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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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전투와 낙양 전투에서 큰 활약을 세운 이성휘가 마침내 제후군의 본영으로 돌아왔다.
거의 한 달에 달하는 시간 동안,
휘하 장졸들과 함께 고군분투를 치렀던 중원제일 검이 돌아온 것이다.
전쟁에 참전했던 지방관들이 반절 이상 떠난 상태였지만 중원제일 검은 관동의 영웅이었으므로 둔영에 잔존하고 있던 장졸들이 두 팔 벌려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 어림총사.”
정북장군 원소가 휘하 제장들을 대동한 채 이성휘를 환대했다.
동탁 군을 상대로 용전을 벌였던 영웅,
금발의 여인은 영웅의 잘생긴 얼굴을 두 눈에 담으면서 환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당장에라도 “우리 동생!”라고 부르면서 두 팔 벌려 껴안고 싶었지만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이 많았으므로 애정어린 욕구를 애써 억눌러야 했다.
“황제 폐하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자기 죄를 청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원소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코 그를 탓할 순 없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전공들을 세웠던가.
오히려 원소는 수많은 활약들을 한 기특한 동생을 듬뿍 칭찬하고 싶었다. 만약 누군가가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왜 구해 내지 못했나며, 이성휘를 힐난하려 든다면 자신이 나서서 응징할 생각이었다.
“2천의 병력으로 3만이 넘는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냈고 적장 화웅의 수급을 베었죠. 그리고 군세를 이끌고 낙양을 급습하여 황후 폐하를 구출해내는 활약을 세웠어요. 그러니 어느 누구도 어림총사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
금발의 여인이 손을 뻗었다.
실의에 찬 동생을 위로하는 누이처럼,
제 잘못을 크게 책망하는 이성휘에게 상냥한 모성애가 담긴 미소와 함께 따뜻한 말을 건넸다.
“상세 보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도록 하지. 본초, 나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을 터인데.”
“네, 그러도록 하죠.”
원소가 이성휘를 향해 모성애처럼 부드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을 때, 질투와 시기를 품은 흑발의 여인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부관에게 과다의 애정을 보내는 여우를 향해 경고를 보냈다.
‘발정기에 빠진 암말 같으니. 부관을 한 달 동안 못 봤다고 스스럼없이 대하는군.’
질투에 빠진 조조의 모습에 원소는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후후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무려 한 달 만에 만난 동생과의 재회에 찬물을 끼얹는 조조에게 적의를 품었다.
이토록 우수하고 유능한 사내를 손아귀에 쥐고 있음에도 수줍은 부끄러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그녀가 원술과 다를 바 없는 머저리로 보였다.
“병주군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대체 어째서 그들이… 합류하게 된 거죠?”
막사에 도착한 원소가 물었다.
여포와 병주군,
동탁에게 복종했던 무리들을 대동한 채 본영에 돌아온 조조와 이성휘를 향해 의문을 제기했다.
양아버지를 살해하는 불효와 불충을 범한 장졸들을 마치 수하처럼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병주군은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는 조정군이 되었다. 대방화를 일으킨 동탁 군에 맞서 거병했던 병주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황후와 조정대신들이 그들의 활약을 치하하며 조정군에 임명했지.”
“단번에 알아듣기 어렵군요.”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꺼낸 조조의 말에 원소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여포가 동탁을 배신하였고,
낙양에서 거병한 병주군이 동탁 군에게 억류된 황후와 조정대신들을 구해 냈다.
그에 황후와 조정대신들이 여포와 병주군을 조정군으로 임명하면서 활약을 치하했다.
‘맹덕의 말을 풀이해 본다면 이렇게 되겠지만, 설명을 듣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을 배신했던 여포가 어째서 맹덕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납득하기 난해했다.
금발의 여인은 풍만한 유방을 강조하듯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고심에 찬 모습을 보였다.
마치 도발을 거는 듯한 모습에 흑발의 여인은 노한 표정을 지으면서 ‘빌어먹을 젖가슴 괴물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부디 부탁할게요.”
정동장군 조조와 정북장군 원소, 두 여걸들과 함께 동석하고 있던 이성휘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원소에게 병주군의 행적에 대해 설명했다.
궁궐에 유폐된 황후를 구출했으며,
동탁 군에게 쫓기던 조정대신들을 구출한 것도 언급했다.
그리고 무려 1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불길의 아비규환 속에서 구출하는 활약을 세웠다며 병주군의 전공을 치켜세웠다.
“흠, 그렇군요….”
여포가 커다란 젖가슴을 이용한 미인계를 써서 이성휘를 유혹한 것이라고 의심한 조조와는 달리,
설명을 들은 원소는 ‘병주군이 수많은 사람을 구해 냈기에 그들을 돕는군요.’라며 이성휘의 내심을 단번에 간파했다.
“황후와 조정대신들을… 그리고 1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불길 속에서 구해 냈다면 면책에 대한 참작의 여지가 있겠군요. 그들이 참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공을 세운 것 또한 사실이니.”
이성휘의 설명을 경청하던 원소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맹장 여포와 병주군이 조조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에 짐짓 경계심을 품은 그녀였지만, 이미 황후와 조정대신들이 중론을 모아 교서를 내렸다면 그를 반대할 명분이 없었으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맹덕,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원소가 조조에게 물었다.
그에 조조가 답했다.
