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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17화 (217/616)

2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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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환희의 눈물에 휩싸였던 얼굴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경악.

동요. 불안.

공포. 혼란.

수많은 감정들이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뭐라고… 했는가…?”

2년 동안 열렬히 연모해온 남성으로부터 마침내 청혼을 받게 된 흑발의 여인이 경악와 혼란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떨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에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두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성휘는 침음을 삼키면서 그녀의 모든 분노를 받아들이겠노라고 각오했다.

“아만을 연모하듯… 자렴 또한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습니다.”

“…….”

재차 입장을 밝힌 이성휘의 행동에 조조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붉은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애증(愛憎),

사랑과 증오의 형태가 공존하면서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게 했다.

“어떻게 내게,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귀관… 그대 하나만을 진심으로 연모하는데, 어찌 귀관은 내 앞에서 뻔뻔스럽게 자렴까지 연모하고 있다는 말을 지껄일 수 있느냔 말일세.”

조조가 두 손을 뻗으면서 이성휘의 옷깃을 단단히 붙잡았다.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고 흔들 것처럼 손아귀에 강한 악력이 들어간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냐는 말로 끝날 문제인가?”

이성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에 조조는 옷깃을 붙잡은 두 손을 당기면서 그가 자신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고개를 숙인 채였던 이성휘는 맹렬하게 불타는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동공이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분노와 원망, 배신감.

여러 감정들이 눈동자를 통해 느껴졌다.

“꼭 그걸 지금 말했어야 했는가?”

“더 이상 아만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을 모두 밝힌 뒤에 진심 어린 고백을 다시 하고 싶었습니다.”

휘몰아치는 애증 속에서도 이성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눈동자를 보며 자기 의지를 전달했다.

날카로운 칼끝처럼,

일말의 거짓도…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결연한 각오를 품은 눈빛으로 연모하는 여인을 바라보면서 진실만을 말했다.

“왜 하필 자렴인가! 어찌 나를 연모한다고 고백했으면서, 내 사촌과 통정을 할 수 있느냔 말일세!”

“죄송합니다.”

“뻔뻔하군! 부끄러움을 모르는군! 나로도 모자라 자렴까지 건들다니… 수치심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심중에 담긴 모든 감정들을 쏟아 내듯,

흑발의 여인은 그를 힘껏 힐난했다.

증오하고 싶어도 증오할 수 없는,

배신을 당한 상황에서도 살의를 품을 수 없는 답답함을 토해냈다.

감히 자신을 기만하고 사촌 동생과 내연을 꾀한 그를 당장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사랑하는 진심이 계속해서 냉혹한결단을 가로막았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성휘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재차 사죄를 청했다.

그에 조조는,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돌렸다.

“…….”

“…….”

격렬한 힐난 다음에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야속함에 물든 붉은 눈동자로 고개를 숙인 이성휘를 노려보면서 감정을 불태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흥.”

놀랍게도 먼저 물러선 쪽은 조조였다.

복수심에 불타 도겸군과 서주를 완전히 지워 버리려 했던 철혈의 군주가 총애하는 부관의 진심에 물러난 것이다.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분하고 원통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감정은 결코 살의로 이어지진 않았다.

조조에게 있어 이성휘란 사내는 연모와 호의의 대상이며, 또한 절대로 살의와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최악의 사내로군. 어찌 나를 연모한다고 속삭여놓고 자렴마저 연모할 수 있단 말인가? 귀관은 뻔뻔한 사람일세!”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람둥이를 크게 매도한 흑발의 여인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분기를 토해냈다.

나쁜 놈.

괘씸한 바람둥이.

몇 번이나 나에게 진심을 고백했던 주제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그것도 사촌 동생과!

당장 주리를 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읏!”

조조가 손을 뻗으면서 이성휘의 뺨을 톡 건드렸다.

뺨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그에게 상처를 가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양다리를 걸친 사내를 향해 매도와 함께 폭력을 행사하기에는 그를 너무도 사랑했다. 그래서 그가 바람을 피웠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에게 손찌검 한 번을 할 수가 없었다.

“귀관은 정말 나쁜 사내일세.”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미운 마음이 들면서도,

연모하는 사내의 얼굴을 보면 미움의 감정이 삽시간에 흩어져 버렸다.

