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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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아버지께서는 크게 출세한 딸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선황의 딸을 보필하고 있으며,
또한 황후와 조정대신들을 호위하게 되었다.
삼공(三公)의 벼슬인 사공(司空)에 임명된 것은 물론, 중앙 상비군을 통솔하고 외정을 관할하는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기까지 했다.
만승천자(萬乘天子)조차 벌벌 떨게 만들 정도의 권력을 손아귀를 넣은 딸을 본다면 분명 크게 기뻐하실 것이 틀림없었다.
“기뻐 보이십니다, 명부.”
“그런가?”
관복을 입은 채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흑발의 여인.
혹시라도 흐트러진 부분이 있을까,
연신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모습에서 고아한 자태가 흘렀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진궁은 잠시 이별했던 아버지와 다시 만날 생각에 들뜬 반응을 보이는 조조의 행동에서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춘부(春府)께서 낭야국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태산태수 응소가 직접 마중을 나도록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게.”
태산국(泰山國)의 태수로 임명된 응소는 학식이 풍부한 학인이며, 오랑캐와 황건적 군세를 연이어 토벌하는 등의 활약을 세운 바 있는 괄괄한 대장부였다.
응소라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진궁은 태산국의 태수에게 패국조씨 가문을 맞이하도록 일임했다.
“부관에게 따로 소식은 없는가?”
“예, 아직 없습니다.”
흑발의 여인이 예주 전선으로 파견된 부관에게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는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진궁이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진궁의 모습에 조조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쑥스러움 가득한 헛기침했다.
“왜, 왜 갑자기 웃는 겐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조는 곧 재회하게 될 부친에게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할 예정이었다.
딸에게 사랑하는 정인이 생겼음을,
평생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큼.”
혹시라도 속마음이 들켰을까,
흑발의 여인이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군사를 향해 눈길을 힐끗 던졌다.
“부르셨어요, 언니?”
조조와 진궁이 집무실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을 옆으로 묶은 미녀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평동장군(平東將軍) 조홍이었다.
조조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에 온 조홍은 당찬 목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자렴, 휘하를 이끌고 산음군(山陰郡)에서 아버지를 맞이해라.”
“네!”
성심성의를 다하고 싶었는지,
조조는 태산태수 응소에게 명을 내렸음에도 조홍을 따로 불러 아버지를 맞이할 것을 명했다.
호수 위의 물안개처럼 물든 일말의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와 재회할 생각에 마음이 구름처럼 들뜨는 한편,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두려움이 들었다.
“미안하다, 자렴. 내 기우 때문에.”
“아니예요, 제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숙부님을 잘 보필할 테니까요.”
“그래.”
조홍이라면 믿을 수 있다.
친족들 중에서도 조홍을 가장 신뢰하고 있었던 조조였기에 아버지의 마중을 특별히 부탁했다.
불안감을 느끼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린 것일까. 조홍이 제 가슴을 툭 치면서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언니의 불안감을 덜어 주었다.
“주군.”
문 너머에서 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허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주 전선의 어림총사가 전령을 보내 왔다고 합니다.”
“부관이?”
“예, 그렇습니다.”
이성휘가 전령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조가 당혹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부관이 급히 전령을 보냈다.
예주 전선에 무슨 사고라도 생겼을까를 우려 했다.
그를 심상치 않게 여긴 조조는 이성휘가 보낸 전령을 서둘러 호출했다. 곧이어 예주 전선에서 급히 달려온 전령이 집무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림총사가 주군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서한을?”
전령이 두 손으로 서한을 꺼내 조조에게 보여 주었다. 조조는 전령으로부터 이성휘가 보낸 서한을 건네받게 되었다.
“무슨 일입니까, 명부?”
진궁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또한 조홍도 이성휘가 보낸 서한에 궁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도겸군을 경계하라는군.”
서한을 펼친 양손을 바르르 떨며 불안감에 젖은 모습을 보이던 흑발의 여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도겸의 휘하에는 극악무도한 악명을 떨친 황건적 출신의 장졸들이 많다…. 그들을 경계함에 있어 절대로 주의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도겸군을 경계하라는 이성휘의 서한에 조조의 불안감이 불길처럼 극도로 솟구쳤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듯,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이 마음을 꿀꺽 집어삼켰다.
일신의 평판과 명예를 중시하는 도겸이 아버지에게 위해를 가할 리 없다, 그리 단언했던 조조였지만 이성휘가 보낸 서한을 보고 날카로운 경각심이 크게 일게 되었다.
“당장 태산태수 응소에게 전령을 보내라, 서주 낭야국에 계신 아버지를 데려오라고! 서주자사 도겸과 접전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을 데려와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조조의 서슬 퍼런 명령에 허저가 예를 취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톱을 까득 깨물었다.
