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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59화 (159/616)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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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을 대표하는 참모들인 진궁과 순욱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에 동석하는 한 여걸.

불길처럼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호탕한 성정의 여성 무장이었다.

진궁과 순욱. 그리고 하후돈이 머리를 맞대면서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는 정황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명부께서 낙양의 중앙군을 이끌고 연주 지역에 입성하여 진류군과 동군을 터전으로 삼으신지 어언 반년이 흘렀어. 그런데도 여전히 진척이 없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경우야!”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한 미녀가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명부를 보필하기로 한 참모로서,

현 문제점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죄책감을 토해냈다. 본인의 우수함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건만, 많은 시일이 흘렀음에도 성과가 보이질 않는 완성정도에 회한이 밀려들었다.

“저는 군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한 실정을 모릅니다만… 지금부터라도 주군을 위해 전심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한에 찬 한숨을 흘리는 진궁을 향해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았다.

흘러간 옛일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앞으로의 일에 대비할 뿐.

순욱의 대답에 진궁은 재차 한숨을 내쉬면서도 착잡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강행 돌파로 해결하자니까.”

하후돈이 팔짱을 낀 채,

문제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두 군사들에게 말했다.

과정 따위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결과를 이루느냐 뿐. 강행 돌파야말로 현재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상책이리라.

“안 됩니다. 주군께서는 어림총사가 생애 첫사랑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맹덕이 남자한테 빠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성휘, 그 녀석이 처음이지.”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좀 더 점진적인 방법으로 둘 사이의 진척을 좁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궁과 순욱, 하후돈이 모여 의논하는 논제는 주군 조조의 연애문제였다.

서로 손을 잡게 된 이후,

도무지 그다음으로 나아갈 생각을 않는 조조와 이성휘의 지지부진한 진도에 참모들이 결국, 나서게 되었다.

“신묘한 비책을 발휘하여 주군과 어림총사가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그 계기를 만드신 군사님의 전략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혹시 군사님께서 동원하셨던 비책을 다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순욱의 물음에 진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로 손을 잡는 데만 석 달이 걸렸어. 아니, 낙양에서 있었던 세월까지 합치면 2년하고도 한 달이지.”

그렇게 말한 진궁은 “무슨 산등성이에 있는 석장들도 아니고 말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손을 잡는 데만 2년 3개월.

실로 절망적인 진도가 아닐 수 없다.

이성휘가 조조 군에 합류하면서 부쩍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이나 걸렸다는 것은 한숨만 나오는 결과였다.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그나마 3개월이지,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늙어 죽기 전에야 겨우 손을 맞잡는 사이가 되었겠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사마귀가 무거운 철제수레와 씨름을 하는 것만큼이나 조조와 이성휘는 연애진도가 크게 더뎠다.

“연애… 라고 부르는 것도 조금 어색하지. 서로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까.”

“큼큼.”

“흐음….”

하후돈의 말에 진궁과 순욱은 침음을 삼키면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손을 맞잡는 사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조조와 이성휘는 정식으로 연인이 된 게 아니었다.

두 군사들의 앞이 깜깜해졌다.

“…….”

패국의 여걸과 두 군사들이 심도 깊은 회의를 나누고 있을 때, 황금 투구가 잘 어울리는 흑발의 여인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식은땀을 연신 흘리고 있었다.

* * *

이성휘는 차를 마시면서 연주의 패자, 기주의 군주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조조와 원소를 깊이 연모하는 남정네들이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부러운 상황이었지만, 현재 이성휘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두 여걸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성휘, 숭산에서 있었던 일과 낙양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세요. 성휘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모두 듣고 싶어요.”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차를 한 모금 마신 금발의 여인이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휘.

매우 친근하게 이성휘를 불렀다.

분명 단둘이 있을 때만 부르기로 한 호칭이었지만, 번번이 자신과 이성휘의 사이를 방해하는 흑발의 여인을 놀리고 싶었는지 보라는 듯 친근감을 표시했다.

“성휘…?”

그 친근한 호칭에,

흑발의 여인이 서릿바람처럼 싸늘하게 내려앉은 시선을 보냈다.

“저와 성휘는 사석에 있을 때, 격식 없이 친근하게 부르기로 했답니다.”

“그게 사실인가?”

조조의 질시어린 시선이 가해졌다.

그에 이성휘는 식은땀을 흘렸다.

불과 2천의 군세로 10배가 넘는 적들과 맞섰을 때보다도 말이다.