“사흘 동안 군세를 재정비한 뒤에 진류성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예상외로 전쟁이 길어지는 바람에 장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겠지.”
“그럼 저희 군도 사흘 뒤에 철군하도록 하죠.”
원술을 필두로 연합에 참전했던 지방관들이 하나둘씩 사예주를 떠나갔다.
원소와 조조 또한 철군을 결정했다.
홍농군에 이어 함곡관을 넘었을 동탁의 뒤를 추격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천하를 제패하려 했던 대제후 동탁의 야욕을 꺾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
관중(關中)의 패권을 포기하고 관서(關西)로 도망친 동탁은 더 이상 중원을 도모하지 못할 것이기에 눈앞에 당면했던 가장 큰 위험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맹덕, 함께 진류군으로 가도 될까요? 진류군을 거친 뒤에 업성으로 돌아가려 해요.”
“…상관은 없다만.”
진류군을 경유하여 기주로 귀환하겠다는 원소의 말에 조조는 온몸으로 불만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매정하게 내칠 순 없었으므로,
조조는 결국 원소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 * *
사촌언니의 명령받고 연주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게 된 호위장군 조홍은 혹시라도 대규모 병력이 자리를 비운 틈에 외세가 들이닥칠까 철저히 경계했다.
인색하고 퉁명스러운 성격과는 달리,
조홍은 내정과 군사에 뛰어난 수완을 보이면서 연주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군사 진궁과 부군사 순욱의 도움을 받았으며, 직접 병력을 징별하고 조련하면서 연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과연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친족다운 일 처리였다.
“어림총사가 숭산에서 대승을 거뒀다고요!”
“예, 불과 2천의 군세로 1만 7천에 달하는 대군을 격파하고 동탁 군의 총대장이었던 도독 화웅을 효수했다고 해요.”
전황 소식을 순욱으로부터 듣게 된 조홍은 마치 자신이 공을 세운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도독 화웅,
그 빌어먹을 대머리를 죽였다.
낙양에서 무자비하게 아군을 살육했던 팔척의 거한을 떠올린 조홍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사랑스럽게 뺨을 붉혔다.
“2천으로 1만 7천을 박살 내고 총대장까지 죽였다고? 게다가 화웅과 우보를 포함해서… 총 6명의 적장들이 숭산에서 죽임을 당했어. 와 진짜 대단한 놈일세. 어떻게 이겼대?”
조홍과 함께 전황을 들은 진궁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감탄을 넘어,
경이마저 들 정도의 대승이었다.
용저에 필적할 정도의 용력과 무위를 가지고 있다는 게 허언이 아니었는지 무려 8배가 넘는 숫자의 대군을 단번에 박살 내버렸다.
“급보입니다! 낙양이 불타고 있다고 합니다!!”
숭산의 소식을 접하고 며칠 뒤,
이번에는 최악의 참사가 낙양에서 벌어졌다는 급보가 날아들게 되었다.
숭산 전투의 참패로 사면초가에 몰리게 된 동탁이 청야전술의 일환으로 낙양을 불태워 버렸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온 궁궐이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은 물론,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의 터전이었던 시가지까지도 주춧돌만을 남긴 채 전소되고 말았다고 한다.
“나, 낙양을 불태우다니…! 전투에서 참패를 겪었다고는 하나, 어찌 광무황제(光武皇帝)께서 도읍하신 낙양을 불태우는 외도(外道)를 범한단 말인가요!!”
그 소식에 순욱이 놀라 소리쳤다.
상아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미녀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낙양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나이 많은 조카께서 낙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욱은 수도를 불태웠다는 보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잠깐, 낙양이 불타고 있다면 숭산을 넘은 이성휘는….”
불길함에 젖은 진궁의 중얼거림을 들은 조홍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질렀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백성들을 구해야 한다며 무모하게 달려 나가겠지.
걱정이 앞섰다. 당장에라도 연주에 남은 군세를 이끌고 낙양으로 가고 싶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악전고투 속에서 싸우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적당히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불길 속에 몸을 내던지는 멍청한 짓하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융통성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성격이니까 백성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겠죠!’
낙양이 잿더미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조홍은 식읍을 전폐한 채 이성휘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생전 처음으로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며,
만약 그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재산의 일부분을 빈민들에게 사용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를 통해 이성휘를 진심으로 연모하는 그녀의 진신을 알 수 있었다.
구두쇠와 자린고비의 대명사가,
지금까지 결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써본 적이 없는 그녀가 천지신명을 향해 재산의 일부분을 내놓겠다는 구두약속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만약 조조가 그를 들었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총애하는 사촌 동생을 바위에 묶어 장강에 내던졌으리라.
“주군과 어림총사, 둘 다 무사하십니다! 지금 군세를 이끌고 연주로 돌아오고 계십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식읍을 계속 전폐한 탓에 정신이 계속 혼미한 상태였던 조홍은 마침내 낭보를 듣게 되었다.
그 사람이 무사하다!
멀쩡히 살아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낭보를 들은 조홍은 집무실에서 홀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했다.
“다, 다행이야…! 흐끅, 흐끅! 무사하구나….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어찌나 기뻤는지,
조홍은 딸꾹질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일생 흘릴 눈물을 이번 기회에 모두 흘리겠다는 듯이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 내면서 이성휘의 무사함을 가슴 깊이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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