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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67화 (167/616)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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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을 이뤘던 밤이 끝난 뒤,

대낮처럼 어둠을 훤히 밝혔던 수백 개의 등불들이 모두 수거되었다.

그러나 등불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조조의 마음속에 물든 등불은 결코 꺼지지 않은 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만 아가씨.’

‘이제야 떠올랐습니다. 아만 아가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연모하고 있습니다.’

‘충성을 바친 주군을… 감히, 제가 감히 주군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가 건넸던 사랑스러운 대화들이 생생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부관이 건넸던 말들이,

본래는 하나였던 파편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이듯이 뇌리 속에서 완성되어 갔다.

주군을 오랫동안 연모해 왔다는 불경한 말. 충성스러운 부관이 점한 불경험에 조조는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기쁨에 찬 반응을 보였다.

“흐흐흣, 후흐흐…! 후헤헤헷…!!”

방정맞은 웃음소리와 함께 베개를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방구석을 뒹굴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부끄러움에 찬 모습을 보였다.

어느 때보다도 기뻤다.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2년 동안 짝사랑해온 남성으로부터 그런 낭만적인 고백을 듣게 되다니.

부군사 순욱에게 사소한 경범죄로 수감된 경범죄자들을 모두 사면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현재 조조는 어느 때보다도 기쁘고 행복한 상태였다.

“아악!”

방구석을 뒹굴던 조조가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쿵, 하고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아픔으로부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과 행복을 막을 순 없었는지 조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만 아가씨를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남성으로부터의 고백.

이 고백 하나만으로 어려운 역경과 고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아만이라 불러 준 목소리에,

사랑과 연모에 찬 고백에 용기백 배하여 마음이 벅차올랐다.

“히힉, 히히힛!!”

흑발의 여인이 바닥에 누운 채 허리를 휘면서 기괴한 자세를 취했다.

고백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마음에 둔 이성에게 고백을 받고 기뻐하는 사춘기 소녀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성휘는…, 나를… 연모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주황빛으로 물든 연주성의 정경을 뒤로한 채 나눴던 부관과의 대화는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고백만으로,

2년 동안 전전긍긍하면서 마음을 애태웠던 지난날을 모두 보상받은 듯했다.

마음이 한껏 들뜨게 된 조조는 어젯밤의 여운을 계속 즐기고 싶었는지 시녀를 보내어 오늘 조회를 생략하겠다는 명령을 전하도록 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맹덕?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갑자기 조회를 쉰다니….”

조회를 쉰다는 소식을 듣게 된 붉은 머리카락의 여걸이 조조의 침소까지 발걸음했다.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사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조회를 생략한다는 것에 의구심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중앙군 군세를 이끌고 연주 지역에서 거병한 이후부터 단 하루도 조회를 쉰 적이 없었기에 하후돈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 역시 조조의 명령에 다들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다.”

큼큼.

큼큼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흑발의 여인이 너스레를 떨듯이 말했다.

시치미를 떼듯 말했지만,

씰룩씰룩 흔들리는 뺨은 진정될 기미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당장 조회를 쉰 이유를 좀 더 유심히 캐물어달라고 사정하는 것처럼 조조는 계속해서 사촌에게 의미심장한 반응을 숨김없이 보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어제 부관하고 같이 밤나들이에 나섰다면서. 서, 설마… 성공한 거야?”

“큼큼!”

하후돈의 물음에,

조조는 한껏 으스대는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부관으로부터 고백을 받았다는 기쁨을 힘껏 발선하면서 하후돈을 놀라게 만들었다.

“부, 부관에게 고백을 받고… 연주성의 정경이 한눈에 보이는 우왕각에서… 이, 입맞춤했다.”

“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꺼낸 조조의 말에 하후돈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다.

부관에게 고백을 받고,

거기에 사랑을 증명하는 입맞춤까지 했다는 사실에 하후돈은 믿을 수 없었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세상에 맙소사!

지켜보는 사람들로부터 매번 한숨을 받아왔을 정도로 안타까웠던 바보들이 하룻밤사이에 과감하게 진도를 빼다니!

“내가 웬만해선 눈물이 안 나오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오네.”

하후돈이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답답하기가 짝이 없었던 사촌의 성장을 기뻐했다.

바보에 멍청이 같았던 꼬맹이가,

이렇게 용감하고 대범하게 성장할 줄이야.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결코 허사가 아니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어, 어땠는데…? 사랑하는 부관과의 입맞춤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조조처럼 얼굴에 홍조를 그리게 된 하후돈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사내와의 첫 입맞춤.

겪어본 적 없는 미지의 경험을 사촌에게 물었다.

짝사랑해온 남성과의 첫 입맞춤은 과연 어떤 경험일까? 입맞춤을 나눴던 상황과, 입맞춤을 나눈 조조의 심정이 몹시 궁금해졌다.

담대하고 용맹한 패국의 여걸은 연애 상담을 나누는 묘령의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사촌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다, 달콤한 맛이었다…! 나와 부관은 우왕각에 오르기 전에 노점에서 팔던 군것질거리들을 잠시 먹었으니까….”

“…맛?!”

“입술을 맞추면서 혀를 나눴기에…. 부관의 달콤한 맛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입맞춤에서 혀를…?! 혀를 움직여서 부관의 입을 탐했다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촌으로부터 첫 입맞춤의 경험을 듣게 된 하후돈이 얼굴을 붉히면서 온몸을 떨었다.

혀를 굴리면서 맛을 느끼고,

격렬하게 입술을 부딪치면서 애욕을 교환했다.

