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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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을 급습한 이성휘가 남궁에 유폐된 황후 당씨를 구출하여 궁궐 밖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급보를 듣게 된 동민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절대로 황후를 놓쳐선 안 된다.
황후 당씨가 관동의 반란군에게 넘어가면 필시 골치 아픈 후환이 될 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어야 했던 한나라의 황후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동민은 불길한 조바심을 느끼게 되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중원제일 검의 손아귀에 황후의 신병이 넘어가게 되다니…!!”
도독 화웅을 참수했던 중원제일 검이 궁궐을 급습하여 황후를 구출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동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격노를 토해냈다.
“좌장군!”
부곡(部曲) 이몽이 예를 취하면서 동민에게 다가왔다.
“말씀하신 대로 낙양 전역에 불을 놓았습니다. 도처 곳곳에서 시작된 불길은 낙양을 통째로 불태워 버릴 겁니다!”
낙양을 불태우는 불길은 보름이 넘도록 꺼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한나라의 부귀와 영화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불길을 일으킨 이몽은 명령을 완수해낸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는지 만족감에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만족감에 찬 웃음은 동민의 이어진 말을 듣고서 사라지게 되었다.
“낙양에 쳐들어온 관동의 반란군이 궁궐을 습격하여 황후를 빼돌렸네! 이몽, 당장 군세를 지휘하여 놈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황후를 죽이게!”
“노, 놈들이 황후를 빼돌렸단 말입니까…! 예, 알겠습니다!”
이몽은 불길에 갇혀 죽었어야 할 황후가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관동의 반란군이 황후를 빼돌렸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되었다.
“아니, 아닐세.”
동민이 깊은 각오가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옆에 둔 도검을 한 손에 쥔 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부곡 이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군세를 지휘하겠네. 내 기필코… 형님의 대업을 위협하는 잔적들을 해치울 걸세.”
좌장군(左將軍) 동민.
그는 자신이 직접 병졸들을 이끌겠노라고 이몽에게 선언했다.
형님의 위대한 대업을 위하여,
서량인들의 대업을 위협하는 관동의 반란군들을 친히 격멸하려 했다.
지금까지 형님과 내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온갖 풍파와 파란들을 겪은 끝에 천하의 패권을 거머쥐었다. 풍찬노숙(風餐露宿) 끝에 거머쥔 패권을 관동의 잔적들 따위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중랑장 장제를 부르게.”
“알겠습니다, 좌장군!”
동민은 허리에 검을 찬 뒤,
수많은 장수들을 거느린 채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성휘! 여포! 이 씹어죽일 연놈들을 이 좌장군 동민이 친히 토벌하겠다!”
불바다가 된 낙양을 들쑤시고 있는 두 수괴들의 이름을 부르짖으면서 포악한 살의를 토해냈다.
이성휘. 여포.
형님의 천하를 위협하는가장 성가신 난적들이다.
이성휘는 숭산에서 도독 화웅을 참살하고 금군까지 전멸시키면서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또한 여포는 형님께서 베푼 은혜를 배신하고 비열하게 반란을 일으키는 후안무치한 패악을 벌였다.
“먼저 황후가 먼저다! 황후를 낙양 밖으로 탈출시키려는 그놈부터 참살하겠다.”
태위 동탁으로부터 낙양의 전권을 위임받은 동민이 내군(內軍)을 움직였다.
황후 당씨를 척살한 뒤,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는 중원제일 검을 제거하고자 했다.
* * *
불길에 휩싸인 남궁에서 황후를 구출해낸 조조 군은 필사적으로 적을 격파하면서 궁궐을 빠져나왔다.
도중에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으나,
중원제일 검이 압도적인 무위를 발휘하면서 무수히 많은 군세들을 힘으로 찍어 눌렀다.
계속해서 굴욕적인 패퇴를 되풀이한 동탁 군은 완전히 기세가 꺾여 버렸는지 뒤를 쫓아오지 않았다.
용맹을 발산하며 저력을 휘두르는 조조 군의 맹위에 기가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궁궐을 빠져나왔다!”
