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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89화 (189/616)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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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저를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사랑하는 남성이 휘하 무관들에게 보낸 전언을 들은 흑발의 여인은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침음을 삼켰다.

그는 말했다.

믿고 기다려달라고.

자기 직접 서주로 가서 아버지와 패국조씨 가문의 일가친척들을 모두 구해낼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했다.

“귀관,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조조가 울음기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허공을 응시했다.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근거 없는 믿음을 느끼게 한 그에게 야속함을 보냈다.

“귀관은 어째서 나를 막는단 말인가.”

아버지와 친척들이 끔찍하게 살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다.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소중한 아버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한없이 조조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서주를 향한 증오와 분노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한 방편일 뿐, 조조의 마음은 애처로울 정도로 나약하게 물든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군사를 일으키고 싶다. 당장에라도 군세를 이끌고 서주를 침공하여 도겸과 그 일파들을 모조리 도살하고 싶단 말이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내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에게 위해를 가한 놈들.

사람과 가축을 가리지 않고,

풀 한 포기까지 남김없이 서주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마치 천하의 얼간이가 되어 버린 것처럼…, 귀관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결심이 흐려지고 만다.”

이성휘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아버지와 친척들을 모두 구해낼 테니 믿고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증오와 살의로 요동치던 마음에 한 줄기의 평온한 흔들림이 일게 되었다. 당장에라도 군세를 이끌고 나아가 서주를 쑥대밭으로 만들려 했던 끔찍한 살의가 사랑하는 남성이 전한 말에 점점 무뎌지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이냐. 어서 가르쳐다오. 지금까지 나를 충직하게 이끌어줬던 것처럼…, 내 곁으로 와서 나를 가르쳐다오.”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흑발의 여인은 울음을 터트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외롭고 두려웠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웠다.

소중한 혈육이 싸늘한 시신이 된 채 쓰러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두려움이었다. 연주를 제패하고 예주마저 손에 넣은 중원의 패자조차도 감히 견디기 어려운 끔찍한 저주와도 같았다.

“흐윽, 흐으… 흐흑…!”

자기 무력함을 깨달은 가녀린 계집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동요와 불안,

지독한 두려움이 마음을 갉아 먹었다.

무수히 많은 난관들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돌파해낸 그녀였지만, 지독한 두려움을 이겨 낼 순 없었는지 한없이 여린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

문 너머에서 들린 구슬픈 울음소리에 상아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이 씁쓸함이 담긴 웃음을 지으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허저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온 것을 알리지 말아 달라는 신호였다.

발걸음을 우두커니 세운 순욱은 감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주군에게 안타까움을 보냈다.

‘주군께서는 일찍 선대부인을 여의시고 춘부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셨다고 들었습니다. 춘부께서 변란에 휩쓸리게 되셨으니… 그 분노와 당혹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겠지요.’

울음소리가 들리는 문 너머를 가만히 응시하던 순욱은 이윽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깊은 상심에 빠지신 주군의 귀에는 그 어떤 말들도 들리지 않을 터.

한 걸음을 남겨두고 자리를 피한 순욱은 사태의 급박함을 미리 간파하여 단기필마로 향한 이성휘가 무사히 주군의 춘부 어르신과 일기친척들을 데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 * *

평동장군(平東將軍) 조홍이 이끄는 군세가 낭야국에 당도했다.

치중들을 모두 포기한 채 연주 방면으로 무작정 걸어오고 있던 조숭 일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를 확인한 조홍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모든 장졸들에게 숙부와 일가친척들을 철통처럼 호위할 것을 명령했다.

“숙부님!!”

황금 무구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다급하게 외치면서 조숭에게 달려왔다.

치열한 격전에 휘말리면서 값비싼 비단옷이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지만 조숭은 부상 없이 무사했다. 또한 곁을 지키고 있던 조덕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렴 누님!”

조홍의 얼굴을 본 조덕이 반가움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드디어 연주에서 군세가 왔다.

연주성에 계신 누님께서 보낸 군세가 분명했다.

장개 같은 무리가 또 급습을 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안고 있었던 패국조씨 일가는 조홍이 이끌고 온 군세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숙부님, 무사하시죠?! 어디 다친 곳은요!”

“나는 없다만… 그보다도….”

걱정과 심려에 물든 조홍의 모습은 본 조숭은 말끝을 흐리면서 대답했다.

