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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04화 (204/616)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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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호령하는 패자로부터 물음을 받게 된 곽가는 깊은 골짜기 사이에 연결된 외줄에 선 듯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가장 능숙한 재주? 학식이나 식견… 아냐, 이 대답은 통하지 않을 거야. 학식과 식견이 뛰어났다면 등용문에서 떨어졌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사공 어르신께서는 내가 등용문에 낙방했다는 소식을 단번에 알고 계시지?’

호박처럼 아름다운 주황빛 머리카락을 기른 여인이 붉은색 눈동자를 빛내는 조조를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구현령 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정도라면 면밀하게 주시해 왔다는 뜻일 터.

곽가는 조조의 ‘의도’에 주목했다.

“주군, 제가 말씀드린 대로 영천곽씨 가문의 여식인 곽봉효는 식견이 뛰어나고 이치와 계산에 밝은 인재입니다. 기주의 정북장군 또한 그 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곁에 두고자 했었습니다.”

곽가는 순욱의 추천을 받기 전에 기주의 원소군으로부터 등용을 제안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곽가는 원소의 참모였던 신평과 곽도를 보고는 ‘교활한 간신 같은 작자들이 곁에 있는 한 원소는 절대로 천하를 통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끝내 거절했다.

“부군사의 언질은 기억하고 있네. 그러나 나는 오로지 내 눈으로 직접 심복들을 선발할 것일세.”

조조의 날카로운 대답에 순욱은 곤란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자기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본 것만 믿는다.

조조의 곤란한 버릇 중 하나였다.

명망 높은 명사들을 두루 배출한 영천군에서 제일가는 신동이라 불리는 곽가가 등용문에서 떨어진 이유를 의아하게 여긴 순욱은 조조가 일부러 곽가를 떨어트렸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게 되었다.

‘주군께서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여 참모를 선발하려는 생각이시군요.’

의심이 많은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순욱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나,

뛰어난 혜안과 현명한 판단력을 겸비한 참모를 선발하는 일이었기에 조조는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순욱은 주군의 짓궂은 행동에 진땀을 흘리는 곽가가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이, 일단 주군께서 내리시는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흠.”

곽가가 돌연 꺼내 든 제안에 조조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재를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본성을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는 눈가를 보건대 분명 짓궂은 질문들을 던질 게 틀림없었다.

“아군은 연주를 중심으로 예주를 제패하였고, 마침내 서주의 도겸군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빠르게 세력권을 확대하는 아군이 다음으로 도모할 세력이 어디라고 보는가?”

조조 군은 팽성 전투에서 도겸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완승을 거둬냄으로서 중원 최강의 세력임을 증명해냈다.

그래서 조조는 곽가에게 물었다.

다음으로 도모할 세력.

조조 군의 향후 방침에 대해 영천군 제일의 신동이라 불리는 곽가에게 의중을 떠보듯 물음을 던졌다.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장안을 정벌하셔야 합니다!”

불안에 떨던 모습을 떨쳐 낸 채,

곽가는 매우 확고한목소리로 조조를 향해 외쳤다.

방금까지 식은땀을 흘리던 여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곽가는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이면서 조조를 향해진언했다.

“팽성 전투에서 주력군을 대부분 잃은 도겸은 무력한 어린아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군이 장안을 도모해야 하는가?”

“중원을 호령하기 위해선 천자가 필요합니다. 천자를 옹립하여 제후들을 거느리십시오!”

“흠.”

곽가의 답변에 조조는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턱짓을 보냈다.

꽤 흥미로운 답이었다.

세력을 정비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한 진궁과 순욱과는 달리, 곽가는 장안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탁을 토벌하여 황제를 옹립하겠노라는 의중을 참모들에게 번번이 밝혀온 조조였기에 곽가의 말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사공 어르신의 위세에 압도된 도겸은 두 번 다시 군세를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원술은 이제부터 말머리를 남쪽으로 잡을 것이니, 더 이상 원술 따위에게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곽가는 군세를 장안성 공략에 모두 동원하더라도 도겸군과 원술군이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겸은 점차 쇠퇴할 것이며,

원술은 형주(荊州)와 양주(揚州) 전선에 힘을 집중할 것이다.

확신에 찬 곽가의 말은 동탁 토벌에 박차를 가하려는 조조의 의중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처럼 그녀의 의욕을 일깨워주었다.

“흠…. 과연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한 영천군 출신다운 혜안이군.”

“과찬이십니다.”

흡족함이 섞인 조조의 답변에 곽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분명 만점까지는 아니겠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은 것은 분명했다.

중원의 패자로 등극한 위인이 자기 답변에 흡족함을 느꼈다는 것에 곽가는 벅찬 희열을 느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국을 읽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나, 뛰어난 혜안과 식견을 겸비한 참모들은 내 곁에 차고 넘친다. 곽봉효, 내 심복이 되려 한다면 내 휘하의 우수한 참모들이 감히 가지지 못한 특출한 재주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수한 참모들을 상당수 거느리고 있었다.

모두 순욱의 추천을 받은 참모들로,

연주와 예주에서 손꼽히는 명성과 영향력을 자랑하는 사대부 출신의 명사들이 두루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곽가에게 다른 참모들에게는 없는 특출한 재주를 주문했다.

