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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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을 본 거지로 삼은 원술은 조조군이 일제히 남하하여 예주를 점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각 군대를 움직였다.
예주는 여남원씨 가문의 영역이다.
여남원씨 가문의 생존자이며,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적손인 원술로서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땅이었다.
또한 예주는 중원 지역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하남(河南) 일대의 중심지였다. 환관 년에게 결코 빼앗길 수 없다며 기령과 악취, 양강 등의 장수들을 보내어 조조군을 견제하게 했다.
“남양군에서 출병한 원술의 3만 군세가 방금 노산(魯山)을 넘었다고 합니다.”
중랑장 고순이 말했다.
원술군이 마침내 출병하였다.
그의 휘하 장수들이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예주 경계를 넘어섰다.
군세를 동원하여 영향력을 과시하는 한편, 계속 여남군으로 사자들을 파견하여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여남원씨 가문의 멍청한 탕아(蕩兒)치고는 제법이옵니다. 휘하에 머리가 썩 돌아가는 책사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평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바라보던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바깥으로는 군세로 위협하고,
안으로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선동하여 내란을 준동시킨다.
꽤 날카로운 책략이었다.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을 받는 병주군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꾀였다.
“영예로우신 주군, 원술군의 준동과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의 반발을 막지 못한다면 여남군은 물론, 아군이 복속 시킨 영천군(穎川郡)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렇겠지.”
남양군에서 출병한 원술의 3만 군세를 쳐부수는 일은 매우 손쉬운 일이다.
문제는 예주 지역의 반발,
조조 군의 통치에 반대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거센 반대였다.
수백 년 동안 예주를 다스려온 사대부와 호족들은 드넓은 봉토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또한 적잖은 사병들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그들이 일제히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예주를 복속 시키려는 조조 군의 방침에 큰 타격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었다.
“무력으로 모두 진압한다는 방법도 있사옵니다만.”
“불가하다.”
무력을 동원하는 강경책을 주문하는가후의 진언에 이성휘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예주를 통치하기 위해 왔다.
무력을 동원하면 한시적으로 예주를 점령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통치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적잖은 사대부와 호족들이 안위와 보전을 요구하면서 조조 군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전체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여남원씨 가문을 따르는 추종자들… 조조군과 원술군의 대립에 숨죽인 채 눈치만 보고 있는 호족들이 상당수다.’
조조 군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2할.
여남원씨 가문에 충성하는 추종자들이 4할.
그리고 조조군과 원술군, 양대 군벌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중립을 표방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이 4할이다.
비록 영천군을 점령했으나 조조 군은 상당히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일단 투항해온 사대부와 호족들부터 잘 달래면서 중립을 표방하는 호족들에게 회유책을 둘 수밖에.”
이성휘는 예주 영천군 출신이며, 또한 뛰어난 지력과 혜안을 가진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우선 영천군 양책현(陽翟縣) 출신인 곽가를 포섭하기 위해 수소문했다.
뛰어난 군략을 보유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결단력과 함께 참모들 중에서 가장 조조와 상성이 잘 맞는 모습을 보였던 책사를 즉시 영입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 곽가는 조조의 친필서한을 받고 조조 군에 임관하기 위해진류군으로 향한 상태였기에 안타깝게 영입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냥 다 때려눕히면 되는 거 아닌가?”
여포가 중얼거렸다.
책상에 앉아 떠들어댈 뿐인 샌님들.
시대의 흐름을 꿰뚫지 못한 채,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문의 세력만 믿고 으름장을 놓는 사대부와 호족들은 여포에게 있어 멸시의 대상이었다.
제아무리 그들이 사병들을 동원한다고 한들, 중용무쌍하기로 유명한 병주군 앞에서는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성휘가 명령을 내린다면 즉시 장료와 함께 군세를 이끌고 호족들을 쳐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장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약졸에 불과한 원술군부터 쳐부수겠습니다!”
원술군이 노산을 넘었다.
노산은 여남군과 맞닿은 지역,
그 지역을 넘었다는 것은 노골적으로 여남군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였다.
병주군 장수들은 원술이 보낸 병력을 모두 때려눕힌다면 콧대 높은 사대부와 호족들도 결국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냈다.
“일단 허현을 중심으로 영향을 확대하면서 예주 영천군을 완전히 세력권에 두겠다. 노산에 주둔하는 원술군은 시일을 지켜본 다음에 공격해도 늦지 않을 거다.”
우선 이성휘는 당장 여남군을 도모하지 않고, 세력권에 두게 된 영천군의 지배에 집중했다.
지금은 영천군을 신경 써야 할 때다.
훗날 조조 군의 중심지가 될 허현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영천군에 속한 18개의 현들을 복속 시켰다.
* * *
백파적을 동원하여 동탁을 암살하려 했던 관료들이 동중랑장 동월과 중군교위 동황이 이끄는 병력에 압송되었다.
거사는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순유와 함께 거사를 주도했던 정태와 하옹이 붙잡혔으며, 또한 20여 명에 달하는 관료들 또한 모두 대리시(大理寺)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백파적을 설득하여 거사를 꾀한 황문시랑(黃門侍郞) 순유만이 살아남아 양봉을 의지한 채 장안성을 무사히 탈출했다.
