사를 전했다.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처럼 오매불망 그리워했음을 들키게 된 여포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찻주전자를 머리 위에 올려 두어도 될 정도로 열기가 솟구치는 듯했다.
“자자, 치정싸움은 거기까지 해주시고… 이제 군략을 의논하겠사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이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뒤이은 가후의 엄호사격에 여포는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다.
“어림총사.”
조조, 조홍과 쏙 빼닮은 단발머리의 여인이 얼음장처럼 정결한 모습을 한 채 이성휘의 옆을 지켰다.
격한 반응을 보인 여포와는 달리,
조인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무뚝뚝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조인의 모습을 본 장졸들은 그 냉철한 담력에 혀를 내둘렀다. 마치 차가운 한기가 도는 것처럼 냉철함을 유지하는 흑발의 여인은 수많은 사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부재중에 전선을 맡아주어 고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어림총사.”
전선을 맡은 도독과 옆을 보필하는 부관 간의 매우 삭막한 대화였다.
두 남녀들의 무뚝뚝한 대화만으로 주변 온도가 삽시간에 바닥을 치는 듯했다.
“동관에서 진출한 동탁 군은 홍농군에 이어 하동군을 점령하고 있을 거예요. 그 틈을 노려 사예주로 진군한다면 늦지 않게 하내군에 도착할 수 있겠죠.”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지도를 가리키면서 동탁 군의 진격로를 설명했다.
동탁 군의 목표는 매우 명확하다.
군사를 재정비한 뒤에 서량 지역의 병력들을 전력으로 보충하여 힘을 되찾았으니 다시금 중원으로 손을 뻗으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동탁 군은 사예주 3군을 취하여 중원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비록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부리나케 도망쳤으나, 천하를 향한 갈망과 탐욕을 탐을 수 없었던 동탁은 수하들을 보내어 사예주를 침공하기에 이르렀다.
“낙양을 잿더미로 만든 역적이 무슨 낯짝으로 고개를 쳐들어? 당장 요절을 내버려야 돼!”
여포가 이를 빠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낙양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원흉,
수백만 명에 달하던 사예주 백성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던졌던 동탁의 만행을 떠올린 여포는 이번에말로 동탁을 죽이겠다며 살의를 내비쳤다.
그녀의 날 선 장담에 장료와 고순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봉선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동탁은 왕망에 필적할 한나라의 국적입니다.”
하늘을 대신하여 만고의 역적을 멸한다면 중원제일 검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게 될 터.
여포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병주 출신의 장수들은 이성휘에게 또한 충성을 바치고 있었기에 중원제일 검을 위해 사력을 다하겠노라 다짐했다.
“영예로우신 주군께옵서 좌우에 군세를 거느린 채 사예주로 입성한다면 백성들이 쌍수 들어 환영할 것이옵니다.”
중원제일 검은 불과 2천에 불과한 병력으로 20만에 필적하는 대군을 거느렸던 동탁을 벌벌 떨게 하였던 최고의 맹장이다.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그 전공과 활약상을 들은 사예주 백성들을 이성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가후는 이성휘가 직접 군세를 몰고 사예주에 입성한다면 백성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함께 조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전했다.
“지금 당장 사예주로 출정한다. 봉선, 선봉을 맡기겠다.”
“알았어, 맡겨만 줘.”
이성휘의 명령에 선봉장을 맡게 된 여포가 제 가슴을 툭 치면서 대답했다.
중원제일 검의 출정이다.
기필코 완벽하게 선봉의 역할을 수행해낼 것이다.
낙양에서 온갖 폭정과 악행들을 벌여 온 동탁 군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한 전쟁이었기에, 여포는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동탁 군과 얽힌 악연과 앙금들을 모두 끊어 버리겠다고 두 눈을 부릅떴다.
* * *
홍농군을 급습했던 동탁 군이 여세를 몰아 하동군까지 점령했다.
두 군현들을 점령한 뒤 병참을 건설한 동탁 군은 사예주의 심장부인 낙양으로 진군하기 위한 준비에 서둘렀다.
동탁 군이 재차 진군을 시작했을 때,
예주 전선에 주둔하던 3만의 조조군이 그를 가로막듯 형양에 입성했다.
“위양군, 척후들로부터 조조 군의 군세가 형양에 입성했다는 급보가 올라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군요.”
무관의 보고에 동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할아버지의 천하통일 대업을 방해했던 원흉을 떠올렸다.
분명 군세를 이끌고 출정한 인물은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이성휘가 틀림없을 터.
일 전에 할아버지를 가로막았듯,
이번에도 역시 농서동씨 가문의 대업에 훼방을 놓기 위해서 사예주까지 진군한 것이리라.
대체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어 사사건건 방해를 놓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유래가 된 오왕(吳王) 부차와 월왕(越王) 구천처럼 철천지원수였을 게 분명했다.
“위양군!”
“놈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십시오!”
지난 전쟁에서 중원제일 검에게 연전연패를 겪었던 두 장수들이 동백에게 복수의 기회를 간청했다.
서량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이각과 곽사였다.
대패를 당하고 줄행랑을 친 주제에,
수개월 동안 담력을 길렀는지 이각과 곽사는 대담하게도 중원제일 검에게 복수하겠노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아뇨, 일단은 중원제일 검을 사예주로 끌어들일 거예요. 교전은 그다음입니다.”
절대로 중원제일 검은 전면전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서량 제일의 맹장이라 불리던 화웅조차 단칼에 썰어 버리는 천하제일의 맹장을 어찌 힘으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족히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그를 보조할 10만 명의 병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했다.
동백은 이성휘를 서초패왕(西楚覇王)에 비견될 맹장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중원제일 검. 감히 할아버님의 대업을 짓밟은 불구대천의 원수. 당신만 없었다면 할아버님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셨을 텐데.”
모든 치욕과 분탄의 원흉.
할아버님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포기한 채 서쪽으로 물러나게 된 것은 모두 중원제일 검이라는 원흉 때문이다.
가장 총애하던 맹장을 잃었으며,
서량에서부터 대업을 함께 해온 부하들마저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말았다.
낙양에 불을 지르고 장안으로 천도했을 당시, 원통함에 찬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린 동백은 손녀딸인 자신이 대신하여 철천지원수에게 복수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머지 않아 상국께서 본대를 이끌고 직접 사예주로 오실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중랑장 장제의 말에 동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형양 방면에 있을 원수를,
또다시 대업을 막아서는 철천지원수를 떠올렸다.
얼굴을 본 적은 없으나 만약 전선에서 중원제일 검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단번에 알아챌 것 같았다. 그는 항상 피칠갑한 채 수백 명에 이르는 적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원제일 검….’
복수의 대상.
대업을 막아서는 원흉.
중앙 정권을 제패했던 할아버지를 서쪽으로 몰아낸 최악의 천적.
동백은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면서 철천지원수에게 살의를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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