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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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조홍과 작별 인사를 나눈 이성휘는 조인과 함께 연주성을 나서게 되었다.
병주군의 쌍두마차인 여포, 장료와 함께 진류군 평구현에 도착한 이성휘는 정남장군(征南將軍), 독군어사(督軍御史)의 권한으로 병주군의 지휘권을 잡았다.
비록 형양 전투에서 원한을 쌓게 되었으나 자신들을 조정군으로 전향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은인이 바로 이성휘였으므로 병주군 장졸들은 군말없이 정남장군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자효 님은 기병부대를 이끌고 영천군을 점령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봉선은 양국(梁國)을, 문원은 패국(沛國)을 점령하도록.”
조인, 여포, 장료.
세 명의 여걸들을 거느리게 된 이성휘는 차례대로 명령을 내리면서 속히 예주 지역을 점령하도록 했다.
예주는 명망 높은 사대부와 호족들이 난립하는 지역이었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린 조조 군에게는 무주공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부터 본영을 영천군 허현(許縣)에 두고 예주 정벌을 단행할 것이다. 모든 장졸들은 나를 믿고 따라와주길 바란다.”
중원제일 검이 예주 정벌을 위해 검을 빼 들었다.
소식을 들은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은 앞다투어 조조 군에 신종하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신종을 대가로 가문의 봉토와 재산을 도적 떼와 군벌들로부터 지켜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이성휘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대부와 호족들에게 도적 떼와 군벌들로부터 가산을 지켜 주겠다며 장담했다.
“우리는 여남원씨 가문을 신종하는 사대부와 호족이외다!”
“당장 조조 군은 예주에서 물러나시오! 예주의 침략자였던 여포와 병주군을 예주에 끌어들이다니… 중원제일 검은 부끄러운 줄 아시오!”
허현에 병력을 주둔한 뒤,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을 천천히 포섭해나가던 조조 군의 본영으로 여남원씨 가문에 충성하는 사대부 출신의 명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예주 여남군(汝南郡)은 여남원씨 가문의 적손인 후장군(後將軍) 원술의 봉토라며, 즉시 병력들을 철군할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했다.
“영천태수와 예주자사를 살해한 역도들이 조정군이랍시고 예주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어찌 명망 높은 학자들을 살해한 주구들이 조정군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가당치도 않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모습에 이성휘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세력들.
오랫동안 예주의 사대부와 호족으로 군림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쌓아온 그들은 두고두고 화근이 될 존재였다.
본영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창검으로 협박하더라도 들어 먹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감히 어림총사에게….”
중원제일 검의 명예를 업신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모습에 조인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나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감히 중원제일 검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기에.
항상 냉정하고 침착한 반응만을 보이던 조인이 노골적으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큭!”
“이, 이놈들이….”
병주 출신의 무장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정군으로 전향한 자신들을 부정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모멸감에 찬 발언에 크게 분노했다.
자신들의 전공을 부정했으며,
또한 그들은 양부를 살해했던 여포를 모욕하는 말까지도 스스럼없이 범했다.
“…….”
반면 여포는 무덤덤했다.
모욕하는 말을 듣자마자 길길이 날뛸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여포는 이성휘를 슬쩍 바라보면서 침묵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영천태수 이민을 살해했고,
또한 예주자사 공주를 죽였다.
그리고 예주종사를 비롯하여 예주자사 공주를 따르던 측근들 또한 모조리 도륙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여포는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의 격렬한 증오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대들은 대체 뭐가 그리도 떳떳한지 모르겠군.”
이성휘가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포와 병주군을 대변하듯,
수만 명에 이르는 장졸들을 거느리고 있는 도독으로서 그들의 명예를 위해 나섰다.
“후장군 원술은 동탁 군에게 쫓길 때 환대하며 받아주었던 형주자사 왕예를 배은망덕하게 죽였다. 또한 남양태수 장자와 측근들까지 모두 끔찍하게 살해하는 패륜까지 저질렀지. 인간의 도리와 이치마저 크게 망각한 놈을 추종하는 주제에 감히 혓바닥을 놀리지 마라.”
중원제일 검이 경고를 보내듯 엄중한목소리로 원술의 죄를 열거하자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무거운 위압감에 공포를,
날카로운 적의에 두려움을 품었다.
좌우에 선 병주군 무장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으면서 사대부와 호족들을 노려보았다. 중원제일 검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검을 빼 들어 여남원씨 가문의 졸개들을 베어버릴 작정인 듯했다.
“이, 이 무례한 것들!”
“감히 사세삼공(四世三公)의 여남원씨 가문을 따르는 우리를 창검으로 핍박하다니!”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본영에 당당히 들어섰던 사대부와 호족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치더니 필부처럼 황급히 달아나버렸다.
