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02화 (202/616)

202화

================================

점점 안정을 되찾아가는 이성휘의 모습을 보며 의원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저게 사람이 맞단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눈을 뜬 주제에 서주까지 강행군을 벌였음에도 몸이 멀쩡할 수 있다니.

혹시라도 상처가 벌어져 죽진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의원들로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이를 뻔한 육체는 마치 수천 번 두드린 강철처럼 오히려 더욱 강건해지고 있었다.

그를 본 의원들은 인외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의 경이로움을 보게 되었다.

“직접 조제한 금창약(金瘡藥)이오. 혹여라도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 꼬박꼬박 발라줘야 할 거요.”

“알겠사옵니다.”

화타가 건넨 묵직한 약병을 받은 초선은 고개를 공손하게 숙이면서 말했다.

명공을 구한 고마운 은인들이다.

초선은 화타와 장중경, 그리고 이성휘의 치료에 손을 거들었던 의원들을 향해 한 명씩 인사하면서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낙양제일미라 불리는 미녀를 본 의원들은 “역시 중원제일 검의 아내답게 제일이시군.”이라며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아, 아내처럼 보였사옵니까…? 부끄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황송하신 말씀이옵니다…!”

중원제일 검의 아내, 라는 말에 초선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과분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중원제일 검의 아내라고 칭하는 의원들의 말이 기뻤기에 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소. 소녀가 어찌 명공의 아내가 될 수 있겠사옵니까. 물론 싫다는 것은 아니옵니다만…. 너, 너무 과분하다고 할까….’

싫진 않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허락된다면 명공의 아내가 되고 싶었다.

본인과 아버지를 구해줬으며,

또한 태원왕씨 가문의 식솔들을 무간지옥의 궁지에서 구해주기까지 했다.

그의 처가 되어 평생 함께 살면서 은혜를 갚을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금창약에 오석산(五石散)처럼 독한 독초들을 넣었으니 환부에 바르면 많이 어지러울 걸세. 그 점을 유의하게나.”

“알겠사옵니다.”

초선이 직접 의원들을 배웅했다.

이성휘를 소생시킨 공로로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제수받고 막대한 재물을 하사받은 의원들은 연주에 남거나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명공!”

정중하게 의원들을 배웅한 초선은 몸을 돌리며 이성휘에게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 * *

조조는 혹시라도 상처가 덧날까 우려하여 이성휘에게 보름 동안 가택에 칩거하면서 요양할 것을 명령했다.

가만히 두면 또 무리를 할 터.

그것이 우려스러웠던 조조는 이성휘에게 깊은 배려를 베풀었다.

덕분에 이성휘의 수발을 잠시 들게 된 초선은 연모하는 명공과 밤낮을 함께 보내는 황송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명공, 아~ 하시옵소서.”

“거동이 조금 불편하지만… 손은 괜찮습니다.”

“짓궂은 명공께옵서는 소녀를 민망하게 만들 것이옵니까?”

꽤 대담하게 애정을 표시하는 초선의 행동에 이성휘는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며칠간 마음앓이를 시켰던 것이 미안하여 그대로 따라주었다.

입을 벌렸다.

초선이 활짝 웃으면서 밥을 먹여주었다.

“후후.”

마치 혼례를 갓 올린 부부처럼 보였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휘의 모습에 초선은 행복에 찬 미소를 그렸다.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했다.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지붕에서 연모하는 명공과 함께 보내는 생활이 너무도 행복했기에 초선은 이 행복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과분한 기대를 은연중에 품게 되었다.

‘이대로 명공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혼례를 치르고 부부가 된다면… 분명 아버지와 오라버니들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그, 그리고 황실과 조정을 위해서라도…!’

낙양제일미라 불리는 진류왕의 시녀가 앙큼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연모하는 명공과 부부가 되는 것.

함께 동거하면서 몸을 맞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 또한 이끌릴 것이기에 초선은 ‘기정사실’을 만드는 일에 욕심을 냈다.

명공과 함께 보냈던 첫날밤.

초선은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찔한 쾌감을,

그 농밀한 쾌락을,

연모하는 남성과 맺어지는 여자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비록 첫 경험에서는 실패했으나 앞으로 몇 번 몸을 겹치다 보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길 터. 그렇게 된다면 비록 정실은 아니더라도 명공의 첩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헤헤, 헤헤헤….”

함께 식사하고,

함께 잠을 잔다.

비록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동침이었지만,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밤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초선은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며, 명공께서는 언제쯤 소녀에게 밤 시중을 명령하실 것인지…. 물론 명공의 건강이 최우선이옵니다만!’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이성휘는 초선을 밤에 따로 부르지 않았다.

