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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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에 눈이 멀어 조숭 일가를 습격했던 장개와 그의 부하들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자세한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조숭과 패국조씨 가문을 수호하는 인물로부터 살해된 것이 틀림없었다.
낭야국에서 연주성으로 향하던 조숭 일가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를 해야 하는 걸까. 도겸은 복잡한 심경을 떠안은 채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내가 황건적 출신의 장개를 시켜 패국조씨 가문을 멸족시키고 재물을 가로채려 했다는 불쾌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할 터. 먼저 어떻게든 그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조숭은 삼공(三公)을 역임했던 고관대작이며, 또한 패국조씨 가문은 평양정후(平陽靜侯)의 후손이었다.
만약 불쾌한 유언비어가 대대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지금까지 쌓은 서주 사대부와 호족들 간의 신뢰와 경외가 무너지게 될 것이었다.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했다.
비천한 출신의 도적 따위가 저지른 범행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순 없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서주에서 명성과 명망을 쌓아왔던 도겸은 이번 피습 사건으로 인해 정금양옥(精金良玉)과 같은 인망이 무너지게 될까 그것을 우려 했다.
“제가 직접 연주성으로 가 조맹덕을 설득하겠습니다.”
학식이 뛰어난 명사로 인망을 떨치고 있는 별가(別駕) 조욱이 자청하며 나섰다.
이번 참사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조욱은 간신히 평화를 되찾은 서주를 전쟁터로 돌변하게 둘 순 없다며 조조를 설득하겠노라 말했다.
그 용기를 가상하게 여긴 도겸은 수백 명의 호위병들을 맡기면서 서둘러 연주성으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
“조숭 일가가 장개의 무리들을 피해 재물들을 실은 수레를 둔 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을 모두 온전하게 연주성으로 수송해준다면 조조 또한 어르신의 본심을 알아줄 겁니다.”
별가 조욱의 진언에 고개를 끄덕인 도겸은 부곡(部曲) 조표를 보내어 패국조씨 가문이 두고 떠난 수레들을 수습할 것을 명령했다.
패국조씨 가문을 피습했던 변란은 팽성도위(彭城都尉) 장개의 단독행동이다.
그것을 조조에게 입증해야 했으므로 도겸은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을 연주성에 돌려줌으로서 무고를 알리기로 했다.
“장개, 이 비열한 도적놈 같으니! 휘하로 받아들여 준 은혜도 모르고 재물에 눈이 멀어 변란을 일으켰단 말이냐!!”
도겸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장개와 그 부하들의 수급을 모조리 베어 연주성에 전달하게 했다.
무고를 입증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었다.
“어르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병마들을 집결시키시지요! 또한 연주 지역과 마주하는 군현들에 병력을 보충해야 합니다!”
기도위(騎都尉) 장패가 경계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서둘러 병력들을 보강해야 한다.
또한 각 군현들에서 병력을 징발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변란을 명분으로 조조군이 수만 명에 달하는 군세를 이끌고 경계를 넘어올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조 군은 이미 경계를 넘어 낭야국으로 침입하기까지 했다.
“괘씸한 년 같으니라고…. 감히 서주자사인 내 허락도 없이 경계를 넘어 낭야국까지 들어오다니.”
조조군이 병력을 이끌고 경계를 넘어 낭야국 지역까지 침입했다는 장패의 말에 도겸은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토해냈다.
서주는 모두 내 땅이다.
감히 내 영역에 허락도 없이 군세를 몰고 오다니.
그것은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무방한 군사적 결례였다. 도겸은 조숭 일가의 피습과는 별개로 조조 군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연주의 조조가 부친과 일가친척들이 피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필시 군세를 움직일 터! 미리 그 전에 움직여야 한다…. 연주와 예주를 모두 제패한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형주의 원술과 손을 잡을 수밖에.’
조조에게 불안감을 느낀 도겸은 사절단을 보내 동맹을 주선하려 했던 원술군을 의지하려 했다.
분명 조조 군은 강하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패한 바가 없었다.
도겸은 조욱을 사절단으로 연주성에 보내어 오해를 풀도록 하는 한편, 조굉을 형주 남양군으로 보내 원술군과의 동맹을 다지려 했다.
* * *
태산국에 도착한 조홍은 영입한 의원들을 모두 총동원하여 이성휘를 회생할 것을 명령했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리세요! 회생에 무사히 성공한다면 삼대가 놀고먹어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물들을 내리겠어요.”
회생(回生),
다 죽어 가는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살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미약하게 숨을 내쉬고 있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태산국의 의원들은 충격을 금치 못 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치명상을 입은 사내가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으음! 당장 처치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명의(名醫)로 이름이 높은 장중경이 마침 태산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이성휘를 보며 도저히 가망이 없다며 의원들이 한숨을 내쉴 때, 오직 장중경이라는 이름의 명의만이 중원제일 검의 소생에 뛰어들었다.
장중경의 모습에 다른 의원들 또한 저마다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장중경을 도와 소생에 나서기로 했다.
“원화 선생께서 계셨다면 능히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허나 원화 선생께서는 몇 년 전에 제자와 함께 장안성으로 향하셨지 않은가?”
의원들이 수군거리며 말했다.
그에 조홍이 입을 열었다.
“원화? 그게 대체 누구죠?”