“저, 저는….”

흑발의 여인이 던진 날카로운 요구에 곽가는 망부석이 된 것처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사공 조조의 휘하에 우수한 참모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곽가는 그 요구에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 안 돼! 이대로 임관에 실패했다간… 정말로 아버지가 나를 영천남씨 가문의 덜떨어진 바보에게 팔아넘길 거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영천남씨 가문의 바보에게 시집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곽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은 절대로 싫다.

영천군에서 제일가는 천재라 불리는 자신이 어째서 그런 바보에게 시집을 가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감히 중원의 패자에게 사기를 쳐서라도 관직을 받아 내야 했다.

“어, 어르신!”

곽가가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대답을 주저하고 있을 때,

문 너머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림총사께서 춘부 어르신과 함께 사냥에 나가셨습니다.”

“아버지와 사냥을 나갔단 말이냐. 부관을 데려가시다니….”

아버지는 물론,

동생 조덕과 패국조씨 가문의 친척들까지 모두 이성휘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는 시녀의 말에 조조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얼음장처럼 새하얗던 그녀의 뺨이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모습을 곽가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저는 남녀 간의 상열(相悅)에 능합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심에 찬 모습을 보이던 주황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대뜸 소리쳤다.

그에 조조는 물론,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순욱 또한 의문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임관을 위해 연주성으로 온 영천곽씨 가문의 여식이 대체 무슨 해괴한 궤변을 지껄이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곽가는 조조와 순욱의 그러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이어 나갔다.

“저만큼 남녀 간의 연정에 능통한 여인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내들과 정을 쌓으면서 연모를 속삭여 온 만큼, 분명 풍부한 실력과 경험으로 어르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공 조조와 어림총사 이성휘가 서로 연모하는 관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팽성 전투의 발단과 내막에 대해 알게 된 호사가들이 주군과 부관의 연담을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곽가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자신 또한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숫처녀였지만,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으므로 무사히 속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느꼈다.

“흠…. 그게 정말인가? 사대부 출신의 여식이 수많은 사내들과 염문을 퍼트렸다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던진 곽가의 말에 흑발의 여인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점점 보였다.

진궁과 순욱,

그녀들은 모두 이성과의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들이었기에 연애 상담에 한계가 존재했다.

풍부한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연애 전문가임을 내세우는 곽가의 주장에 조조는 서주 정벌이 끝난 이후부터 더디게 흐르고 있는 부관과의 진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음, 좋다. 곽봉효, 너를 이제부터 내 측근으로 두도록 하지.”

“감읍한 말씀이십니다, 주군!”

조조는 순욱의 추천을 받고 찾아온 곽가를 곧바로 군사좨주(軍師祭酒)에 임명했다.

외정에 나설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항상 곁에 두고 주장과 의견을 듣겠다는 뜻이었다.

군사 진궁과 부군사 순욱보다 더욱 긴밀한 측근에서 조조를 보필하게 된 곽가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면서 받들었다.

* * *

조조의 신임을 받아 군사좨주에 임명된 곽가는 조조 군의 참모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임관에 무사히 성공했다.

덕분에 영천남씨 가문의 덜떨어진 공자에게 시집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관복을 입은 곽가는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콧노래를 흥얼대며 순탄대로 같은 출세가도를 기원했다.

“으, 으아악! 제발 살려주십쇼──!!”

관복을 입은 곽가가 조조를 보필하기 위해 집무실까지 도착했을 때,

남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갈기갈기 찢어진 넝마를 입고 있던 남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조조의 호위병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벼락에 놀라 바들바들 떠는 양처럼 곽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감히 내 앞에서 해괴망측한 요술을 지껄이다니…. 당장 그 혓바닥을 뽑아주마.”

흑발의 여인이 매서운 살의를 내비치면서 호위병들에게 요상한 궤변을 지껄인 남성의 혓바닥을 뽑아버릴 것을 명령했다.

온몸에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호위병들에게 사정 없이 멍석말이를 당한 남성은 산 채로 혓바닥을 뽑히게 되었다.

“군사좨주.”

“부, 부군사!”

호위병들에게 붙잡힌 채 질질 끌려나가는 남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곽가에게 순욱이 다가왔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곽가에게 순욱이 이른 아침에 벌어진 일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사도(邪道)를 읊는 방사(方士)가 감히 주군을 현혹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중원 전역에 탑을 쌓고 정성스럽게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면 천하를 다시 통일할 수 있다는 요상한 괴설을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요컨대,

출신 모를 한 사기꾼이 금전적 이익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목적으로 감히 중원의 패자를 속이려 했다는 이야기였다.

황건적을 일으켰던 장각 일당과 다를 바 없다고 하여 미신과 사이비를 경멸해온 조조는 자신을 현혹시키려 했던 사기꾼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남성은 멍석말이를 당한 뒤,

산 채로 혓바닥이 뽑힘과 동시에 팔다리를 찢어발기는 거열형을 당하게 만들었다.

“주군께서는 요설(饒舌)과 농설(弄舌)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을 가장 경멸하십니다.”

덧붙인 순욱의 말에,

곽가는 아연실색한 채 온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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