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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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 되면 항상 강가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짙은 물안개 속,
조숭을 따라 낚시를 나오게 된 이성휘는 잔잔한 수면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하염없는 기다림을 겪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찰랑찰랑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던 조숭이 이성휘에게 물었다.
“우리 아만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겐가?”
“……!”
장인어른이 될지도 모르는 중년남성의 물음에 이성휘는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천하의 중원제일 검이,
3백 명에 달하는 흉수들을 향해 단기필마로 돌격했을 정도로 담대하고 용맹했던 사내가 질문 한 마디에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을 정도였다.
“음.”
조숭, 조덕 부자가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낚시는 뒷전인 듯,
패국조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될 사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물결을 헤집으며 헤엄치는 물고기가 날카로운 바늘을 물어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을 회피하도록 도와 줬으면 좋으련만, 애꿎게도 늘어뜨린 낚싯대들은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
“대답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천천히 말하도록 하게.”
나루터로 낚시를 나온 상황에서도 범선생, 이라 이름을 붙인 호랑이 가죽을 두른 중년남성이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예비 장인어른의 말에 이성휘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하핫! 그런가!”
딸을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 버렸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숭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매서운 무명으로 한나라 13주를 뒤흔들었던 중원제일 검에게 이런 숙맥 같은 면이 있었을 줄이야, 딸에게 진심으로 반한 듯한 이성휘의 모습에 조숭은 깊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맹덕 님께서는 항상 내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의 패권을 훔치려는 수많은 야심가들이 당장의 이익과 욕망에 눈이 멀어 있을 때, 어지럽게 나뉜 천하를 통일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겠다는 꿈과 목표를 제게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성휘가 말을 이어 나갈수록 조숭과 조덕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욕망에 물든 난세.
함정과 권모술수가 난립하는 천하.
정쟁과 반란에 휘말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상황 속에서도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야망의 불길을 불태우는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반한 이유이며,
또한 그것이 그녀를 따르게 된 이유였다.
“두 눈을 찬연하게 빛내며…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던 그 꿈이 실현되는 그 순간을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이성휘의 솔직한 답변에 조숭은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이 사내가 진심으로 자기 딸을 연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딸 또한 진심으로 이 사내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숭은 딸과 이성휘가 무사히 백 년가약을 맺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버지, 입질이 왔습니다!”
조덕이 소리쳤다.
아들의 외침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하던 조숭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물고기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감감무소식이던 낚싯대가 위아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우웃! 제법 큰 놈이 걸린 모양일세! 이것 좀 도와주겠는가, 사위?”
“알겠습니다.”
낚싯대를 당기던 조숭이 힘에 부친 모습을 보이면서 이성휘에게 말했다.
그에 이성휘가 조숭을 돕기 위해 낚싯대를 두 손으로 잡았다.
* * *
예주 전선에 투입된 참모들이 급히 연주성에 도착했다.
순유와 가후,
이성휘를 보필하던 두 군사들은 예주 전선의 병력을 대신하여 온 것이었다.
중원제일 검이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을 듣고는 당장 병력을 이끌고 서주로 가겠다며 광분하는 여포를 우여곡절 끝에 만류한 순유와 가후는 서주 정벌이 종결된 이후에 사정을 확인하고자 연주성으로 오게 되었다.
“영예로우신 주군께서 무사하시어 무척이나 다행이옵니다만… 지금까지 주군을 성심성의를 다하여 보필해온 저희에게 일언반구의 소식도 전해주지 않았다는 것이 야속할 뿐이옵니다.”
잿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야속함의 감정을 담아낸 눈길로 이성휘를 응시했다.
초승달처럼 휘는 두 눈,
힐문과 힐난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마음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가후는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면서도 이성휘를 향해 야속하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순유가 물었다.
힐난하는가후와는 달리,
갈색 머리카락의 미인은 고개를 숙이면서 이성휘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걱정과 우려가 섞인 밤색 눈동자를 본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후와 순유에게 사과를 건넸다.
“경망이 없어 소식이 늦었다. 너희와 예주 전선의 장졸들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군.”
이성휘의 말에 가후와 순유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의 건재한 모습에 큰 시름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혈단신으로 3백 명에 달하는 무리들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대경실색하였던가,
가후와 순유는 그때의 참혹한 분위기와 어지러웠던 혼란을 두 번 다시 겪기 싫다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희들이 보필하겠습니다.”
“영예로우신 주군을 다시 전선으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 왔사옵니다.”
순유와 가후가 연주성에 온 목적은 이성휘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서였으며, 또한 그를 다시 예주 전선으로 모시고 가기 위해서였다.
그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참모들은 한시라도 빨리 그를 예주 전선으로 데려가려 했다.
“전선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나?”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가후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귓가 뒤로 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사공(司空)께서 명하시어 서주의 도겸군을 지원하려 했던 원술군과 소규모 접전을 치른 것 말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사옵니다.”
조조가 팽성 전투에서 도겸군을 완파했을 때, 각지에서 여러 전투들이 동시에 벌어졌다.
1만의 병력을 이끌던 하후연은 공손찬군의 청주자사 전해를 막아 냈으며, 예주 전선의 군단은 도겸군을 공격하는 조조 군의 배후를 노리려던 원술군을 패퇴시켰다.
