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
조조는 태산군(泰山郡)의 태수 응소를 보내어 낭야국에 머무는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에게 연주성으로 모시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더 이상 낭야국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사방을 위협하던 잔적들을 모두 척결했으므로 이제 서주에 계신 아버지를 모실수 있게 되었다.
태산군은 낭야국에서 연주성으로 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현으로, 태산군의 태수를 직접 파견하여 서한을 전달할 정도로 조조는 부친 조숭에게 한없이 효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 드디어 누이에게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당장 누님께서 계신 연주성으로 가시죠!”
누이 조조가 보낸 서한을 본 조덕은 환희에 찬 웃음을 지으면서 아버지를 재촉했다.
태산군의 태수가 직접 오지 않았는가!
그만큼 누이가 아버지와 패국조씨 가문을 지극정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노복들과 함께 밤낮으로 낭야국의 가산들을 처분하고 있으니 적어도 염일(念日:스무날) 안에는 연주성으로 떠나기 위한 채비를 모두 갖출 수 있을 터였다.
“그리도 좋으냐?”
조숭이 클클 웃으면서 물었다.
그에 조덕이 신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 싸우고 계신 누이들을 왜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누이의 진영에는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당대 최강의 무인이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물음에 조덕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두 눈에 동경심을 드러냈다.
중원제일 검을 볼 수 있다.
연주성으로 가면 세간의 소문들로만 들어온 주인공을 마침내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이제 갓 약관을 치른 나이였던 조덕은 젊은 청년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그 또한 용맹한 군웅들에게 환상을 품고 있었다.
“어서 수레에 실어라!”
“연주성까지 강행군을 해야 하니 밧줄로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조숭, 조덕 부자와 함께 낭야국으로 피신했던 패국조씨 가문의 노복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패국조씨 가문의 일가친척들 또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일을 돕고 있었다.
“도련님, 아무래도 막대한 양의 가산들을 모두 정리하다 보니 시일이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무려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에 가산을 몽땅 옮기는 일이었기에 작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림잡아 염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것은 최소로 잡은 날짜일 뿐 정확한 시일은 아니었다.
시일이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노복의 보고에 조덕은 조바심이 들었는지 두 발을 동동 굴렀다. 안절부절못 하는 아들의 모습에 조숭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르신.”
조숭과 조덕이 집안 재물들을 나르는 노복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가문을 호위하는 사병이 다가왔다.
“도겸군에서 사자가 도착했습니다.”
“서주자사가 사람을 보냈단 말인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만나 보도록 하마.”
서주 팽성에서 사자가 왔다.
사병이 전한 말에 고개를 끄덕인 조숭은 아들 조덕과 함께 팽성에 온 손님을 맞이했다.
패국조씨 가문의 가택에 온 손님은 도응이라는 이름의 인물이었다. 서주자사 도겸의 차남이며, 서주 팽성에서 장사(長史)를 맡고 있다고 했다.
“제 아버님께서는 어르신께서 낭야국을 이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지 못해 많이 아쉽다는 전언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딸의 부름을 받고 낭야국을 떠난다는 소식이 도겸의 귀에까지 들리게 된 걸까.
과연 서주의 효웅이라 불리는 자다.
도겸이 대신 아들을 보내어 인사를 해온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서주자사 도겸은 중원 지역을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딸과 적대관계가 될 터. 혹시라도 그를 우려한 도겸이 자신과 일가친척들을 인질로 잡을까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나 또한 서주자사를 뵙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많이 안타깝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낭야국을 떠나는 어르신께서 무사히 연주성으로 가실수 있도록 호위를 붙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게 호위를 붙여 준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낭야국에서 동군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물론 도중에 태산국에서 태수 응소에게 도움을 받게 될 예정이었지만 100여 대에 달하는 수레들을 수송해야 했기에 많은 인력들이 필요했다.
‘서주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 도겸이 직접 병력을 동원하여 나에게 위해를 가하진 않을 터. 우리 패국조씨 가문과 척지고 싶지 않다는 의중인가….’
도겸이 호위를 붙여 준다는 말에 잠시 당혹감에 서린 표정을 지은 조숭이었지만, 안전을 우려하여 호위를 붙여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극구 사양하지는 않았다.
“그러잖아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도움을 기꺼이 주신다니…, 서주자사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덕이 도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100여 대의 수레들을 끌어야 했고,
또한 연주에서 쫓겨난 황건적 잔당들이 도처에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길목을 지나야만 했다.
