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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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던 원술군의 3만 군세를 모두 무찌르고 영천군과 여남군을 장악했다.
예주 전선으로부터 반가운 승전보를 듣게 된 조조는 적손이라는 고귀한 혈통을 내세우며 으스대던 시건방진 놈을 무찌른 이성휘에게 찬사를 보냈다.
빌어먹을 놈의 콧대를 힘껏 눌러줬다.
분명 지금쯤 여남원씨 가문의 도련님은 침상을 뒹굴뒹굴 구르면서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터. 3만에 달하는 군세를 모두 잃었으니 제대로 체면을 구긴 셈이 되었다.
“부관이 재차 해냈군! 예주를 점령한 것에 이어 원공로의 졸개들까지 모두 무찌르다니!”
남편의 성공을 기뻐하는 아내처럼 조조가 두 발을 동동 뛰면서 팔불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사촌 앞에서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였다.
입맞춤과 함께 고백한 이후로 조조는 보다 솔직한 성격으로 발전했다. 항상 이성휘에게 소식이 도착할 때마다 하후돈을 불러 일장 연설하듯 크게 자랑할 정도였다.
“그거 잘됐네.”
“역시 부관에게 병주군의 지휘권을 맡긴 선택은 옳았다! 부관이라면, 나의 부관이라면 능히 예주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지!”
“…….”
새하얀 뺨에 홍조를 그리면서 크게 기뻐하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이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우물쭈물하던 때가 좋았는데.
자신을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여 예비 남편을 자랑해대는 조조의 팔불출 같은 행동에 하후돈은 서서히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원양, 듣고 있는 거냐.”
“어…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뭐라고?”
쉴 새 없이 지저귀는 뻐꾸기처럼 이성휘를 자랑하는 속사포에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흑발의 여인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전혀 안 듣고 있었군.”
“그, 그야 맨날 똑같은 말만 해대니까….”
“주군의 명령이다. 매일 늘어놓는 똑같은 말이라도 들어라.”
실로 어마어마한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주종관계를 이용한 갑질,
하후돈은 사랑에 빠진 상관으로부터 지독한 갑질을 매번 당하고 있었다.
농도 짙은 설탕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처럼 조조가 애인을 입이 닳도록 자랑하는 모습이 영 아니꼬웠지만 상대는 충성을 바친 주군이었으므로 하후돈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과연 부관은 한신에 필적할 국사무쌍(國士無雙)이 분명하다! 후후, 고황제(高皇帝) 유방은 소하의 추천을 받아 한신을 중용했지만 나는 부관을 한눈에 알아보고서 중용했다는 점에서 볼 때… 내 안목은 고황제보다도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겠지.”
남편 자랑에 이어 본인 자랑까지.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조조의 아니꼬운 꼴값을 단독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하후돈은 탄식 섞인 한숨을 토해내면서 의기양양하게 남편을 자랑하는 모습에 불만을 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옆에서 부지런히 방해하는 거였는데.
“원술, 여남원씨 가문의 도련님을 격파했으니 이제 예주는 손쉽게 들어오겠지. 그래서 어쩔 건데, 예주를 점령한 다음에는?”
하후돈이 물었다.
그에 조조가 만족감 서린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천하의 중심이라 불리는 연주와 예주를 모두 점령한다면 수많은 인재들이 내 곁에 모여 들 터. 나는 그들을 모두 이끌고 부국강병을 꾀할 것이다. 비겁하게 수도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역적을 토벌하기 위해.”
“동탁을… 노리겠다고…?”
“그래.”
관중을 포기하고 관서로 도망친 동탁을 척결하겠다는 조조의 호언에 하후돈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마 동탁을 도모하려 들 줄이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러한 의중을 내비친 적 없는 조조였기에, 동탁을 토벌하겠다는 조조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천하를 이룩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겠다.”
천하는 오직 나의 천하여야 하며,
나의 천하를 이룩함에 있어 방해되는 적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몰살할 것이다.
힘을 규합하고 마음을 단결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수’가 필요하다. 중원 지역에서 감히 조조 군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없었기에 관서로 도망친 동탁 군을 적수로 규정했다.
“물론 그 전에….”
하후돈을 향해 숨겨 온 군사방침을 밝힌 흑발의 여인은 도톰한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모셔와야겠지.”
이 딸이 성장한 모습을.
이 딸이 이룩한 모든 것들을.
그간 어머니도 없이 홀로 나를 키워준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쌓아온 세력과 앞으로 이루게 될 야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예주의 난리를 피해 서주 지역의 낭야국(琅邪國)으로 피신하신 아버지. 연주를 제패하고, 또한 예주까지 손에 넣은 조조는 하루빨리 서주에 계신 아버지를 맞이하려 했다.
* * *
원술군을 대파하고 예주를 취하게 된 조조 군은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에 등극하게 되었다.
중원의 패자,
그것은 곧 중원에 난립하는 모든 군벌들을 아우를 정도의 힘과 위세를 얻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연주를 장악한 조조군이 원술의 3만 군세를 완전히 분쇄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난세에 의지하여 세력을 규합하던 중소 군벌들이 하나둘씩 조조 군에게 투항해 왔다.
“원술이 동맹을 맺자고 하네.”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하는 중년남성이 휘하의 문관들을 향해 말했다.
