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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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여러 측근들을 제치고 동탁에게 사수관 전선의 도독(都督)에 임명될 정도의 깊은 신임을 받는 서량의 명장이다.
군략이 뛰어난 장수가 적들의 추격에 대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를 증명하듯,
산기슭을 통과한 제후군을 향해 매복을 벌였다.
“절대로 살려 보내지 마라!”
“멍청한 놈들! 우리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보였더냐!”
산기슭에 매복하고 있던 동탁 군 병사들이 날카로운 창검을 치켜든 채 비탈길을 내려왔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거센 화살세례에 제후군 병사들은 혼비백산하며 진형을 무너뜨렸다. 동탁 군의 숙련된 정예들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윽고 살육이 벌어지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학살에 가까웠다.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인가!”
“적들의 매복입니다! 놈들이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미리 군사를 배치한 겁니다!”
연주자사 유대의 외침에 그를 호위하던 무관이 대답했다.
적들의 매복에 빠지고 말았다.
서영에게 움직임을 완전히 간파당했다. 분명 아군이 낙양으로 향할 것을 간파하고 미리 매복을 산기슭에 배치한 것이리라.
“으, 응전하라! 적들을 향해 반격하라!”
유대가 소리쳤다.
그러나 강행군을 계속 반복한 터라 장사진처럼 길게 이어지게 된 병력은 갑작스러운 매복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병력은 다시 뭉치지 못한 채, 동탁 군의 맹공에 차례대로 궤멸되었다.
“크하악!!”
비장군(卑將軍) 포도가 활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제북상 포신의 동생으로,
어떻게든 혼란에 빠진 장졸들을 수습하기 위해 전장을 누비던 중에 눈먼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서 퇴각하라! 퇴각을 알려라! 설마 적들이 이 산기슭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동생 포도가 쓰러진 것을 본 포신이 무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적들의 매복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모든 병력을 잃기 전에 서둘러 전장을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말머리를 돌린 포신은 다시 사수관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장창을 치켜든 채 달려든 서영이 포신을 찔러죽였기 때문이다.
“커헉──!!”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포신이 쓰러졌다.
포도에 이어 제북상 포신이 전사했다.
그 소식이 알려지게 되자 포신 휘하의 병력들이 사분오열하여 흩어졌다.
“그게 사실이냐!”
“제, 제북상이 전사했다니…!”
포신의 휘하 장수였던 우금이 혼란 속에서 병력을 수습하고 있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소수로 다수를 이기지 못하듯,
노련한 경험과 뛰어난 군략을 갖춘 맹장을 상대로 싸우게 된 책상머리 샌님들은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멍청한 놈들! 너희 허수아비 같은 것들이 이 서영의 상대가 될 것 같은가!!”
매복에 빠진 제후군을 급습한 병력들은 잔뼈가 굵은 굴지의 강병이다.
백전을 경험한 바가 있으며,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들을 벌인 경험이 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가 토끼의 목덜미를 물어뜯듯이, 서량의 강병이 관동의 잡졸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공세를 벌였다.
“자사, 퇴각해야 합니다!”
동군태수 교모가 소리쳤다.
그에 연주자사 유대는 격앙된 표정을 지으면서 검을 치켜들었다.
“어찌 태수께서는 간악한 역도들에게 등을 보이려고 하시오! 끝까지 싸워야 하오!”
“허나 제북상이 전사했고 병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승산이 없습니다!”
아군 병사들이 병장기를 내버린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군기까지 바닥에 내던진 채로 도망치는 병사까지 있을 정도였다.
실로 오합지졸 같은 모습이다.
대의(大義)와 충용(忠勇)을 부르짖으면서 낙양을 도모하려 했던 군대의 꼴사나운 결말이었다.
교만과 야욕에 빠져 무턱대고 군세를 이끌었던 지방관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군사를 모르는 문외한들이 감히 서량의 명장인 서영을 상대로 군세를 가벼이 움직인 것에 대한 징벌이었다.
“유대와 교모가 저기 있다!”
“어르신께서 관직을 내려주셨거늘…! 저 배은망덕한 놈들의 목을 쳐라!”
토끼처럼 도망치는 제후군 병사들을 살육하던 기병대가 유대와 교모를 발견했다.
연주자사(兗州刺史) 유대.
동군태수(東郡太守) 교모.
유대와 교모의 펄럭이는 대장기를 본 동탁 군의 기병대가 날카로운 창을 치켜들었다.
반기를 든 지방관 놈들의 수급에 어마어마한 상금이 달려 있다. 유대와 교모를 발견한 동탁 군 기병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매우 당연했다.
“으, 으아악!!”
어서 퇴각해야 한다는 교모의 절박한 외침에도 결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꿋꿋하게 버티려던 유대가 돌연 비명을 내질렀다.
날랜 기병들이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백면서생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 리 없다.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던 것은 황실 종친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일 뿐, 죽음이 코앞으로 들이닥치게 되자 곧바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머, 멈춰라! 나는 고황제(高皇帝)의 장남이신 제왕(齊王)의 후예인 시중(侍中) 유공산이다! 감히 나에게 손을 댄다면 천하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비명을 내질렀던 유대가 짐짓 호령하듯 근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수급을 벨 생각뿐이었던 동탁 군 기병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크허억!!”
날카롭게 벼린 창이 유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갑옷을 단번에 박살 내고,
두려움에 쿵쿵 떨리던 심장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든 기병이 동군태수 교모의 목을 베어 버리면서 목적을 달성했다.
“역적 유대가 죽였다!”
“역적 교모도 참살했다!”
동탁 군 기병들이 갓 목을 벤 유대와 교모의 수급을 번쩍 치켜들었다.
