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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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영천군 점령을 이어나갔던 조조 군은 노산에 주둔하고 있던 원술군에 선전포고를 한 뒤 병력을 움직였다.
마침내 3만 군세가 움직였다.
그에 기령은 선전포고를 받아주겠다며 휘하 제장들을 이끌고 조조 군에 맞섰다.
예주의 지배권을 두고 조조군과 원술군이 전면전을 치르게 되었다. 만고의 역신을 토벌하기 위해 집결했던 군벌들이 서로 맞붙게 된 것이었다.
“원술군이 선전포고에 응할 줄은 몰랐군.”
군세의 선두에 선 이성휘가 새카맣게 벌판을 메우고 있는 원술군을 보며 중얼거렸다.
원술군은 매우 불안정한 세력이다.
전(前) 형주자사 왕예의 장졸들을 강탈하여 세워진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군중 속에는 분명 왕예를 따르던 자들도 상당수 존재할 터.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이 원술을 따르게 된 자들이 있을 것이었다. 세력을 급히 수습하자마자 군사를 일으킨 원술의 행동이 이해되질 않았다.
“하하핫! 죄다 쓸어 주마!!”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인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난폭한 미소를 지었다.
예주 정벌을 가로막는 놈들.
감히 중원제일 검에게 맞서는 어리석은 놈들이다.
이 날카로운 극으로 중원제일 검의 적들을 모두 분쇄하겠노라며 병주의 비장이 난폭하게 물든 사나움을 드러냈다.
“적들의 병력은 3만, 아군의 병력과 대등한 숫자입니다. 중용무쌍한 병주군의 무명을 천하에 알리기 좋겠군요.”
날카로운 검을 빼든 흑발의 여인 또한 여포와 마찬가지로 전투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조정군으로 전향한 병주군의 용맹과 무력을 천하에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다. 뜨거운 호승심이 한순간 강렬하게 끓어올랐다.
“한나라를 위하여!”
“우리는 황실과 조정을 수호하는 조정군이다!”
송헌, 위속 등의 장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쳤다.
병주군의 본분은 전쟁과 싸움에 있다.
오직 전쟁과 싸움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게 해주었다.
여포와 마찬가지로 사나운 전투광이었던 병주군 장수들은 새카맣게 몰려든 적들을 보며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환희와 환열을 만끽했다.
“분위장군께서는 좌익을, 중랑장께서 우익을 맡아주시옵소서.”
잿빛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책사가 좌중에 모인 장수들을 향해 군명을 내렸다.
여포가 좌익을,
장료가 우익을 맡는다.
중앙군을 이끄는 이성휘와 고순이 원술군의 예봉을 견고하게 막고 있는 사이에 기병을 이끄는 여포와 장료의 병력이 적의 허리를 끊어낸다는 책략이었다.
그에 모든 장수들은 가후의 책략에 이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술의 무리들을 모두 일소한다면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세력들 또한 주춤하게 되겠지. 한 줌의 잔적들도 남김없이 모두 척살해라!”
“예, 중원제일 검!”
이성휘의 날카로운 명령에 여포가 방천화극을 들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중원제일 검과 함께 싸운다.
심장이 크게 떨리면서 혈기가 넘쳐흘렀다.
붉은 갈기를 가진 적토마에 올라선 여포는 방천화극을 늘어뜨린 채 공격을 기다렸다. 중원제일 검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두 궤멸시키겠다며 붉은 눈동자를 사납게 번뜩였다.
“전군 공격하라.”
마침내 중원제일 검이 검을 뽑아 들면서 3만에 달하는 병주군에게 진격명령을 알렸다.
우렁차게 울리는 고각.
일제히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울리면서 전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신호가 쩌렁쩌렁하게 울리자 병주군 장수들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말을 재촉했다. 또한 창검을 높게 치켜들고 있던 병사들도 고함을 내지르며 눈앞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하라!”
“황실과 조정의 적들을 쳐라!!”
마침내 전투가 시작되었다.
영천군의 조조군과 노산의 원술군.
