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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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의 연등들이 하나둘씩 은은한 화광을 내기 시작했다.
주황빛을 내는 등불.
어둠 속에서 아찔한 빛을 내뿜었다.
연주성에서 대대적으로 개최된 연등회를 보기 위하여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화사한 화광에 두 눈을 빼앗겨 버렸는지 백성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연등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와! 엄청 예쁘닷!”
“닷닷! 닷닷닷닷!!”
어린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면서 아름다운 화광을 내뿜고 있는 연등 아래를 누비고 다녔다.
특별히 외출을 허락받았는지,
해가 완전히 저문 밤이었음에도 어린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물론 마음이 들뜬 것은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연등들이 내뿜는 주황빛 화광은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매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난세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이 지긋지긋한 난세도 머지 않았소. 필시 정동장군께서 난세를 끝내주실 것이오!”
근심에 찬 아내의 말에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씩씩한목소리로 말했다.
“역적을 서쪽으로 몰아냈으니 곧 난세가 진정될 게 분명하오.”
“우리 연주인들은 언제든 정동장군의 대업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소이다.”
노복들을 대동한 채 밤놀이를 나온 사대부와 호족들 또한 일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조조에게 많은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조조라면 능히 난세를 끝낼 수 있다!
사대부와 호족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정동장군의 명성을 찬양했다.
사대부와 호족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연주인들은 전쟁에서 큰 활약들을 세운 조조 군에게 일치단결하여 모여 들게 되었다.
“실로 아름다운 소저로군!”
“고아한 용모와 자태가 월궁항아(月宮姮娥)와도 같구려.”
백색의 너울로 얼굴을 가린 채,
하늘하늘한 연분홍색의 비단옷을 입은 흑발의 여인이 호위무사를 대동한 채 시가지를 거닐고 있었다.
축제를 만끽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온 사내들은 월궁항아처럼 아름다운 여인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지, 연등들을 구경하다 말고 여인에게 계속 시선을 향했다.
“괜찮으십니까.”
허리에 검을 찬 채,
검은 도포를 두르고 있던 호위무사가 물었다.
그에 하얀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여인이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네. 그저 내게 뚫어져라 몰리는 백성들의 이목이… 조금 부끄러운 것뿐일세.”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하늘하늘 움직이는 연분홍색의 아름다운 비단옷을 두른 여인은 백성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는 주인공, 정동장군 조조였다.
그리고 그녀를 따르고 있는 호위무사는 중원제일 검 이성휘였다.
“불순한 무리들은 주변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삿갓 너머로 주변을 탐색하던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했다.
혹시라도 정적이 보낸 자객들이 구름처럼 몰린 군중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정돈된 위압을 흩뿌렸다.
하얀 너울로 얼굴을 가린 흑발의 미녀에게 사심을 품은 채 접근하려던 사내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귀관이 고생이 많군.”
“저는 괜찮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성휘의 무뚝뚝한 대답에 조조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는 여전히 태연했다.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도 좋을 텐데.
머리까지 꽃밭으로 된 사대부 규수들이 입을 법한 부끄러운 비단옷을 입는 과감성을 보였음에도 여전히 이성휘가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자 흑발의 여인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귀, 귀관…. 내가 혹여…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아름답지 않은 걸까.
속상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조조는 용기를 쥐어짜네어 이성휘에게 직접 물었다.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은 모습에 미용과 미장을 책임졌던 가희(歌姬) 변영이 극찬을 해주었으며, 시녀들 또한 오나라의 서시처럼 아름답다며 입을 모아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면…
어제부처 철저히 마련해온 모든 준비들이 허사인 꼴이었다.
“아닙니다…!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난감할 정도로 맹덕 님께서는 아름다우십니다.”
조조의 물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사내가 말을 더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다행이었다.
만약 삿갓이 없었다면 허둥지둥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보였으리라.
“그, 그런가…! 고맙네…!”
무심코 말을 더듬을 정도로 자기 용모를 칭찬해 주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 또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의 ‘아름답다’라는 말 한마디에 뜨거운 연심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입가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이성휘의 칭찬에 조조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맹덕 님, 혹시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십니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바깥에서 계속 맹덕이라 부르면 결국 군중들이 눈치를 채지 않겠나?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게.”
“그럼 외람되오나 아가씨라고….”
“아만.”
“…예?”
“나를 아만이라 부르게. 귀관에게만 허락하겠네.”
아명(兒名)인 아만(阿瞞)이라 부르도록 주문한 조조의 지시에 이성휘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자(字)도 아니고 아명으로 부르라니.
아이때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가족이나, 가족에 준하는 관계의 배필에게만 허락되는 경우였기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는 성휘라고 불러 주십시오. 백성들은 모두 저를 어림총사, 중원제일 검이라 부르기 때문에 이름으로 불러도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겁니다.”
“아,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아만. 성휘.
