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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14화 (214/616)

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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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조조의 부름을 받고 급히 가택을 나선 명공이 새벽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뜻과 의미를 모를 정도로 초선은 어수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사공 조조가 밤늦은 시각에 시녀를 보내와 기별을 넣었을 때부터 그 의도가 불순한 것을 넌지시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초선은 기별을 받고 가택을 나서는 이성휘를 말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주제넘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아찔하게 타오르는 등불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불씨를 응시할 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 걸까.

나를 방치한 채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 명공을 향한 배신감과 야속함?

어쩌면 사랑하는 명공이 두 번 다시는 나를 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명공.”

사랑하는 명공의 침소에 정좌한 채 앉아 등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여인이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새하얀 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원망과 야속함에 찬 감정을 눈물의 형태로 배출했다.

그러나 원망과 야속함은 연모하는 명공을 향한 악감정이 결코 아니었다. 명공에게 남몰래 연모하는 정인이 있을 줄 알면서도 사랑하게 된 주제에, 마치 소박맞은 아내라도 된 것처럼 실망과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는 자신을 향한 혐오였다.

‘명공의 옆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황송스럽게 받들어야 할 일이옵니다…. 감히 투기라니! 소녀가 어찌 투기를 품을 수 있겠사옵니까!’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한없이 비겁하고,

끝도 없이 이기적이었다.

경애하는 명공의 옆을 보필하며 수발을 드는 것만으로도 황송스러운 일이건만, 마치 아내라도 된 것처럼 부름을 받고 가택을 나선 명공을 향해 옹졸한 마음을 품는 자신이 너무도 간사하게 보였다.

“설령 소녀가 명공에게 있어 첫 번째가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소녀의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명공은 소녀의 첫 번째일 것이옵니다….”

이성휘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밝힌 초선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공은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터.

아마 이른 새벽쯤이 되어야 돌아올 것 같았다.

이성휘의 침소를 은은하게 밝히던 등불을 하나둘씩 소등하기 시작했다.

새하얀 뺨에 눈물 자국이 남은 작약꽃의 시녀는 울음기 섞인 숨결을 내뱉으면서 아슬아슬하게 타오르던 불씨를 꺼트렸다.

* * *

그날 밤 이후,

조조와 이성휘는 한껏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부끄러움에 찬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 간질에 걸린 것처럼 말을 더듬으며 온몸을 바르르 떨기까지 했다.

‘했네, 했어.’

‘주군의 걸음이 이상한 것도 설마?!’

‘주종관계를 이용해서 거사를 치른 게 분명해….’

조조는 고뿔에 걸렸다는 이유로 조회를 열지 않았다.

과연 정말 고뿔일까,

처녀 졸업의 후유증으로 쉰 게 아닐까?

일벌레, 업무중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밤낮으로 업무에 매진해온 주군이 조회를 취소했다는 소식에 참모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발걸음을 절뚝절뚝 절면서 늦은 오후가 되어 집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주군의 모습에 참모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무언으로 쑥덕거렸다.

“무슨 일인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참모들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명부.”

“고뿔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다들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새하얀 뺨이 홍조로 물들어 있었지만 조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늦은 오후에 집무실로 와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조조의 모습에 참모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연스러운 모습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닌가?’

‘분명 명부의 발걸음이 조금 이상했는데….’

‘어르신께서 미열을 동반한 고뿔에 걸리신 게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연주와 예주 전역에서 올라온 장계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조조의 모습을 보며 참모들이 중얼거렸다.

날카로운 눈매와 예리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모든 게 평상시와 똑같았다.

자리에 앉아 냉철하게 업무들을 검토하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주군과 참모들이 집무실에서 머리를 맞대면서 업무에 매진하고 있을 때,

문 너머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림총사 이성휘였다.

용무가 있는지 주군의 집무실로 찾아온 남성은 정중한목소리로 출입의 허락을 물었다.

“…흐읏!”

집무실을 찾아온 이성휘의 목소리에 좌우의 참모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상석에 앉은 흑발의 여인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들뜬 한숨을 흘렸다.

머리 위로 뜨거운 수증기가 솟구칠 것처럼 그녀의 새하얀 얼굴은 맹렬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해가 뜨기 직전인 새벽까지 격렬하게 사랑과 육욕을 나눴던 상대방의 목소리에 조조는 금세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명부?”