“역적들을 잡아라!”
“감히 어르신을 도모하려 했던 배은망덕한 놈들이다! 놓쳐선 안 된다!!”
동월과 동황이 기병대를 이끌고 순유를 호위하면서 달아나던 양봉을 추격했다.
찰거머리처럼 지독하게 뒤를 쫓았다.
백파적 무리가 동관(潼關)을 넘었음에도 추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양봉은 백파적 두령들을 거느린 우두머리였고 순유는 거사를 계획했던 주동자였다. 동탁으로부터 반란을 완전히 진압할 것을 명령받았던 동월과 동황은 어떻게든 양봉과 순유를 잡기 위해서 병마들을 끊임없이 재촉했다.
“커헉!”
“으아아악!!”
동탁 군 궁기병대가 활을 쏘았다.
날카로운 활이 배후를 꿰뚫었고,
후미를 담당하던 백파적 병사들이 잇달아 쓰러지기 시작했다.
장안을 빠져나올 때만 하더라도 6백 명이 넘는 병력들이 있었지만 동탁 군의 지독한 추격으로 인해 백파적은 병력이 반절도 남지 않게 되었다.
“가까이, 오십시오…, 군사.”
양봉 휘하의 장수,
서황이 순유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두터운 갑주를 두른 서황이 육중한 도끼를 휘두르면서 순유를 엄중하게 호위했다.
날카롭게 쏟아지는 화살 비 속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용장 덕분에 순유는 생사를 넘나드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무사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온몸으로 화살들을 막아 내면서 자신을 구한 서황의 도움에 순유가 감사를 보냈다.
남은 병력은 불과 3백 명,
백파적 장졸들은 오랜 추격으로 지친 상태였다.
과연 어디까지 더 버틸 수 있을까. 지치지도 않는지 맹렬하게 추격해 오는 동탁 군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홍농군(洪農郡)을 통과한 다음에 말머리를 조양(兆陽)으로 잡으세요!”
순유가 소리쳤다.
조양을 넘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양을 넘어서도 동탁 군이 추격을 계속 감행할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지금으로선 최대한 장안성에서 멀어지는 것이 능사였으므로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호흡을 헐떡이는 말을 애써 재촉하면서 멀리 달아나야 했다.
“이 지독한 놈들!”
“절대 멈추지 마라! 멈춰 선 안 된다!”
연이어 강행군을 이어 나가던 백파적의 말들이 게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말을 갈아 타며 추적하는 동탁 군과는 달리,
백파적은 계속 타고 있던 말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체력적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후미에서 내달리던 장졸들은 물론, 백파적을 이끄는 두령들마저 하나둘씩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게섰거라, 비천한 도적들아!”
백파적 무리가 구사일생 끝에 홍농군까지 도달했을 때,
중랑장 장제가 앞을 막아섰다.
반란을 모의했던 무리가 홍농군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장제는 조카 장수와 함께 군세를 이끌고 조양으로 향하는 길목을 봉쇄했다.
“공격하라!”
“역적들을 모두 주살하라!”
장제의 조카였던 장수, 장제의 휘하 장수였던 호거아가 창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수천 명의 병력들이 흙먼지를 잔뜩 일으키면서 크게 지친 백파적을 급습했다. 홍농군 병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 백파적은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진형이 완전히 붕괴된 채 궤멸되었다.
“네 이놈! 바로 네놈이 대장이로구나!!”
뛰어난 용맹과 무력을 자랑하는 호거아가 달려들어 두령들을 이끌던 양봉에게 언월도를 휘둘렀다.
“카학!”
“마, 막아라!”
백파적 두령들이 호거아를 막기 위해서 검을 빼 들었으나 누구도 호거아를 막지 못했다.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호거아의 맹위에 놀란 양봉이 말머리를 급히 틀면서 달아나려 했으나, 강행군에 크게 지친 말에게는 도망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히히히힝!!
말이 게거품을 문 채 휘청거렸다.
호거아는 그 틈을 노려,
날카롭게 벼린 언월도를 힘껏 휘두르면서 백파적의 우두머리였던 양봉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양봉 두령!”
“젠장! 양봉 두령이 쓰러졌다!”
수만 명에 달하는 백파적 무리들을 이끌었던 우두머리가 호거아의 손에 쓰러졌다.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버린 양봉의 처참한 최후를 목격한 두령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서황 교위! 당장 빠져나가야 해요!”
모시던 주인이 적장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자 서황은 맹렬하게 휘두르던 도끼를 멈춘 채 침묵하고 말았다.
그에 순유가 크게 소리치면서 서황을 재촉했다.
“알겠, 습니다…!!”
순유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는지,
갑주를 두른 여성 무장이 도끼를 다시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앞을 가로막던 장졸들을 가처없이 쓰러트렸다.
“서황 교위가 활로를 열었다!”
“서둘러라! 최대한 빨리 탈출해야 한다!”
홍농군에서 출현한 장제의 병력에게 가로막혔던 백파적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두머리가 사망했으나,
자포자기에 빠진 채 죽음을 기다릴 순 없다.
서황이 용맹을 떨치면서 활로를 연 덕분에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한 인원들이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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