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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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단으로 나선 별가(別駕) 조욱과 서주의 관료들이 목 없는 귀신이 되어 팽성에 돌아왔다.
피를 뚝뚝 흘린 채 싸늘한 고깃덩이가 된 수급들을 보게 된 도겸은 진노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결코 조맹덕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라며 길길이 날뛰었을 정도였다.
“조맹덕! 네 이년!”
“워, 원달 선생께서…!”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조욱과 관료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비참한 죽음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조욱의 올바른 성품과 효행을 흠모해온 수많은 사대부와 호족들이 부모를 잃은 자식들처럼 크게 분개를 토해냈다.
“조맹덕, 그 패악 무도한 계집이 팽성을 무너뜨린다면 서주는 아비규환이 될 것일세! 그러니 서주의 모든 사대부와 호족들은 우리 군을 지원해주게!”
조욱의 죽음에 분노를 토해내던 도겸의 호소에 사대부와 호족들이 격앙된 모습을 보이면서 답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가산을 모두 털어서라도 군을 지원하겠습니다!”
비록 도겸은 뛰어난 학식과 성품을 겸비한 선비를 잃게 되었으나, 조욱의 죽음 덕분에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서주의 민심이 벌떼처럼 일어섰다.
그에 도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했다.
5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조조를 역으로 격파해낸다면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진격로가 활짝 열리게 될 터. 어쩌면 연주와 예주를 제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민하고 교활한 성품을 모두 겸비한 년이라고 들었거늘… 감정에 휩쓸려 우행을 범하다니, 실로 어리석은 년이 아닌가.’
사대부와 호족들은 물론,
장졸들 또한 분기충천하여 사기가 드높아진 상태였다.
또한 조욱은 서주 낭야국 출신의 선비였으므로 민심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에 도겸은 민심을 더욱 부채질하기 위해 주변 군현들에 격문을 배포하는 치밀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자사 어르신, 조맹덕이 결국 패국에서 병력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조조군이 마침내 서주 국경을 넘었다.
이제 드디어 서막이 올랐다.
마침내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부곡(部曲) 조표의 보고에 휘황찬란한 갑옷을 걸치고 있던 도겸은 좌우 장수들을 이끌었다.
“출병하라! 용맹무쌍한 장졸들이여!”
“야욕에 물든 조맹덕과 침략자들을 서주 땅에서 몰아내자!!”
서주 전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3만 명의 병력들이 마침내 팽성에서 출병했다.
연주의 조조. 서주의 도겸.
난세 속에서 우뚝 일어선 두 군웅들이 마침내 격돌하게 되었다.
재물에 눈이 멀어 조숭 일가를 피습했던 황건적 출신의 흉적이 일으킨 소행이 결국 대규모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 * *
하후연에게 1만의 병력을 맡기면서 임성국을 방비할 것을 명령한 조조는 조홍, 하후돈과 함께 본대를 이끌고 서주 경계를 넘어섰다.
총 4만의 병력이 들어섰다.
중원을 제패했던 병력들이 벌판을 새카맣게 뒤덮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서주 백성들은 조조가 풍요로운 서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라며 깊은 우려와 두려움을 표했다.
“도겸을 죽여라!”
“제 휘하에게 습격을 사주했던 늙은이다!”
어림총사 이성휘가 3백 명에 달하는 흉수들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조군 장졸들은 조욱의 죽음에 분개하는 도겸군만큼이나 크게 격분에 찬 상태였다.
이성휘는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 존경과 경외를 마지 않는 불세출의 영웅이다.
동탁 토벌전에서 수많은 활약들을 세운 중원의 영웅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조조군 장졸들은 망설임 없이 창검을 뽑아 들었다.
“크흠!”
“놈들도 제법 많구려!”
휘하 군세를 이끌고 있던 악진과 우금이 팽성에서 출병한 도겸군 병력을 보며 말했다.
조조군이 병력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분기충천하여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도겸군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노련한 실력과 경험을 갖춘 조조군 장수들은 서주의 전력을 심상치 않게 여겼다.
“이 더러운 침략자 놈들, 감히 네놈들이 서주의 평화를 위협하려 드느냐!”
좌군(左軍)을 이끌던 팽성교위(彭城校尉) 여유가 조조군을 향해 일갈했다.
서주를 위협하는 무리들,
여유는 조조군을 침략자로 규정하면서 그들의 침공을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전을 벌이기 전에 먼저 장졸들의 사기를 드높이려는 수작이 틀림없었다.
“도겸군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황건적 무리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 역전의 강병들이나, 무구와 군마를 갖춘 정예부대를 상대로 싸워 본 경험이 없습니다. 예봉을 중앙에 투입하여 도겸의 본군을 돌파한다면, 저들은 지리멸렬하여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순욱의 추천을 받고 서주 정벌의 군사로 임명된 정욱이 조조에게 계책을 진언했다.
도겸군의 빈틈을 간파한 정욱의 계책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그럼 예봉을 누가 이끄는 게 좋겠는가?”
“우금 도위에게 맡기십시오. 무거운 위엄과 날카로운 기세를 아울러 갖춘 우금 도위라면 능히 해낼 것입니다.”
