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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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거의 호전되었을 때,
이성휘는 조조의 부친인 조숭의 부름을 받고 사냥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숭과 아들 조덕을 비롯해, 패국조씨 가문의 수많은 장정들이 참여한 사냥에 끼게 된 이성휘는 자신을 바라보는 선망어린 시선들을 보며 부담을 느꼈다.
“하핫! 무명 높은 중원제일 검과 함께 사냥에 참여하다니 영광일세!”
활을 든 조숭이 껄껄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성휘를 대견함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덕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300명의 흉수들을 물리친 중원제일 검을 향해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럼 몰이를 시작해라!”
연주성 인근에 위치한 우거진 숲에서 사냥이 개시되었다.
조덕의 명령에 수십 명에 달하는 노복들이 쇠를 치고 나팔을 불기 시작하면서 산짐승들을 한 곳으로 점점 몰기 시작했다.
꽤액.
꽥. 꽤애액!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산짐승들을 본 이성휘는 조숭, 조덕 부자와 함께 말을 몰면서 그를 뒤쫓았다.
활을 치켜들었다.
짊어지고 있던 화살통에서 날카로운 화살을 꺼내 들었다.
파아앙──!!
이성휘는 활시위에 화살을 내걸자마자 망설임 없이 도망치던 노루를 겨냥하여 쏘았다.
깨애액!!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내달리던 노루가 목덜미에 날카로운 화살을 맞고는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오오!”
“며, 명중입니다!”
우거진 풀과 나무들을 신묘하게 통과하면서 노루를 명중해낸 이성휘의 궁술에 조숭과 조덕은 놀란 목소리와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노루를,
소리에 놀라 재빠르게 내달리던 노루를 화살 한 대로 쓰러트렸다.
과연 고강한 검술만큼이나 뛰어난 궁술이었다.
함께 사냥에 나선 조숭은 이성휘의 실력을 보고는 어린아이처럼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단하군! 잡기 어려운 산노루를 저리도 쉽게 잡아내다니!”
젊을 적부터 사냥을 즐겨해온 조숭이었기에 산노루를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다.
반평생을 수렵에 매진해온 사냥꾼들도 잡기 어려운 것이 바로 노루였다. 재빠른 각력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숲 사이로 도망치는 노루는 많은 인원들이 달려들어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사냥감이었다.
그런 고난이도의 사냥감을 단번에 잡아버린 이성휘의 기민한 솜씨에 조숭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몰이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좁은 곳에 몰아넣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이 바로 노루 아닌가? 중원제일 검의 명성이 과연 남다르구먼.”
“잡은 노루는 춘부 어르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노루고기는 특히 보양식으로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냥에 참여한 노복들이 목덜미에 화살을 맞고 절명한 노루를 들쳐 메는 모습을 보던 이성휘가 조숭에게 말했다.
그에 조숭은 헛기침하면서 애써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흠! 자네가 잡은 사냥감을 어찌 내가 차지할 수 있겠나?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면 응당 자네가 취해야 옳을 걸세.”
“춘부 어르신께 드리는 제 호의입니다. 사양 말고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성휘의 말에 조덕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매형… 아니, 어림총사의 호의를 받아주시지요.”
아들 또한 그리 말하자 조숭은 마지못해 이성휘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노루의 고기는 육질이 연하고 비린내가 심하지 않아 요리해먹기에 좋았다. 게다가 곰국으로 끓여 먹으면 한겨울에도 온몸에 열이 불끈불끈 날 정도로 기력에 좋은 보양식이기도 했기에 조숭은 이성휘의 호의를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
“육포에 사용되는 고기들 중에 노루가 가장 으뜸이라고 합니다. 육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고마움에 화답하듯 조덕은 노루고기로 육포를 만들어 이성휘에게 주겠다고 했다.
“저기 장끼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노복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밝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 꿩이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나무 사이를 날아다녔다.
