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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53화 (153/616)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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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이 늘어났다.

명공은 내일,

동군(東郡) 연주성으로 떠나신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병주군을 이끌고 예주 정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만날 수 없게 되겠지.

오늘이 끝이다.

명공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날도,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해온 마음을 사랑하는 정인에게 전할 기회 또한 오늘이 유일했다.

“명공께서 야밤에 홀로 방에 계실 때를 노려 지금까지 간직해온 마음을 고백하면…. 그, 그럼 마치 소녀가 명공에게 주제도 모르고 ‘밤놀이’를 청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사옵니까?!”

흔히 남편을 잃고 일찍이 과부가 된 여인들이 적적한 밤을 참다못해 건장한 사내가 묵는 방에 침입하는 밤놀이….

공이 선생이 쓴 역작, ‘음란한 과부의 치명적인 유혹’에 나왔던 줄거리였다.

혹시라도 명공이 나를 사내의 방에 침입하여 밤놀이를 권하는 문란한 여인으로 여기진 않을까, 새하얗던 얼굴이 붉은 염료를 흩뿌린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만약 명공께서 소녀를 거절하신다면…. 소녀는 대체 어떤 얼굴로 명공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옵니까.’

작약꽃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근심에 찬 한숨을 토해냈다.

사내들은 모두 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명공께서는 천하제일의 사내,

치마폭을 쫓기만 할 뿐인 비천한 사내들과는 다른 으뜸 중의 으뜸이다.

천하제일의 사내에게 어울리는 배필은 당연히 천하제일의 미모를 자랑하는 경국지색의 미녀일 터.

초선은 낙양제일미라 불리며 수많은 사내들을 상사병을 앓게 만든 미녀였지만, 남몰래 짝사랑하는 사내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감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버지께 상담해야….”

초선은 양부 왕윤에게 복잡한 마음들을 상담하기로 했다.

항상 아버지께서는,

딸의 마음을 헤아려주셨기에.

아버지께 애타는 고민을 상담하면 조금은 답이 보일 것 같았다.

“사도 어르신께선 지금 어림총사가 묵고 계신 객실에 있을 텐데요?”

떨리는 마음으로 왕윤이 머무는 안채에 도착한 초선이었지만, 안채를 청소하고 있던 시녀에게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께선 명공과 만나고 계신다.

그에 초선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라버니들에게 대신 상담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초선은 오라버니들 또한 아버지와 함께 명공을 만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긴히 상담해야 될 일이 있어 태원왕씨 가문의 장정들이 모두 나선 듯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께서 모두…. 대체 명공과 어떤 말씀을 나누고 계시기에…. 호, 혹시! 소녀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몸소 중매를…!!’

푸쉬시시….

뜨거운 수증기가 머리 위로 뿜어졌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께서 직접 명공과 자기 혼례를 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뜨거운 피가 머리로 집중되었다.

태원왕씨 가문의 주선으로 진행되는 혼례.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경애하는 명공과 정식으로 부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 * *

초선의 예상과는 달리,

왕윤은 황제 유변의 밀명을 전달하기 위해 이성휘와 만나고 있었다.

조카 왕신과 왕릉이 문에 몸을 기댄 채 바깥을 경계하고 있었고, 아들 왕개와 왕경정은 아버지 왕윤의 뒤에 선 채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잠깐 흐른 뒤,

사도 왕윤이 침묵을 머금고 있던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조서를 내리셨네.”

중년남성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소중하게 품속에 둔 황제의 조서를 꺼냈다.

“진류왕 전하에게 황위를 양위하신다는 황제 폐하의 조서일세.”

“…예?”

왕윤의 말에,

이성휘는 납득하기 쉽지 않았는지 즉시 되물었다.

항상 유변이 지혜와 인망을 겸비한 유협에게 황위를 양보하려는 의중을 품어온 것은 이성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설마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던 유변이 왕윤에게 양위를 발표하는 조서를 내리다니. 실로 과감한결단이었다.

“폐하께서는 내게 조서를 내리신 뒤, 낙양을 탈출하실 것을 권하셨네. 그래서 일가친척들과 함께 병주군의 거병으로 동탁 군의 경계가 혼란스러워진 틈새를 노려 탈출하게 된 것일세.”

동료인 청류파 조정대신들이 동탁 군에 압송되는 모습을 보고서도 치욕을 참고 낙양을 탈출하려 했던 것은 황제의 조서를 진류왕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반드시 조서를 전해야 한다.

유약한 성정의 황제가 천하 만민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 확고한결단에 왕윤은 목숨을 다해 명을 수행할 것을 맹세했다.

“이건….”

“황제 폐하의 혈서일세.”

흰 종이에 새겨진 붉은색.

그것은 혈서(血書)였다.

결심과 맹세를 증명하기 위해 손가락을 물어뜯어서 새긴 조서.

혈서를 통해 유변의 확고한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복동생이 새 황제에 즉위한 뒤, 장성한 나이가 되면 관동의 제후들을 이끌고 만고의 역적을 처단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혈서가 발표되면… 황상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필시 동중영이 폐하에게 위해를 가할 겁니다.”

“그래서 자네에게 먼저 꺼낸 것일세.”

왕윤은 물론,

아들 왕개와 왕경정 또한 경직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의 혈서가 수중에 있다.

혈서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신하로서의 당연한 도리일 터. 그러나 진류왕에게 황위를 양위한다는 혈서가 공개되면 동탁이 황실과 조정에 패악을 벌일 게 분명했다.

“딸아이에게 전국옥새가 있네.”

