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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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司空) 조조가 전쟁을 명령했다.
연주 전역에 비상령을 내리는 한편,
각 전선에 배치된 병력들에게 연주성으로 모두 집결하라는 명령까지 하달했다.
명령에 동원된 병력은 무려 5만. 동탁 토벌전을 치른 이후부터 계속해서 힘을 비축해온 조조 군의 전력은 중원 지역의 군벌들을 아득히 압도할 정도였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쟁 준비를 위해 동원된 물자들을 확인한 순욱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아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각 군현들에서 차출된 물자들의 상황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주군께서는…, 서주 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려 하는 겁니까…?”
최소한의 물자만을 남긴 채 대부분의 치중들을 연주성으로 집결시키고 있었다.
소집령을 내린 5만 병력,
또한 그를 뒷받침하는 어마어마한 물자들까지.
조조는 팽성(彭城)을 중심지로 삼은 도겸군뿐만 아니라 서주에 존재하는 토착세력들까지 말소할 목적으로 병력과 물자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구, 군사… 이건 대체!”
그것을 알게 된 순욱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진궁을 바라보았다.
진궁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조조에게 모든 명령을 하달받고 있던 참모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연주 세력을 마련함에 있어 혁혁한 공을 세웠던 진궁이 사방에서 집결하는 병력과 물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리 없었다.
“문약, 명부의 소집령을 받고 연주성에 집결하기로 한 병력이 무려 5만이야. 분명 명부께서는 5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서주의 명맥을 완전히 끊어 버릴 생각이신 거지.”
단순히 도겸군을 멸망시킬 목적이었다면 서주의 중심지인 팽성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연주 지역과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팽성을 도모하는 일에 5만의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절반의 병력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조조는 도겸군의 멸망…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 이상이라뇨! 대체 주군께서는 무엇을 원하신단 말입니까!”
험악한 표정을 지은 순욱이 뾰족한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온화하고 정숙한 모습만을 보이던 순욱답지 않은 과격한 반응이었다.
“아, 안 됩니다!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연주성으로 수송되고 있는 물자들의 상황을 확인하던 순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예견한 듯,
영천순씨 출신의 부군사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이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절박한 외침에 진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누가 명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명부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명뿐이야. 그 유일한 사람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지!”
살의와 복수에 휩싸인 주군의 광기를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명뿐이다.
이성휘,
오직 그밖에 없었다.
그가 쓰러졌다는 것은 곧 광기에 휩싸인 조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의미했다. 조조에게 있어 이성휘는 사랑하는 연인,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부관을 초월한 ‘의미’를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중원제일 검은 명부의 절대적인 버팀목이자 유일한 견철(牽掣)이었지. 유일한 견철이 사라진 이상… 누구도 명부를 막을 수 없게 됐어.”
제어할 수 없는 분노와 제동할 수 없는 증오는 항상 파국을 부르기 마련이다.
분노와 증오,
전쟁에서 결코 동원해선 안 될 명분이었다.
오직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촉발되었던 전쟁들은 끔찍하고 비참한 유혈사태를 일으켜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흘러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전쟁은 안 됩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겠습니다!”
순욱이 소리쳤다.
그에 진궁이 손을 뻗으면서 순욱을 막아섰다.
“명부께서 말했잖아. 앞을 가로막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베겠다고. 명부의 그 두 눈을 보건대 절대로 경고에 그칠 말이 아니었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언을 드리는 것이 바로 신하의 도리입니다!”
진궁의 만류에도 순욱은 완고한 대답과 함께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순욱은 주군을 만날 수 없었다.
조조는 수백 기의 기병들을 이끌고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천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조조가 계속 집무실에 있었다면 순욱은 분명 주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 *
산송장처럼 축 늘어진 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이성휘를 전담하게 된 명의(名醫) 장중경은 그의 몸을 보고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어찌 정녕 사람의 몸이란 말인가?
장중경은 무수히도 많은 흉터들이 이성휘의 온몸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3백 명에 이르는 흉적들과 전투를 치른 끝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게 된 중원제일 검의 육신은 지금까지 수백 명에 달하는 병자들을 돌봐온 명의조차 놀랄 정도였다.