못마땅함에 찬 눈빛으로 이성휘를 힐끗 노려본 조조는 단 한순간도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이 남자에게 푹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렴을 부르겠네. 둘을 대질하여 사실 여부를 파악할 것일세!”

흑발의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콧방귀를 끼었다.

당장 분노는 비껴간 듯했으나,

조홍은 사촌언니의 분노를 결코 회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만.”

이성휘가 손을 뻗으면서 조조의 새하얀 뺨을 쓰다듬었다.

잠시 시선을 교환한 뒤,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 온기를 새겼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조조의 얼굴이 연심으로 붉어졌다. 설마 갑자기 입맞춤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으으! 서, 설마 이렇게 입맞춤으로 얼렁뚱땅 무마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리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일세!”

흑발의 여인이 분통을 터트리면서 소리쳤다. 두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꼭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반응이다.

북받치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던 이성휘가 조조의 입술에 재차 입맞춤하면서 그 마음을 표현했다.

* * *

이성휘를 돌려보낸 조조는 사실 여부를 대질하기 위해 조홍에게 부름을 내렸다.

예상하고 있었는지,

부름을 내리자마자 조홍은 머뭇대는 모습으로 조조가 있는 본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사촌언니로부터 맹렬한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는지, 항상 의기양양하게 으쓱이던 조홍의 어깨는 매우 위축된 상태였다.

“부관에게 들었다.”

“…네.”

상석에 앉은 조조가 입을 열었다.

그에 조홍은 바닥에 이마가 닿을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사촌언니는 극도로 분노하게 되면 냉혈한처럼 무자비해지는 성격이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조홍은 어떻게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자렴.”

“네, 언니.”

“너는 그 어떤 격전 속에서도 지금까지 나를 충실하게 보필해주었지. 그래서 나 또한 너를 사촌들 중에서 가장 총애했다.”

“…네.”

자신을 진심으로 총애했던 사촌언니의 말에 조홍은 마음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총애했다는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 기분이었다.

언니가 진심으로 연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관계를 이어나갔던 행위가 짙은 죄책감이 되어 찾아왔다.

“명석하고 지혜로운 너라면 내가 부관을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부관에게 마음을 주었지?”

“어, 언니께서 어림총사를 진심으로 연모하는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까요.”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입을 연 조홍의 대답에 분노로 물든 붉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연모(戀慕).

내 부관을 가로챈 주제에,

감히 그 입에 연모를 담는단 말인가?

종친들 중에서 가장 총애했던 사촌이 교활한 불여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에서 살의가 치솟는 것 같았다.

“후우….”

이윽고 조조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불길처럼 활활 솟구치는 분기를 애써 삭이려는 행동이었다.

불륜 상대는 총애하는 사촌,

가장 신뢰했던 사촌이 지금까지 부관과 내연관계를 맺어온 여자였다.

당장에라도 몸에 바위를 꽁꽁 묶은 다음에 황하 강바닥으로 처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이성휘의 죄를 용서해 버린 상황이었기에 조조는 조홍을 향한 처벌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게다가 조홍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겠다고 이성휘에게 약속해버렸기 때문에 조조는 애써 살의를 거둬냈다.

“나는 부관에게 몇 번이고 빚을 졌다. 부관을 나에게 중원의 패자라는 영광과 권력을 주었고, 또한 서주에서는 아버지와 일가친척들까지 목숨을 걸고 구해주었지.”

허리에 검을 찬 흑발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촌에게 다가왔다.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검에서 철컥철컥 금속음이 흘렀다.

서늘한 금속음을 들은 조홍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아연실색한 채 처분을 기다렸다.

“설령 부관이 너와 바람을 피웠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미워할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실책들을 그에게 범했으니.”

부관이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조홍에게 마음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은 매번 꼴사나운 모습들만 보이는 계집이었으니까.

부관의 숭고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서주 침공을 감행했던 자기 어리석은 실책을 떠올린 조조는 무릎을 꿇은 채 바들바들 떠는 사촌 동생을 내려다 보면서 살의를 억눌렀다.

“자렴.”

"…네, 언니."

사촌 동생의 대답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근신을 명하겠다… 차후에 명이 있을 때까지 가택에서 대기해라."

숨통을 옥죄는 듯한 경고에 조홍은 온몸을 떨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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