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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07화 (207/616)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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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들이 불타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들이 불타고 있었다.

거칠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서적들을 본 순유는 분탄을 금치 못했다.

수년 동안 집필해온 소중한 성과들이 한낱 불쏘시개가 되어 불타는 모습은 금석위개(金石爲開)의 노력들이 한 줌의 잿더미가 된 것을 의미하였다.

‘내, 내 작품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서 집필해온 작품들인데에에!!’

-음란한 여서생.

-포로로 붙잡힌 여무장.

-사대부 집 아가씨는 어째서 노복에게 쌀밥을 주었을까?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제목을 가진 서책들이 화염에 잠겨 사라졌다.

순유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순욱은 곡식을 갉아먹는 메뚜기들을 불태우는 통쾌한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 타는구만, 아주 잘 타! 하하하하! 아주 좋아, 싸늘했던 아침 추위가 불쏘시개들로 사라지는 것 같구만, 흐하하하하하!’

피도 눈물도 없이 화형을 집행하는 7촌 고모의 모습을 본 순유는 환청마저 들을 정도로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정녕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수년 동안 해온 노력들을 이리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다니.

형설지공(螢雪之功) 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집필활동을 삽시간에 불태운 순욱의 행동에 순유는 크게 반감을 품었다.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내려온 양속과 기풍을 해치는 삿된 사문들입니다! 샅샅이 수색하여 한 권도 빠짐없이 모두 불태우세요!”

“예, 부군사!”

순욱으로부터 지엄한 명령이 떨어졌다.

분서에 참여했던 교위들이 예를 취하면서 답했다.

“죄송합니다, 조카님. 수년 만에 재회한 조카님에게 흉물스러운 것들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휴, 흉물….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집필해온 작품들을 ‘흉물’이라고 말한 순욱의 행동에 순유는 애써 분기를 숨기면서 모르는 척 일관했다.

민간에 퍼진 서적들을 사문으로 규정하여 모두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그 서적들을 집필한 작가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들키게 되는 날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내던져진 채 영천순씨 가문의 훈제구이가 되고 말 것이었다.

“어림총사 휘하의 군사로 발탁되어 예주 전선을 지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힘들지 않은가요?”

“네, 괜찮습니다.”

순유의 대답에 순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림총사는 인자하신 분이니… 편의를 잘 봐주시겠죠. 제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예요….”

순욱은 그렇게 말하면서 분칠을 한 듯한 새하얀 뺨을 불그스름하게 붉혔다.

타오르는 열기 때문일까.

아니,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보필하는 상관에게 사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듯한 7촌 고모의 모습에 순유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 어림총사!”

인원들을 모두 동원하여 사문으로 규정한 수백 권의 서적들을 불태운 조조 군의 부군사는 치소를 찾아온 남성을 보더니 화색을 지으며 맞이했다.

어림총사 이성휘였다.

용무가 있어 찾아온 듯했다.

대문을 넘어 분서가 거행되고 있는 현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이성휘를 향해 순욱은 화사한 미소와 함께 반가움에 찬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 갔다.

7촌 고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순유는 의아함이 확신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치소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아,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봄바람에 취한 처녀처럼 뺨을 잘 익은 살구처럼 붉히며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렸다.

동경과 경애,

연모의 감정이 흘러넘쳤다.

어림총사와 고모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 7촌 고모는 어림총사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듯했다.

“아뇨, 아직입니다.”

“그럼 함께 드시죠! 마침 식사를 하려던 때였으니까요!”

이성휘의 대답에 순욱은 제 손을 감싸면서 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 * *

군사좨주 곽가는 우연찮게 엿듣게 된 시녀들의 대화에 시름을 앓게 되었다.

남성 경험이 풍부한 치녀.

백 명이 넘는 남자들과 교제해 본 탕녀.

대체 소문이 어떻게 퍼지게 된 것인지 주군을 보필하는 시녀들은 물론, 치소를 호위하는 위병들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임관하기 위해 주군을 기만했던 거짓말이 위협적인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숨겨야 해요! 사실 제가 지금까지 남자를 한 번도 못 사귄 숙맥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하지만 어떻게?

제아무리 감추려고 한들,

결국 무지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처럼 드러나기 마련이다.

연애 경험 없는 자신이 남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며칠도 가지 못하고 진실이 드러날 게 분명했다.

주군 앞에서 감히 요설을 나불대다가 거열형에 처해졌던 가짜 선인을 떠올린 곽가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우웃!”