“예, 소저에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황위의 상징인 옥새와 황위를 양위한다는 황제 폐하의 혈서가 여기 있네. 천하의 민심 또한 동탁을 철저히 배척하고 있으니 진류왕 폐하의 즉위는 어렵지 않게 성공할 것일세.”

“허나 지금은 시기가 아닙니다.”

진류왕 유협을 보필하는 조조 군은 이제 겨우 연주 지역을 석권했을 뿐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천하의 섭리와 질서를 주도하는 대제후가 되기 위해선 한시라도 빨리 예주를 차지해야 했다.

정동장군 조조가 연주와 예주를 아우르는 대제후가 되었을 때 혈서를 발표해도 늦지 않았다. 현재 동탁에게 억류된 유변을 배려하기 위함도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조서를 임의 판단으로 숨기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허나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냐.”

아들 왕경정의 말에 왕윤이 침음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역적이 도읍에 불을 지른 뒤,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장안성으로 압송했다.

지금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렇기에 왕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성휘의 의견에 찬동했다.

“양위 소식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다면… 필시 불손한 무리가 진류왕 전하께 위해를 가하려 할 것일세. 지금은 힘을 키우기 위한 양병(良兵)을 주도할 때일세.”

난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다.

뛰어난 명분과 정통성도,

지켜낼 힘이 없다면 일장춘몽의 허깨비와 다름없을 것이다.

불바다가 된 낙양의 참상을 보게 된 왕윤은 힘없는 자들은 도태될 뿐인 약육강식의 잔혹함을 깨닫게 되었다.

“제가 병주군을 이끌고 사나운 군벌과 도적들이 활개 치고 있는 예주를 탈환하겠습니다. 부디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알겠네. 연주에 이어 예주까지 무사히 석권한다면 정동장군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게 될 터. 진류왕 전하의 즉위 또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테지.”

착잡함에 찬 한숨을 깊게 내쉰 왕윤은 이성휘로부터 돌려받은 혈서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아직 혈서는 공개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선 명분과 정통성을 호위하기 위한 힘을 기를 때였기에.

왕윤은 상서복야 사손서에게만 혈서의 존재를 알리겠다며, 진류왕에게 황위를 양위한다는 혈서의 공개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 * *

왕윤과 태원왕씨 가문의 친족들이 객실을 나선 뒤에 홀로 남게 된 이성휘는 근심 섞인 한숨을 내쉬면서 복잡하게 뒤섞인 뇌리를 정리했다.

황제의 혈서.

유변은 혈서를 전달하기 위해 왕윤에게 낙양을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

동탁의 괴뢰가 되어 버린 자신을 대신하여 이복동생이 한나라의 황위를 계승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혈서의 존재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된다면 동탁에게 위해를 입게 될 텐데….’

유약한 성품을 가진 황제는 어리석다고 느껴질 정도로 착하고 순박했다.

왕윤은 유변이 역적의 폭정에 시름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성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황제가 원하는 바는 단 하나.

소중한 이복동생이 무사히 난세에서 살아남아 문무백관과 백성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는 명군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죽음조차도 불사하겠다는 오라비의 각오를 붉은 혈서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명공, 계시옵니까? 초선이옵니다.”

등잔불에 물들어 주황빛으로 보이는 장지문 너머에 날씬한 그림자가 보였다.

초선의 목소리였다.

시각은 어느덧 심야를 지나고 있었다.

혈서의 공개를 중점으로 한 왕윤과의 의논이 상당히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다른 궁인들은 모두 자고 있을 터. 궁궐의 경계를 서고 있는 숙직병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 빠져 있을 늦은 시간이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자신이 묵고 있는 객실로 발걸음을 한 초선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들어오십시오, 소저.”

“황공하오나… 잠시 실례하겠사옵니다.”

긴장감에 젖은 듯한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장지문이 열렸다.

이윽고 작약꽃처럼 아리따운 머리카락을 둔부까지 늘어뜨린 여인이 복숭아처럼 새하얀 뺨에 홍조를 그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듯,

낙양제일미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용모를 봉선화처럼 물씬 발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늦은 밤에.”

“명공…. 명공께 긴히… 늦은 시간에 발걸음을 하는 무례를 범한 것은 알고 있으나… 무례를 무릅쓰고서라도 명공께 긴히 전해야 될 말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명공…, 소녀의 말을 들어 주시겠사옵니까…?”

“물론입니다.”

침소에 들 시간에 발걸음을 향한 자신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는 이성휘의 반응에 초선은 얼굴을 붉힌 채 쑥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소녀… 명공에게 많은 은혜들을 입었사옵니다. 그래서 그 백분지 일이나마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금까지 많은 고민들을 했었사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괘념치 않으셔도….”

“아, 아니옵니다! 어찌 명공에게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들을 여러 번이고 입어왔는데 그를 괘념치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소녀는 태원왕씨 가문의 여식으로서… 사도의 수양딸로서 명공께옵서 내리신 막중한 은혜에 보답해야 마땅하옵니다!”

확고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에 이성휘는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발산하면서 바르르 떨고 있는 작은 아기새를 바라보았다.

삐약삐약 우는 병아리처럼,

가느다란 어깨를 움츠린 낙양제일미는 꽉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소녀… 소녀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 가슴에 손을 올린 초선은 이윽고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가슴 옷고름을 푼 뒤,

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을 덮고 있던 윗옷이 흘러내렸다.

등잔불이 내는 주황빛에 물든 뽀얀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홍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낙양제일미의 거유가 출렁출렁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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