서로를 강하게 갈구하면서 매달렸을 조조와 이성휘의 모습을 잠시 떠올린 하후돈은 부끄러움에 몸을 떨면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두 다리를 들썩들썩 움직였다.

‘대, 대체 어디까지 진도를 나간 거야…?! 부끄럽다면서 부관과 시선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바보는 대체 어디로 가 버리고…!’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제자리걸음이던 사촌이,

훌쩍 내달리기 시작한 것 같아 낯설게 보였다.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한 사촌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짝사랑하는 남성으로부터 마음을 확인받은 조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부러워…. 저 허둥대는 모습이, 실실 웃으면서 행복해하는 저 모습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남성과 이어지게 되면 다들 저런 걸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터트리는 푼수 같은 모습이 부러웠다.

진심 어린 사랑을 하는,

진심 어린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촌이 부럽게 느껴졌다.

“원양, 긴히 상담을 할 게 있다.”

“뭔데?”

“이제 어떻게… 부관을 이제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쥔 흑발의 여인이 수줍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제 부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더 이상 부관을 부관으로 대하지 못할 것 같았다.

편애(偏愛)의 마음이 가중되었다.

이성휘에게 보내던 총애(寵愛)가.

지난밤의 고백으로 성애(性愛)의 감정으로 불거졌다.

‘…하아, 진짜 부러워 죽겠네. 지금 일부러 내 앞에서 자랑하나?’

새하얀 뺨을 씰룩이면서 부관을 향한 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사촌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애를 못 해 본 자신에게 기만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나도 너처럼 사랑을 해 보고 싶다.

기쁨과 행복에 빠진 사촌의 모습에 하후돈은 문득 자신 또한 그녀처럼 절절한 사랑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 *

연주성을 환하게 밝혔던 연등들이 하나둘씩 내려오기 시작했을 때,

원소는 기주로 돌아갈 채비를 갖췄다.

이제 더 이상 남을 이유가 없다.

무거운 마음을 떠안은 채 마차에 오르려 했다.

“본초 님.”

어젯밤에 본 광경을 떠올리면서 질투와 시기를 불태우던 금발의 여인을 불러세운 이는 이성휘, 질투를 유발하게 만든 원흉이며… 마음속 근심을 불러일으킨 대상이었다.

“성휘.”

마차에 오르려던 원소가 발걸음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려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서글픔에 찬 시선으로 어젯밤에 벗과 사랑을 속삭였던 남자를 응시했다.

원소는 분개에 찬 목소리로 ‘맹덕과 어젯밤에 희희덕거리며 사랑을 속삭였던 게 즐거웠나요?’라고 말을 꺼내면서 이성휘를 힐난하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무뚝뚝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자 힐난을 퍼부으려고 했던 마음이 사르륵 녹아들었다.

‘저는 아직도… 이 남자를 사랑하는군요…. 이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니까….’

내가 아닌 맹덕을 택했다는 배신감에 울분을 느끼면서도, 그런데도 그가 전혀 밉지 않았다.

이성휘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도둑고양이 같은 년과 희희덕하며 노는 꼴을 보았음에도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자마자 쿵쿵 박동치는 심장 소리가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말없이 떠나려고 해서 미안 해요, 성휘.”

원소가 입을 열면서 이성휘에게 사과를 보냈다.

말없이 연주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조조에게는 사람을 보내 떠난다는 소식을 전한 뒤에 기주로 돌아가려 했다.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조조를 향해 질투에 찬 격노를 쏟아 낼 게 분명했고, 이성휘와 마주하게 된다면 필시 자신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가려 했건만…

중원제일 검을 기만할 순 없었던 듯했다.

“업성에서 당도한 급보를 듣고 서둘러 돌아가려 했어요.”

원소는 거짓말을 입에 담으면서 말없이 사라지려고 한 이유을 밝혔다.

그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조한 거짓말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넘어가 준 것인지는 몰라도 원소의 말을 가만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초 님.”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원소가 입을 열었다.

“도움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요…. 모두 성휘의 활약이죠.”

“아닙니다, 본초 님이 저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들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성휘가 예를 취하며 말했다.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를 듣게 된 원소는 복잡한 심경을 떠안은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를 향해 일말이나마 야속한 마음을 느낀 자신에게 죄책감이 느끼고 말았을 정도로 이성휘는 결연한 모습을 보이었다.

“맹덕을… 너무 믿지 말아요.”

숙연함에 젖은 금발의 여인이 이성휘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맹덕을 믿지 말라고,

그녀를 과신하지 말라는 충고를 보냈다.

질투와 시기에서 나온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여 꺼낸 말이기도 했다.

“맹덕을 따르다 보면… 언젠가 지옥을 보게 될 거예요.”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원소는 이성휘에게 심각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알고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맹덕 님을 계속 따르다 보면 지옥을… 어쩌면 지옥보다 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원소의 경고에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저는 맹덕 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홀로 세상의 모든 업(嶪)들을 감당하려는 외톨이를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

그렇구나.

이 사람은…,

끔찍한 지옥도(地獄道)를 겸허히 받아들일 정도로 맹덕을 사랑하고 있구나.

이성휘로부터 날카로운 결의를 듣게 된 금발의 여인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휘는 제 모든 것들을 맹덕에게 바쳤군요. 그리고 저는… 성휘의 각오를 듣고서도, 그런데도 여전히 성휘을 좋아하고 있고요.’

일말의 흔들림도 없을 정도로 이성휘와 조조의 유대관계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원소였지만, 그녀는 결코 이성휘를 향한 마음을 접지 않았다.

오히려 조조를 맹목적으로 연모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의욕을 더욱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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