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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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발의 여인이 쏜 활이 좌장군 동민의 투구를 관통했다.
활이 투구 장식을 꿰뚫었다.
하마터면 미간이 뚫릴 뻔했던 동민은 외마디의 비명을 내지르면서 두려움을 토해냈다.
말에서 내리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투구 장식이 아니라 머리가 꿰뚫렸겠지.
종이 한 장 차이로 목숨을 건지게 된 동민은 장료의 귀신 같은 활 솜씨에 대경실색한 모습을 보였다.
“비, 빌어먹을 년 같으니라고!!”
휘하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꼴사나운 추태를 보이게 된 것이 치욕스러웠는지,
동민이 얼굴을 붉히면서 격노를 토해냈다.
나는 좌장군(左將軍) 동민이다!
태위(太尉) 동탁의 동생이며,
대장군부의 장군들을 이간하여 형님에게 낙양과 천하의 패권을 바친 오른팔이다!
감히 내게…, 농서동씨(隴西董氏) 가문의 장수인 나에게 이따위 치욕을 가하다니!
지 빌어먹을 년의 생살을 씹어버릴 것이다!
“공격하라!”
말에서 굴러떨어지듯 뛰어내린 동민의 모습에 동탁 군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틈을 노려 장료가 전군에 명령했다.
“역적들을 참하라!”
고순이 사나운 고함과 함께 함진영 장졸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돌격하였다.
병주군이 조조군을 엄중하게 포위하고 있던 동탁 군의 허를 찔렀다.
병주 기병대와 함진영을 선두에 배치한 병주군이 날카로운 벼락이 몰아치듯 낙양을 불태운 역적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배신자 놈들!”
“막아라! 저 배신자들을 막아라!!”
중랑장 장제의 휘하였던 장수와 호거아가 힘껏 소리치며 응전을 명령했다.
그러나
서량 기병대와 함께 한나라 최강의 기병부대라 불리는 병주 기병대의 돌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육중한 말발굽 소리를 토해내면서 달려든 기병부대의 돌격에 창검을 든 보병들이 일제히 쓸려 나가는 광경이 펼쳐지게 되었다.
“으아악!”
“비켜라! 모두 비켜!!”
뼈가 부러지고 살덩이가 짓뭉개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비명이 작렬했다.
날카로운 창을 겨눈 채 달려든 병주 기병대의 돌격에 장제와 장수가 이끄는 병력이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황소가 쥐 새끼를 밟아죽이듯,
사나운 준마들이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면서 도망치는 동탁 군 병사들을 사정 없이 밟아 죽였다.
“좌, 좌장군! 커헉!!”
동민을 측근에서 보필하던 심복이 장료가 날린 활에 맞아 절명했다.
투구와 함께 머리가 꿰뚫렸다.
마치 꼬챙이처럼 머리가 관통당한 것이다.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든 화살이 단숨에 머리를 꿰뚫은 것을 본 동민은 자신도 활에 맞을까, 머리 장식에 맞은 화살을 대롱대롱 매단 채 급히 몸을 숙였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부곡(部曲) 이몽이 소리쳤다.
병주 놈들에게 기세를 빼앗겼다.
이대로 계속 밀리게 된다면 승기마저 빼앗기게 될 터.
“좌장군이 왜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혼란에 빠진 장졸들을 향해 용전을 명령해야 할 게 아닌가!”
적들을 향해 응전할 것을 명령한 이몽은 자신이 막고 있는 사이에 동민이 혼란을 수습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동민은 장료의 귀신 같은 활 솜씨에 놀라 장졸들 틈에 숨어 버린 뒤였다.
자신이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통솔하는 총사의 신분이라는 것을 망각했는지 가장 중요한 때에 결정적인 우행을 범하고 말았다.
“좌, 좌장군이 당했다!”
“뭣! 좌장군께서… 병주 놈들에게, 저 더러운 배신자들에게 당했단 말인가!”
병주군이 맹렬하게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도 동민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언제 또 화살에 맞을지 모른다며,
호위병들의 틈에 숨은 채 비대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병주군의 급습에 이은 동민의 잠적. 장료의 활약으로 크게 위축된 동탁 군 장졸들은 의지해야 할 총사가 잠적해 버리자 ‘좌장군이 활에 맞아 전사했다!’라는 거짓소문이 군중에 떠돌게 되었다.
“좌장군이 전사했단 말이냐?! 아니, 그럴 리 없다! 좌장군이 그리 쉽게 전사했을 리가…!”
동민이 당했을 리 없다며 완강하게 부인한 이몽이었지만 굳센 목소리에 자신감이 다소 결여되어 있었다.
결국 좌장군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시커먼 의심암귀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호, 혹시라도 좌장군이 죽었다면… 이 싸움에 승산이 없다!’
연이은 불안과 병사들의 절박한 비명이 이몽의 불신과 의심을 더욱 가중시켰다.
여포,
여포가 달려올지도 모른다.
사예주를 휩쓸었던 괴물이 무식하게 무거운 방천화극을 붕붕 휘두르면서 달려들겠지.
동탁 군 장수들은 여포를 향해 양부를 죽인 비겁한 년이라며 온갖 조롱과 멸시를 일삼았으나, 산천초목을 벌벌 떨게 하였던 압도적인 용력과 맹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부곡, 위험합니다!”
이몽을 보필하던 무관이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군 퇴각을 고민하던 이몽의 목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이몽.”
수백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나라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든 대역죄인의 목을 벤 인물은 중원제일 검이었다.
검귀(劍鬼)가 기어코 이몽의 목을 벴다.
단기필마로 달려들어 호위병들을 베고 부곡 이몽마저 목을 베어 버린 이성휘는 자신을 향해 창검을 겨누는 이몽의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모조리 와라.”
