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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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부대를 이끌고 가까스로 장안성에 도착한 동탁은 양주(凉州)와 옹주(雍州)의 병력을 불러들여 혼란에 떨던 세력권을 간신히 수습했다.
서영을 함곡관(函谷關)에,
이각과 곽사를 동관(潼關)에 배치하면서 관동의 제후군이 관서로 넘어오지 않도록 경계했다.
서량 제일의 용장인 화웅과 중랑장 우보를 잃는 등의 치명상을 입은 탓일까. 중원제일 검의 용력에 무수히 많은 패배들을 겪었던 동탁은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 빌어먹을 연놈들…! 감히 이 동중영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을 입히다니!!”
두툼한 뱃살을 가진 중년남성이 노기를 토해내면서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모든 것들을 잃고 말았다.
총애하던 부하들을 대거 잃은 것은 물론,
천신만고 끝에 거머쥐었던 부와 권력까지도 모조리 시커먼 잿더미가 되었다.
모두 중원제일 검,
그 빌어먹을 놈 때문이다!
생살을 씹어도 시원찮은 놈이 숭산에서 우보와 화웅을 참살하고 수만 명에 달하던 아군을 전멸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낙양에 불을 일으키고 서쪽으로 도망치게 된 것이었다.
“어르신, 그래도 유약한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모두 수중에 있어 다행이지 않습니까. 비록 패전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어르신께서는 건재하십니다!”
낭중령 이유가 실의에 빠진 동탁을 위로하면서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손아귀에 있음을 강조했다.
비록 많은 것들을 잃었으나,
그렇다고 재기불능까지 내몰리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함곡관과 동관을 철통처럼 지키면서 장안에서 계속 웅거하면 언젠가 광명이 찾아오게 될 터. 관서의 병력을 조련하고 서량의 군세를 징병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언젠가 천재일우의 기회가 올 것이었다.
“자네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자네의 말이 백 번 지당하네! 이 동중영이 그까짓 패전을 겪었다고 해서 무너질 것이라고 여겼다면 큰 오산일세!”
동탁은 절치부심하여 자신에게 수모를 안긴 관동의 지방관들에게 복수하겠노라며 각오를 다졌다.
오나라 부차가 와신상담을 했듯,
기필코 관서와 서량에서 재차 상경군을 모아 낙양을 도모하리라!
상처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맹수는 맹수. 감히 동탁 군에게 발톱을 드러낼 세력은 없었다. 전쟁에서 패한 뒤 장안으로 거점을 옮긴 동탁 군은 누구의 견제도 없이 세력을 다시 수습할 수 있었다.
“할아버님, 하잘것없는 바깥의 무리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문제는 내부의 적들이예요. 조정대신들 중 상당수가 낙양에 불을 지른 아군에게 반감을 품고 있으니 필시 장막 뒤에서 흉계를 꾸미려고 들겠죠.”
동탁의 손녀딸,
위양군(渭陽君) 동백이 흉계를 꾸밀 게 분명한 내부의 변절자들을 경계할 것을 권유했다.
서량의 마등과 한수는 아군에 온 건적인 입장이었으므로 전혀 걱정할 게 없었고, 익주로 향하는 모든 가로들을 불태운 채 성도에서 웅거하는 유언 또한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아군의 뒤를 찌를 위협은 단 하나,
한나라 부흥을 주장하는 조정대신들이었다.
“크흠, 과연 네 말이 옳다! 근위부대를 동원하여 조정대신 놈들을 철저히 감시할 것이다!”
손녀딸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동탁은 전시가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을 대면서 근위부대를 동원하여 조정대신들의 가택을 물 샐 틈 없이 포위했다.
“백아야.”
“예, 할아버님.”
“일 전에 언급했던 대로… 이 할아비는 너를 황후에 책봉할 생각이다. 우리 농서동씨 가문이 황실의 인척이 된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 가문의 위세를 넘보지 못할 게다!”
남궁에 유폐된 황후 당씨가 불에 타서 죽거나 병사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동탁은 손녀딸을 황후에 책봉할 준비했다.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황후 책봉에 반대하는 무리가 있으면 모조리 도륙을 낼 생각이었다.
낙양에서 패주하여 장안으로 도망치는 치욕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동탁의 권세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서 동탁은 황후 책봉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과연 황제가 받아들일까요? 황제는 저와 혼인하는 것을…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도 싫어할 텐데요.”
유변은 동탁을 경멸하고 있었으며,
황후 당씨를 남궁에 유폐하여 불길에 태워 죽이려는 사악한 권모술수를 부린 동백을 증오했다.
할아버지 동탁으로부터 황후 책봉을 제안 받은 동백은 몇 차례 황제 유변을 만났으나, 혐오와 분노에 찬 말들만 들었을 뿐이었다.
설령 네가 황후에 책봉되더라도 너 따위 독부와 침상을 같이 쓰게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황후가 황궁에서 살해되었다고 생각한 유변은 사악한 꾀를 부렸던 동백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없는 황제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창검을 들이밀면서 조금만 윽박지르면 설설 기어 다닐 놈이다.”
