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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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관에서 출병한 조조군과 원소군은 마침내 낙양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니,
낙양… 이었던 것에 도달했다.
불바다에 휩쓸려 잿더미가 되어 버린 몰락의 폐허를 목격하게 된 조조와 원소는 자기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여기가 바로… 낙양이란 말인가요?”
새하얀 갈기를 가진 백마를 타고 있던 금발의 여인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옆을 호위하고 있던 안량이 경악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아, 아마도 그런 갓 같습니다….”
한나라의 영화와 번영을 상징해온 낙양이 한순간에 새카만 그을음이 되고 말았다.
상단을 수용하던 객잔들도,
낙양 사대부와 호족들의 부와 권위를 뽐내던 가택들마저도 잿더미가 되었다.
그리고 수십만 호(戶)를 수용하던 시가지와 주거지역들 또한 건물을 쌓아 올리는데 사용되었던 주춧돌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동중영, 이 역적 놈이!”
“우리가 사수관 너머에서 보았던 그 그을음 연기가… 낙양에서 솟구치던 연기였단 말인가!”
낙양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산양태수 원유와 광릉태수 장초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탈환하려 했던 한나라의 수도가,
만고의 역적으로부터 되찾으려 했던 목적지가 잿더미로 사라졌다.
우여곡절을 수차례 넘긴 끝에 사수관을 넘어 낙양에 도달하게 된 지방관들은 허망함을 금할 수 없었는지 침통한 헛웃음을 흘렸다.
“주군.”
호위장 허저가 몰락의 정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던 흑발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뒷모습을 보이고 있던 조조는 묵묵부답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판단이 서게 되었는지 조조가 손을 뻗으면서 허저에게 명을 내렸다.
“중강, 척후들을 모두 낙양으로 보내어 부관의 행방을 찾도록 하라! 반드시 살아 있을 터…! 부관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주군.”
조조는 척후들을 동원하여 이성휘의 행방을 추적하려 했다.
동탁 군이 벌인 낙양 대방화.
숭산 전투의 참패로 심리적 궁지에 몰리게 된 동탁은 동귀어진을 각오하듯 낙양에 불을 지른 게 분명했다.
지방관들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행방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조조와 원소는 이성휘의 행방에 모든 전력을 집중했다.
“문추! 어서 어림총사의 행방을 찾으세요!”
“예!”
금발의 여인이 손톱을 까득 깨물면서 노심초사하는 반응을 보였다.
온몸을 애처롭게 떨면서,
불길함에 찬 눈길로 낙양 도처를 불태우고 있는 불길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성휘가 불길에 휩쓸린 것은 아닐까. 저 끔찍한 참화에 부상을 입진 않았을까 진심으로 그를 걱정했다.
“이제 어찌하면 좋소이까…!”
“역신의 손아귀에 넘어간 낙양을 구원하여 가문의 명성을 떨치려 했건만!”
지방관들은 불타 사라진 낙양의 정경을 보며 한탄하는 한편, 역신을 척결하고 사직을 구한 충신이라는 명성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잿더미로 변한 것에 허탈감을 느꼈다.
대체 우리는,
뭘 위해서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고관의 벼슬과 빛나는 명성을 기대했던 지방관들은 낙양에 그을음과 잿더미 밖에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정동장군 어르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낙양으로 향한 척후병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가 도처에 쥐 새끼처럼 숨어 있던 동탁 군의 탈영병을 잡아왔다.
이미 탈영병에게 이실직고를 받아 냈는지 척후병들은 어림총사의 행방을 찾아냈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림총사가 분명 군세를 이끌고 낙양을 공격했을 터! 대체 어디로 갔지? 사실대고 고한다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포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검을 뽑아 든 조조가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면서 척후병들이 붙잡아 온 동탁 군의 탈영병을 향해 물었다.
그에 탈영병이 다급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주, 중원제일 검은 북쪽으로 갔습니다!”
“북쪽? 하내군 방면인가….”
북쪽으로 향했다는 탈영병의 답변에 조조는 이성휘가 동탁 군의 추격을 피해 하내군 방면으로 향했으리라 추측했다.
하내군은 가까운 지척에 위치한 군현이다.
만약 자신이 이성휘였더라도 군세를 이끌고 하내군으로 향했을 것이었다.
이성휘가 하내군으로 향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 조조는 진군 준비를 명령했다.
“대체 낙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중랑장 여포가 병주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낙양은 병주군의 습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뒤이어 중원제일 검의 군세가 아수라장이 된 낙양을 급습했습니다.”
“여포와 병주군이 반란을 일으켰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양부였던 무맹도위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에게 투항했던 여포가 휘하 군세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놀란 반응을 지었다.
여포가 반란을 일으켰다.
전쟁에 승산이 없음을 알고 배신을 꾀한 것이리라.