병주군 무장들은 당장에라도 뒤를 쫓을 것처럼 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성휘는 그를 허락지 않았다.
창검만 더러워질 뿐이다.
사세삼공이라 불리는 여남원씨 가문의 명성에 기생하여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이익만을 쫓는 필부 따위를 죽여 봤자 얻을 것은 없었다.
“영예로우신 주군, 이제 어쩌실 것이옵니까? 저들은 한낱 소인배에 불과한 작자들이오나, 예주 지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호족이옵니다. 필시 저들은 온갖 불순한 소문들을 퍼뜨리며 이간질을 할 것이옵니다.”
군사 가후가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저들을 베라는 뜻인가?”
“그런 말은 아니오나… 큰 난관이 될 것이옵니다.”
예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예주 출신의 명사가 필요했다.
예주를 대표하는 명문가 출신의,
병주군에게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언변을 가진 인물이 있어야만 했다.
“소녀가 한 번 수배해 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여남원씨 가문을 따르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필두로 예주 지역을 점령하려는 조조 군에게 반감을 품은 여론이 생기게 될 것이다.
강압적으로 누를 순 없었다.
창검을 동원하여 억누른다고 한들,
언젠가는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주의 손꼽히는 명문가인 영천순씨 가문의 순욱 부군사께서 있으셨다면 아무런 고민도 없었을 것이옵니다만….”
“부군사는 연주 지역의 업무만으로도 바쁜 상황이다. 예주로 올 순 없겠지.”
가후의 중얼거림에 이성휘가 대답했다.
* * *
여남원씨 가문을 추종하는 무리가 예주를 점거하려는 조조 군에 철저히 대항한 것은 후장군 원술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탁 토벌전이 흐지부지하게 끝난 이후,
남양군(南陽郡)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원술은 가장 먼저 여남원씨 가문이 수십 년 동안 뿌리를 내리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던 예주를 도모하려 했다.
여남원씨 가문의 탐욕스러운 군주는 예주(豫州), 형주(荊州). 그리고 멀리 떨어진 양주(揚州)까지 도모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감히 환관 가문의 잡년 따위가 우리 여남원씨 가문이 기틀을 다진 예주를 넘보다니! 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맹장 기령과 여러 장수들을 거느린 원술이 크게 격노를 토해내면서 소리쳤다.
조조 년이 움직였다.
진류군에 주둔하던 병력이 일제히 남하하여 영천군을 비롯하여 여남군까지 점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천한 환관 출신의 손녀 따위에게 결코 예주를 빼앗길 순 없다며 원술은 기령과 장훈에게 당장 군대를 소집할 것을 명령했다.
“어르신, 어찌 어르신께서 직접 나서시려고 하십니까?”
주부(主簿) 염상이 입을 열었다.
원술에게 예를 취하면서 계책을 진언했다.
“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을 동원하여 분란을 일으키도록 지시하십시오. 영천태수 이민과 예주자사 공주가 여포의 손아귀에 죽지 않았습니까? 여포와 병주군의 투항을 받아들인 조조 군에게 필시 큰 원한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원한과 증오에 불을 지펴 조조 군의 통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일으켜야 한다.
숙고할 가치가 충분한 의견이었다.
주부 염상의 말에 곧바로 군사행동을 일으키려 했던 원술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흠, 주부의 말에 일리가 있군. 예주에 더러운 발을 들인 놈들이 제풀에 쓰러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그리하도록 하라!”
예주는 수많은 사대부와 호족들에 의해 수백 년 동안 통치가 이뤄졌던 지역이다.
여남원씨 가문의 적손인 원술이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사대부와 호족들이 일제히 조조 군의 통치에 반대하여 민란을 일으킨다면 제아무리 중원제일 검이리고 하더라도 수습을 못해 무너지리라 판단했다.
“어르신!”
장수 척기가 다급한목소리로 원술에게 급보를 전했다.
“형주자사에 북군중후(北軍中候) 유표라는 황실 종친이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형주자사 왕예가 원술의 손에 살해된 뒤,
동탁은 공백이 된 형주자사 자리에 한경제(漢景帝)의 4남이었던 노공왕(魯恭王) 유여의 후손이었던 유표를 임명했다.
유표는 단기필마로 양양군(襄陽郡)에 내려가 형주 호족들을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황실의 떨거지가 감히 내 영토를 넘보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왕예와 그 일파들을 척살했던 원술은 형주 전역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견군을 노양현(魯陽縣)을 내려보내어 형주 군현들을 차례대로 접수하려 했다.
양양군과 강하군을 모두 먹어치울 야심으로 손견을 내려보낸 원술은 난데없이 새 형주자사에 임명된 유표라는 자에 의해 발목이 붙잡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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