“군사 어르신!”

순찰을 돌던 위병들이 한 여성을 보고는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잿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

그녀는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담한 복장을 입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 치녀라는 것을 주장하는 듯한 복장이다. 그 음란한 모습을 본 위병들은 어디로 눈을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허둥대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크흠!”

그녀의 고혹적인 교태를 담은 눈웃음에 얼굴을 붉힌 위병들은 고개를 숙이더니 급히 자리를 피했다.

발걸음이 묘하게 부정확하다.

고혹적인 자태를 본 위병들은 엉거주춤한 채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수백 년 묵은 여우처럼 씩씩하고 강직한 위병들을 단숨에 홀려 버린 여인의 모습에 곽가는 불을 처음으로 목도하게 된 야만인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여자는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어떻게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저렇게 음탕한 자태를…!’

잿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요염한 여인.

분명 어림총사 휘하의 군사였다.

과거 동탁 군의 모사였으나,

여포를 따라 중원제일 검에게 투항하여 예주 전선에 복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녀의 별칭은 ‘무도군의 암여우’.

요염한 자태와 교활한 권모술수로 중원을 어지럽혔던 가후는 책사들 사이에서 그 악명이 자자했다.

“안녕하십니까, 군사.”

곽가는 선뜩 용기를 내어 가후에게 접근했다.

음란한 요부 같은 치녀.

무분별하게 음란함을 흩뿌리고 다니는 그녀를 관찰하기 위해 한 걸음 다가섰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남심을 훔쳐 내는 문란함은 반드시 배워야 할 기술이었다. 무도군의 암여우라 불리는 가후를 색정광(色情狂)으로 취급한 곽가는 그녀로부터 그 문란함을 배우기로 했다.

“며칠 전에 임관하게 된 군사좨주 곽가라고 합니다.”

“아, 소문의 그….”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연 가후의 말에 곽가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소문의 그….

무슨 말을 하려 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그 헛소문들이겠지.

백 명이 넘는 사내들과 교제를 했다느니, 방중술의 대가라느니… 대체 확산되었는지 모를 터무니없는 헛소문 말이다.

‘사공(司空) 조조의 방중술 교육을 위해 영입되었다는 군사군요. 고귀한 사대부 출신이면서 백 명이 넘는 사내들과 교제했다는 전대미문의 치녀…! 손짓 한 번으로 남성을 싸게 만들 정도의 방중술을 자랑한다지요!’

곽가가 가후를 무분별한 문란함을 자랑하는 색정광으로 취급하듯, 가후 또한 곽가를 답도 없는 치녀로 여기기 시작했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부터 우수한 교육과 몸가짐을 배워온 사대부 가문의 여식이 치녀로 전락할 수가 있다니.

분명 무언가 좋지 않은 영향을 받고 비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소녀에게 무슨 용무이신지요?”

가후가 물었다.

그에 곽가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다짜고짜 처음 본 사람을 향해 ‘사내들을 무분별하게 홀리는 그 문란함을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갓 임관하게 되어…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가후는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취하는 곽가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백 명이 넘는 사내들을 홀린 요녀답게 과연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금 패(錦貝)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주황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으며, 또한 눈동자가 잘 가공한 호박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몸매 또한 과연 훌륭했다.

남성들을 순식간에 홀려 버리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가후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폭이 넓은 관복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뇌쇄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곽가의 용모는 가후로부터 치녀라고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경험 없는 숫처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내들을 내실로 들여 음란한 육욕을 가득 채워왔겠지요. 그 절륜한 방중술만큼이나 보지 또한 어마어마한 명기일 것이옵니다.’

가후는 한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사용했던 전국옥새처럼 그녀의 몸을 수많은 사내들이 탐닉했을 것이라며 음란함에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자신은 치녀처럼 행동했을 뿐,

지금까지 어느 사내에게도 몸을 허락한 적이 없었으므로 감히 자신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곽가.

그녀는 참으로 대단한 치녀였다.

“가후 군사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습니다만 잠시 괜찮을까요?”

“영광입니다.”

곽가의 제안에 가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우연히 후원(後苑)에서 조우하게 된 곽가와 가후는 서로를 치녀라고 규정하면서 함께 발걸음을 걸었다.

이 치녀에게 한 수 배우자.

두 여인들은 서로의 문란함을 인정하면서 동경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감히 짐작할 수 없었던 곽가와 가후는 의중을 숨긴 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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