양군이 맞붙게 된 전장은 영천군과 노산의 중간에 위치한 양성(襄城) 방면이었다.
예주의 지배권을 거머쥐기 위한 싸움. 주군의 명을 받들어 예주를 점령해야 했던 조조군과 원술군은 방해꾼을 제거하기 위해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다.
“적들은 환관 가문의 군세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는 사세삼공(四世三公)의 영예와 영광에 빛나는 여남원씨 가문의 장졸들이다! 즉, 대의는 우리에게 있음이다!!”
원술군의 총대장인 기령이 날카롭게 벼린 창을 크게 치켜들면서 대의가 아군을 향하고 있음을 쩌렁쩌렁한목소리로 알렸다.
악취와 양강이 검을 늘어뜨렸다.
여남원씨의 위세에 이끌려 몰려들게 된 장졸들 또한 이에 질 세라 호기롭게 나섰다.
양군이 전의를 가다듬으면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먼저 움직인 것은 조조군이었다. 중앙을 이끄는 이성휘와 고순이 먼저 선공을 거머쥐었다.
“적들이 움직였소이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면서 조조 군의 3만의 병력이 일제히 준동했다.
그에 양홍이 기령에게 소리쳤다.
“결코 당황하지 마시오! 학익진을 동원하여 적들을 모조리 쳐부수겠소이다!!”
사납게 달려드는 적들의 위협에도 기령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적들의 주력은 기병부대,
학익직으로 적들을 포위하여 모조리 몰살 시킬 것이다.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놈은 일신의 무력은 상당하나 병력을 통솔했던 경험이 짧았다. 원술군의 용맹스러운 기장(騎將)은 군진을 통솔해 본 경험이 짧은 애송이따위에게 질 리가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악취 장군! 양강 장군!”
좌군(左軍)과 우군(右軍)을 이끄는 악취와 양강에게 명령을 내린 기령이 양홍과 함께 중앙을 이끌었다.
놈들이 맹렬하게 진격해 오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대장기를 보건대 적군의 총대장이 직접 군세를 이끄는 듯했다.
기령은 과장된 허세나 다름없는 중원제일 검의 명성을 이 전투에서 깨부숴주겠다며 분기를 토해냈다.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맞서겠다며 나선 기령의 부대를 향해 중원제일 검의 칼끝이 휘둘러졌다.
“격멸하라!!”
벼락처럼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일직선으로 달려든 중원제일 검과 함진영의 병력이 원술군을 강타했다.
꽈아아앙!!
금속음이 고막을 찢어발길 듯 요동쳤다.
조조군과 원술군이 서로를 향해 살의를 발산하면서 격전이 시작되었다.
“주, 중원제일 검이다!”
“여남원씨 가문을 위하여!”
원술군의 무관들이 창검을 휘두르면서 일제히 이성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이성휘가 검을 날카롭게 휘두르면서 무턱대고 달려든 적들을 징벌했다.
새파랗게 빛나는 인광이 번뜩일 때마다 핏물이 흩뿌려지면서 갈기갈기 찢겨나간 시체들이 차디찬 바닥을 나뒹굴었다.
“물러서지 마라! 중원제일 검,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난 물러서라고 한 적 없다.”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허장성세를 부리는 원술군 장수의 외침에 그리 대답한 이성휘가 검을 휘두르면서 목을 떨어트렸다.
목이 단숨에 달아나버렸다.
그 광경에 원술군 무관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말머리를 급히 돌렸다.
“놈들을 쳐라!”
고순과 함진영 장졸들이 일 거에 들이치면서 기령의 본군을 공격했다.
이성휘가 적들을 일소하는 사이,
함진영이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뚫고 기령의 본군을 도모하려 했다.
선두에 선 병력들이 아무런 저항조차 못한 채 단숨에 무너지는 광경을 본 기령은 죽기를 각오하고서 무관들과 함께 고순에게 달려들었다.
“동탁을 따르던 주구 따위가 감히!!”
이성휘가 적의 선봉을,
고순와 함진영이 기령의 본군을 대적했다.