“계속해서 달려라! 넋을 놓지 마라!”
사력을 다한 덕분에 동탁 군의 소굴에서 빠져나오게 된 조조군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위협들이 도처에 산재되어 있었다.
시가지를 장악한 동탁 군이 궐문을 빠져나온 조조군을 포위한 뒤였다.
“놈들이 바깥으로 나왔다!”
“공격하라! 황후를 죽여라!!”
개미떼처럼 새카맣게 몰려든 군세들은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두려운 공포였다.
날카로운 창검을 치켜든 채,
무수히 많은 장졸들이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가까스로 궁궐을 빠져나온 조조 군은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다.
“젠장…! 대체 얼마나 많은 거야?”
싸움과 투쟁에 열렬히 환호하는 싸움광인 하후돈조차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로 동탁 군은 압도적인 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대군이다.
외곽에 있던 병력까지 불러들인 게 분명했다.
병주군에 이어 조조 군에게 급습을 받게 된 동민은 장제와 이몽을 불러들여 대규모 포위망을 펼쳤다.
“물러서지 마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워라!!”
조인이 거친 호흡을 토해내면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아군을 향해 소리쳤다.
결코 여기서 꺾일 수 없다.
험준한 역경들이 연이어 들이닥칠지라도 무사히 낙양을 빠져나갈 것이다.
사촌 언니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한 흑발의 여인은 애써 두려운 마음을 감추면서 적들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어, 어림총사…!”
조조 군의 철통 같은 호위를 받으면서 궁궐을 빠져나오게 된 당희가 절망감에 서린 목소리로 이성휘를 불렀다.
무수히 많은 적의.
강철의 장벽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저 많은 군세들이…!’
작고 연약한 쥐라도 무리를 짓게 되면 실로 두려운 공포를 자아내는 법이다.
하물며,
날카로운 창검을 무장한 군세들이 발산하는 두려움은 어떻겠는가.
한나라의 황후를 참살하기 위해 수천 명에 달하는 군세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온몸을 찢어발길 것처럼 사방에서 가해지는 노골적인 살의를 느낀 당희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황후 폐하를 낙양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누구도 황후 폐하께 다가오지 못할 겁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적들을 베어낸 이성휘가 무수히 많은 적들을 노려보면서 당희에게 호언했다.
온몸이 넝마가 된 채,
온몸에 피칠갑한 채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니 심려 마십시오.”
겁에 질린 황후를 다독인 이성휘는 곧바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돌풍처럼 검을 크게 내지르며,
날카로운 창을 베면서 적진으로 난입했다.
그 모습을 본 조조군 병사들은 용기를 얻게 되었는지 사나운 고함을 내지르면서 동탁 군을 향해 응전했다.
“이 악귀 같은 놈들…!”
사방이 포위되었음에도,
수적 열세에 몰려 전멸을 면키 어려운 상황에 놓였음에도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는 조조 군의 모습에 중랑장 장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침음을 삼켰다.
조카 장수의 호위를 받고 있던 장제는 혹시라도 저 악귀 같은 놈들이 자신을 향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몇 배나 많은 대군이다!!”
장제의 휘하 장수였던 호거아가 대검을 치켜들면서 조조 군의 위용에 놀란 아군을 진정시켰다.
외곽에 주둔하고 있던 수천 명의 병력까지 동원하였음에도 황후를 놓친다면 필시 군율에 따라 처벌될 터. 절대로 황후를 놓칠 순 없었다.
“으아악!”
“주, 중원제일 검이다!!”
호기롭게 고함을 토해낸 호거아였지만,
온몸에 피칠갑한 채 귀신들린 것처럼 검을 휘두르는 이성휘의 맹위를 보고는 대경실색하면서 물러섰다.
도독 화웅을 일격에 참했다는 소문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듯 사방에서 밀려드는 군세들을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었다.
“그아아아아아!!”
이성휘가 크게 부르짖었다.
양손으로 검을 휘두른 이성휘가 창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던 동탁 군 무관의 목을 쳐날려 버렸다.