“미, 믿을 수가 없소…!”
“어떻게 사람이 이런 극심한 치명상을 입고도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의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 없는 경이를 본 것처럼,
그들은 경탄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 우리가 이 극심한 치명상을 입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한 벌집이 되어 버린 중원제일 검의 몸은 감히 소생을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정녕 살릴 수 있겠습니까, 선생?”
한 의원이 물었다.
그에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성휘를 치료하던 장중경이 답했다.
“어떻게든 병자를 살리는 것이 의생의 본분이 아니겠나…! 게다가 이 사내는 지금까지 수많은 간적들로부터 황실과 조정을 수호해온 중원제일 검일세,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생시킬 것일세!”
진심이 담긴 장중경의 호언에 의원들은 크게 감읍한 모습을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소생시키겠노라,
장중경의 호언에서 깊은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장군.”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성휘가 치료받고 있는 가택을 바라보던 조홍에게 휘하 무관이 다가왔다.
이윽고 무관이 입을 열었다.
“도겸군의 부곡(部曲) 조표라는 장수가 방금 전령을 보내 왔습니다.”
“그 빌어먹을 새끼가 왜요?”
서주자사 도겸의 장수가 전령을 보내 왔다는 소식을 들은 조홍이 이를 빠득 갈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원흉들,
도겸군 놈들은 모두 철천지원수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번 피습 사건이 장개와 그 일당들의 소행이었을 뿐이라고 할지라도 부하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도겸에게도 책임이 분명 있었다.
조홍은 도겸에게 기필코 그 책임을 묻겠노라고 벼르고 있는 상태였다.
“춘부 어르신께서 낭야국에 두고 온 치중들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까짓 재물 따위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인가요!”
재물들을 모두 돌려주어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도겸의 의도를 꿰뚫어 본 조홍이 새하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감히 재물들로 죄를 가릴 생각인가.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너희 도겸군은 억만금의 재화로도 감히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 대가를 언젠가 반드시 치르게 해 줄 터였다.
“당장 돌려보내세요! 만약 놈들이 경계를 넘어온다면 즉시 응전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조표와 휘하 병력들이 연주의 경계를 한 발자국이라도 넘어온다면 즉시 화살을 날려줄 생각이었다.
도겸군과는 그 어떤 협의도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철천지원수이며,
반드시 멸해야 할 흉수였기 때문이다.
서주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려는 조조만큼은 아니더라도 조홍은 장개 일당들이 소속되었던 도겸군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었다.
“장군, 그리고 방금 연주성에서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주군께서 수백 기의 기병들을 이끌고서 이곳 태산국으로 오고 계신다는 연통입니다.”
두 군사들에게 전쟁 준비를 일임한 조조가 태산국으로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혹시라도 끔찍한 비보가 전해질까,
조조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말을 끊임없이 재촉하면서 강행군을 벌였다.
머지 않아 언니께서 태산국에 도착하실 터. 급히 소식을 듣게 된 조홍은 무관들을 모두 소집하여 도겸군을 경계할 것을 명령했다.
‘언니가 지금의 어림총사를 보면… 분명 억장이 무너지시겠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조홍은 슬픔에 젖은 표정을 지으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언니는 진심으로 어림총사를 연모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피투성이로 돌아온 그를 보면서 크게 오열했던 것처럼, 언니 또한 산송장처럼 싸늘하게 굳은 이성휘의 모습을 보고서 크게 오열할 게 분명했다.
* * *
조홍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조조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밀랍으로 만든 가면을 쓴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의원들로부터 치료받고 있는 이성휘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어, 언니…?”
그 모습에 조홍이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화감이 들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싸늘한 적막과 고요한 침묵. 조홍은 증오 어린 살의보다도 무서운 적막과 침묵을 목격했다.
무언가가 부러진 것처럼.
마치 무언가가 망가져 버린 것처럼.
조조는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시뻘겋게 물든 두 눈을 부릅뜬 채 지독한 살의를 불태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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