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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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여포와 병주군은 훌륭한 패였다.
여포는 천하가 인정한 당대의 맹장이며,
또한 병주군은 동탁이 거느린 서량 군단에 필적할 정도의 무명을 자랑하는 최정예부대였다.
모래알처럼 잘게 흩어진 천하를 제패하고 제후들을 호령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조조에게 있어, 여포와 병주군의 합류는 쌍수를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여포는 주군이자 양아버지였던 정원을 살해한 무장이다. 만약 그 들개에게 물리게 된다면… 분명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테지.’
물론 그것은,
지독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여포가 새 주군을 배신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경우였다.
과연 여포에게 충절(忠節)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여포는 주인을 두 번이나 문 들개다.
목줄로는 결코 길들일 수 없는,
늑대의 야생성을 가진 사나운 들개와 같았다.
이성휘는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병주의 들개들을 길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떠올린 조조는 제 손바닥을 바라보면서 부끄러움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품위를 망각한 헤벌레한 표정이었다.
“큼! 큼큼…. 흐흣, 흐흐흐흣…!”
북방의 서릿바람처럼 무뚝뚝한 사내에게 그런 낭만적인 면모가 있을 줄이야.
손을 살포시 잡으면서,
새하얀 손등에 메마른 입술을 새겼다.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충성을 맹세하겠노라는 다짐을 새긴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의 마음은 여름 열기에 노출된 얼음처럼 녹아내리고 말았다.
“충성스러운 부관이 내게 해가 되는 일을 했을 리 없지. 진류왕을 구했던 일도, 진류왕을 보필하라는 역할을 황제에게 떠맡게 된 일도… 결과적으로는 내게 긍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연모하는.
나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현명한 지모와 날카로운 직감을 자랑하는 ‘나의 부관’이 나와 패국조씨 가문에 폐가 되는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성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백만에 달하는 황건적 대군을 격파하고 연주 지역을 석권한 나다. 언젠가 천하를 거머쥐게 된다면 수많은 제후들이 내 발치에 무릎을 꿇게 될 터.”
천하의 모든 제후들을 호령할 이 조맹덕이 병주의 들개를 길들이지 못할 리 없다.
이성휘의 충성맹세에 감화된 조조는 여포와 병주군을 발아래에 두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자효.”
“예, 언니.”
조조가 부름을 내렸다.
그에 조인이 무릎을 꿇은 채로 문을 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포와 병주군을 조정군으로 들이겠다. 자효, 너는 부관과 함께 그들의 동태를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병주군의 감시와 경계를 명령받게 된 조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약할 정도로 작은 반응이었지만,
이성휘와 함께 명령을 수행 받게 되어 기뻤는지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조인이 품고 있는 마음은 경애(敬愛).
무인을 향한 존경과 이성을 향한 사랑이 공존하는,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순결한 애정이었다.
‘어림총사와 함께…. 어림총사와 함께….’
순결한 사랑을 품게 된 고결한 숫처녀는 속으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 * *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집결한 관동의 제후군이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파국(破局).
이제 판을 접어야 할 때였다.
대의를 주장하며 지방관들을 결속했던 연주자사 유대와 동군태수 교모가 격전 중에 사망하였으므로, 관동의 지방관들은 역신 척결의 의기를 서서히 잃게 되었다.
“당장 동탁을 추격해야 하오!”
“동탁이 홍농군(洪農郡)을 넘었습니다. 함곡관에 도달했을 동탁을 어찌 쫓는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폐허가 된 낙양을 바라보면서 한숨만 쉴 순 없지 않소!”
“놈들이 또 매복을 펼쳤을지도 모릅니다!”
지방관들의 신경이 매우 예민해졌다.
낙양을 떨어트리면 끝날 줄 알았건만,
동탁이 황제를 장안성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모든 것들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싸움이 지속될 수록 부상병이 계속 늘어났고 군량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서영의 매복에 걸려 명망 높은 지방관들이 모두 전사했기에 분위기는 더욱 흉흉하게 변해 갔다.
‘결국 연합은 파행을 겪게 되겠군요.’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면서 추악한 욕망과 두려움을 발산하는 지방관들의 모습에 금발의 여인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낙양이 모두 불타버렸으며,
악전고투 끝에 낙양에 도달한 지방관들은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다.
숭산 전투의 대패로 궁지에 몰리게 된 동탁이 벌인 청야전술(淸野戰術)은 실로 끔찍한 만행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지방관들이 반목과 분열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흥, 실로 우스운 결과로군.”
원소가 빠르게 분열하는지방관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금발의 미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에게 모든 물자를 빼앗겼던 좌장군(左將軍) 원술이었다.
“대체 뭐가 우습다는 거죠, 원공로.”
“너희들이 주장했던 대의명분은 그저 허장성세였을 뿐, 그 이면은 결국 추악한 욕망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다. 비천한 잡것아.”
원술로부터 폭언을 듣게 된 원소가 손을 들어 올리면서 신호를 보냈다.
