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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35화 (135/616)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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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망국(亡國)의…,

난세에 놓인 황후의 말로라는 것일까.

시뻘건 염귀(炎鬼)가 몰아치기 시작한 남궁. 남궁의 전각에 유폐된 황후 당씨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황후 폐하!”

“늦지 않았사옵니다! 소녀들이 어떻게든 길을 열겠사옵니다!”

정결하게 정좌한 채,

두 눈을 감으면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황후의 모습에 궁녀가 절박한 어조로 외쳤다.

궁궐 전역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지만 활로까지 막힌 것은 아니었다.

낙양 시가지에서 시작된 불바다가 궁궐까지 침범해 왔다면 살겠다는 희망을 버렸겠지.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아직 불바다는 아슬아슬하게 궁궐 바깥을 태우고만 있을 뿐이었다.

“전각 바깥에서 사나운 폭병들이 활로를 막고 있을 터. 어찌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이냐.”

황후는 물론,

황후를 보필하는 궁녀들 또한 병장기를 단 한 번도 휘둘러본 적 없는 범인이었다.

동탁을 따르는 주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전각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날카로운 창검에 찔려 비참히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에 당희(唐姬)는 한나라의 황후로서, 결코 비열한 역도들에게 추레한 몰골을 보이지 않겠노라며 시뻘건 불길 속에서 죽음을 다짐했다.

‘태후 폐하…. 태후 폐하께옵서도 소녀와 같은 심정이셨사옵니까?’

반기를 든 대장군부 장졸들이 궁궐을 침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운명을 직감한 하태후는 가덕전에 스스로 불을 지른 뒤에 궁녀들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결국 죽게 될 운명이라면…,

역적들에게 희롱당하는 일 없이 깨끗하게 삶을 끝내고 싶었다.

“폐하께서는 무사히 빠져나가셨을 터.”

당희가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면서 황제의, 지아비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웃음을 지었다.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담아냈다.

지금쯤 황제께서는 역적의 손아귀에 잡혀 장안성으로 압송되고 있겠지.

참으로 불쌍하신 분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잘못도 저질러본 적 없었음에도, 선황(先皇)들이 범한 실책과 우행들로 인해 무간지옥에 가까운 고통들을 받고 계시고 있었다.

‘저도, 그리고 폐하도…. 황제와 황후의 신분만 아니었다면… 글 읽는 유생과, 유생과 혼인을 맺은 평범한 규수로 만났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당희는 유변이 결코 만승천자의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사로운 욕심이 없으며,

또한 못된 야망은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욕심과 야망을 모르는 황제였기에… 욕심과 야망에 물든 역적들에게 매번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당희는 만약 황제와 자신이 평민 신분의 범인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참혹한 비극은 결코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화, 황후 폐하! 불길이… 불길이 보입니다!”

바깥 동태를 살피던 궁녀가 부리나케 달려와 당희에게 다급한목소리로 외쳤다.

불길이 보였다.

시뻘건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삽시간에 여러 채의 궁전과 누각들을 태운 불길이 곧장 황후와 궁녀가 있는 곳까지 확산된 상태였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비련을 토해내는 황후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무정함을 두른 불길은 먹잇감을 발견한 독사처럼 황후를 위협해 왔다.

“최후까지 싸우겠사옵니다!”

“소녀들이 모두 목숨 바쳐… 황후 폐하께서 불바다를 빠져나가실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궁녀가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면서 날붙이를 들어 올렸다.

힘껏 내리쳐 거울을 깬 뒤,

날카롭게 부서진 거울 파편들을 든 것이었다.

어떻게든 황후를 위해 동탁 군을 뚫고 활로를 열겠다는 궁녀들의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황후를 죽여라!”

“전각에 갇힌 황후를 죽이고 궁궐을 급히 빠져나가자!”

황후가 유폐된 궁궐을 포위하고 있던 동탁 군 병사들이 창검을 늘어뜨린 채 궐문을 넘었다.

불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병사들은 유폐 대상인 황후와 궁녀들을 모두 죽인 뒤에 난리를 피해 장안성으로 도망치려 했다.

“불길이 퍼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남은 것 같은데… 황후를 범할 시각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황후를 범한다라, 나쁘지 않군!”

육욕이 번들거리는 무관의 말에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던 장수가 클클 웃음을 터트렸다.

장수 또한 무관과 다르지 않았다.

한나라의 황후를 범할 생각에 시커먼 욕심 치민 듯했다.

황후 당씨는 회계태수 당모의 딸이며 태상(太常)을 역임한 적 있는 사공(司空) 당진의 조카딸이자, 유서 깊은 명문가로 유명한 영천당씨(穎川唐氏) 가문의 여식이었다.