조홍의 물음에 의원들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화타라는 이름의 명의이온데,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의 명의로 유명한 편작과 명성을 양분할 정도의 당대 최고의 신의(神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편작의 명성에 필적할 정도의 신의…. 어디서 수배할 수 있죠?”
“모르겠습니다, 수년 전부터 그 행방이 오리무중이신 분이라….”
화타의 행방을 묻는 조홍의 말에 의원들은 착잡함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제자 이당지와 함께 장안성으로 떠났다는 말을 들은 것을 끝으로 화타는 그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수년 전에 들었던 풍문이니 필시 지금은 다른 지역에 있을 터. 행방이 묘연한 화타를 찾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후우…!”
이성휘를 장중경과 의원들에게 맡긴 조홍은 심려에 찬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앉았다.
심장이 계속해서 요동쳤다.
공포와 불안감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원들의 기적적인 소생으로 이성휘가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저 사람은 나를 위해서 몇 번이고 목숨을 걸어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원들을 믿는 것밖에 없다니… 한심하네요, 정말.’
그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조홍은 뼈를 깎아내는 것 같은 무력함을 느꼈다.
두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건만,
싸늘하게 식은 산송장처럼 보였던 이성휘를 떠올리자 재차 눈물이 차올랐다.
“명성 높은 의원들이 팔을 거들고 나섰으니 분명히 괜찮을 게다. 지금은 일단 믿고 기다리도록 하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조홍을 향해 조숭이 다가왔다.
그 또한 심려가 깊었는지,
무거운 걱정을 짊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기필마로 피습 현장에 달려든 이성휘의 활약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 조숭은 가슴 깊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패국조씨 가문이 평생을 바쳐 은혜를 갚아야 할 은인으로 여겼다.
“숙부님, 어림총사는 어땠나요?”
“우리 패국조씨 가문을 위해 목숨을 걸고 흉적들과 싸웠다. 내 반평생 그렇게 용맹한 무관은 본 적이 없었다.”
조숭의 대답에 조홍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지금까지 나를 구해줬던 것처럼,
그 사람은 흉적들에게 위협받던 숙부와 일가친척들을 구해주었다.
자신들을 위해 매번 목숨을 거는 이성휘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 했다. 우리들 때문에 항상 위험에 처하는 것 같아… 깊은 죄책감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졌다.
“절체절명에 놓인 우리 패국조씨 가문을 구명했던 사내가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당대 최고의 무인이라고 들었다.”
“…네, 숙부님.”
“중원제일 검은 우리 가문의 은인이다. 어떻게든 그를 구해 내야 한다. 아만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조홍과 조숭이 심려를 품으면서 이성휘를 걱정하고 있을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조덕이 다가왔다.
“아버지, 일단 누이에게 전령을 보냈습니다.”
“수고했다.”
좌불안석하는 심정으로 연주성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누이를 위해 전령을 급히 파견했다.
날랜 정예병을 전령으로 보냈으니 사흘 안으로 무사히 소식이 도달할 것이었다.
* * *
태산국에서 출발한 전령은 밤낮으로 달려 이틀 만에 연주성에 도달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해가 완전히 저문 초저녁에 도착한 전령은 급히 조조의 치소에 도착했다. 호위장 허저의 안내를 받으면서 집무실에 도달한 전령은 폐인처럼 초췌해진 몰골을 하고 있던 조조에게 낭보를 알렸다.
“다행히도 춘부 어르신과 일가께서는 모두 무사하십니다! 평동장군께서 호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와 동생이,
또한 친척들도 모두 무사하다.
전령으로부터 낭보를 듣게 된 흑발의 여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는지,
조조는 몇 번이고 전령에게 확인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낭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명부!”
“모두 무사하시다니… 이제야 시름을 놓을 수 있겠습니다.”
태산국에서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무실에 급히 달려온 진궁과 순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조에게 말했다.
두 군사들의 축하에 조조가 두 다리를 떨었다.
모두 무사하다.
흉적들로부터 노려졌으나 무사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묵묵부답이었던 하늘이 도움을 내린 것만 같았다.
벅찬 환희와 환열을 느낀 흑발의 여인은 이성휘가 늦지 않고 변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음을 직감하고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예주 전선에서 서주 낭야국으로 향한 부관이 어떻게든 늦지 않게 도착한 모양이군. 분명 부관이 부친과 일가친척들을 구해 냈을 터. 그렇지 않은가?”
조조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낭보를 전하던 전령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삽시간에 변한 전령의 표정에 조조는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환희에서 곧바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던져지는 기분이 이러할까, 공포와 두려움이 삽시간에 엄습해 왔다.
“어림총사는 춘부 어르신을 구하기 위해 단기필마로 격전을 치른 직후… 깊은 중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성휘는 3백 명에 달하는 흉적들을 전멸시킨 다음에 힘을 다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극심한 중상을 입고,
지금 사경을 헤맬 정도로 위독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 소식에 조조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당장 군세를 소집할 것을 명령했다.
“내가 직접 태산국으로 가겠다….”
믿을 수 없다.
이 자의 말은 신용할 수 없다.
두 눈으로 직접 봐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조조는 당장 태산국으로 향하겠노라고 절망에 젖은 오열을 토해냈다.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조리 베겠다.”
스산한 살의를 품은 흑발의 여인은 광기에 물든 눈빛으로 진궁과 순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베겠다.
흉신악살을 연상하듯이 지독한 광기와 살의를 품은 그녀의 말은 절대로 허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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