빠르게 날아가는 재빠른 그림자를 목격한 이성휘는 노루를 잡았을 때처럼 화살을 내건 활을 빠르게 치켜들면서 사냥감을 조준했다.
활시위에 화살을 내걸고 사냥감을 향해 조준하기까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흠!”
날아가는 장끼를 계속 겨누면서 뜸을 들이던 이성휘가 대범하게 활을 쏘았다.
맹렬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은 드리운 나뭇잎들을 꿰뚫는 것과 동시에 몸을 은폐하고 있던 꿩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조숭과 조덕은 물론,
몰이에 동원된 노복들 또한 입을 쩍 벌리면서 신묘한 궁술에 감탄을 보냈다.
“노루에 이어 꿩까지 단번에 잡아내다니 그 솜씨가 실로 신예에 가깝군! 마치 신장(神將)과도 같은 위엄이네!”
“매형…, 어림총사께서 족족 잡으시니 푸짐하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 뒤에도 이성휘는 조숭, 조덕 부자와 함께 우거진 산을 누비면서 수많은 산짐승들을 사냥했다.
중원제일 검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활을 쏠 때마다 사냥감들을 모두 적중시키면서 사냥에 참여한 패국조씨 일가를 놀라게 했다.
노루와 꿩에 이어 멧돼지와 여우 등, 여러 산짐승들을 척척 잡아내며 성과를 올렸다. 그때마다 노복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수레 위에 수북하게 쌓인 사냥감들 위에 새로운 사냥감을 더했다.
“내 반평생 사냥을 즐겨했지만, 이렇게 호쾌한 사냥은 처음일세! 꼬리에 불이 붙은 황소처럼 달려들던 멧돼지까지 잡아내다니… 신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일세.”
“과찬이십니다.”
조숭이 흥분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치켜세웠다.
이 사내에게 딸을 넘겨줘도 될 것 같았다.
아니,
이 사내가 아니면 안 된다.
금지옥엽처럼 키워온 딸이 무려 2년 동안 짝사랑하며 전전긍긍 앓았다던 사내는 마음에 쏙 드는 최고의 사윗감이었다.
‘출중한 무위과 담대한 담력, 거기에 딸아이를 향한 일편단심의 충성심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사윗감이 아닌가! 당장에라도 혼례 날짜를 잡아야겠군!’
이성휘가 사냥감을 잡을 때마다 격렬하게 기뻐하던 조숭은 패국조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이성휘를 낙점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을 배필로 넘겨줘도 좋을 정도로 이성휘가 너무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딸과 혼인하여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를 번창시켜준다면 더 이상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천하를 크게 진동시켰던 중원제일 검이 매형…! 중원제일 검이 우리 매형이라니!’
조숭이 그러하듯,
조덕 또한 고양감에 찬 눈빛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중원제일 검이 누이의 남편,
곧 매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를 발산했다.
한겨울 얼음장처럼 냉혹하고 무정한 성정을 자랑하는 누이가 혹시라도 평생 노처녀로 살까 우려 했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든 이성휘는 조덕에게 크나큰 기쁨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으아악!”
“버, 범이다! 범이 내려온다!”
조숭과 조덕 부자가 환희에 들뜬 표정으로 이성휘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쇠를 치고 나팔을 불면서 앞장섰던 노복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범이 내려오고 있다.
산군(山君)처럼 생긴 호랑이가 살벌한 안광을 빛내면서 내려오고 있다며 쇠와 나팔을 내던진 채 줄행랑을 쳤다.
“집채만 한 범이 있단 말인가!”
“산을 크게 들쑤시고 다닌 탓에 범의 성질을 건드렸나 봅니다!”
아연실색한 채로 도망쳐 온 노복들의 모습을 조숭과 조덕은 심상치 않게 여겼다.
과장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범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면 크게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사냥꾼과 노복들을 대동하고 있었지만 사나운 호랑이는 수적 열세를 무시하고 사람을 죄다 물어죽일 정도의 흉포함을 자랑했기에 결코 안일하게 여길 순 없었다.