전(前) 태위(太尉)였던 아버지와 중원의 패자에 등극하게 될 누이에게 잘 보이려는 속셈으로 호의를 베푸는 도겸의 행동을 조덕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 *
이성휘는 조인이 마련한 배편을 타고 산양군(山陽郡)에 도착한 뒤에 곧바로 말을 타고 동군(東郡)으로 향했다.
뇌리를 강타하는 불길함.
혹시라도 늦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계속해서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달려 나가는 이성휘의 질주에 그를 뒤따르던 무관들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좀 더 속도를 내라!”
“어림총사와 멀어져선 안 된다!”
검을 찬 무관들이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맹렬하게 질주하는 이성휘를 전속력으로 뒤따랐다.
대체 무슨 변고가 벌어진 것일까.
연주에서 변고가 생겼다는 급보는 분명 들어온 바가 없었다.
뒤따르던 무관들은 이성휘가 어째서 저리도 절박하게 서두르는지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마치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서두르는 이성휘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내 불찰이군! 사방을 평정하여 연주를 완전히 장악한 아만이 서주 낭야국으로 피신했던 부친 조숭을 연주성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는데!’
예주 전선으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불안감이 번뇌처럼 내리쳤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처참한 살육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조조가 천하를 결국 통일하지 못했던 가장 큰 원흉이다. 또한 죽는 그 순간까지 발목을 붙잡았던 최악의 대사건이기도 했다. 그것을 떠올린 이성휘는 침음을 삼키면서 재차 말에 박차를 가했다.
“초, 총사!”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성휘를 뒤따르던 무관들이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체력에 한계가 왔을 뿐 더러,
이성휘의 기마술은 북방 전선에서 복무했던 장수처럼 매우 뛰어났다.
마치 말과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맹렬하게 질주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무관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장개가 조숭 일가를 살해했던 장소는 태산국에 도착했던 바로 직후였다! 아직 시간이 있다!’
호위를 담당했던 장개가 재물에 눈이 멀어 조숭 일가를 살해했던 장소는 태산국의 비현(费縣).
바로 비현에서 장개는 부하들과 의기투합하여 패국조씨 가문의 일문들을 모두 살해한 뒤에 재물들을 빼앗아 회남(淮南)으로 달아났다.
아직 비극은 시작되지 않았다.
패를 맞추듯이 점점 하나씩 맞춰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너희들은 이대로 연주성으로 가라!”
점점 대오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무관들을 향해 이성휘가 소리쳤다.
그들을 연주성으로 보내어,
급히 태산국으로 병력을 파견할 것을 명령했다.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게 될 장소는 태산국. 태산국에 많은 병력을 배치한다면 제아무리 재물에 눈이 먼 장개라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터였다.
* * *
낭야국에 기거하던 조숭과 패국조씨 가문이 연주성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정보를 들은 도겸은 아들 도응을 보내어 자기 친필서한을 전달하도록 했다.
서주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던 도겸은 개인의 평판과 명예를 중시하는 성정이었으므로 삼공(三公)의 벼슬을 역임한 바 있는 조숭에게 매우 깍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르신, 낭야국을 떠날 패국조씨 일가를 모두 인질로 잡으셔야 합니다! 중원의 패자를 자청하는 조맹덕이 서주를 호시탐탐 넘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닙니까!”
부곡(部曲) 조표는 당장 조숭과 그의 일가친척들을 인질로 붙잡을 것을 진언했다.
놈들은 매우 훌륭한 인질이 될 터.
제 부친이 서주성에 인질로 잡혀 있으면 감히 경거망동은 못할 것이었다.
평판과 명예에 집착하느라 눈앞에 아른 거리는 실리를 놓치려 하는 도겸의 행동에 조표는 불만에 찬 모습을 보였다.
“조숭은 삼공(三公)을 역임했던 고관대작이며, 또한 패국조씨 가문은 한나라의 일등 공신인 평양정후(平陽靜侯)의 후손이다.”
도겸이 혀를 차며 말했다.
패국조씨 가문은 명문 중의 명문이다.
그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환난을 피해 낭야국으로 온 조숭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도겸은 패국조씨 가문이 안전하게 연주로 갈 수 있도록 호위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부곡, 조숭 일가를 호위할 장졸들을 즉시 선발하게.”
“알겠습니다, 어르신.”
도겸의 명령에 조표가 예를 취하면서 답했다.
늙은이와 그 가족들을 호위하는 임무.
용맹하기로 무명 높은 단양병 장졸들을 한낱 호위임무에 투입하고 싶지 않았던 조표는 잡일에 주로 동원하던 놈을 투입시키려 했다.
서주 낭야국의 패국조씨 일가를 연주 지역의 태산국까지 호위하면 될 뿐인 임무였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