떨어져 나간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피를 쏟아 내면서 솟구친 머리를 본 호거아는 할 말을 잃었는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황후가 저기 있다!”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꺼번에 들이쳐라!”
조조 군에게 패퇴하여 뿔뿔이 흩어졌던 궁궐 병력이 다시 규합하여 황후의 목숨을 노렸다.
시가지를 포위하는 군세.
거기에 더해 궁궐 내부에 있던 군세가 조조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미 새끼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포위당하게 된 조조 군은 고립무원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 이어 나가다가 결국 전멸하게 될 운명이었다.
“참으로 질긴 놈들이군. 허나 발악하는 것도 이제 끝이다! 네놈들의 팔다리를 모조리 찢어 버리겠다!”
좌장군 동민이 휘하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동민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조조군을 향해 잔인무도한 살심을 표출했다.
“전군 공격하라!”
“반란군 장수들의 수급은 이 이몽이 벨 것이다!”
중랑장 장제와 부곡 이몽이 병졸들을 향해 호령하며 끝장을 내려 했다.
지금까지는 오기로 버틴 모양이다만,
제아무리 뛰어난 강병이라도 결국 병력의 우위 앞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낙양의 심장부인 궁궐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조조 군은 사방이 포위되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다 죽여라!!”
동민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랑장 장제와 부곡 이몽의 군사들은 물론, 좌장군 동민의 본대와 궁궐의 수비병들까지 사방에서 조조군을 향해 돌격했다.
불길 속에서 시작된 격전.
수차례 이어졌던 싸움이 드디어 끝나려 하고 있었다.
“병주의 용맹한 장졸들이여! 역신들을 척결하고 곤궁에 처하신 황후 폐하를 구하라!!”
동탁 군이 사방을 포위한 채 조조군을 향해 결정적인 쐐기를 박으려 할 때,
흰 갈기의 백마를 탄 흑발의 여인이 수천 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싸움에 개입했다.
낙양 백성들의 피난을 돕고 있던 장료가 하내군 병력을 이끌고 달려온 고순과 합세하여 낙양 궁궐로 달려온 것이었다.
“황후 폐하를 시살하려는 역적들이다!”
“한나라의 수도에 불을 지른 대역죄인들을 모두 소탕하라!!”
핏물과 살점들이 낭자하게 흩어진 싸움터에 병주군이 들어섰다.
사예주를 휩쓸었던 병주의 정예군단,
낙양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려는 듯 동탁 군을 향해 창검을 들이밀었다.
투항해온 이후부터 저 역적들에게 얼마나 많은 수모와 모욕들을 당했던가. 이제 그것들을 모두 되갚아줄 차례였다.
“활.”
장료가 손을 뻗었다.
그에 장료를 보필하던 무관이 억센 장력을 자랑하는 각궁과 화살 한 대를 건네주었다.
“크흑! 커헉…!!”
각궁을 든 장료가 재빠르게 활을 쏘아 동민을 호위하던 무관을 낙마시켰다.
“크학!!”
그리고 그 뒤,
무관에게 다시 화살을 건네받은 장료가 재차 활을 쏘면서 동민을 호위하던 또 다른 무관을 쏴죽였다.
“이런 빌어먹을! 어떻게 돼먹은 솜씨냐!”
까마득히 먼 거리에서 자기 목숨을 노리는 장료의 귀신 같은 활 솜씨에 동민은 침음을 삼키면서 급히 말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나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팽팽해질 때까지 활시위를 당긴 장료가 손을 놓으면서 동민을 향해 세 번째 화살을 쏘았다.
“어억!!”
장료가 쏜 화살이 동민이 머리 위에 쓰고 있던 투구의 장식을 꿰뚫었다.
막연하게 보이는 장거리에서,
활을 쏘아 적장이 쓰고 있던 투구를 꿰뚫어 버렸다.
가히 신궁(神弓)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귀신 같은 장료의 활 솜씨에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동탁 군은 물론,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던 조조군 또한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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