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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36화 (136/616)

1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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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유변으로부터 다급한 밀명을 받게 된 왕윤은 은밀히 내통하고 있던 이숙의 도움을 받아 동탁 군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밀명을 전달해야 한다.

목숨을 바쳐 완수해야 될 명령을 받들게 된 왕윤은 동료 조정대신들이 동탁 군에게 압송되는 것을 보고서도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도 어르신, 과연 그 변절자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놈은 배신과 변절을 밥 먹듯이 해온 승냥이 같은 자입니다!”

이숙을 신뢰하는 왕윤의 모습에 깊은 심려를 느꼈는지, 왕윤을 보필하던 노복이 경직된 표정으로 충고했다.

그에 왕윤이 입을 열었다.

“이숙은 결코 믿을 위인이 못 되나… 그는 누구보다도 실속과 실익에 밝은 인물일세. 낙양을 불바다로 만든 동탁을 계속 따른다면 자신 또한 언젠가 파멸하게 될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이숙은 황실과 조정에 빌붙으려는 목적으로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이네.”

낙양 군단의 무관이었던 이숙은 병주목 동탁이 중앙 권력을 거머쥐게 될 것을 예견하고서 휘하 병력과 함께 동탁 군에 투향했다.

일찍 투항하여 동탁 군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한 덕분에 오교위(五校尉)에 임명된 이숙은 여포를 설득하여 무맹도위 정원의 목을 베개 하는 공까지 세우면서 기도위(騎都尉)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상인처럼 계산에 능한 이숙이 이번에는 역적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 동탁을 배신하고 왕윤에게 협조했다.

“어르신, 불길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게 될 겁니다.”

평민으로 변복한 채 주변을 살피고 돌아온 상서(尙書) 조전이 말했다.

왕윤이 고개를 저었다.

“기도위가 반기를 든 병주군을 설득하고 돌아올 터이니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여포는 양부를 살해하는 패륜을 벌인 여자입니다! 어찌 병주군의 조력을 기다리십니까? 필시 어르신을 붙잡아 동탁에게 넘기려 할 겁니다!”

“병주군이 동탁의 만행에 맞서 반기를 들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들은 우리에게 힘을 빌려줄 것일세.”

여포와 병주군을…,

그리고 이숙을 신용하는 듯한 왕윤의 모습에 조전은 심려에 찬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배신과 변절을 여러 번 저지른 이숙과 양부를 살해한 여포.

맹렬한 불길과 창검을 든 동탁 군이 주변을 압박하는 절체절명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숙과 여포뿐이라는 것이 한스러웠다.

‘동탁 군에 가세한 뒤 관동에서 여러 공훈들을 세웠던 여포가 돌아설 줄은 몰랐군….’

비봉승풍(飛蓬乘風)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여포가 돌연 일으킨 반란 때문에 동탁 군이 크게 혼란스러워진 틈을 노려 가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만약 여포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삼엄한 경계를 뚫을 수 없었을 테지.

사도 왕윤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여포가 동탁 군의 경계를 흐트려 준 덕분이었다.

“방금 누더기를 걸친 놈이 이쪽으로 향했다!”

“찾아라! 왕윤이 있을지도 모른다! 왕윤을 발견하자마자 척살하라는 분부가 내려왔다!”

좌장군 동민의 장졸들이 왕윤과 그 무리가 숨어 있던 은신처 주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붙잡기를 포기했는지,

왕윤을 죽일 요량으로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주변 동태를 살피고 돌아온 조전의 뒤를 밟은 것이 분명했다.

왕윤이 있음을 확신한 듯,

좌장군 동민을 따르는 병력들이 삽시간에 주변까지 포위해 버렸다.

“이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왕윤이 허리에 찬 검을 들었다.

따르던 노복들도 마찬가지였다.

결심한 표정을 지으면서 검을 뽑기 시작했다.

사도 왕윤은 황건적의 난이 발발했을 당시에 장수로 발탁되어 여러 공적들을 쌓은 적이 있는 무골이었기에 일신의 무위가 뛰어났다.

