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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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필마로 낙양과 사예주 군현들을 요동치게 만들었으며, 부하들을 위해 양부의 목을 베는 과감한결단력을 보여 준 여포의 모습을 본 가후는 그녀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무력과 용맹으로 천하를 경악하게 만든 이 군웅을 따른다면 필시 자신 또한 천하제일의 군사로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듯,
병주의 비장을 따르겠노라 선언했던 맹세가 중원제일 검 이성휘를 보고서 변심이 일어났다.
‘여포와 이성휘, 용과 호랑이에 비견될 정도로 쟁쟁한 무명과 명성을 떨친 두 무인들이 서로 손을 잡는다면 천하를 도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
어째서 이 완벽의 무인이 주인을 섬기는 수하를 자청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천하를 도모할 역량이 충분한데도.
천하를 제패할 자질 또한 충분함에도.
천하를 호령하며 만민들을 무릎 꿇리는 패왕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자기 무용(武勇)을 오직 주인을 향해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가후는 그것이,
너무도 아깝다고 생각했다.
“중랑장과 병주군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함인가요?”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답했다.
“그래.”
“흐응….”
자기 물음에 곧바로 대답을 꺼낸 이성휘의 모습에 가후가 색기에 젖은 비음을 흘렸다.
참 재밌는 사람이다.
여포도 물론 재밌는 여자였지만…,
이 사내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가후는 이성휘라는 사내를 향해 좀 더 흥미를 가지기로 했다.
“중랑장과 병주군을 우군으로 두게 된다면 큰 전력이 될 거예요. 점점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는 세력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겠죠. 어쩌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 힘이 될지도 모르고요.”
하북(河北)의 원소와 하남(河南)의 조조.
관중(關中)을 포기하고 관서(關西)로 달아난 동탁.
세력권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기주(冀州)와 연주(兗州)를 세력으로 두고 있는 원소와 조조가 난립하는 중소 군벌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면서 이강(二强)의 구도가 만들어질 터.
천하를 도모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려 한다면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뛰어난 무력과 드센 용맹으로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하였던 여포와 병주군의 힘이라면 능히 가능하겠지. 그렇기에 그들을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는 조정군으로 포섭하려는 거다.”
“흐음.”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철회.
뜻밖에 고리타분하고,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성휘가 한 대답은 가후가 최악이라고 꼽기에 충분한 가장 끔찍한 말이었다.
“천하를 도모할 정도의 힘이 있는데… 그걸 황실과 조정에 넘긴다고요?”
“그래.”
“어째서죠? 이해할 수 없네요.”
“너를 이해시킬 생각은 없다.”
가후의 내심을 눈치챘는지,
이성휘의 시선이 청강검의 칼끝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날카로운 시선을 받게 된 가후는 전율과 두려움을 느끼고는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뇌리를 찌르고 폐부를 베는 것처럼 매섭고 무자비하다. 무거운 위압과 날카로운 적의는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하아…, 진짜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네요.’
요염한 매력을 풍기는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들뜬 한숨을 내뱉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하제일의 무위와 용력.
거기에 자기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여 형양의 매복에 쓸 정도로 지모와 판단력 또한 뛰어났다.
그리고 또한,
이 남자는 좌중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께서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이 가문화,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사옵니다.”
가후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면서,
훗날 자기 주군이 될 사내를 향해 극존칭을 사용했다.
‘무능한 백치들이 모인 황실과 조정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에 토악질이 나올 지경이지만… 이 곤란한 주군을 구슬리기 위해서라도 우선 친해지는 게 먼저겠죠.’
시커먼 속셈을 숨긴 채,
이성휘에게 뜻에 동조하겠노라 말했다.
자신과 여포를 좌우에 거느리게 된다면 필시 만인지상의 권력을 서서히 탐하게 될 터. 그 욕망과 야욕을 이용하여 야심을 꿈꾸게 만든다면 천하를 벌벌 떨게 만들 폭군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 * *
사도(司徒) 왕윤이 조정대신들과 오랜 상의를 나눈 끝에 여포와 병주군에게 낙양에서 세운 활약들을 참작하여 죄를 사면한다는 교서를 내렸다.
모든 죄를 사면하는 조건으로,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는 한나라의 군대로 삼았다.
중랑장이었던 여포를 분위장군에, 여포의 휘하였던 장료와 고순을 중랑장으로 삼았다. 또한 병주군의 무관들 또한 모두 교위로 임명했다.