“알겠네.”
정욱의 계책을 받아들인 조조는 함진도위 우금에게 예봉을 이끌도록 했다.
“적의 본대를 돌파할 수 있겠는가?”
“맡겨 주신다면 신명을 다하여 임무를 완수하겠사옵니다!”
제북상(濟北相) 포신이 서영의 매복을 받아 전사한 뒤, 조조군으로 전향하게 된 우금은 자신과 휘하 장졸들을 받아 준 조조에게 이번 전투의 활약으로 그 은혜를 갚겠노라며 다짐했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울 기회다.
다른 장수들을 모두 젖혀두고 예봉을 지휘하게 된 우금은 자신감에 찬 호기를 토해냈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는 자가 도겸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서주자사(徐州刺史) 도겸(陶謙)이라고 적힌 대장기의 밑에 수많은 장수들이 모여 있었으며, 그 장수들 중에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중년남성이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저 자가 분명 도겸이다.
먼발치에서 도겸의 모습을 보게 된 조조는 증오에 물든 눈빛을 보냈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조조는 도겸을 보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기필코 이 전투에서 놈의 목을 치겠노라는 살의를 품었다.
“북을 울려라.”
“예, 어르신!”
조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둥! 둥! 둥! 둥!
거센 천둥번개처럼,
병사들이 힘껏 치는 북소리는 삽시간에 전장을 가득 메웠다.
“서주를 피로 물들여라.”
흑발의 여인이 도겸군을 향해 날카로운 칼끝을 겨눴다.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지독한 살의로 불타는 붉은 눈동자에서 무자비함을 엿볼 수 있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
곧이어 뿔나팔이 울렸다.
공격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게 되면서 하후돈과 조홍이 검을 뽑아 들면서 진격 명령을 알렸다.
4만에 이르는 조조군이 움직였다.
태산처럼 진형을 견고하게 유지하던 조조군이 불길과도 같은 용맹함을 떨치며 도겸군에게 달려들었다.
* * *
조조군과 도겸군이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이성휘의 치료와 회복을 도맡고 있던 장중경과 의원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병자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소생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조치들을 취하였으므로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이었다.
“경과는 어떻습니까, 선생님?”
한 의원이 장중경에게 물었다.
그에 장중경이 깊은 시름에 잠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답을 할 수 없네. 그저 지켜볼 수밖에.”
관에 안치된 시체처럼 새하얗게 질린 안색을 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이성휘를 쳐다보았다.
그는 싸움에서 대부분의 기력을 소진했다.
이대로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중경은 사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성휘의 경과를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면포들을 가져오게. 환부를 닦아내야 하니. 잘못하면 등창이 생길 수 있지 않은가.”
“예, 알겠습니다.”
이대로 영영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생사의 기로에 놓인 병자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전설 속의 신의(神醫), 편작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의원이 된 장중경은 의원으로서 어찌 병자를 포기할 수 있겠냐며 굳은 결의를 품었다.
‘이 사내는 비록 무도(武道)에 몸을 담고 있는 무장이나, 지금까지 수많은 백성들을 구한 의인이다. 어떻게든 살려낼 것이다!’
의원이 면포들을 가져오기를 잠시 기다리던 장중경에게 허드렛일을 하던 하인이 달려왔다.
“의원님, 의원님을 찾는 손님이 왔습니다.”
“나를? 누가 말이냐.”
“원화라고 이름을 밝히면 의원님께서 분명 아실 거라고 했습니다.”
“원화…. 설마 원화 선생이란 말이냐!”
하인이 전한 이름을 읊조리던 장중경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세찬 발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디면서 바깥으로 나섰다.
“선생!”
마루에 앉아 두 다리를 뻗고 있던 사내에게 장중경이 놀란 목소리로 외치면서 다가왔다.
인자한 인상을 가진 중년남성은 마루에 앉아 한가롭게 하품을 늘어놓고 있던 강아지를 희롱하고 있었다.
장중경은 허리를 넙죽 숙이면서 남성에게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오, 오셨습니까!”
“전쟁의 참화 속에서 수많은 백성들을 구해 낸 중원제일 검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네. 경과는 어떠한가?”
“그… 그것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취하였으나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흐음.”
남성은 장중경의 말을 듣고는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들 사이에서 명의(名醫)로 유명한 장중경이 애먹고 있을 정도라면 심각한 중상일 터. 남성은 중원제일 검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우려 했다.
“화타 선생님!”
“전갈을 듣고 급히 달려왔사옵니다!”
하인에게 전갈을 받은 의원들이 급히 달려 나와 귀인을 맞이했다.
공손히 대접해야 마땅한 귀인이었다.
중원제일 검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귀한 발걸음을 한 남성은 가히 편작에 버금가는 명성을 자랑하는 화타였기 때문이다.
화타를 본 의원들은 산신을 대접하듯 고개를 굽혔다.
“어서 준비하게. 몸을 정갈하게 씻은 뒤에 중원제일 검을 살필 것이니.”
“예, 알겠습니다!”
편작에 버금가는 신의로 유명한 화타가 직접 중원제일 검의 소생에 나선다는 사실에 의원들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감읍을 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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