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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15화 (215/616)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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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목숨이 위태로웠던 적이 또 있었던가.

조홍은 현재 기로에 서 있었다.

생(生)과 사(死),

어쩌면 죽여 달라고 두 손 싹싹 빌 정도로 끔찍한 형벌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 놓이게 되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여럿 죽일 것만 같은 매서운 눈길로 자신을 노려보는 사촌언니의 모습에 조홍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머리를 최대한 빨리 굴렸다.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

어떻게든 태연하게 받아쳐야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언니, 그러니까 저….”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입을 열었다.

고심과 번민에 찬 깊은 수렁 속에서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낸 듯했다.

“마음에 둔 정인이 생겼어요. 사실 예전부터 생겼는데… 죄송해요, 미리 말씀을 못 올려서.”

조홍은 날카로운 총기를 자랑하는 사촌언니를 완전히 속이기는 어렵다고 판단,

그래서 이성과 열애를 나누고 있음을 인정하되 교제하는 상대의 신분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말하면서 거짓말을 급히 꾸며냈다.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힌 판단이었다.

이성과 연애를 먼저 시작한 숙련자로서 그런 대답했다고 둘러댈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렴, 네게 정인이 생겼을 줄은 미처 몰랐다.”

정인이 생겼다는 사촌 동생의 대답에 조조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워했다.

사대부와 호족 가문이 보낸 수많은 혼담들을 모두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정도로 자존심이 높았던 사촌 동생에게 마침내 정인이 생겼을 줄이야.

조조는 자신이 너무 이성휘에게 빠져 있느라 지금까지 분골쇄신하여 노력해온 종친들을 홀대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먼저 말해줬다면 측히헤줬을 텐데.”

“그간 많이 바쁘셨잖아요. 어림총사도 끔찍한 부상을 입고 생사를 헤매기도 했고….”

지금까지 무심했던 언니를 배려하는 듯한 사촌 동생의 대답에 조조는 감격에 찬 눈길을 보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총애하는 종친답게,

사촌 동생은 자신을 향한 충성심이 매우 확고했다.

그래서 연주의 방위를 총지휘하는 평동장군으로 임명해준 것이 아닌가.

“언니, 어림총사와 어떻게 되셨어요? 순탄하게 나가고 계신가요?”

조홍이 물었다.

자신에게 가해진 의심의 눈초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물음이었다.

연모하는 부관과 마침내 맺어지게 된 것을 사방팔방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던 조조는 사촌 동생의 앙큼한 수작질에 곧바로 걸려들고 말았다.

“부, 부관과… 어젯밤에 맺어졌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주종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의 남녀로서… 맺어지게 되었다.”

“축하해요, 언니!”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연모하는 부관과 마침내 동침했노라는 사실을 밝힌 사촌언니의 답변에 조홍은 과장된 몸짓을 지으면서 감탄했다.

겉으로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자신에 이어 언니의 순결마저 앗아간 욕심쟁이에게 힐난을 토해냈다.

물론 오랫동안 언니를 연모해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어코 언니의 순결까지 차지하다니. 그가 연주성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서 자초지종과 함께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언니의 순결까지…! 매번 무뚝뚝하게 구는 주제에 여심 후리기에 선수라니까!’

이성휘의 본질을 가장 먼저 꿰뚫어 본 조홍은 패국조씨 가문의 가주이신 숙부와 원로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발칵 뒤집힐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은 언니의 날카로운 혜안을 가리는 게 먼저였지만 말이다.

“어젯밤 동침으로… 회임하게 되진 않을까요?”

조홍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에 조조는 쑥스러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으로 자기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만. 부관을 쏙 빼닮은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모성애를 발산하면서 조조는 간절한 염원을 주장했다.

한 사내의 아내가,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싶다.

연주와 예주를 제패하고 서주마저 정벌해낸 중원의 패자는 천하를 향한 야망과 포부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행복에도 마음을 쏟고 있었다.

“아….”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행복감에 물든 미소를 짓고 있는 사촌언니의 모습에 조홍은 무심코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죄책감이 밀려든 탓이다.

천하에서 가장 존경하는 언니를 속이고 있다는, 언니가 2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연모해온 남성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 어림총사! 당장 어림총사하고 만나야겠어!’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역시 이성휘 밖에 없다.