반란의 수괴들을 죽였다.
반기를 든 관동의 두 역적들을 죽였다.
아군이 버리고 떠난 사수관에 입성하자마자 그 뒤를 쫓을 것을 예상하고 산기슭에 매복을 펼친 서영은 연주자사 유대와 동군태수 교모, 제북상 포신의 수급을 베는 대승을 거뒀다.
“퇴각하라! 전군 퇴각하라!”
포신의 부하 장수였던 우금이 장졸들을 이끌고 산기슭에서 후퇴하였다.
급습을 당한 지방관들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휘하 장수들 또한 퇴각을 선언하면서 사수관으로 도망쳤다.
“뒤를 쫓아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우리 서량인들의 공포를 재차 보여주겠다!”
창을 든 서영이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면서 등을 보이며 퇴각하는 제후군을 추격했다.
그에 동탁 군 기병들 또한 합세하여 제후군을 맹렬히 뒤쫓았다.
* * *
도독 서영은 병장기를 내버린 채 도망치는 오합지졸의 배후를 계속해서 공격하면서 난폭한 기염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수관에 주둔하던 정동장군 조조가 이끄는 병력이 출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추격을 접어야 했다.
연주(兗州)의 패자가 이끄는 병력을 상대로 교전을 벌이는 것은 서영에게도 큰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구원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동장군!”
제북상 포신의 휘하였던 우금이 조조에게 예를 취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만약 정동장군 조조가 패전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오지 않았다면 도독 서영의 추격부대에 전멸하는 최악의 참사를 맞이했으리라.
제북상 포신의 휘하를 비롯하여,
연주자사 유대와 동군태수 교모의 휘하들 또한 조조에게 예를 취하면서 감읍함에 찬 모습을 보였다.
“자사는… 태수와 상은 어찌 되었나?”
조조가 물었다.
그에 우금이 침음을 삼키면서 입을 열었다.
“연주자사께서도, 태수와 상 어르신께서도 모두 적의 매복에 빠져 전사하셨사옵니다!”
군세를 이끌고 낙양으로 진격했던 지방관들이 모두 전사했다.
연주자사 유대.
동군태수 교모. 제북상 포신.
모든 지방관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에 흑발의 여인이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호령하며 혼란을 진정시켰다.
“모두 동요하지 마라. 지금부터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적의 급습에 대비해야 한다. 좌중을 어수선하게 만들어 군기를 어지럽히는 장졸이 있다면 군법에 따라 효수하겠다.”
“예, 정동장군!”
냉철함과 잔혹함을 겸비한 군주의 명령에 조조 군은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게 되었다.
창검을 든 정예병들이 경계를 섰으며,
또한 정북장군 원소와 함께 낙양으로 진격하기 위한 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서영의 매복에 궤멸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장졸들은 일시적으로 조조의 휘하에 편입되어 재정비를 갖추게 되었다.
“교활하군요.”
“무슨 말인가?”
원소의 말에 조조는 천연덕스럽게 보일 정도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에 원소가 재차 말했다.
“서영이 길목에 매복할 것을 알고 의욕에 찬 지방관들을 말리지 않은 거군요.”
“처참한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모두 그들의 운이다. 내가 만류했다고 해서… 그들이 말을 들어줬겠나? 공을 세우고 명성을 날릴 생각에 군령을 무시하고 군세를 움직였겠지.”
공명심에 휩싸여 무리하게 군세를 움직였다가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다.
제 분수도 모르고,
허황된 명예와 전공을 독식할 욕심에만 집중하느라 풀밭에 숨은 독사의 존재를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군세를 지휘했던 지방관들이 계속 강행군을 명령하여 전열을 길게 늘어뜨렸다는 말을 우금으로부터 듣게 된 조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몰래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도 본초, 지금은 부관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네, 알고 있어요.”
관동 제후군은 여전히 낙양의 상황에 대해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하늘을 뒤덮을 것처럼 무자비하게 치솟고 있는 저 그을음의 연기는 무엇인지.
진류태수 장막의 증원군과 합세하여 낙양을 공격했을 이성휘는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무엇 하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미지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조조와 원소는 한시라도 빨리 군세를 재편성하여 낙양을 도모하려 했다.
“주군, 서영이라는 놈이 또 꾀를 부리지 않겠습니까?”
“서영은 크게 전공을 세웠으니 그에 만족하고 돌아갔을 거다. 서영이 낙양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항전을 꾀했다면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지방관들이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내줬기 때문에 안심하고 진군하면 된다.”
새하얀 피부가 아름다운 흑발의 여인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유대. 교모. 포신.
그들에게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미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관동에서 반기를 든 수괴들의 수급을 손에 넣은 서영은 크게 만족하면서 물러났을 터.
‘연주에서 거병한 너희의 존재는 나의 패업에 방해만 될 뿐이다. 연주는 오로지 이 조맹덕의 영역, 누구도 감히 차지할 수 없다.’
세입자처럼 연주에 빌붙어 세력을 형성하려는 유대와 교모, 포신은 조조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한 연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제 그 역할을 다 했으니 무대에서 퇴장해야 마땅했다.
서영을 이용하여 연주의 군벌들을 모두 처리해 버리는 차도 살인(借刀殺人)을 행한 조조는 그들이 이끌었던 군세를 모두 흡수하면서 힘을 증강시켰다.
“진 채를 뽑아라. 낙양으로 간다.”
후환이 될 가능성이 높은 정적들을 제거했으며, 서영을 물러나게 만들어 낙양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덕분에,
덕분에 사랑하는 부관에게 조금 더 일찍 갈 수 있게 되었다.
‘귀관,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갈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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