“우리 패국조씨 가문을 구한 은인이 격전을 치르던 도중에 중상을 입고 말았다. 일단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하였다만 한시라도 빨리 의원에게 가야 한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성이 수레 위에 누워 있었다.

싸늘하게 죽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된 조홍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울음을 토할 순간도 없었다.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상황을 눈앞에서 보게 된 조홍은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 으으… 아아아아아악!!”

뒤이어 정신을 차린 조홍은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다.

실로 끔찍한 부상들을 입었다.

몸 깊숙이 박힌 화살들을 본 조홍은 두 눈을 떨면서 다른 부위들을 살폈다.

이성휘의 온몸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부상들은 하나 같이 모두 치명상들뿐이다. 지금 당장 죽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처들이었다.

“수, 숨은…! 숨은 쉬고 있는 거죠?! 어서 의원에게 가서 상처들을 치료해야… 어떻게든 부상들이 더 심해지기 전에 의원에게 가야 돼요!”

조홍은 급히 휘하 부관들을 소집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혼절한 이성휘의 모습을 본 조홍의 무관들 역시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당장 태산국으로 가 의원들을 소집하세요! 용하기로 유명한 명의들은 모조리 집결시키고요! 명을 어긴다면 그 자리에서 베어버려도 좋아요!”

조조가 극단적인 살의를 품었듯,

피투성이가 된 채 혼절한 이성휘의 모습을 보게 된 조홍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조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제발 눈 좀 떠봐요…, 제가 이렇게 왔잖아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무심하게 두 눈을 담고 있는 이성휘의 뺨에 손을 올렸다.

피를 많이 흘린 탓일까.

시체처럼 살갗이 싸늘했다.

마치 시체처럼 느껴지는 싸늘함에 조홍은 더욱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대로 영영,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릴 것만 같아서.

비참한 울음을 토해내면서 이성휘에게 매달렸다.

“두 번 다시 건방지게 굴지 않을 테니까… 절대로 억지를 부리지 않을 테니까…! 제발 부탁이니까 눈을 떠주세요… 네?”

죽어 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수로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진심으로 사랑하므로 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전장에서 입었던 어떤 상처보다도 아프고 쓰라렸기에 조홍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하염없이 이성휘에게 매달렸다.

“흑흑, 흐으윽, 흐아아앙!!”

흑발의 여인이 흘린 뜨거운 눈물이 산송장처럼 축 늘어진 사내의 얼굴을 적셨다.

오열을 토해냈다.

읍소를 쏟아 내면서 슬픔과 두려움을 눈물에 담아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지아비를 잃은 여인처럼 조홍은 이성휘의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새하얀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 * *

패국조씨 일가를 호위하던 장개가 부하들을 이끌고 피습을 감행했다는 소식이 도겸에게 닿게 되었다.

호위로 보냈던 놈이,

도리어 호위대상을 피살하려 했다.

종사(從史) 손건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도겸은 장개를 패국조씨 가문의 호위로 보낸 부곡(部曲) 조표를 호출하여 엄히 문책했다.

“부곡,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개 같은 작자를 패국조씨 일가의 호위로 투입시켰단 말인가!”

도겸은 장개가 황건적 출신임을 알면서도 그를 호위장으로 세운 조표의 추천을 받아들였다.

자신도 받아들였던 주제에,

장개가 부하들과 함께 패국조씨 일가를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표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버렸다.

도겸의 서슬 퍼런 힐문에 조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장개를 추천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패국조씨 일가가 장개의 손에 모두 목숨을 잃었으니, 필시 조조가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 터! 이를 어떻게든 대비하여야 할 텐데…!”

심각한 우려에 빠지게 된 도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팽성도위(彭城都尉) 장개와 그의 휘하 장졸들은 용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황건적의 졸개였던 그들을 휘하로 받아들인 것은 그 용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장개와 3백 명에 달하는 휘하 장졸들이 피습을 가했다면 패국조씨 일가는 전멸을 당했을 것이다.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한 사병들만 대동하고 있었던 패국조씨 가문이 무사히 살아남았을 리 없었다.

“아닙니다, 서주자사. 패국조씨 가문은 무사히 연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살해된 채 발견된 시체들은 장개와 그 부하들입니다!”

도리어 피습을 가했던 장개와 부하들이 모두 전멸했다는 손건의 말에 도겸과 조표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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