“저 녀석들을 진짜 믿어도 돼? 물론 낙양에서 목숨을 구해 준 건 고맙긴 하지만… 맹덕에게 상의도 없이 멋대로 결정하는 건 조금 곤란한데.”
하후돈이 불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조인도 공감하는지,
팔짱을 낀 채 거부감을 내비쳤다.
“어림총사의 결정이기에 감히 반대를 할 순 없습니다만 여포는 신뢰할 수 없는 자입니다.”
병주군을 황실과 조정을 수호하는 군대로 삼는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많은 활약을 한 것은 인정한다.
그들이 세운 공헌 또한 죄를 덮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주군을 살해하고 역적에게 의탁했던 군대를 우군으로 들인다는 것은 매우 꺼림칙했다.
“제가 맹덕 님을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하후돈의 조인의 우려를 들은 이성휘는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성휘의 확고한 답변에 조조군 장수들은 불안감이 감도는 눈빛을 보내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맹덕이 허락을 한다면야 나도 별말은 안 하겠지만, 맹덕을 설득하긴 쉽지 않을 걸.”
“여포와 병주군이 조정군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황실과 조정의 힘이 강성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언니께서 그것을 허락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성휘는 조조를 설득하기 위한 방법들을 궁리했다.
어떻게 조조를 설득할 수 있을까.
상당한 준비와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토끼 귀 머리띠를 쓴 백발의 여성이 홍옥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의자매들과 함께 다가왔다.
낙양에서 장료와 함께 백성들을 불길에서 구출했던 유비군은 그 활약을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이후에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관직과 봉토를 하사받을 예정이었다.
궁핍하고 열악했던 살림살이가 이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물들었는지 세 자매들 중 막내, 붉은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묶은 소녀의 안색이 크게 밝았다.
“이, 이제 드디어 술을 마음껏 마실수 있어…. 배고플 때마다 매일 맹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나날들도 이제 청산인 것이야…!”
중원 전역을 거렁뱅이처럼 떠돌면서 궁상과 궁태를 떨어야 했던 비참했던 나날들.
장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번 동탁 토벌전에 나서기를 정말 잘했다며 기대에 벅찬 반응을 보였다.
“황실과 조정에 잘 말해 두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무리하진 않으셔도 되는데… 부디 부탁하겠습니다.”
이성휘의 말에 짐짓 사양하는 말로 대답하려 했던 유비였으나, 계속 사양하다가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막내의 강렬한 눈초리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크흠.”
벼슬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름다운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동생을 노려보면서 헛기침했다.
“왜, 왜? 벼슬 받으면 좋잖아. 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까 현위나 현령 같은 자질구레한 관직도 아닐 테고.”
둘째 언니의 눈초리에 몸을 움찔 떤 막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관우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찔 떠는 모습을 보였다.
“어림총사, 언제쯤 전쟁이 끝날까요? 동탁은 서쪽으로 도망쳐 버렸고, 도모하려 했던 낙양도 모두 잿더미가 되어 버렸으니…,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유비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이성휘에게 말했다.
토벌하려 했던 적은 장안으로 도망쳤고,
도모하려 했던 낙양은 잿더미가 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손아귀에 쥔 중앙 권력을 이용하여 천하를 집어삼키려 했던 동탁의 야욕을 꺾고 관서로 몰아냈으니 응당 관동 제후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 전쟁은 분명 양패구상(兩敗俱傷), 모두가 패배하여 상처를 입게 된 양패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곧 끝날 겁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말입니다.”
유비의 물음에 이성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황제 유변을 구하지 못했다.
작은 황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쓰라린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냐며, 어째서 역적에게 붙잡힌 오라비를 구하지 못했나며 황녀로부터 노여움에 찬 힐난을 받게 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총사!”
복숭아나무 세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무관이 다급한 걸음으로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낭보를 가져 왔는지,
기쁨과 환희의 감정을 무관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정동장군께서 이곳 하내군으로 오시고 계십니다!”
“맹덕 님께서…?”
마침내 제후군이 난공불락의 요새인 사수관을 돌파하여 낙양에 입성하였다.
잿더미가 된 낙양을 보았을 터.
낙양을 급습했던 아군 군세가 하내군으로 잠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곧장 오고 있는 것이리라.
조조가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이성휘는 우아한 매력을 머금은 흑발의 여인과의 재회에 기쁜 마음을 발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포와 병주군의 처우에 대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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