“창을 가져와라.”
“예, 예!”
말에서 내린 이성휘가 옆에 있던 노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호(大虎)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던 노복이 말을 더듬으면서 날카롭게 벼린 창을 건네주었다.
구와아아아아앙!!!
이성휘가 창을 건네받았을 때,
미물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거센 사자후와 함께 살벌한 송곳니를 가진 호랑이가 울음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한 발자국씩 무리를 향해 걸어왔다.
무거운 위압감이 넘치는 발걸음을 내디디며 다가오는 호랑이의 모습에 군중은 압도당한 듯 온몸을 벌벌 떨면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호랑이,
산중의 왕이 등장했다.
게다가 거센 사자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호랑이는 다른 호랑이들에 비해 체격이 두 배 정도는 큰 대호였다.
감히 자기 사냥감에 손을 댄 무지한 인간들을 징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리라.
“무, 물러서라! 계속 노려보면서 뒷걸음질로 물러난다면 놈도 섣불리 달려들진 못할 게다!”
조숭이 손을 뻗으면서 얼음처럼 굳어 버린 노복들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공포에 질린 노복들에게 그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산군의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린 노복들은 두 다리를 벌벌 떨면서 비명 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사냥에 열중하던 그들은 자신이 산군의 사냥감이 되어 버렸음에 전율했다.
“솜씨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든 이들이 전율하며 두려움을 토해내고 있을 때,
이성휘만이 태연하게 행동했다.
시퍼런 안광을 드러내면서 다가오는 호랑이의 기세에 놀란 조숭과 조덕은 날카로운 창을 치켜든 채 앞으로 나서는 이성휘의 모습을 두 눈을 크게 뜬 채 지켜보았다.
“머리를 박살 내주마.”
한 자루의 창을 든 사내가 달려들었다.
그에 호랑이가 크게 포효하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채 높이 도약했다.
* * *
사냥에서 돌아온 조숭은 만족감에 물든 함박웃음을 연신 터트렸다.
반나절 동안 이어졌던 사냥을 끝내고 처소에 돌아오게 된 조숭은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하던 호랑이에게서 통째로 뜯어낸 부드러운 가죽을 눌러쓰고 있었다.
“사위에게 직접 잡은 산군을 선물로 받다니, 황제의 장인 부럽지 않은 황송한 대접이로군!”
국구(國舅)라도 된 것처럼 만족감에 찬 웃음을 터트린 조숭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호랑이 가죽을 자랑하고 다녔다.
모두 예비 사위 덕분이었다.
창을 휘둘러 단번에 머리를 박살 낸 덕분에 온전한 상태의 가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창을 내지르면서 머리통을 꿰뚫어 버리던 예비 사위의 용맹한 모습을 회상한 조숭은 천하를 얻은 것처럼 득의양양한 반응을 보였다.
“멋지십니다, 춘부 어르신!”
“제 평생 이렇게 큰 호랑이 가죽은 처음 봅니다!”
호랑이 가죽을 눌러쓴 조숭을 본 관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에 조숭은 예비 사위가 선물한 이 호랑이 가죽을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것이라며 어깨에 두르고 있던 호랑이 앞발을 움켜잡았다.
‘하나뿐인 딸을 금지옥엽처럼 곱게 키운 덕분에 이런 호사를 다 받게 되는구먼! 천하에 어떤 장인이 사위에게 직접 잡은 호랑이를 선물로 받겠는가. 황제의 장인이라도 못 누려본 호사겠지.’
무거운 위압감으로 무리를 압도했던 산군에게 창을 들고 달려들었던 이성휘의 모습을 재차 회상한 조숭은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딸과 중원제일 검의 혼사를 치르게 하겠다며 강한 열의를 보였다.
“하하핫! 천하에 나보다 더 행복한 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호랑이 가죽을 눌러쓴 중년남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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