그에 원소를 호위하던 두 맹장들이 병장기를 들면서 원술을 위협했다.
안량과 문추가 무거운 위압감을 발산했다. 그에 원술은 건방을 떨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꼬리를 말고 말았다.
“지금부터 나는 내 병력을 이끌고 남양군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당신은 있어 봤자 방해만 될 테니… 남양군으로 썩 돌아가시죠.”
“큭!”
원소를 향해 난폭한 적의를 드러낸 원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외쳤다.
분함과 노여움에 찬,
복수심에 불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원소의 눈에는 그저 가소롭게 보일 뿐이었다. 사세삼공 가문의 무능한 자제가 제 분수도 모르고 설쳐 대는 모습에 불과했다.
“네년은 물론… 조맹덕에게도 전해라! 군중에서 입은 치욕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고!”
원술은 여남원씨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원인이 된 원소를 향해, 그리고 조조를 향해 복수심을 발산했다.
반드시 수모를 갚아주겠노라고.
군중에서 당했던 온갖 치욕을 모두 되갚아주겠노라며 구차한 증오를 드러냈다.
“주군, 어찌할까요.”
원술이 등을 보이면서 군막을 떠나자 안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회를 노려 원술을 추살하겠다는,
대명문가의 적손이 군중을 떠나기 전에 없애버리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원소는 안량의 제안에 고개를 내저었다.
“여남원씨 가문의 적자를 제 손으로 죽일 순 없는 일이죠. 그냥 두세요. 결국 원공로는 자기 무능함과 제 분수도 모르는 용렬함에 자멸하게 될 터이니.”
금발의 여인은 목표와 목적을 잃은 제후군이 스스로 해산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었으며,
물자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싸움에 나섰던 장졸들은 크게 지친 상태였다.
제후군의 맹주인 자신이 해산을 선언하는 것은 명성에 큰 지장을 주는 일이 될 것이므로, 원소는 원술을 이용하여 반목과 분열을 일삼고 있는 제후군을 해산시키려 했다.
‘원공로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 불리함을 깨달은 지방관들이 임지로 돌아가려 할 테죠.’
지방관들이 서로 떠나려 할 때,
그녀 자신은 원통함을 호소하면서 떠나려는 그들을 만류할 생각이었다.
황실과 조정에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어찌 황제 폐하와 조정대신들의 곤경을 좌시한단 말인가! 설령 최후의 일인까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황실과 조정을 위해 싸워야 마땅하다!
그런 마음에도 없는 충심과 협기를 외치면서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했다. 천하의 명사들을 휘하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인 ‘보여주기’였다.
‘과연 성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병주군과 함께 하내군으로 향했다던데…. 우리 동생이 악독한 무리들에게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금발의 여인이 한숨을 내쉬면서 그가 돌아오기를 염원했다.
* * *
좌장군 원술은 이성휘와 함께 하내군에 있을 손견에게 전령을 보낸 뒤, 군세를 이끌고 남양군으로 퇴각하였다.
원술이 군중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자중지란을 일삼던 지방관들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여러 핑계를 대면서 회군을 서둘렀다.
“역적에게 끌려간 황제 폐하와 조정대신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한나라의 신하라는 자들이 철군을 논한단 말입니까!”
원소가 노여움에 찬 목소리로 철군을 서두르는 지방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후군의 해산을 가장 원하면서도,
짐짓 속마음을 숨기고 충신의 결연한 면모를 지방관들에게 보여 주었다.
원소의 결연한 충심과 협기에 지방관들은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의욕을 잃은 그들은 맹주에게 깊은 사과를 보내면서 철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밝혔다.
“미안하오, 맹주.”
“정북장군의 의로운 마음은 잘 알고 있으나… 결국 철군할 수밖에 없게 되었소.”
낙양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에 지방관들은 그 어떤 전리품도 얻지 못했다.
전리품을 얻지 못한 전쟁.
병력과 물자를 쥐어짜네어 전쟁에 참전한 지방관들의 처지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였다.
잿더미 속으로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것은 없었기에 지방관들은 한 줌 남은 병력과 물자만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철군을 선택했다.
“주군.”
원소의 노림수대로 제후군에 참전했던 지방관들이 하나둘씩 임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통한과 노여움에 찬 충신의 면모를 연기하면서 군중에 잔류하고 있던 장졸들을 향해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구출을 호소하던 원소에게 문추가 다가왔다.
“정동장군과… 어림총사가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조조와 이성휘가 마침내 본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원소가 화색을 지었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하얀 백합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만개했다.
무뚝뚝하지만 귀여운 동생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통한에 젖은 충신의 모습을 보이던 원소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망각할 정도로 기뻤는지, 찬연하게 빛나는 햇볕처럼 아름다운 환희를 머금었다.
“그런데 조조군이…, 여포가 이끄는 병주군까지 대동한 채 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문추의 뒤이은 후속보고에 원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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