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하후돈이 추천한 서주 출신의 가희(歌姬)는 변영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
정숙한 아름다음을 자랑했으며,
천한 출신의 가희였음에도 고결한 기품이 넘쳤다.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용모와 정숙한 매력을 품은 것은 물론, 여러 악기들을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또한 사대부 규수처럼 시작(詩作)에 도 특출했다.
“소첩을 부르셨사옵니까, 어르신.”
서주 출신의 가희가 입을 열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력이 필요하다.”
“하명하시옵소서.”
백만에 달하는 황건적들을 몰아내고 연주를 제패한 군웅이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음에도 가희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조조의 모습에 위축된 모습을 보일 만도 하건만,
정숙한 아름다움을 품은 가희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하명을 기다릴 뿐이었다.
“만약 가벼이 입을 놀린다면 목을 쳐 버리겠다.”
“알겠사옵니다.”
변영의 대답에 조조가 시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에 시녀가 조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던 변영의 앞에 무거운 가죽 주머니를 떨어트렸다. 무거운 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는지 철그럭, 하는 소리가 났다.
“금 20관이다. 네가 경거망동하지 않고 역할을 달성했을 경우, 너에게 내릴 보수다. 이 정도면 평생 재물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테지.”
위압과 회유를 반복하며 가희를 강압적으로 복종시킨 흑발의 여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바로 말하기엔 부끄러웠는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힘겹게 입술을 떠듬떠듬 열어 본론을 전했다.
“내, 내일…! 어림총사와 함께 단둘이서… 밤나들이에 나서게 되었다…!”
요컨대,
그 도움을 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중원제일 검과의 밤나들이를 위해 미용과 미장에 특출한 솜씨를 가진 자기 도움을 받으려 한다는 조조의 말에 변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일반 백성으로 변복한 채 나서야 되는 일이다. 절대로 신분이 들켜선 안 된다. 할 수 있겠느냐?”
“그 정도는… 매우 쉬운 일이옵니다.”
“흠! 자신감 넘치는 그 말을 한 번 믿어보도록 하겠다.”
쉬운 일이라고 답한 변영의 말에 조조는 불신으로 가득 찬 반응을 보이면서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연등들이 아름다운 빛을 비출 때,
단둘이서 연인처럼 밤나들이를 나가고 싶다.
원소로부터 조조와 같은 권유를 받게 된 이성휘는 곤혹스러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녀가,
연모하는 상대와 똑같은 권유해올 줄은 미처 몰랐기에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본초 님, 크게 외람된 말이오나… 지금 바깥에는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몰린 상황입니다. 신변을 위해서라도 인원들이 몰린 현장에 무방비하게 나가는 것은 매우 위태로울 겁니다.”
“중원제일 검이 저를 지켜 주세요.”
“…….”
그 또한 조조가 했던 말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비슷했다.
촉촉하게 젖어 있었으며,
또한 보석처럼 두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났다.
염원을 담아내듯 두 손을 꼭 붙잡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원소의 시선에 이성휘는 묘연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본초 님의 뜻을 감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본초 님께서는 기주의 주인이시며, 또한 기주의 백성들을 다스리는 제후이십니다. 만약 본초 님의 안위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권유를 돌려보내듯이 이성휘는 원소의 애절한 염원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안위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불상사가… 평화를 되찾은 연주와 기주에 분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안 해요…. 억지를 부려서.”
함께 밤나들이를 나서긴 어렵겠다는 이성휘의 대답에 금발의 여인은 숙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들은 모두 옳았다.
지극히 타당한 이유가었다.
연주에서 자신이 상서롭지 못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연주 지역과 기주 지역의 불화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동탁 군의 자객이 연주성에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틈을 노려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으므로 가벼이 행동할 수 없었다.
“…본초 님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뇨, 괜찮아요. 성휘는 저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잖아요? 성휘가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어 오히려 고마운걸요.”
금발의 여인이 배시시 웃었다.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성휘의 콧등을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툭, 하고 건드리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죄송하다는 말은 금지예요. 설마 이 부탁까지 거절하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좋아요, 그럼 충분해요.”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금발의 여인이 누나처럼 자애로움에 물든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괜한 권유를 한 것 같아,
부담을 느끼게 만든 이성휘에게 그저 미안 할 따름이었다.
