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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73화 (173/616)

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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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 정벌에 나선 이성휘는 영천군(穎川郡)과 여러 군현들을 점령한 채, 한 달이라는 시일을 보냈다.

끝내 여남군을 도모하지 못했다.

사대부와 호족들의 반발이 상상 이상으로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여포와 장료를 동원하여 양국(梁國)과 패국(沛國)을 점령한 이성휘는 회유책을 연이어 권유하면서 조조군과 원술군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던 사대부와 호족들을 여럿 끌어들이게 되었다.

“중원제일 검이 고집불통 같은 사대부와 호족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 모양입니다, 명부.”

진궁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남군은 수십 년 동안 여남원씨 가문이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군현이다. 당연히 반발이 심할 수밖에.”

게다가 원술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여남군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손견을 동원하여 형주를 정벌하는 한편,

기령을 보내어 예주 여남군에 세력을 둔 여남원씨 가문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남양군을 본 거지로 삼은 원술군은 형주와 예주, 두 개의 주(州)들을 동시에 도모하겠다는 시커먼 탐욕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부군사를 영천군에 보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진궁이 조심스레 물었다.

순욱은 예주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인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이다. 또한 수많은 선비와 유자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명사이기도 했다.

영천순씨 가문의 명사가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한다면 중립을 표방하는 호족들을 비롯하여 원술을 추종하는 호족들 또한 조조군으로 전향할 터였다.

“동탁 군에 신종했던 여포와 병주군은 영천태수 이민과 예주자사 공주를 끔찍하게 살해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사대부와 호족들의 반발이 심할 겁니다.”

예주는 학식 높은 선비와 뛰어난 명망을 가진 명사들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렇기에 만고의 역신에게 투항하여 여러 악행들을 범한 여포와 병주군에게 백안시하는 것은 당연했다.

“중원제일 검에게는 무리한 일입니다.”

분명 중원제일 검은 용맹한 무력과 뛰어난 지력까지 겸비한 최고의 맹장이다.

그러나

반발을 품은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하는 일은 책사들의 영역이었다.

과연 이성휘가 예주 정벌을 무사히 완료할 수 있을까, 진궁은 그 부분이 우려스러웠는지 부군사 순욱을 보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조조에게 진언했다.

“나는 부관을 믿는다.”

그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흑발의 여인인 깊은 신뢰가 담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면서 진궁의 진언을 보류했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면 부군사를 예주로 파견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성휘를 믿어보고 싶었다. 도독으로 임명된 이성휘가 능히 예주 정벌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

“부관은 장차… 내게 천하를 안겨다줄 사람이다.”

조조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이성휘가 자신에게 천하를 안겨줄 것이라고.

흩어진 천하를 다시 통일할 중원제일 검이 겨우 예주 따위에 발목을 잡힐 리 없다. 조조는 이성휘가 분명 승전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중얼거리는 조조의 말에 진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제일 검을 굳게 믿는다.

그를 향한 절실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근사한 풍치가 아름다운 우왕각에서 달콤한 입맞춤을 나눈 이후부터 조조는 이성휘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었다.

“흠흠…. 뭘 그렇게 웃는 건가, 군사?”

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진궁의 모습에 조조가 얼굴을 붉히면서 물었다.

미소를 머금던 진궁이 입을 열었다.

“명부께서는 중원제일 검과 함께 밤나들이를 다녀오신 이후부터 여유가 많이 느신 것 같습니다.”

“그, 그런가?”

“예전 같았으면 중원제일 검을 걱정하여 명부가 직접 군세를 이끌고 예주로 출진하시지 않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그 정도로 극성맞은 팔불출이 아니다!”

팔불출이,

팔불출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사랑하는 부관에게 다가오는 여성들에게 매번 질투심을 힘껏 발산할 정도로 극성맞은 팔불출이었음에도 본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주군.”

부끄러움을 품은 흑발의 여인이 군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문 너머에서 호위장 허저가 말했다.

“무슨 일인가, 중강.”

조조가 입을 열자 허저가 문을 열었다.

“전령이 급보를 가져 왔다고 합니다.”

“급보? 혹시 예주 쪽인가!”

이성휘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을까,

급보라는 말에 두려움이 앞섰는지 조조는 깊게 격앙된 목소리로 허저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사예주로 파견된 세작들이 가져온 급보입니다.”

“…사예주 쪽인가.”

사예주 방면에서 가져온 급보라고 한다면 필시 동탁 군과 관련이 있는 소식을 터.

이윽고 전령이 도착했다.

조조와 진궁의 앞에 무릎을 꿇은 전령이 사예주에서 도착한 급보를 알렸다.

“동탁에게 장안성으로 압송되었던 관료들이 백파적과 결탁하여 암살을 모의했다고 합니다.”

“관료들이… 동탁의 배후에 비수를 꽂으려 했단 말인가.”

탁상공론이나 지껄이던 관료들 중에 과감한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단 말인가.

목숨을 걸고 동탁을 처단하려 했다는 의인들이 조정에 있었음에 조조가 놀라움에 찬 반응을 보였다.