무력으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할 생각이었는지 검을 늘어뜨린 채 무거운 호흡을 삼켰다.

“노, 놈들이 있다!”

“왕윤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창검을 든 동탁 군 장졸들이 사방에서 왕윤과 그 무리들을 포위했다.

사나운 고함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창검들이 일제히 왕윤을 향했다.

그에 왕윤은 마지막까지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얼굴을 가리던 누더기를 내리면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왕윤이다!”

“사도 왕윤이 여기 있다! 놈을 죽여라!”

왕윤의 얼굴을 본 동탁 군 장졸들은 크게 격앙된 모습을 보이면서 함성을 내질렀다.

어르신을 배신하고 도망친 늙은이.

삼공(三公)의 하나인 사도(司徒)에 임명하는 은혜를 베풀어줬음에도 신의를 버리고 도망친 왕윤은 동탁 군의 처지에서 여포와 하등 다를 게 없는 배신자였다.

“덤비어라, 관서의 쥐 새끼들아! 이 왕윤, 한평생을 난세 속에 보내면서 역적의 무리들에게 결코 등을 보인 적이 없었거늘!!!”

검을 치켜든 왕윤이 거센 고함을 쩌렁쩌렁 내지르면서 동탁 군을 위협했다.

그에 압도된 듯,

창검을 양손에 쥔 채 달려들던 동탁 군 장졸들이 움찔하며 위압된 모습을 보였다.

“수, 숙부님!”

“저희들도 숙부님과 뜻을 함께하겠습니다!”

왕윤의 조카였던 왕신과 왕릉이 곁을 지키면서 동탁 군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쳐라!”

“왕씨 놈들을 다 죽여라!!”

잠시 움찔하면서 발걸음을 멈췄던 동탁 군 장졸들이 재차 달려들었다.

노도처럼 사방에서 달려드는 장졸들의 공세에 왕윤은 죽음을 각오하고서 검을 치켜들었다.

수많은 적들에 맞서 싸우려고 했을 때,

저편에서 쏘아진 화살들이 날아들면서 왕윤과 왕씨 가솔들을 노리던 장졸들에 적중했다.

“커헉!”

“적이다! 적습이다!!”

백발백중을 자랑하듯,

날카롭게 쏘아진 화살들은 정확히 동탁 군의 장졸들에게만 적중했다.

찰나의 상황에 급습을 당하게 된 동탁 군 장졸들이 고개를 돌리면서 화살이 날아든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격대형을 형성한 채 활을 들고 있는 병주군 궁병들이 보였다. 재차 활을 쏠 의도인지 화살을 내건 채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조정에서 탁상공론이나 지껄이면서 녹봉이나 타드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제법 강단이 있으시네, 사도 어르신.”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인이 휘하 장수들을 대동한 채 왕윤과 왕씨 일가에게 다가왔다.

돌연 여포가 나타났다.

난데없이 급습을 당하게 된 동탁 군 장졸들은 여포를 보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놈들을 척살하라!”

“사도께서 곤경에 처하셨다!”

병주군이 검을 뽑아 들면서 달려들자 왕윤을 추살하려 했던 동탁 군 장졸들은 아쉬움을 접고 줄행랑을 쳤다.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는 적들의 추레한 모습을 본 여포는 이윽고 왕윤에게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어르신…? 우리 어르신께서는 동탁의 총애를 받던 고관이었을 텐데. 대체 왜 동탁 군 놈들한테 쫓기고 있던 건데?”

여포는 익숙지 않은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왕윤에게 붙이면서 쫓기고 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왕윤은 밝힐 수 없다는 듯,

고집불통처럼 완강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잔악한 고문을 벌이더라도 결코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쭈글쭈글한 주름이 진 뺨에 힘을 주면서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에잉, 이 고집불통 늙은이. 목숨을 구해 준 사람한테 귀띔이라도 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숙의 말을 듣고 구해줬을 뿐,

왕윤이 감추고 있는 속셈에 대해 듣고 싶은 게 아니었기에 여포는 툴툴대면서 뒤로 물러났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넝마를 두른 이숙이 달려와 왕윤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에 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여포를 불러 주었군. 수고했네.”