서로를 아명, 혹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조조와 이성휘에게 있어 크나큰 성과였다.
특히 2년 동안 전전긍긍 앓으면서 짝사랑에 전념해온 조조에게 있어 친근감을 담아 ‘성휘’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실로 값진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 두 팔을 높게 뻗으면서 “드디어, 드디어 해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만 아가씨.”
“흐윽──!!”
이성휘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 부름에 흑발의 여인은 사랑스러운 침음을 흘리면서 왜소한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부관이 나를 아명으로 불러 주다니.
당장 여기서 비명횡사를 하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쪽입니다.”
“아, 알겠네….”
하얀 너울로 얼굴을 가린 월궁항아의 미녀와 검은 도포를 두른 호위무사가 발걸음을 움직였다.
얼굴을 가려 정체를 숨겼지만,
사대부 규수처럼 아름답게 꾸민 조조의 자태에 수많은 사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늘하늘하게 나풀대는 피백과 발목까지 내려온 치마폭이 사뿐사뿐 움직일 때마다 월궁항아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지켜보던 사내들은 상사병을 빠지고 말았다.
“성휘…, 성휘는 항상 믿음직스럽군. 어떤 경우에도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말일세.”
“그렇습니까.”
하지만 조조의 말과는 달리,
현재 이성휘는 몹시 긴장한 상태였다.
그저 중원제일 검은 외면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발걸음을 거닐 때마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흘러나왔다.
흑발의 여인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체취를 맡게 된 이성휘는 어지럼증을 무심코 느낄 정도로 매력에 현혹되고 말았다.
“아만 아가씨.”
이성휘가 노점에서 사 온 군것질거리를 조조에게 내밀었다.
고소한 견과류들을 넣은 과자와 달콤한 조청을 뿌린 말린 과일이었다.
개국공신 가문의 여식에게 있어 노점에사 파는 군것질거리들은 한낱 싸구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몰래 연모하는 사내가 건넨 선물이었기에 내색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서, 성휘. 혹시 괜찮다면….”
얼굴을 폭 가리고 있던 하얀 너울을 잠시 들어 올린 조조가 이성휘에게 재차 말했다.
“하나 먹여줄 수 있겠나?”
목덜미까지 가리고 있던 너울 때문에 군것질거리들을 먹기 어려웠다.
물론 그것은 핑계일 뿐,
조조는 대담하게도 이성휘에게 군것질거리를 하나 먹여줄 것을 주문했다.
아름다운 연등들로 장식된 밤하늘의 연주 시가지의 정경이 너무도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일까. 항상 부끄러움을 떨던 흑발의 여인이 보다 대담하게 행동하면서 짝사랑하는 남성에게 다가섰다.
“머, 먹여… 아, 알겠습니다….”
주군의 대담한 요구에 이성휘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밭에 우두커니 선 허수아비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발을 동동 두르던 조조는 이성휘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는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그를 두근거리게 만든 것 같아서, 드디어 그에게 여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다.
“아.”
너울을 위로 들어 올린 조조가 입을 천천히 벌리면서 기다렸다.
그에 이성휘는 빳빳하게 굳은 손을 애써 움직이면서 그녀의 도톰한 입술 사이로 견과류를 넣은 과자를 쏙 넣어 주었다.
“으음….”
흑발의 여인이 과자를 우물거렸다.
도톰한 입술을 달싹이며,
입안에서 혀를 굴리면서 과자의 단맛을 맛보았다.
사랑하는 부관이 직접 손으로 먹여 준 과자이기 때문일까.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싸구려에 불과할 터인데도 그 달콤함이 최고급 다과들과 같았다.
“성휘, 다시 걷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시선들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계속 움직였다.
밤하늘을 함께 거닐면서,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을 계속 진정시켜야 했다.
짝사랑해온 상대와 함께 아름답게 장식된 길거리를 거닌다는 것은 실로 낭만적이었다.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후후, 성휘가 허둥대며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군.”
“죄송합니다.”
“아니, 책망하려는 게 아닐세. 간만에 크게 웃었으니 오히려 만족스럽네.”
입가를 손으로 가리면서 쿡쿡 웃음을 터트리는 조조의 목소리에 이성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하늘하늘한 비단옷은 움직이기 불편하여 딱 질색이다만, 허둥대는 모습을 무심코 보일 정도로 성휘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종종 사석에서 입도록 하겠네.”
흑발의 여인이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
부끄러움에 찬 모습을 보이던 이성휘와 나란히 시선을 마주했다.
“성휘.”
“예, 아만 아가씨.”
이성휘의 대답에 조조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내게 혹여… 할 말은 없는가?”
이를테면 ‘고백’이라든지.
사랑하는 사내와 시선을 마주하게 된 조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장소까지 이동한 흑발의 여인은 이성휘가 자신에게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고백하도록 은근슬쩍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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