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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39화 (139/616)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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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일생으로 불바다에 잠긴 낙양을 무사히 탈출하게 된 백성들은 병주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내군(河內郡)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내군은 사예주의 다른 군현들에 비해 낙양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으므로 피로에 지친 백성들이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낙양을 탈출한 인원은 1만 여 명.

병주군의 활약 덕분에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었다.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형양에서 우리들한테 호되게 깨지지 않았나?”

피칠갑한 붉은 머리카락의 여걸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두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하후돈이었지만, 병주군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이었다.

“함정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인 또한 하후돈과 마찬가지로 병주군이 선한 호의를 가장한 속셈이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적의 포위에서 구해 준 것은 고마우나,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덥석 믿을 순 없었다.

게다가 하후돈의 말처럼 병주군은 조조 군의 매복에 걸려 형양에서 참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병주의 비장인 여포도 이성휘에게 큰 중상을 입고 쓰러지지 않았던가.

“만약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독 서영이 정예군단을 몰고 낙양을 향해 오고 있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성휘가 입을 열며 말했다.

서량의 명장이 올지도 모른다.

또한 사수관 전선에 배치된 동탁 군 병력은 화웅이 이끌었던 금군(禁軍)에 못지 않은 정예였다.

사수관의 정예군단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낙양에서 접전이 벌어지자마자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갈 게 분명했다. 동탁 군과 장시간 교전을 치렀던 조조 군의 상태는 최악에 가까웠다.

“다시 의양으로 회군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 뿐 더러…, 황후 폐하와 궁녀들을 대동하는 상황에서 강행군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의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수관에서 출격한 서영의 정예군단에게 후미를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고를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병주군의 호의를 받아들여 함정일지도 모르는 하내군으로 향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병주군의 목적인 황후인가. 양부를 배신하고 역신에게 투향했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병주군은 어떻게든 그 오명을 벗고 싶어 할 터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째서 병주군이 도와 줬는지.

무슨 이유로 함께 하내군으로 가자는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인지.

이해되질 않았다. 피차간에 낙양에서 많은 소요들을 겪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향해 스스럼없이 호의를 건넬 정도의 관계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정은 내리셨나요?”

이성휘가 조조의 종친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하얀 갑옷을 입은 흑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교위 장료.

신궁(神弓)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귀신 같은 활 솜씨로 동민을 말에서 떨어트린 여걸이었다.

후일 서주에서 패배하여 조조 군에 투항하게 될 장수였지만 지금은 병주군의 장수로서 여포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보내고 있었다.

“…….”

장료의 물음에 이성휘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또한 하후돈과 조인 또한 그녀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대한 빨리 낙양을 떠나야 해요. 사수관에서 출진한 병력이 언제 도달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성휘에게 의사를 물었던 장료가 재차 재촉하면서 결단을 요구했다.

낙양을 탈출한 백성들의 대부분이 하내군으로 이주를 끝낸 상황이었고, 이제 황후 당씨와 궁녀들을 호위하는 조조군이 마지막으로 떠날 차례였다.

“뭐야, 우릴 못 믿겠단 거야? 기껏 호의를 베풀어줬으면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여야지.”

붉은 갑옷을 걸친 금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새하얀 얼굴에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선혈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로 이성휘를 쏘아 보았다.

천하를 뒤흔들었던 맹장의 시선이 중원제일 검을 향했다.

그러다 부끄러웠는지…,

잠시 시선을 마주했을 뿐임에도 옆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수줍음에 물든 한숨을 흘렸다.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다.”

이성휘가 여포를 향해 말했다.

그에 여포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꺼냈다.

“너도 궁궐에서 날 구해줬잖아? 피차일반이지. 그러니까 서로 빚진 건 없는 거라고. 물론 언젠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지위를 걸고 싸우게 되겠지만.”

상아처럼 빛나는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이성휘를 향해 호승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비록 한 번 패하였으나,

중원제일 검을 도모하겠다는 의욕과 욕망은 여전했는지 과감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과연 백전불굴(百折不屈)의 맹장답다고 할까. 수많은 악재와 억압들 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는 모습들을 보였다.

“자네! 이성휘 맞는가…?!”

거지처럼 남루한 옷차림새를 한 노년의 남성이 무리를 이끌고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상투관은 어디로 갔는지,

다가온 남성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산발처럼 풀어 헤친 상태였다.

누가 남성의 얼굴을 알 수 있겠는가. 이 남성이 삼공(三公)의 하나인 사도(司徒)이며, 조정의 여론을 주도했던 청류파의 영수라는 것을 말이다.

“어르신!”

꾀죄죄한 노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 뒤에야 왕윤임을 알게 된 이성휘가 황급히 예를 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수척해진 얼굴과 산발이 된 머리.

왕윤과 그 일행들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조정대신들을 호령했던 왕윤이 거지꼴로 나타난 것을 하후돈과 조인 또한 이성휘처럼 청류파의 영수를 향해 예를 취하면서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저는 어르신께서… 동탁 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실 줄 알았습니다.”