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결코 이성휘를 포기할 수 없었던 조홍은 이 시급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자 그에게 달려가기로 했다.

* * *

조홍이 급히 찾아왔을 때,

이성휘는 예주 전선에서 달려온 두 참모들과 함께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전선에 비상이 걸린 것은 아니었으나,

병력을 총지휘하는 수장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이성휘는 아쉬움에 찬 마음을 단번에 잘라 내고서 연주성을 떠나려 했다.

“어림총사!”

다급함에 물든 눈빛을 한 흑발의 여인이 이성휘를 향해 소리쳤다.

그에 이성휘는 순유와 가후를 자리에서 물린 다음에 조홍을 환대했다.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급히 달려온 것으로 보아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성휘의 예측은 적중했다.

“어, 언니께서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아요!”

“낌새라고 하옵시면….”

“이 둔탱이야! 우리들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잖아!”

뻔한 이야기를 애써 묻는 이성휘를 향해 조홍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자 마음은 줄곧 흔들어대는 주제에,

왜 하필 이런 눈치는 바닥을 친단 말인가!

분풀이를 하듯 사촌언니에게 느낀 공포와 두려움을 이성휘에게 대신 분노로 털어낸 조홍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한 채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시한부를 보는 듯했다.

“괜찮을 겁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으읏!”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부끄러움에 찬 신음을 흘렸다.

둔감하기 짝이 없는 남자인 주제에,

항상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낸다.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모든 불안과 두려움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설득할 건데요…? 설마 지난번처럼 막무가내로 언니한테 쳐들어간 다음에 곧이곧대로 이실직고하겠다는 생각은 아니겠죠?”

만약 이 사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머리를 한 대 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성장을 하는 생물임을 보여주듯 이성휘에게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듯 보였다.

“먼저 아만… 맹덕 님에게 청혼을 할 겁니다. 춘부 어르신이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음, 그다음은요?”

“그리고 자렴과의 교제를 허락받을 겁니다.”

“일단 언니에게 확고한 정실 자리에 선정한 다음에 저를 옆에 두겠다는 말이네요.”

이 남자,

그간 멍청하고 둔감한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 교활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이성휘는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계속 심사숙고하고 있었던 듯했다.

“어림총사가 며칠 동안 숙부님과 함께 사냥과 낚시하면서 막역한 친분을 쌓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숙부님을 동원하여 혼례를 진행한다면… 무, 무사히 어림총사의 첩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한 조홍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사촌언니가 정실로,

자신은 어림총사의 첩실이 된다.

어림총사의 명실상부한 정실로 등극하게 될 언니가 몹시 부러웠지만 불만은 없었다. 경애하는 언니가 중원제일 검의 처가 되는 것은 매우 당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중원제일 검의 정실이 되고 싶다고 언니에게 억지를 부린다면… 십중팔구 저잣거리에서 참형을 선고받을게 분명했기에 분에 넘치는 욕망을 억눌렀다.

“이 나쁜 사람.”

해결책을 내놓은 이성휘를 향해 조홍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이 조자렴으로 모자라… 그다음으로 언니까지 건들다니, 진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이네요.”

“죄송합니다.”

“흥…! 어림총사한테 사과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예요. 그냥 뭐랄까, 저도 지금 상황이 당혹스러워서 꺼낸 말이었어요.”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여주던 조홍이 이성휘의 어깨에 머리를 올렸다.

오랫동안 사랑해온 연인처럼,

조홍은 새빨갛게 물든 뺨에 보조개를 그리면서 살포시 웃음을 터트렸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쁜 걸까. 자칫 목숨이 떨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조홍은 이성휘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으, 아파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이성휘는 조홍의 부드러운 뺨을 꼬집으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아만과 마찬가지로… 자렴 또한 자신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아만도, 자렴도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저와 혼인하여 주시겠습니까?”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어깨 위에 머리를 올리고 있던 조홍은 웃음을 배시시 지으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예요.”

언니와 함께 이 남자의 아내가 될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각오할 수 있었다.

관직과 지위를 포기하라면 할 것이며,

지금까지 쌓은 모든 재물들을 포기하라면 응당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었다.

내 옆을 함께하는 이 사내는 천하의 그 어떤 재보보다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패국조씨 가문의 재녀에게 있어 이성휘라는 존재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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