“예, 그…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드센 용맹과 절대에 가까운 무력으로 천하를 요동치게 만들었던 중원제일 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이성휘의 그 어설픈 모습에,

원소는 배를 움켜잡으며 박장대소를 터트리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웃음을 쿡쿡 터트렸다.

“거기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일단은 숭산과 낙양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 보게.”

“…예.”

싸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보건대 흑발의 여인이 크게 삐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달래야 될까.

이성휘의 수심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숭산 방면을 방비하고 있던 적장은 동탁의 사위인 중랑장 우보였습니다. 우보의 군세가 제후군이 숭산을 넘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산기슭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틈을 노려 급습을 가했습니다.”

험준한 숭산을 방비하던 동탁 군의 7천 군세를 단숨에 패주시켰으며, 패국의 여걸이라 불리는 하후돈이 중랑장 우보와 장수 복호적아의 목을 벴다.

이성휘는 하후돈과 전투에서 분전한 장졸들을 치켜세우면서 모든 공적을 그들에게 보냈다.

“치열한 격전들을 치렀던 유비와 그녀의 의자매들, 그리고 강동의 호랑이에게 또한 높은 벼슬을 내릴 걸세.”

의병들을 이끄는 유비군은 현재 진류군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손견군은 이성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에 형주로 내려갔다.

원술에게 받아먹을게 남았는지,

강동의 호랑이는 원술의 품으로 향했다.

용력과 맹위를 크게 떨친 강동의 호랑이는 결국 원술을 따라 종군하다가 형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터. 이성휘는 그 비참한 미래를 알고 있었지만 손견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숭산이 온통 시산혈해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과연 성휘예요. 성휘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대업이었죠.”

원소가 이성휘를 치켜세우면서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임을 확고하게 선언했다.

수많은 활약들을 통해 그를 증명했으며,

그리고 천하의 모든 백성들이 중원제일 검의 활약을 인정했다.

천하의 패권을 건 전쟁에서 큰 활약들을 세운 일등 공신으로서 구경(九卿)의 다음 반열에 속하는 고급장군에 임명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감읍한 말씀이십니다.”

원소의 찬사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보고한 뒤,

빈 찻잔을 내려놓은 이성휘가 조조와 원소에게 허락받은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 함께 걷도록 하지!”

왜소한 체구에서 나온 추진력을 이용하여 연적보다 한 발 앞서 몸을 일으킨 흑발의 여인이 이성휘의 옆을 차지했다.

그 뒤에 시녀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연모하는 남성에게 찰싹 들러붙으려는 불여우의 개입을 차단했다.

좌우에 선 채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훈련도 높은 병사들처럼 질서정연한 제식을 발휘하여 원소의 앞을 장벽처럼 가로막았다. 그에 원소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두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큼, 큼큼….”

조조가 헛기침했다.

그러더니 손을 슬며시 뻗으면서,

나란히 걷던 이성휘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손을 맞잡았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웠는지, 사내의 거칠고 메마른 손을 맞잡은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전쟁에서 여러 활약들을 세운 덕분에… 맹덕 님께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그, 그런가…? 고맙네… 그렇게 생각해 줘서.”

이성휘가 자기 손을 붙잡고 있던 부드러운 손길을 맞잡았다.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말과 함께,

다부진 손아귀로 손을 맞잡는 이성휘의 행동에 조조는 목소리를 떨 정도로 긴장하게 되었다.

“여포는 어떤가? 말을 잘 듣던가?”

“예, 큰 불만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는 제아무리 뛰어난 용마라도 하등 필요가 없으니.”

길들이지 못 하는 야생마는 채찍으로 때려죽일 뿐이다.

사람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야생마를 채찍으로 때려죽이듯이,

제아무리 용력과 용맹이 출중한 맹장이라도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반골이라면 즉시 목을 칠 것이다.

그래서 조조는 이성휘에게 여포와 병주군의 지휘를 맡겼다. 만약 여포가 정원과 동탁을 배신했던 것처럼 아군 또한 배신한다면 즉시 그 목을 쳐 버리기 위해.

“이야기가 왜 저리 살벌해?”

“대담하게 손을 맞잡은 행동은 80점입니다만,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굳이 저 상황에서 살벌한 말을 꺼낸 행동을 포함하면 최악의 5점입니다.”

조조와 이성휘가 손을 맞잡은 채 산보를 걷는 모습을 목격한 진궁과 순욱이 착잡함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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