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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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를 찾아온 이성휘로부터 딸과 조카딸을 둘 다 달라는 간청을 받게 된 조숭은 심란함에 젖은 표정으로 고심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금지옥엽처럼 키운 외동딸로 모자라,
곱게 자란 방계의 조카딸까지 달라고 청하다니.
과연 중원제일 검다운 포부였다.
영웅에게 삼처사첩(三妻四妾)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딸을 둔 아비로서 그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당당히 본가로 들어와 딸과의 혼담을 요청한 예비 사위가 조카딸을 후처로 달라는 부탁까지 했으니 당연히 조숭으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뿐이었다.
“우리 패국조씨 가문을 아주 능멸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아주 괘씸한 작자가 아니오! 당숙 어르신의 여식을 정실로 맞이하는 것으로 모자라, 방계의 조카딸까지 소실로 맞이하고 싶다고 감히 지껄이다니!”
본가에 찾아온 이성휘의 폭탄 발언이 패국조씨 가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를 두고 패국조씨 가문의 원로들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면서 격한 논쟁을 벌여댔다.
개국공신 사대부인 패국조씨 가문에서 본처와 후처를 모두 들이고 싶다는 이성휘의 말 때문이었다.
‘그래도 상대는 중원제일 검인데.’
‘황실과 조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있으니, 필시 중원제일 검은 후일에 대장군의 반열에까지 오를 터.
‘대장군이 될 재목을 우리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일 수만 있다면 장차 여남원씨 가문을 능가하는 대명문가로 등극할 수 있을 텐데.’
격노와 불만에 찬 모습은 그저 표면적인 반응일 뿐이다. 패국조씨 가문의 원로들은 이성휘를 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내심 정실과 소실 자리를 모두 패국조씨 가문이 장악함으로서 어림총사 이성휘를 완전히 가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시끄럽게 논쟁을 벌이던 원로들이 힐끔 조숭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담긴말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패국조씨 가문의 가주인 조숭의 의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숙 어르신께서 하나뿐인 외동딸을 지금까지 애지중지해온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니.’
‘분명 중원제일 검의 말에 크게 격노하시는 중일 테지. 워낙 점잖으신 분이라 무덤덤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원로들은 상석에 앉은 채 고심에 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조숭을 바라보았다.
과연 무슨 생각하고 계실까.
금지옥엽처럼 키운 외동딸뿐만 아니라 방계의 조카딸까지 내어달라는 중원제일 검의 간청을 어쩌면 치욕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조숭이 중원제일 검과의 혼담을 완전히 백지화로 돌려 버릴까, 원로들은 그것을 크게 우려 했다.
‘만약 당숙 어르신께서 거절하신다면 우리 여덟 살 딸아이를…!’
‘대장군의 반열에 오를 재목을 이대로 놓치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중원제일 검은 천하를 떨게 만든 일기당천의 맹장이 아닌가!’
이성휘는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을 세운 맹장 중의 맹장이다.
조정대신들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는 이성휘가 곧 위장군(衛將軍)에 임명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세간에 떠돌고 있었기에 원로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늘어만 갔다.
“크흠!”
상석에 앉은 조숭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헛기침했다.
그에 원로들은 자기 속내가 들켰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위가 아니라 순 도둑놈이었구먼…!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딸에 이어 조카딸까지 내어달라니… 흥, 여색을 밝히는 모습이 무릇 사내대장부답군…!’
조숭은 일찍 아내를 사별한 이후에 새 장가를 가진 않았지만 여러 첩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아들 조덕이 바로 첩의 소생이었다.
그래서 조조의 이복동생인 조덕은 누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여러 첩들을 거느릴 정도로 호색한 성정을 가진 조숭은 자기 딸과 조카딸을 모두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이성휘를 괘씸하게 생각하면서도, 내심 그 호색한 행동을 사내대장부의 호탕함이라고 평가했다.
“저는 누이께서 어찌 생각하실지, 그것이 염려스러울 따름입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를 보필하던 조덕이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매형이 될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는 가문의 은인이 아닌가?
게다가 검 한 자루로 한나라 13주를 요동치게 만든 중원제일 검을 매형이 된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패국조씨 가문을 업신여길 수 없을 것이기에 어떻게든 반드시 붙잡고 싶었다.
“…아만이 선택할 일이다. 나는 아만이 현명한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조숭은 마음에 쏙 든 사윗감을 놓치게 될까 우려하면서도 딸에게 모두 맡기겠다며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 * *
연모하는 남성과 바람을 핀 사촌 동생을 응분의 징벌을 내린 조조는 결국 첩을 들이는 것을 허락했다.
