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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75화 (175/616)

1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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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군의 학익진을 완전히 찢어발긴 병주의 굶주린 늑대는 학의 몸통을 가차 없이 물어뜯었다.

늑대는 결코 먹이를 놓지 않는다.

목덜미를 물어뜯어 숨통을 끊은 뒤에 핏물이 뚝뚝 흐르는 고깃덩이로 허기를 채울 뿐.

여포와 장료의 분전으로 원술군의 전열이 모래알처럼 바스스 무너졌다.

악취와 양강이 지휘하던 좌군과 우군이 붕괴, 또한 이성휘와 고순을 막던 선봉대와 본군마저 무너지면서 원술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어딜 도망가냐, 원술의 졸개들아!!”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걸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면서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잔적들을 추격했다.

그 모습이 마치 허겁지겁 도망치는 양들과 그 뒤를 맹렬히 쫓는 사냥개를 보는 듯했다.

“적을 추격하라! 봉선 님을 뒤따르자!”

흑발의 여인이 예리한 도검을 치켜들면서 장졸들을 규합했다.

적 군세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선두가 궤멸되었고 본군마저 와해되고 말았다.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병주군은 적들이 두 번 다시 예주를 호시탐탐 노리지 못하도록 그 뿌리를 뽑으려고 했다.

“추격하라. 놈들을 끝까지 추격하라! 남양군 인근까지 추격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냥의 시간이다.

적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전열이 무너진 3만의 군세를 재정비하기란 쉽지 않을 터.

기장(騎將) 기령이 병력을 수습하여 재기를 꾀하기 전에 그들을 모두 예주에서 몰아내려 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으스대고 있는 여남원씨 가문의 추종 세력들을 찍어누르기 위함이었다.

“퇴각하라!”

“노, 놈들이 쫓아온다!!”

전투에서 패배한 원술군 장졸들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흙더미에서 나타난 쥐 새끼들처럼,

새카맣게 들판을 뒤덮었던 병력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기령 장군!”

고순과 함진영과의 접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기령이 수십 기의 기병들과 함께 달아나던 악취와 양강과 합류했다.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는지,

기령은 투구도 내던진 채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상태였다.

중원제일 검의 허황된 명성을 전투에서 무너뜨리겠다고 호언장담했건만, 중원제일 검과는 일초지적조차 싸워 보지 못하고 수하였던 고순에게 박살 난 뒤에 쫓기는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악취 장군! 양강 장군!”

기령이 숨을 헐떡이면서 악취와 양강을 불렀다.

원술군 제일의 기장이,

적들의 매서운 공격에 아연실색한 채 질린 표정을 지었다.

“3만에 달하던 위대한 여남원씨 가문의 군세가 뿔뿔이 흩어졌소이다! 이,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일방적인 패배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뛰어난 무력과 사나운 용맹으로 무명을 떨쳤던 기령이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다.

저항조차 못하고 무너졌다.

어른과 싸우는 어린아이처럼 반격해보지도 못한 채 박살 나고 만 것이다.

고순의 활약으로 본군 병력을 대부분 잃고 겨우 목숨만을 보존한 기령은 악취, 양강과 함께 소수의 병력만을 대동한 채 남양군으로 도망쳤다.

* * *

우연히 들르게 된 산골 마을에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한 순유 일행은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의 강행군으로 피폐해진 발걸음을 이끌면서 영천군에 도착했다.

그들을 맞이한 이는 조인이었다.

병주군이 원술군을 격파하는 사이,

조인은 본 거지인 영천군 본영을 호위하고 있었다.

“황문시랑 순유…, 부군사의 조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네, 맞아요!”

“…….”

흙먼지를 가득 눌러쓴 머리카락,

시커먼 검댕이에 물든 얼굴과 닳아빠진 의복.

조인은 혹시 영천순씨 가문을 사칭하는 거지가 아닐까, 라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상거지 같은 몰골의 여자가 어떻게 예주에서 손꼽히는 사대부의 여식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음식들을 와구와구 먹어대는 순유와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체 얼마 만에 먹는 고기냐!”

“흐하핫, 술이다! 흐흐흐… 흐흐흐흑!”

환호성을 지르며 고기를 뜯는 사내.

웃음을 터트리면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내도 있었다.

조인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조 군의 무관들은 그 처량한 광경에 그만 눈시울을 붉히면서 거지들에게 동냥하기 위한 돈을 모금했다.

“감사, 합니다….”

두터운 갑옷을 걸친 여인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준 조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서황이 투구를 벗었다.

답답해 보일 정도로 무거운 투구를 벗은 덕분에 아름다운 용모가 드러났다.

찬연하게 빛나는 주황빛 머리카락과 호박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 오뚝한 코와 오밀조밀한 얼굴은 중증의 말더듬이라는 결점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감사하오! 복 받으실 거외다!”

“함께 동탁을 도모하려 했던 동지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소!”

사내들은 자신이 세간으로부터 지탄을 받던 백파적 출신임을 까맣게 잊어 버렸는지 자신을 만고의 역적을 도모하려 했던 충의지사로 포장하여 설명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동탁을 도모하려 한 것은 사실이니.

거사를 주도했던 황문시랑 순유를 1400리에 달하는 거리를 강행군하는 동안 철저히 호위했던 공로를 높게 평가하여 지난날에 범했던 죄들을 사면해 줄 만도 했다.

“광양군의 태수이며, 의랑을 겸하는 조자효라고 합니다.”