동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평생 남에게 기대기만 할 뿐인 놈.
유약한 성정의 황제는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 망아지에 불과했다.
미처 낙양을 탈출하지 못한 왕윤과 사손서 등, 청류파의 영수들이 모두 불길이 타죽었으므로 늑대들의 소굴에 놓인 사슴과도 같은 황제를 지켜 줄 인물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 어르신!!”
동탁과 동백이 황후 책봉을 논의하고 있을 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갑주를 두른 동중랑장 동월이 성큼성큼 걸으면서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
“관료들 중 일부가 백파적과 결탁하여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사옵니다!”
“이 찢어 죽일 놈들이!!”
낙양에서 장안으로 끌려온 관료들 중 일부가 백파적 두령들과 결탁하여 역모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무맹도위 정원을 따랐으나 가후의 반간계에 넘어가 정원군을 배신한 뒤, 곧바로 동탁 군에 투항하여 벼슬과 봉토를 하사받은 항장이었다.
비천한 도적 출신들이 품어 준 은혜도 모르고 배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동탁은 크게 격노하면서 역모에 가담했던 놈들을 모조리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의랑 정태, 장사 하옹, 황문시랑 순유를 비롯하여 수많은 관료들이 감히 어르신을 암살하려 했습니다.”
두령 양봉을 비롯하여 휘하 부장인 호재와 이락 또한 암살에 관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동탁을 척살한 뒤,
황실과 조정에 귀의하여 동탁 군을 밀어내고 고관대작에 오르려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항장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노골적인 차별과 푸대접을 받아온 백파적 두령들은 동탁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고, 그를 간파한 황문시랑 순유가 백파적에게 접근하여 거사를 준비한 것이었다.
“당장 중군교위를 불러들여라! 내 역모에 가담했던 놈들을 모조리 도륙할 것이다!”
동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중군교위 동황을 불렀다.
* * *
정남장군(征南將軍)와 독군어사(督軍御史)에 임명된 이성휘는 정식으로 병주군의 지휘권을 사공(司空) 조조에게 양도받게 되었다.
분위장군 여포와 중랑장 장료 등,
병주 출신의 장수들을 휘하에 거느리게 된 이성휘는 무려 3만 명에 달하는 병주군 병력을 이끄는 도독으로 성장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호사가와 명사들은 곧 중원제일 검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대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냈다.
“채비를 모두 갖췄습니다, 어림총사.”
이성휘의 부장에 임명된 조인이 말했다.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다.
병주군이 주둔하는 진류군 평구현으로 내려가 군대를 움직일 준비가 모두 끝났다.
최강의 무인인 중원제일 검과 함께 예주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조인은 겉으로는 그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숭산 전투와 낙양 전투에 이어 다시 한번 어림총사와 함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니…! 저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니! 이 조자효, 언니의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쁨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들떴다.
신뢰를 보낸 언니를 위해,
함께 전선에 투입된 중원제일 검을 위해 목숨을 불사지르기로 했다.
중원제일 검을 바로 지척에서 보필하게 되었음에 조인은 가슴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인 걸까. 마음이 간질간질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잠시만요! 이건 뭔가 착오가 일어난 게 분명해요!”
이성휘와 조인이 나란히 치소를 빠져나가려 할 때, 흑발의 여인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평동장군(平東將軍) 조홍.
사공과 거기장군에 임명된 조조로부터 연주성의 내군(內軍)을 통솔하는 중임을 맡게 된 여걸이었다.
경애하는 언니로부터 신뢰와 총애를 한 몸에 받은 덕분에 높은 지위와 권한을 하사받게 되었음에도 조홍은 불만에 찬 모습을 보이었다.
“고래심줄처럼 끈질겨. 돌아가서 언니를 잘 보필할 생각이나 해.”
조인이 어젯밤처럼 구차하게 자신에게 매달리는 사촌을 향해 촌철살인 같은 말을 날렸다.
그에,
조홍이 쌍심지를 켜며 소리쳤다.
“얼음동상 같은 석녀 주제에! 이 언니한테 그게 대체 무슨 말버릇이야!”
“누가 언니라고….”
“생일이 앞서는 내가 언니지!”
“나는 인정 못해.”
조홍과 조인이 말싸움을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싸우는 듯한,
실로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현명하고 사려에 밝은 여걸들로 유명한 조홍과 조인이었지만 항상 둘이 으르렁댈 때마다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싸우고는 했다.
앙숙 같은 신경전을 벌이지만…
사실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은 서로 사이가 좋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렴 님.”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그에 조인을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조홍이 고개를 돌려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 잠시 예주로 떠나 있는 동안… 부디 연주성을 잘 지켜 주십시오. 부탁하겠습니다.”
“흥,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조자렴, 언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군부의 2인자로서 연주성을 철옹성처럼 지켜낼 거라고요.”
흑발의 여인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당돌한목소리로 말했다.
그 당돌한 모습에,
이성휘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렴 님."
"네, 어림총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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