백발이 희끗희끗 보였지만,
변방에서 뛰어난 장수로 무명을 쌓았던 중년남성은 장대한 체격과 탄탄한 근육을 자랑했다.
조정의 명령을 받들어 서주의 황건적 잔당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그 위에 군림하게 된 중년남성은 사대부와 호족들을 아우르면서 서주를 장악하는 군벌에 등극하게 되었다.
“조조를 견제하고자 함일 겁니다.”
서주의 패상(沛相)이었던 진규가 말했다.
노쇠한 나이였음에도 기민한 혜안을 자랑하는 진규는 단번에 원술의 의중을 꿰뚫어 보았다.
원술의 목적은 조조,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조조의 세력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사방에서 둘러싸는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려 하고 있었다.
“원술 휘하에는 뛰어난 지략과 술책을 겸비한 참모들이 많습니다. 필시 원술을 섬기는 참모들의 머리에서 나온 방안일 겁니다.”
“아둔하고 무능한 여남원씨 가문의 적손에게서 나온 방책은 아닐 테지.”
진규의 말에 중년남성은 원술을 업신여기는 말을 꺼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술은 배포가 작고 아둔하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 대의를 그르치고 마는 소인배 중의 소인배였다.
잠깐 동맹을 맺을지언정 결코 대의와 대망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기회만 생기면 곧장 동맹을 배신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낙양에서 도망쳐 온 자신을 환대한 은인에게까지 살수를 가한 말종인데 뭘 못하겠는가.
“나는 원공로와 손을 잡을 생각이다.”
서주의 용맹한 효웅,
서주자사 도겸은 원술과 손을 잡겠노라고 문관들에게 말했다.
조조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연주에 이어 예주까지 제패한 조조의 세력은 욱일승천하듯 무섭게 확대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겠지. 그러나 훗날 조조군이 서주 땅을 노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도겸은 원술과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
“하지만 필부와도 같은 원술은 사공 조조에게 맞설 그릇이 못 됩니다, 자사님.”
별가종사(別駕從事) 미축이 말했다.
미축의 말에 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별가종사의 말이 맞네. 그러나 조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원공로와는 일단 손을 잡을 수밖에 없네.”
형주자사 왕예의 병력을 빼앗고서 남양군에 여남원씨 가문의 세력을 규합해낸 원술군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3만의 군세를 잃었으나,
그의 휘하에는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견이 있었다.
과거 손견과 함께 서량 전선을 종군한 바가 있었던 도겸은 누구보다도 강동의 호랑이가 가진 힘과 용맹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원술이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기주를 제패한 정북장군 원소와 연주와 예주를 아우르게 된 사공 조조는 하북과 중원을 위협하는 거대한 적일세. 그녀들을 뒤에서 도모하려는 적수들은 밤하늘에 뜬 별자리들보다도 많을 테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그를 시기하고 견제하는 적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소는 하북의 군벌들을 상대해야 했고,
조조는 중원의 수많은 군벌들과 대적해야 했다.
조정으로부터 정북장군과 정동장군의 관인을 받고 하북과 중원을 호령하는 군벌이 된 원소와 조조는 모든 세력과 군벌들의 적이었다.
“우리 서주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중원에 패자(覇者)가 존재해선 안 되네. 중원의 패자라니…, 실로 무서운 이름이 아닌가.”
도겸은 중원 지역을 아우르는 패자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중원을 아우른다는 말은 곧,
중원에 속한 서주 지역 또한 중원의 패자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서주의 지배자가 된 도겸으로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새파랗게 젊은 계집에게 서주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자사님, 수괴 궐선이 도착했습니다.”
도겸이 문관들과 회의하고 있을 때,
단양군(丹楊軍) 장수인 조표가 예를 취하면서 도겸에게 수괴 궐선이 무리들을 이끌고 서주성에 진입하였음을 알렸다.
“드디어 도적 나부랭이가 왔군.”
도겸이 두 눈을 날카롭게 부릅떴다.
군벌 궐선.
그는 하비국(下邳國)을 차지한 도적들의 수괴로, 자신을 감히 천자라고 주장하면서 온갖 약탈과 패악을 부리는 인물이었다.
과거 서주를 장악할 때 궐선의 힘을 빌렸던 도겸은 조력을 빌려 준 것에 대한 대금을 치르겠다는 명목으로 서주성에 불러들인 뒤, 조표가 이끄는 단양병들을 동원하여 그를 참살하려 했다.
“궐선을 죽이고 하비국을 탈환하여 서주 전역을 완전히 제패하겠네.”
하비국에 주둔하는 궐선의 병력은 무려 수만 명에 이른다.
도겸은 궐선을 살해한 뒤,
그의 병력들을 모두 흡수하고자 했다.
원술을 소인배라며 크게 업신여긴 도겸이었지만 그 또한 원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남원씨 가문의 멸문지화를 피해 달아났던 원술이 형주자사 왕예로부터 도움을 받았듯, 서주자사에 부임되어 서주로 온 도겸은 하비국의 궐선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또한 원술이 왕예를 살해하고 병력을 모두 흡수하였던 것처럼 도겸 또한 궐선을 토사구팽처럼 척결하고 그 병력을 모두 거두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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