밤낮으로 항상 흉터들이 새겨진 온몸에 지독한 금창약을 발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성휘가 밤 시중을 부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응큼한 시녀는 혹시라도 오늘 밤에 명공께서 밤 시중을 명령하실까, 가슴을 두근두근 떨면서 동침할 때를 기다렸다.

“명공, 명공, 명공♬”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느질을 시작했다.

연모하는 대상을 흥얼대며,

연모하는 사람의 의복들을 살폈다.

전쟁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무인답게 이성휘의 의복들은 헤지고 찢어진 부분들이 많았다.

짙은 체취가 묻어나는 의복들에 얼굴을 파묻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이겨 낸 시녀는 능숙한 솜씨로 재봉을 이어 나갔다.

‘전하께서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실지….’

궁녀들과 함께 연주성에 입성한 유협은 현재 귀빈의 신분으로 조조의 가택에 머무는 중이었다.

덕분에 초선은 조조의 이목을 피한 채 이성휘의 가택에 머물면서 그의 건강을 살필 수 있었다.

모두 황녀가 호의를 베푼 덕분이다.

초선은 유협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면서 나중에 벌꿀사탕을 사주기로 했다.

“흐으으응…!!”

옷을 모두 꿰맨 뒤,

초선은 옷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진한 체취를 맡았다.

명공의 냄새다.

명공의 체취가 얼굴을 감쌌다.

마치 명공의 품에 안긴 것만 같아 온몸이 뜨거워졌다.

게다가 명공과 함께 첫날밤을 보냈던 그때가 떠오르는 것 같아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명공… 한시라도 빨리 소녀에게 빨리 밤 시중을 명해주시옵소서….”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쪽은 초선이었다.

명공께서 밤에 불러 주기를,

침소로 불러들여 밤 시중을 들 것을 명해주기를 기다렸던 응큼한 시녀는 들뜬 한숨을 토해내면서 애욕을 발산했다.

* * *

낙방했다.

등용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압도적인 경쟁률을 결국 이겨 내지 못한 채 떨어지고 만 영천곽씨 가문의 여식은 세간의 차디찬 절망을 목도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들과 함께 영천군의 신동이라 불리면서 많은 영예를 누렸으나, 전역에서 몰려든 인재들을 상대로는 빛을 발하기 어려웠는지 결국 떨어졌다.

“아, 안녕하세요…! 추천서 보고 찾아왔는데요…!”

결국 주황빛 머리카락의 여성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본가에 추천서를 보내온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영천곽씨 가문과 항상 자웅을 겨뤄온 영천순씨 가문.

같은 영천군 출신이었던 두 가문은 조정에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오면서 자연스레 명성을 경쟁해온 관계였다.

절대로 영천순씨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등용문에서 떨어진 죄로 바보천치 같은 영천남씨 가문의 도련님과 혼인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결국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찾아오지 않으실까 많이 걱정했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찾아온 손님을 순욱은 화사한 미소로 맞이해주었다.

영천곽씨 가문의 천재,

곽가.

본인의 가문인 영천순씨와 경쟁관계였던 영천곽씨 가문의 여식에게 추천서를 보낸 순욱은 그녀를 오랜 친구 대하듯이 호의로 맞이했다.

“주군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주, 주군께서요…?”

“뛰어난 식견과 이치를 자랑하시는 신동이신 영천곽씨 가문의 여식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신 주군께서 직접 맞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무겁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부군사 순욱으로부터 ‘뛰어난 식견과 이치를 자랑하는 신동’이라 불리게 된 곽가는 호흡이 턱 막히는 수준의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 여우 같은 영천순씨 가문의 계집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군사.”

이윽고 흑발의 여인이 수많은 시녀들을 대동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체구였음에도 웅장하고 위압감 넘치는 기개를 뿜어내는 중원의 패자를 본 곽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무슨 중압감이란 말인가.

중원을 제패한 대군벌답게 그 기개만으로도 자연스레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소녀, 영천군의 곽봉효라고 합니다.”

순욱의 추천서를 받고 찾아온 곽가가 예를 취하면서 조조에게 입을 열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응접실로 오기 전에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겪은 걸까.

조조는 인상을 찡그린 채였다.

분명 곽가 때문은 아니었다.

비단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대의 장기는 무엇인가? 가장 능숙한 재주 말이다. 내 휘하의 참모가 되기 위해선 누구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한다.”

위압감을 두른 중원의 패자가 건넨 물음에 곽가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듣기로는 구현령 시험에서 낙방했다고 들었다만.”

힐문하듯 재차 물음이 이어졌다.

그 물음에 곽가는 식은땀을 미친 듯이 흘리기 시작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