시퍼런 안광을 토해나는 중원제일 검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한 듯, 이몽의 부하들은 치켜든 창검을 이성휘를 향해 내지르지 못한 채 두 다리를 벌벌 떨었다.
“가, 감히 이몽 님을!”
“네놈을 결코 용서치 않겠다!”
이몽이 순식간에 목 없는 귀신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목이 달아난 시신을 본 이몽의 부하들은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이성휘를 노려보았다.
부곡의 원수를 갚겠다! 두려움에 떨던 이몽의 부하들이 이내 두려움을 수습하면서 이성휘를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그때,
“전군 퇴각! 전군 퇴각하라!”
“낙양에서 철퇴하여 전열을 다시 잡는다!”
중랑장 장제와 교위 장수가 검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퇴각을 부르짖었다.
군중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는 좌장군 동민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인식한 듯, 장제와 장수는 병력들을 물리면서 황후 당씨를 죽이는 것을 깔끔히 포기했다.
“큭!”
“퇴, 퇴각한단 말인가…!”
당희를 죽이기 위해 조조군을 향해 달려들었던 장수들이 침음을 내뱉으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몇 번이고 공세를 퍼부었으나 조조 군의 철옹성 같은 방비를 뚫지 못했다.
결국 황후를 죽이지도 못한 채,
수많은 병사들을 잃었을 뿐인 동탁 군은 피투성이가 된 개가 꽁무니를 빼듯 달아나야 했다.
“퇴, 퇴각이라니! 누가 감히 퇴각을 거론했단 말이냐?! 싸워라! 싸우란 말이다!”
장제와 장수의 퇴각 명령에 전군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그제야 호위병들 틈에 숨어 있던 동민이 머리를 내밀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졸들은 동민이 전사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장제와 장수의 명령에 따라 퇴각을 서두를 뿐이었고, 동민의 부르짖음은 죽음이 두려워지휘를 손 놓았던 우장(愚將)의 외침에 불과할 뿐이었다.
“놈들이 도망친다!”
“추격하라! 지옥 끝까지 추격하라!!”
송헌과 후성, 성렴이 기병부대를 이끌고 등을 보이면서 달아나는 동탁 군을 맹렬히 추격했다.
지금까지 당한 원한들을 몇 배로 갚아주겠다는 것처럼 집요하게 뒤를 쫓았다.
동탁 군은 필사적으로 달아났으나,
말을 탄 병주군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 * *
동탁 군이 결국 낙양에서 철퇴하였다.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조 군은 시가지를 잿더미로 만든 불바다가 궁궐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급히 낙양에서 물러났다.
참화를 막기엔 너무 늦었다.
안타까우나 미련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규모를 계속 불려 나가고 있는 불길을 피하고자서라도 낙양을 포기해야만 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이성휘가 당희에게 물었다.
그에 당희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네, 어림총사와 충성스러운 장졸들이 목숨을 걸고 열심히 싸워준 덕분에 무사합니다.”
사지에 뛰어들어 자신과 궁녀들을 구해 준 이성휘를 향해 당희는 경어를 쓰면서 크게 예우했다.
황실과 조정을 구한 영웅.
중원제일 검은 과연 한나라의 검이었다.
역적을 추종하는 역도들을 향해 맹렬히 뛰어들었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당희는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다급하여 마차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불바다에 둘러싸인 낙양에서 마차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당희는 말에 오른 채 이동하게 되었다.
한나라의 황후가 탄 말의 고삐를 잡아 준 사람은 이성휘였다.
자신에게 호의와 친절을 연신 베풀어 주는 이성휘의 행동에 당희는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감사를 전달했다.
“저는 만고의 역적으로부터 황제 폐하를 구해 내지 못했고…, 또한 낙양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불민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황후 폐하에게 감사를 받을 순 없습니다.”
이성휘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죄책감을 통감하고 있다는 듯,
무뚝뚝한 안색이 더욱 어둡게 보였다.
불길에 둘러싸인 낙양을 급습하여 한나라의 황후를 구출하는 활약을 세웠음에도 이성휘는 겸허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총사, 그대는 황실과 조정을 위해 몇 번이고 구해 낸 공신입니다. 부디 자신을 책망하지 말아 주세요.”
“황망한 말씀이십니다.”
이성휘와 당희가 쓴웃음이 담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피투성이가 된 갑옷을 걸친 흑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황후 폐하.”
화살 세 대로 좌장군 동민과 동탁 군 병력을 무찌르는 기적적인 승리를 기록해낸 장료였다.
병주군을 이끌고 가세하여 궁지에 내몰린 조조군을 구원해낸 그녀가 이성휘와 당희에게 다가와 척후병이 보내온 소식을 전했다.
“척후들이 전하기를… 낙양의 소식을 들은 도독 서영이 수만 명에 달하는 정예군단을 이끌고 급히 달려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역도들이 이곳 낙양으로 오고 있단 말인가?”
사수관 전선에 투입된 동탁 군의 정예군단이 요원지화의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당희는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성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량의 명장이 직접 군세를 몰고 낙양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에 침음을 삼켰다.
“어림총사, 사수관에서 증원이 도착할 것을 우려하여 하내군으로 향하는 길목을 점거했습니다.”
“함께 하내군으로 피신하자는 말인가.”
“네, 봉선 님의 제안이십니다.”
머지 않아 서영의 정예군단이 낙양 인근에 육박하게 될 것이다.
장시간의 전투로 녹초가 된 장졸들로 사수관의 군단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에 장료는 여포를 대신하여 이성휘에게 함께 하내군으로 피신할 것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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