살가운 애교와 귀여운 미소로 중원제일 검에게 화답한 원소는 몸을 빙글 돌리면서 이성휘에게 등을 보였다.
“그럼 오늘 연회에서 만나요. 성휘와 한 잔 마시고 싶네요.”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이성휘와 원소는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 * *
훈련에 매진하는 병사들을 빈틈 없이 감독한 뒤, 마구간에서 군마들을 조련 상태를 살피고 있던 조인에게 흑발의 여인이 찾아왔다.
황금 투구를 옆구리에 찬 여인.
조인, 그리고 조조와 쏙 빼닮은 용모를 가진 조홍이었다.
하급 무관들이 할 일을 도맡아서 하는 있는 조인의 모습에 조홍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코를 움켜잡았다.
“윽, 말똥 냄새…!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이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지푸라기들을 갈아주려고.”
조인의 대답에 조홍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미관말직이나 할 일이잖아. 네가 왜 그런 궂은 일을 해?”
“대장일수록 솔선수범하여 장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흥….”
확고함에 찬 조인의 대답에 조홍은 할 말을 잃었는지 콧방귀를 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해봤자 누가 알아준다고.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이 말똥 냄새로 진동하는 마구간에서 지푸라기나 옮기고 있다니.
지나칠 정도로 강직하고 성실한 종제의 모습에 조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우둔한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림총사 같은 무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마구간의 지푸라기를 나르던 흑발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숭산 전투와 낙양 전투,
무간지옥 같은 현장 속에서 망설인 없이 전투에 임했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중얼거렸다.
패국에서 징병한 사병들과 함께 조조 군에 합류하기 전부터 중원제일 검의 소문을 들어온 조인은 그와 같은 무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고,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는 그에게 경애의 마음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런 무뚝뚝한 사람이 뭐가 좋다고? 하긴 잘 어울리긴 하겠네. 너와 어림총사, 둘 다 무뚝뚝한 돌덩이잖아.”
조홍이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사내보다도 씩씩하고 다부진 모습을 보이는 조인을 놀리기 위해서였다.
분명 득달같이 달려들겠지.
항상 자신이 먼저 놀리고, 조인이 받아치는 양상으로 말싸움을 해왔었으니까.
“그런가…! 네가 보기엔 나와 어림총사가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이는 모양이군. 큼큼… 실로 괘씸한 말이지만 이번 한 번만큼은 넘어가 주지.”
이성휘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무정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석녀가 새하얀 얼굴을 붉히면서 쑥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뺨을 불그스름하게 붉히며,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기까지 했다.
조인의 그 반응에 조홍은 입을 쩍 벌린 채 당혹감을 토해냈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 석녀가 저런 낯 뜨거운 표정도 지울 줄 알았나…!’
바로 코앞에서 벼락이 떨어져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석녀가 쑥스러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성 중에 서른 살까지 동정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경우였다.
‘어, 어림총사──!! 설마 저와 언니에 이어, 자효까지 건들다니! 요, 용서 못 해!!’
부끄러워하는 조인의 모습을 본 조홍은 두 눈에 불길을 일으켰다.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이,
한 명의 남자에게 모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홍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무분별하게 여인들의 마음을 훔쳐 가는 중원제일 검의 사나운 매력을 한탄했다.
“그, 그런 이상한 남자의 어디가 좋다고! 싸움이 벌어지면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별종이잖아. 게다가 어디서 굴러먹은 촌놈인지도 모를 떠돌이 신분에, 항상 무모한 짓거리들만 골라서 저지르고 다닌다고! 진짜 최악의 남자야!”
조홍은 속으로 ‘미안 해요, 어림총사!’라고 중얼거리면서 이성휘를 폄하하는 말들을 쏟아 냈다.
최대한 단점들을 골라내어,
중원제일 검을 향한 경애의 마음에 이간질을 늘어놓았다.
언제 언니에게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살얼음판 같은 정국에 종제를 끌어들일 순 없다. 조홍은 가시밭길에 발을 들이려는 조인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어림총사를 모욕하지 마라! 어, 어림총사는… 천하제일의 남자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사나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간질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이성휘를 향한 조인의 마음은 매우 확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