“중랑장이 도운 덕분일세. 역적들에게 쫓기는 와중에 살아남을 수 있었네.”

여포가 동탁 군에게 쫓기던 왕윤을 구해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성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여포가 나서지 않았다면 왕윤은 동탁 군의 손아귀에 붙잡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유협에게 동탁에게 붙잡힌 황제를 반드시 구해 오겠노라고 다짐했듯이, 초선에게도 양부를 무사히 구하겠다고 약속했었기에… 위기에 놓인 왕윤을 구한 여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진류왕 전하께서는 무사하신가?”

왕윤의 물음에 이성휘가 답했다.

“예, 무사합니다. 그리고 초선 소저 또한 무사합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진류왕 유협은 물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수양딸 또한 무사하다는 이성휘의 말에 왕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지금부터 어르신을 모시겠습니다.”

이성휘는 여포의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하내군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병주군은 신용할 수 없었다.

형양에서 사투를 치른 적들을 어떻게 덥석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길에 갇힌 낙양 백성들을 구출한 것은 물론, 청류파의 영수인 사도 왕윤을 구출하는 활약까지 세운 여포가 교활한 함정을 팠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병주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관동 제후군은 연이어 사수관을 공격하였으나 서영의 철통 같은 수비를 뚫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전황을 유지하고 있었다.

성벽을 몇 번 넘어설 뻔하였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적의 저항에 막혀 실패했다.

혹시라도 서영이 사수관 병력을 이끌고 낙양을 도모하고 있을 이성휘의 배후를 공격할까, 그것을 우려한 조조와 원소는 맹렬하게 사수관을 공격하면서 서영과 정예군단의 발목을 붙잡았다.

“큭! 안량과 문추만 있었어도 저런 관문쯤은…!!”

“…예?”

억울하고 원통하다는 듯 침음을 토해내며 분노하는 원소의 모습을 본 안량과 문추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놀리는 걸까.

준비물을 두고 온 학생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주군의 모습이 짓궂게 보였다.

“사수관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릴 것처럼 치솟고 있습니다!”

제후군이 사수관을 상대로 지지부진한 일진일퇴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을 때,

변화가 발생했다.

동탁 군이 낙양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수만 채에 달하는가옥들을 모두 불태우면서 확산된 불길이 내뿜어내는 그을음 섞인 연기는 하늘을 가릴 것처럼 치솟았다.

사수관 너머에서 치솟고 있는 연기를 본 지방관들은 낙양에 큰 변고가 발생한 것이라 추측했다.

“큰불이 난 게 아니오…?”

“필시 어림총사가 군세를 이끌고 낙양을 공격한 것이 틀림없소!”

“허나 교전이 벌어졌다고 하여… 저렇게 거센 연기가 계속 치솟고 있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림총사가 낙양에 화계를 벌일 리도 없고.”

관문 너머로 보이는 검은 연기를 목격하였으나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지방관들은 의문을 키워나가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변고란 말인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적어 낙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막을 알기 어려웠다.

지방관들은 삼삼오오 모여 여러 추측들을 내놓았지만 근거 없는 추량에 불과했기에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맹탁에게선 아직 소식이 없는가?”

“예, 어떤 소식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의문을 토해내는 지방관들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흑발의 여인이 호위장을 향해 물었다.

그에 팔척에 달하는 거구를 자랑하는 호위장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답했다.

‘대체 낙양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정동장군 조조는 자신이 훗날 사예주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면 저 빌어먹을 관문을 무너뜨려 버릴 것이라며 불안감의 근원인 사수관을 향해 저주를 토해냈다.

저 무식하게 큰 관문만 없었다면,

사랑하는 부관을 향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었을 것을.

전전긍긍하면서 위험한 사지에서 싸우고 있을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급보입니다! 지금 도독 서영이 사수관에게 군대를 철수하고 있습니다!”

지방관들이 아무런 소득 없는 입씨름만 하고 있을 때, 사수관을 정찰하고 돌아온 무관이 다급한목소리로 급보를 알렸다.

도독 서영이 철수를 시작했다.

관문 위에 내건 군기를 걷고 병력을 빼고 있었다.

낙양에 큰 변고가 벌어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난공불락의 요새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던 서영이 병력을 철군시킬 리가 없었다.

“어서 병력을 모읍시다!”

“내 당장 낙양으로 달려가 황실을 구하겠소!”

서영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버리고 철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지방관들은 그제야 승산을 느꼈는지, 자신들이 군세를 이끌고 출정하여 낙양까지 길을 열겠다며 근거 모를 자신감을 내비쳤다.

낙양에 먼저 입성하여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명성과 명예를 독차지할 생각이 틀림없었다.

유약한 성정을 가진 황제 유변을 폐위하고 영민한 진류왕을 옹립시킬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방관들이었기에, 그들은 황실과 조정의 안위보다도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명성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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