“패국조씨 가문… 역시 조조군이군요.”

잘 구운 닭 다리를 뜯던 순유가 우물우물 고기를 씹으면서 기름이 뚝뚝 흐르는 입을 열었다.

역시 조조군이다.

조조군이 예주를 정벌하기 위해 내려왔다.

1백만이 넘는 황건적 무리들을 모두 격파하고 연주 지역을 제패한 조조군 세력이 마침내 군세를 이끌고 예주 영천군을 점령하기에 이른 것이다.

‘잘된 일이네요. 혹시라도 원술군이 예주를 점령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조조군이 예주로 손아귀를 뻗을 정도로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역시 조조군이라고 할까.

현명한 지혜와 혜안을 겸비한 고모 순욱이 원소군에 임관하기를 거부하고 조조군을 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현재 아군은 원술군과 양성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예주의 패권을 둔 전투군요.”

조조 군의 총대장은 인물은 이성휘,

동탁이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용장인 중원제일 검이다.

형양 전투, 숭산 전투, 낙양 전투에서 큰 활약을 세운 이성휘는 천하 13주를 요동치게 만들 정도의 무명을 떨치고 있는 당대 최강의 용장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무맹도위 정원과 함께 낙양과 사예주를 벌벌 떨게 하였던 여포와 장료, 병주군 장졸들이 휘하에 있었으므로 순유는 반드시 조조군이 전투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영천순씨 가문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제 곧 영천순씨 가문에서 응답이 올 겁니다.”

“네, 고마워요.”

순유의 당당한 모습에 조인은 ‘진짜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인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동탁을 암살하려 했으나,

밀고자에 의해 거사가 발각당하면서 한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탁 군의 추격부대를 피하면서 무려 1400리에 달하는 거리를 행군하여 예주에 도착했다. 뛰어난 정예병들도 불가능한 강행군을 가냘픈 몸을 가진 여인이 해낸 것이었다.

“자효 님.”

순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휘하 무관이 조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전령이 가져온 양성의 승전보를 고했다.

“어림총사께서 원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셨습니다. 3만에 달하던 적들이 궤멸되었으며, 현재 아군은 남양군으로 도망치고 있는 잔적들을 추격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알겠다.”

3만의 적들을 모두 대파했다.

그 승전보에 조인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중원제일 검이시다.

역시 이번에도 대승을 거두셨다.

흑발의 여인은 들뜬 마음을 가슴에 품으면서 빛나는 승전보를 세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대감 때문일까. 새하얀 뺨이 희미하게 붉어졌다.

“양성에서 치른 단기결전으로 3만에 달하는 대군을 모두 무찔렀단 건가요? 역시 중원제일 검이네요. 천하를 뒤흔들었던 용장다워요.”

이성휘를 크게 칭찬하는 순유의 말에 덩달아 조인의 기분 또한 들뜨게 되었다.

이 거렁뱅이,

뜻밖에 말재주가 뛰어났다.

정말로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이 맞는 건가…? 정황으로 볼 때 맞는 것 같았지만 워낙 거지꼴인 탓에 자꾸만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괜찮다면 중원제일 검을 한 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가 감히 중원제일 검을 접견하고 싶다는 부탁을 해 왔다.

그에 조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부탁을 받아들였다.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을 포섭할 수 있는 예주 출신의 명사가 필요하다는 이성휘의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정말로 이 거지가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이 맞는다면 공손하게 맞이해야 될 귀빈이었으므로 무례를 범할 순 없었다.

“그럼 우선… 허기를 모두 채우신 뒤에 세신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새 의복을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요! 천하에 명성을 떨친 중원제일 검을 접견하는 일이니까요.”

쉴 새 없이 우물대면서 길쭉한 뼈만 남기고 닭 다리를 먹어치운 순유가 접시 위에 수북하게 담긴 고기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일단 허기부터 채우는 게 우선이다.

우연히 조우하게 된 산골 마을에서도 음식을 제공받기는 했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무려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순유는 감격에 벅찬 표정을 지으면서 굶주린 배를 가득 채우는 포만감을 느꼈다.

* * *

양성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이성휘는 여포와 장료에게 지휘권을 일임한 뒤에 수십 기의 기병대를 이끌고 영천군 본진에 복귀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휘는 온몸에 피칠갑한 채였다.

피에 절은 몰골로 본진에 돌아온 이성휘는 자신을 황문시랑 순유라고 밝힌 여인이 뵙기를 청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의아함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황문시랑 순유…?”

“예, 그렇습니다. 지금 어림총사의 군막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유라면 분명 장안성에 있을 텐데.”

순유가 본진에 귀한 발걸음했다.

중립을 표방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어떻게든 설득하여 협력과 지원을 받아 내야 했던 이성휘로서는 순유의 등장이 천재일우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자초지종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후, 순욱과 함께 조조 군의 3대 책사로 불리게 될 인물이 뵙기를 청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군막을 향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중원제일 검.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계시네요.”

군막에 발을 들였을 때,

이성휘는 책상에 반쯤 걸터앉은 채 손에 붓을 쥐고 있던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을 보게 되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과 총명하게 빛나는 흑갈색의 눈동자.

방금 막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새하얀 피부와 장난스럽게 걸린 미소가 밝게 빛났다.

고모 순욱만큼이나 아름다운 용모와 빛나는 총명함을 겸비한 여인은 온몸에 피칠갑한 이성휘를 바라보면서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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