여전히 괘씸했지만,
그런데도 이성휘를 연모했기에 결국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관용을 베풀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데도 야속한 마음이 계속 들었는지, 조조는 사촌 동생을 볼 때마다 노골적으로 불쾌감에 찬 모습을 보였다.
“신발.”
“네, 언니!”
대청마루에 오른 조조가 입을 열자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홍이 후다닥 달려와 신발을 꺼냈다.
황하에서 돌아온 이후,
조홍은 종살이를 하듯 사촌언니의 수발을 들었다.
만약 발목을 밧줄로 묶지 않았다면 황하의 소용돌이 같은 격류에 빠져 물귀신이 되고 말았겠지. 그 처절했던 상황을 떠올린 조홍은 소용돌이에 두 번 이상 빠지고 싶지 않았기에 사촌언니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내 부관의 처음을 홀라당 가로챈 도둑고양이 같으니라고.”
“…….”
조조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물론 다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기에 혼잣말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사촌언니의 독기어린 말에 조홍은 위장이 쓰라려오는 것을 느꼈다.
“맹덕 님.”
신발을 신은 조조가 조홍과 함께 집무실로 행차하려 했을 때,
이성휘가 다가왔다.
일편단심과 같았던 자기 애정을 양다리로 되돌려 준 밉살스러운 부관을 잠시 노려보던 조조가 심드렁한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난봉꾼?”
“…….”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부관’에서 ‘난봉꾼’으로 변하게 된 것에 이성휘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화가 난 상태구나.
되도록 그녀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로 했다.
마음속에 단단히 응어리진 애증과 울분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엄청 긴 세월이 필요로 할 것 같았다.
“좋겠군, 자렴. 첫 상대가 왔으니.”
“흐끅!”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사촌언니의 눈길에 조홍이 어깨를 움찔 들썩이면서 딸꾹질했다.
매서운 힐난을 이길 수 없었는지,
조홍은 아연실색한 채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자신 몰래 양다리를 걸쳤던 두 남녀를 잠시 노려보던 조조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이성휘에게 용건을 물었다.
“제가 철면피처럼 보일 것은 알지만… 다시 본가로 가 어르신을 설득하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이성휘가 고개를 숙이며 청했다.
그에 조조는 새하얀 뺨을 붉게 물들이면서 부끄러움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를 설득하겠다니,
다시 혼례를 간청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중간에 잠시 도둑고양이가 끼어들긴 했지만 2년 동안 짝사랑해온 사내와 드디어 혼례를 치르고 정식으로 부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조조는 환열과 환희를 감추지 못했다.
‘흠흠! 직접 본가를 방문하여 아버지에게 혼담을 간청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아버지를 찾아간단 말인가…. 그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 것인가! 몰래 바람을 피운 괘씸하기 짝은 없는 사내지만 나를 연모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모양이군…!’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듯한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만족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입꼬리,
당장에라도 푼수처럼 가벼운 웃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그제야 마음을 푼 것 같은 조조의 모습에 이성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홍과 함께 귀여운 주군을 뒤따랐다.
“그럼 일단 본가로 가도록 하지.”
조조는 부관과 조홍을 대동한 채 본가로 향했다.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고지식한 성정의 아버지는 분명 애지중지하며 키운 딸을 바람둥이에게 시집보낼 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을 터.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꽤 장기전이 될 것만 같았다.
‘이러니 정말 부부가 된 것 같군.’
남편이 될 사람과,
없었으면 더 좋았을 불여우 한 마리.
사랑하는 부관과 함께 본가로 가게 된 상황에 조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부부생활을 뇌리에 그려 나갔다.
“맹덕!”
마차를 타고 본가로 향하려 했을 때,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이 다급한목소리로 부르면서 뛰어왔다.
전선에서 급보라도 전해졌는지,
패국의 여걸은 급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원양.”
“동탁 군이 수만에 이르는 군세를 이끌고 홍농군(洪農郡)을 넘었다는 급보가 방금 도착했어!”
“뭐… 동탁 군이?”
숭산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중원제일 검의 무위와 용맹을 두려워하여 낙양에 불을 일으키고 관서(關西)로 도망쳤던 수괴가 다시 등장했다.
어느덧 세력을 재정비했는지,
관서와 서량에 무거운 엉덩이를 처박은 채로 두 번 다시 머리를 들이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만고의 역적이 천하를 향한 욕망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기어코 다시 동탁 군이 움직였다.
하후돈으로부터 전선의 급보를 듣게 된 조조와 이성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한나라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끔찍한 괴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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