무거운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뇌리를 어지럽혔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조조가 왜소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이성휘가 옆에 있었다면 겁에 질린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줬겠지만, 현재 이성휘는 조조의 곁에 있지 않았다.
“명부, 태산태수 응소가 군세를 이끌고 서주와 인접하는 경계를 넘는다면 도겸군은 그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겁니다.”
“얼마든지 감수하겠다.”
낭야국은 서주에 속한 군현이다.
태산태수 응소가 군세를 이끌고 낭야국까지 출진한다면 도겸군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할 것이었다.
도겸군과 전쟁이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조조는 진궁의 우려를 뿌리치면서까지 군세를 움직이려 했다. 마음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공포와 불안감을 떨쳐 낼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지금 당장 휘하를 이끌고 산음군으로 출진할게요. 혹시라도 도겸군이 숙부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다면… 즉시 응전하겠습니다!”
굳게 경직된 표정을 짓고 있던 조홍의 말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예상했던 대로 염일(念日: 스무날)이 훌쩍 흐른 뒤에야 낭퍄국을 떠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동원된 수레들은 모두 100여 대.
패국조씨 가문의 재물들을 옮기기 위해 수많은 수레들이 이용되었다.
패국조씨 가문의 일가친척과 노복들, 그리고 호위를 담당하는가문 사병들이 마침내 연주성으로 향하는 행렬에 올랐다.
“서주자사의 명을 받들어 태산국까지 어르신을 철통처럼 호위할 겁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남성이 3백 명이 조금 넘는 병력들을 이끌고 패국조씨 가문을 호위했다.
팽성에서 파견된 도겸군 장수,
황건적 출신이었던 팽성도위(彭城都尉) 장개였다.
부곡(部曲) 조표로부터 명령받고 패국조씨 가문의 호위를 맡게 된 장개는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을 둘러싸면서 조숭과 일가친척들을 보필하게 되었다.
“태산국까지 잘 부탁하네, 장개 도위.”
“맡겨 주십시오.”
조숭의 말에 장개가 예를 취하면서 답했다.
곧이어 행렬이 시작되었다.
수레들이 들썩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도겸군의 도움을 받아 수월하게 행렬을 이끌 수 있게 된 조숭은 연주성에서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빌어먹을! 조표, 이 개자식! 태평도(太平道)에서 수천 명에 달하던 장졸들을 통솔했던 적 있는 이 장개를 겨우 이딴 허드렛일을 맡기다니!!’
조표에게 패국조씨 가문의 호위를 맡게 된 장개는 폭발할 것 같은 불만에 휩싸인 상태였다.
태평도의 장수였던 이 장개가,
흰머리가 무성한 늙은이와 그 일가친척들의 수발을 들고 있다니!
실로 비참하고 원통했다. 도겸군의 수발을 들고 있는 자기 처지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 분노와 원통함은 이윽고 조숭을 향하게 되었다.
‘개국공신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지금껏 호의호식하며 살았겠지! 나 같은 무지렁뱅이는 감히 언감생심도 못 낼 구경(九卿)과 삼공(三公)의 벼슬을 꿰차고는 부와 권력의 단맛을 즐겼을 터!’
질투와 시기,
온갖 악감정들이 치솟았다.
도겸과 조표로부터 온갖 괄시를 당해온 탓일까. 푸대접을 매번 받아왔던 장개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자를 맹목적으로 질투하게 되었다.
“비가 옵니다!”
“어서 서둘러라! 수레를 천막으로 덮어라!”
낭야국을 떠나기 무섭게,
돌연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장개가 속으로 욕설을 지껄여댔다.
그러잖아도 늙은이의 수발을 드는 역할을 맡게 되어 신경이 날카로웠는데, 그를 비웃듯이 하늘이 빗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레바퀴들이 진흙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장개가 크게 소리쳤다.
고삐를 잡아 말머리를 돌리면서,
부하들이 수송하던 패국조씨 가문의 수레에 다가섰다.
태산국까지 안전하게 수송해야 하는 수레들이 더럽게도 많았다. 무려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이 대열을 이룬 채 즐비하여 있었다.
그 수레들을 바라보던 장개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 빌어먹을 늙은이는 대체 재산이 얼마나 많기에 100여 대가 넘는 수레들을 동원하는 거지?’
장개가 패국조씨 가문의 수레를 뒤덮고 있던 천막에 손을 뻗었다.
천막을 와락 걷어냈다.
그러자 값비싼 패물과 금은보화들이 영화를 뽐내듯이 찬연한 빛을 내뿜었다.
여러 대에 걸쳐 부귀영화를 누렸던 패국조씨 가문답게 재물들이 어마어마했다. 그간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가산들은 물론, 낭야국의 가택과 정원들까지 모두 처분했기에 가산은 더욱 불어난 상태였다.
“오오!”
진귀한 패물과 누런빛을 내붐는 금은보화를 본 장개가 욕망과 탐욕에 찬 눈길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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