사방에서 공세가 가해졌음에도 조조 군은 중원의 패자임을 입증하듯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연주성의 일들을 모두 처리한 이후에 떠날 생각이다. 사흘 정도 걸리겠지.”
“알겠습니다.”
사흘 뒤에 예주 전선으로 귀환하겠다는 말에 순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시라도 빨리 모시고 싶었지만,
주군으로 받드는 이성휘의 결정이었으므로 순종적으로 그를 따랐다.
항상 장난스럽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이성휘를 대해온 순유였지만, 그가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을 굳건하게 지지해주는 명군사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약, 부군사와는 이야기해봤나?”
“이제 고모님을 뵐 계획입니다.”
이성휘를 보필하는 순유와 조조를 보필하는 순욱은 같은 영천순씨 가문으로, 상당히 촌수가 먼 7촌 지간에 속했다.
순욱보다 순유의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순욱은 순유를 ‘조카님’이라 부르면서 존대했고, 순유는 순욱을 ‘고모님’이라 불렀다.
예주 전선에 임관하게 된 이후에도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이성휘는 순유에게 서둘러 순욱을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
그 배려에 순유는 배시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군사 진궁과 함께 연주의 내정을 다스리고 있는 부군사 순욱에게 한 가지 고충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음란서적,
마치 역병처럼 민중에 스며들어 미풍양속을 해치기 시작한 저질스러운 사문(斯文) 때문이었다.
남녀 간의 관계를 매우 천박하고 음탕하게 적어낸 서적 때문에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위병들을 풀어 민중에 확산된 사문들을 몽땅 회수하여 불태우고 있었으나 그 수가 워낙 많아 진척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랑과 연모를 가꿔나가야 할 남녀 간의 관계를 이렇게 저질스럽게 표현하다니…! 수많은 학자와 명사들을 두루 배출해낸 영천순씨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발본색원하여 엄중히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욱은 진궁을 도와 연주의 내정을 다스리는 한편, 백성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효(孝)와 인(仁)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경전을 집필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경전을 집필하는 순욱에게 있어 민중의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사문의 존재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조조 군의 부군사는 끊임없이 사문을 집필해내는 공이(公夷)와 달이(達夷)라는 인물을 붙잡아 평생 감옥에 처넣어놓겠노라고 이를 빠득 갈았다.
“고모님!”
위병을 통솔하는 교위들을 불러 민중을 어지럽히는 사문의 분서(焚書)를 명령한 순욱은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맞이했다.
손님은 7촌 조카로,
수년 전에 이별했던 혈육이었다.
예주 전선을 지휘하는 이성휘에게 등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 뒤로 얼굴을 본 적이 없었기에, 순욱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조카님을 두 팔 벌려 환대해주었다.
“어서 오세요, 조카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공손하게 예를 취하면서 조카를 내실로 안내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에 순유는 나이 어린 고모에게 상석을 양보하면서 스스로 말석에 앉았다.
순욱은 조카에게 상석을 양보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호의를 받아들여 상석에 앉게 되었다.
“조카님께서 흔들리는 사직을 바로세우기 위해 일으켰던 결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그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만고의 역적을 암살하기 위해 관료들과 함께 거사를 계획했으나, 내부 고발자로 인해 실패하여 도망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추격부대를 피해 장안성에서 예주까지 도망쳐왔다는 소식을 들은 순욱은 두 손으로 순유의 팔을 붙잡으면서 눈물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노고가 많았을까.
자신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분명 예주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위험들을 무수히도 많이 겪었으리라.
조카님은 대의를 위해 검을 들었건만,
자신은 연주성에서 희희낙락하게 관료 생활을 해온 자기 이기적인 행동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거든 반드시 저를 의지해주세요…! 무슨 일이든 돕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눈물 섞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눈가를 바르르 떠는 고모의 모습에 순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들은 함께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평화롭게 담소를 이어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옷을 두른 교위가 문을 반쯤 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군사 순욱의 지휘를 받는 무관인 듯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부군사.”
“좋습니다. 어서 시작하세요.”
“예!”
순욱의 허락이 떨어지자 교위는 예를 취한 뒤에 다시 물러 갔다.
교위에게 무슨 명령을 내린 걸까.
순유가 그것에 궁금증을 보내자 순욱은 조카와 함께 마당으로 이동했다.
“다 태워 버려!”
“기름을 더 끼얹어라!”
치소의 바깥에 마련된 넓은 마당에 수많은 인원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마당 중앙에 있는 불쏘시개들,
불쏘시개는 수백 권은 족히 될 법한 서적들이었다.
분서갱유를 명령한 진시황이 유교의 경전들을 모조리 불태웠던 것처럼, 민중에 배포되었던 수많은 사문들이 불쏘시개로 전락한 채 가득 쌓여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정결하고 정숙한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해야 될 일입니다.”
눈에 너무도 익은 서책들이 불쏘시개가 된 채 한가득 쌓여 있는 모습을 본 순유가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물었다.
그에 순욱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교위들을 향해 턱짓 했다.
“불을 놓아라!”
순욱에게 보고를 올렸던 교위가 명령을 내리자 횃불을 든 장졸들이 기름을 끼얹은 불쏘시개에 불을 놓아버렸다.
화르르르륵.
시뻘건 화마가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본 순유는 두려움에 질린 밤색 눈동자를 떨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 서적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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