그때 여포와 장료가 이끄는 좌익과 우익의 기병부대들이 일제히 공세를 가해 왔다.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면서 난입한 병주 기병대가 날카롭고 무거운 쐐기를 박듯, 중원제일 검의 병력을 포위하려던 원술군을 찢어발겼다.
“적의 기병이다! 날개를 펼쳐라!”
“기령 장군이 적들을 막고 있는 틈에 학익진을 전개하라!”
좌군과 우군을 이끌던 악취와 양강이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적들이 움직일 때를 기다렸다.
기병부대가 달려들자마자 악취와 양강은 기령이 시킨 대로 학익진으로 병주군을 포위하려 했다.
그러나
병주군은 어슬프게 짠 학익진에 걸려들 정도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켜라, 빌어먹을 잡졸들아! 내가 바로 병주의 비장 여봉선이다!”
“적의 포위를 찢어발겨라!”
이성휘를 포위하던 병력을 공격하던 여포와 장료가 급히 선회하면서 악취와 양강을 공격했다.
적들의 속셈을 단번에 간파했는지,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던 숙장들은 말머리를 돌리면서 좌우로 뻗어 나가던 학의 날개를 노렸다.
굶주린 늑대와도 같은 병주군이 두 날개를 펼치던 학의 날갯죽지를 물어뜯었다. 좌우 날개를 완전히 뻗기도 전에 공격당하자 악취와 양강은 당혹감을 토해냈다.
“이놈들이 포위를 펼치기도 전에!”
“무식한 병주 놈들이 어떻게 간파했단 말인가!!”
원술군의 좌군과 우군이 무너졌다.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병주의 굶주린 늑대에게 날갯죽지가 뜯겨나갔다.
달려든 적을 포위하여 천천히 궤멸시키겠다는 임무에 실패하면서 병주군에 대적하고자 꺼낸 기령의 전술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와라! 이름 있는 장수들은 모두 덤벼라! 이 여봉선이 상대해주겠다!!”
붉은 갑옷을 두른 금발의 여걸이 난폭함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원술군이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핏물을 뚝뚝 흘리는 주검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단기필마로 동탁 군의 낙양 방어선을 찢어발겼던 여걸답게 여포는 일기당천과 같은 기염을 뽐내면서 적들을 도륙해 버렸다.
“크아악!!”
“여, 여포! 여포다아아!!”
여포가 병주 기병대를 이끌면서 전선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악취와 양강의 부대는 패주를 계속 반복했다.
누구도 병주 기병대를 가로막을 수 없다.
기병대를 지휘하는 기병장이 바로 여포와 장료였기 때문이다.
학익진으로 적들을 궤멸하겠다는 기령의 전술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좌군과 우군을 지휘하던 악취와 양강은 결국 여포와 장료에게 패주했고, 기령이 이끄는 본군 또한 고순과 함진영의 맹공에 결국 말머리를 돌려야만 했다.
* * *
조조군과 원술의 전투가 한창일 때,
누더기처럼 헤진 의복을 입은 도망자들이 우여곡절을 치른 끝에 드디어 예주에 도달했다.
무려 한 달하고도 보름 끝에,
동탁을 암살하기 위한 거사를 도모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당해 장안성에서 도망쳐야 했던 도망자들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드, 드디어 예주에 도착했어요…!”
흙먼지를 눌러쓴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의양에서 동탁 군을 완전히 뿌리친 뒤,
험준한 산악을 넘어 예주 경계를 넘은 끝에 예주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오랜 강행군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순유의 말에 서황과 백파적 병사들 또한 흙먼지가 뒤덮인 얼굴을 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살았다! 드디어 살았다!”
“지긋지긋한 동탁 군 놈들도 감히 예주까진 쫓아오지 못할걸세!”
병사들이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순유는 자신 또한 기뻐했다.
함께 우여곡절을 겪은 탓일까,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쌓은 동료애가 빛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영천군으로 향하기로 한 일행들은 작은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순유는 그 산골 마을의 촌장으로부터 예주의 패권을 두고 조조군과 원술군이 여남군을 사이에 둔 채 대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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