크게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여포는 궁지에 몰리게 되자 양아버지의 목을 베는 패륜을 범한 무장이 아닌가. 주군을 향한 배신과 변절은 당연했다.
“배반의 무장이 동탁을 배신했다는 말이군.”
“정원에 이어 동탁까지 배신하다니… 주군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반골이 아닌가.”
탈영병의 이야기를 들은 지방관들은 여포를 ‘주인을 무는 개’라 부르면서 여포를 힐난했다.
충의도 충절도 없는,
눈앞의 실리에 따라 행동하는 반골.
역적과 반골의 싸움으로 낙양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며 지방관들은 동탁과 여포를 규탄했다.
“그럼 여포와 병주군은 어떻게 되었죠?”
원소가 물었다.
그에 탈영병이 대답했다.
“중원제일 검과 의기투합하여… 함께 하내군으로 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휘와 여포가 상투하여 하내군으로 함께 향했다는 사실을 동탁 군의 탈영병으로부터 듣게 된 조조와 원소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포를 따라 하내군으로 향했다니요!”
그럴 리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탈영병이 이실직고한 이성휘가 하내군으로 향했다는 말과 여포가 낙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말을 받아들였지만,
이성휘와 여포가 서로 의기투합하여 하내군으로 향했다는 정보에 대해서만큼은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
“사, 사실입니다…! 낙양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봤습니다!”
조조와 원소에 이어,
다른 지방관들 또한 불신하는 반응을 보이자 탈영병이 황급한목소리로 소리쳤다.
거짓 정보를 흘리는 첩자로 내몰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조조 군의 척후병들에게 붙잡혀 온 동탁 군의 탈영병은 악에 받친 모습을 보였다.
“만약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네놈의 수급을 친 다음에 그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장강의 물고기 밥으로 던져 버리겠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지독한 살의를 드러내면서 입을 연 흑발의 여인이 칼끝을 겨눈 채 일방적인 경고를 보냈다.
* * *
황실과 조정에서 충성하는 조정군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지금까지 범했던 모든 죄들을 사면해주겠다는 제안을 듣게 된 병주군은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중원제일 검이 선뜻 내민 호의에 의구심을 느꼈다.
낙양에서 거병한 뒤에 갈 곳을 잃은 우리를 이용해먹을 생각이라며 강한 의심을 보이는 장수들이 있는 반면, 과거의 오명들을 모두 청산하고 다시 무명을 떨칠 기회라며 제안을 반기는 이들 또한결코 적지 않았다.
“한나라의 검이라 불리는 중원제일 검이 설마 황실과 조정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겠소?”
“허나 가벼이 걱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큰 타격을 입었던 관동 제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황실과 조정이 우리들의 죄를 사면해준다는데 저들이 별수 있겠소.”
송헌과 위속, 후성 등의 병주군 장수들이 모여 이성휘가 건넨 제안에 대해 쑥덕거렸다.
낙양의 전소로 갈 곳을 잃었다.
병주로 다시 돌아가거나 이곳 하내군에서 거병한다는 방법도 있겠지만 평생 오명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었다.
여포를 따라 오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병주군 장수들이었지만, 내심 천하에 무명을 떨치고 싶다는 야욕을 품고 있었는지 이성휘의 제안을 계속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헌데… 이 시급한 때에 문원 교위는 어디 있는 것인가?”
“군사와 함께 있을 겁니다.”
“흐음! 군사에게 식견을 묻고 있는 모양이군.”
비장은 과연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교위 장료와 군사 가후는 중원제일 검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를 알고 싶었다.
자신들이 머리를 맞댄 채 심사숙고를 계속 거듭해봤자 결국 여포와 여포의 측근인 장료와 가후의 의중이 제안의 대답에 크게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장료로부터 중원제일 검이 건넨 제안을 듣게 된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면서 제안을 건넨 당사자를 만났다.
그는 연무장처럼 마련된 공터에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터에 몸소 찾아온 자기 모습을 보았는지 중원제일 검이 휘두르던 날카로운 칼끝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무거운 시선을 향했다.
“저희 중랑장에게 두 팔 벌려 환영할 제안을 건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사내의 엄중한 목소리에 가후는 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분위기에 압도 되었다고 할까.
마치 날카로운 칼끝이 목덜미에 겨눠진 것 같았다.
‘과연 중원제일 검이라고 해야 하나요…. 설마 위압으로 저를 압도하다니. 서량 출신의 사나운 장수들이 패악을 떨치는 모습들을 여러 번 지켜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은 처음이예요.’
만약 이 사람이,
만약 이 고결한 사람이 사악하고 흉포한 성정을 가진 폭군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며,
천하의 모든 만민들을 모두 공포와 두려움으로 무릎 꿇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포와 일시적인 동맹을 맺으면서 병주군의 군사가 된 가후는 이성휘에게 흥미 젖은 눈길을 보냈다.
그를 잘만 구슬린다면… 자기 ‘취향’에 맞는 폭군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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