“허나 함께 거사를 일으키기로 맹세했던 백파적의 두령들 중에 밀고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거사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신의를 기대할 수 없는 한낱 도적 떼 따위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전(前) 소부(少傅) 하옹과 의랑(議郞) 정태, 황문시랑(黃門侍郞) 순유가 반란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황문시랑 순유. 순유라면 분명 부군사의 친척이 아닌가?”

치밀하게 준비를 꾀했으나 결국 밀고자로 인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 거사.

거사의 주동자들 중에 부군사 순욱의 친척이 있다는 사실에 조조가 침음을 삼켰다.

거사가 발각된 채 실패했다면 동탁 군이 그 주모자들을 결코 용서치 않을 터. 저잣거리에서 모두 처형당할 게 분명했다. 순욱의 친척이 동탁 군의 손에 처형당하게 되었음에 조조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 * *

장안을 급히 탈출했던 순유와 서황은 홍농군의 포위망을 탈출하여 마침내 조양(兆陽)에 도달했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도망자들이 있음을 알게 된 장제가 장수와 호거아를 보내어 추적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에 순유와 서황은 말을 버린 뒤, 산길을 타고 예주로 향하는 길목에 숨어들게 되었다. 연주로 내달려서 조조 군에 의탁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서 예주로 향하기로 한 것이다.

“형주의 경계를 통과한 다음에 곧장 예주로 접어들면 동탁 군도 감히 쫓아오지는 못할 거예요. 남양군은 원술의 영역이니까요.”

순유와 서황,

포위망을 뚫은 병력은 불과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총 6백 명이 넘는 병력들 중 살아남은 인원이 매우 극소수였다. 서황이 앞장서서 활로를 뚫은 덕분에 살아남은 인원들이었다.

“먼 길이… 될, 겁니다….”

극심한 말더듬이였는지 서황이 말을 띄엄띄엄 더듬으면서 말했다.

그에 순유가 입을 열었다.

“조양으로 빠져나온 이유가 바로 예주로 향하기 위해서였어요. 예주 경계를 넘는다면 동탁 군도 감히 추격하진 못할 테니까요.”

총명한 지략이 엿보이는 순유의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많이 배운 학자 출신이기 때문일까.

살아남은 백파적 병사들은 어느덧 순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서황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예주로 향하겠다는 순유의 말에 점점 순응하기 시작했다.

“예주, 로… 가면, 그다음에는… 어쩌실… 겁니까, 황문시랑.”

“영천군이 제 고향이예요. 일단 영천순씨 가문으로 돌아간 다음에 후일을 기약해야죠. 다들 같이 가요.”

“예….”

예주에서 손꼽히는 사대부인 영천순씨 가문이 받아주겠다는 말에 서황이 긍정을 담아 대답했다.

“조조군이 예주 정벌을 위해 군세를 움직였을지도 모르니까… 운이 좋다면 조조 군에 그대로 몸을 의탁할 수도 있겠죠.”

나이 어린 고모가 조조 군의 부군사로 임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을 의탁하고자 한다면 조조군 또한 홀대하진 않을 것이다. 순유는 만약 조조군이 예주로 병력을 움직였다면 곧바로 그 부대에 합류하려고 했다.

“그나저나 다들 완전히 거지꼴이네요.”

순유가 쿡쿡 웃었다.

자신은 물론,

서황과 백파적 병사들이 모두 처참한 몰골이 된 상태였다.

머리는 완전히 산발이 됐으며 입고 있는 의복 또한 베이고 찢어지면서 넝마가 되었다. 지금 당장 길거리로 나가 동냥을 해도 되지 않을까.

“침착, 하시군요….”

서황이 말했다.

그에 순유가 배시시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황실과 조정을 겁박하고 낙양을 불을 질렀던 만고의 역적을 도모하려고 했어요. 거사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결국 실패해 버렸으니…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충신의 면모가 느껴지는 순유의 말에 백파적 병사들이 감탄음을 흘리면서 한나라의 황문시랑에게 존경을 보냈다.

서황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탁 군에게 쫓길 당시,

창기(娼妓)들조차 얼굴을 붉힐 정도로 온갖 음탕한 말들을 쏟아 냈던 순유의 말에 서황은 “내가 잘못 들었겠지. 고결하고 총명한 선비이신 황문시랑께서 그런 삿된 말을 할 리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황문시랑께서는 국가대사를 경영할 명재상의 자질을 갖추신 분이다. 이 분을 호위하게 된 것은 분명 하늘께서 내리신 명운일 터. 예주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반드시 지키겠다.’

무수히 많은 추격자들로부터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는 순유의 면모에 감탄한 서황은 반드시 그녀를 지키겠노라고 다짐했다.

서황이 결심을 다지고 있을 때,

누더기 같은 몰골이 된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던 순유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하루 종일 쫓기느라 혈기 왕성해진 병사들이 저를 윤간하려 들겠죠. 온몸에 있는 구멍들에 냄새나고 더러운 물건을 강제로 넣을 게 분명해요. 어쩌면 동탁 군에게 끝내 붙잡히게 되어 서황 교위와 함께 발가벗겨진 채로 조롱거리가 되는 치욕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하아…. 음욕에 물든 사내들에게 범해질 생각하니까 몸이 달아오르네요.’

만약 순유의 이러한 망상을 서황이 깨달았다면 방금 전에 했던 다짐을 곧바로 철회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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