이숙에게 답한 왕윤은 식솔들을 살핀 뒤, 병주군을 거느리고 있던 여포에게 다가왔다.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네. 중랑장, 그대가 한나라의 수도에 불을 지른 동탁의 만행에 맞서 거병했다는 소식을 들었네만… 설마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될 줄 몰랐군.”

“운이 좋았을 뿐이지.”

“그럼 운이 좋은 김에 또 하나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왕윤은 자신과 식솔들이 낙양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여포에게 보냈다.

그에 여포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남궁에 유폐되어 있던 황후 당씨를 무사히 구출한 이성휘는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과감하게 돌파하면서 활로를 뚫어냈다.

“어림총사를 따르라!”

“이 벌레 같은 놈들아! 이 하후원양께서 직접 상대해 주마!!”

적진을 향해 뛰어든 이성휘가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던 장수의 목을 벴다.

뒤이어 조인과 하후돈이 병력을 이끌고 달려들면서 동탁 군의 군세들에 에워싸인 길을 강제로 열어냈다.

“폐하!”

“어서 서두르시옵소서!”

궁녀가 다급한목소리로 당희를 이끌었다.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아비규환.

곱게 자란 명문가 출신의 여식에게는 실로 경악스러운 참상이었다.

그 끔찍한 참상에 당장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황후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충장(忠將)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마음을 굳게 먹으며 나아갔다.

“황후다! 황후가 도망친다!”

“절대로 궁궐 바깥으로 보내선 안 된다!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놈들을 쳐라!”

부곡(部曲) 이몽의 군세가 출현하여 조조 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좌장군 동민의 명을 받고 방화를 멈추고 궁궐로 복귀한 그들은 황후 당희를 탈출시키려는 조조군을 저지하기 위해 창검을 치켜들었다.

“이제 곧 중랑장의 증원부대가 올 것이다! 결코 놈들이 궁궐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라! 독 안에 든 쥐 새끼 놈들 같으니라고!”

부곡 이몽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등에 날개가 달리지 않고서야 이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낙양 시가지에 불을 지르는 대역죄를 저질렀음에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궁녀들로부터 호위를 받는 당희를 바라보면서 야욕에 찬 표정을 지었다.

“길을 비켜라!”

“황후가 저기 있다! 황후를 죽여라!”

말을 탄 기병들이 날카로운 창을 뻗으면서 황후를 찔러죽일 목적으로 달려들었다.

그에 이성휘가 검을 휘둘러 기병들을 삽시간에 베어 버렸다.

“으아아악!!”

푸히히히히힝──!!

맹렬하게 질주하던 말과 함께 날카로운 창을 무장하고 있던 무관이 피를 뿜어내며 고꾸라졌다.

다른 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황후 당희를 척살하기 위해 다가온 순간, 중원제일 검의 검이 번뜩이면서 기병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해 버렸다.

“중원제일 검! 중원제일 검이다!!”

“말과 사람을 동시에 베다니…! 화웅 도독을 일 거에 썰어 버린 괴물을 어떻게 이기라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 동탁 군 장졸들이 비명을 토해내며 온몸을 떨었다.

호기롭게 달려든 기병들이 전멸했다.

그것도 말과 함께 썰려 나간 채로.

“폐, 폐하…!”

당희의 옆에 있던 궁녀가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울먹거렸다. 끔찍한 광경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반면 당희는 피를 뒤집어쓴 채 적들을 향해 달려드는 이성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총애했던 무관.

과연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무인다웠다.

어림총사 이성휘라는 인물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으며, 또한 중원제일 검이라 불리는 사내가 싸우는 모습 역시 처음이었으므로 많은 경이들을 겪게 되었다.

‘폐하…. 폐하께서 진류왕을 저 자에게 맡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림총사는 과연 대단한 무인입니다.’

유변이 진류왕 유협을 이성휘에게 맡긴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당희는 경이가 담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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