얼음장을 두른 것처럼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명부께서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을 본 진궁이 놀라 물었다.

철혈의 면모를 보이던 그 명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처녀를 준 남성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드, 들어오게!”

이성휘의 물음에 조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뒤이어 이성휘가 문을 열고 집무실에 들어섰다.

“맹덕 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마, 말하게나…!”

참모들과 동석하는 흑발의 여인을 본 이성휘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에 조조는 이 무뚝뚝한 사내가 참모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고백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기대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성휘가 집무실로 찾아온 이유는 고백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심신을 어느 정도 추슬렀으니 예주 전선으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계속 자리를 비운다면 장졸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겠습니까.”

병주군이 주둔하는 예주 전선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는 전선을 지휘하는 도독이었으므로 당연히 군단으로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조조는 전선으로 복귀하겠다고 말한 이성휘가 야속했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본인이 맡은 책무를 다하려는 성실한 모습은 무척이나 기뻤지만, 조금 매정한 감이 없지 않아 보였다.

“무, 물론 귀관은 전선을 통솔하는 장수이기에 다시 예주 전선으로 복귀해야겠지. 당연히 전선으로 돌아가 장졸들을 단속하는 것이 귀관의 책무이다만….”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전선으로 돌아가겠다는 부관을 향해 곁눈질을 보냈다.

그러나 이 둔감한 성격의 부관은 당연하게도 그 곁눈질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언제쯤 돌아갈 계획인가?”

“내일 돌아가려 합니다.”

“음.”

곧바로 전선으로 복귀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오늘 새벽까지 그렇게 격렬히 사랑을 나눈 주제에 미련 없이 돌아서는 이성휘의 모습을 보며 조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 *

마치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곧바로 예주 전선으로 떠나려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속상한 마음을 사촌에게 토로 했다.

평동장군(平東將軍) 겸,

연애 상담역이었던 조홍은 언니가 꺼낸 고충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를 향한 충성심 때문 아닐까요? 원술군과 인접한 예주 전선은 한시라도 비워둘 수 없는 곳이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사촌 조홍을 후원에 위치한 전각으로 불러낸 조조는 그 말을 듣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비자나무들을 바라보던 흑발의 여인은 사촌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래도 오늘 새벽까지 그리도 격렬하게 애정을 나눴는데….’

숨을 헐떡대면서 매달리는 자신을 향해 강압적으로 허리를 내리찍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조조가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속상한 마음을 중얼거렸다.

그가 미운 건 아니다.

그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와 다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못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할 따름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미련스럽게 보일 정도로 무뚝뚝 하고…. 책무와 본분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매정한 것처럼 보이게 된 거죠.”

조홍의 뒤이은 말에 조조는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 경직된 표정을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사촌의 말 대로였다.

그 사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2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연모해온 사내와 마침내 맺어지게 된 흑발의 여인은 애달픔에 찬 한숨을 흘리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위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애써 넘기기로 했다.

“자렴.”

“네, 언니.”

“너는 매번 부관을 몹시 경계하는 것처럼 행동했을 텐데…. 부관을 높게 신뢰하는군. 직접 나서서 변호를 해 줄 정도이니.”

사촌언니의 말에 조홍은 몹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두 팔을 뻗으면서 자기 본심을 숨기고자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럴 리가요! 출신도 신분도 모를 남자 따위에게 제가 왜 정을 주겠어요? 함께 전선에서 싸우면서 조금… 아주 방금 전우애가 생긴 거죠! 저는 아직도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요.”

혹시라도 사촌언니에게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홍은 아연실색한 채 변명했다.

들키면 죽는다.

정말로 죽게 되겠지.

장개와 그 일당들의 피습에 분노하여 도겸군과 서주를 지도에서 완전히 말소하려 했던 사촌언니의 광기 어린 애정을 떠올린 조홍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이, 일단 제가 자리를 마련해볼 테니까… 어림총사와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응…, 알겠다.”

사촌 동생의 제안에 조조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림총사는 절대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격은 아니예요. 설마 모르쇠로 일관하겠어요? 당장 저만 하더라도….”

“뭐?”

조홍의 말에 조조가 되물었다.

그 짧고 간결한 되물음에,

조홍은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한 채 등골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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