서량 출신의 장졸들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귀한 혈통의 여식을, 한나라의 황후와 배를 맞대볼 수 있겠냐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황후는 어서 나오시오!”

“황제를 예우하듯 우리에게 엎드려 공손히 절을 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줄 수 있소이다!”

창검을 든 장졸들이 이윽고 황후가 기거하는 전각 앞에 발을 들였다.

뒷골목의 한량들이 할 법한 불손한 말투를 듣게 된 궁녀들은 저 역도들이 기어코 황후에게 해를 가하려고 온 것이라며 거울 파편을 굳게 쥐었다.

궁녀들은 문을 굳게 닫은 채,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죽음을 각오했다.

“목숨을 바쳐 황후 폐하를 지키자.”

“더러운 역적들… 얼굴부터 꿰뚫어버릴 테다.”

황후를 보필하는 궁녀가 어깨를 오들오들 떨면서 중얼거렸다.

궁중 생활만을 해온 궁녀가,

다부진 체격을 가진 장졸들과 싸워 봤을 리가 없었다.

싸움에 능한 동탁 군 장졸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역적들에 의해 휘둘리기만 해온 비운의 황후를 반드시 지키겠다며 서로 의기투합했다.

“뭐, 뭐냐! 웬 놈이냐!”

“설마 반기를 들었다는 병주군…! 아니, 놈들은 병주군이 아니다!”

손바닥이 찢어져 핏물이 뚝뚝 흐를 정도로 거울 파편을 꼭 쥐고 있었던 궁녀들은 장지문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장졸들의 비명 소리를 듣게 되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한나라의 황후를 범하겠다며 시커먼 육욕을 발산하던 장졸들이 천벌이라도 받았는지 돌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악!!”

궁녀가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촤하악!!

피 분수가 솟구치며 문을 가득 적셨다.

도화지에 붉은 염료를 가득 흩뿌린 것처럼 하얀 장지문이 붉게 물들었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대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센 충성을 품은 충의지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비운의 황후를 구하고자 온 것이 분명했다.

“황후 폐하.”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이윽고 비명이 멎게 되고,

살덩이를 찌르고 베는 끔찍한 소리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핏물에 절여진 장지문 너머에 시커먼 그림자가 출현했다.

그림자는 장지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만고의 역적에 의해 전각에 유폐되는 치욕을 당하게 된 황후 당씨에게 예를 취했다.

“어림총사 이성휘, 황후 폐하를 모시기 위해 사악한 역도들을 모두 척결했습니다.”

이성휘….

중원제일 검이 온 것이다.

장지문 너머에서 울린 남성의 중후한 목소리를 들은 궁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중원제일 검이 이 끔찍한 난리통 속에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와 줬다며 매우 놀라워했다.

“어림총사… 중원제일 검인가….”

어림총사 이성휘라고 하면 황상께서 크게 총애하던 무관이 아닌가.

당희는 이성휘를 알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유변이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크게 찬사했기 때문이다.

황실과 조정을 위해 수많은 역적들을 베었던 중원제일 검. 그 무명은 한낱 아녀자들도 익히 들었을 정도로 유명했다. 황후가 당연히 중원제일 검을 모를 리 없었다.

‘폐하께서는 하나뿐인 혈육인 진류왕을 손수 맡겼을 정도로 어림총사를 총애하셨다…. 중원제일 검이라면 일편단심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폐하께선 그렇게 말씀하셨지.’

황제의 총애를 화답하듯,

중원제일 검이 난리통을 뚫고 전각에 도착했다.

마치 황제께서 준비한 안배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 같아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명문가에서 곱게 자란 여식이 전쟁에 선 장수들조차 하기 어려운 결사(決死)를 진심으로 각오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음이 두려웠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 너무도 무서웠다.

혈로를 뚫고 난입한 이성휘 덕분에 장졸들에게 범해지는 치욕을 피할 수 있게 된 당희는 눈물과 통곡을 쏟아 내면서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황후 폐하, 궁궐 바깥까지 활로를 뚫겠습니다. 사나운 적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나 목숨을 바쳐 황후 폐하를 무사히 엄호할 겁니다.”

장지문을 열고 들어온 이성휘가 당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고, 고마워요…. 부탁할게요, 어림총사.”

그에 당희는 사내 앞에서,

폐하께서 총애하는 무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 낸 게 부끄러웠는지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을 옷소매로 감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제일 검이 올 줄이야….”

“예전에 궁궐에서 얼굴을 봤던 적이 있었는데 중원제일 검이 확실해.”

황후에게 예를 취하는 이성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궁녀가 쑥덕쑥덕 속닥거렸다.

* * *

이성휘 덕분에 무사히 궁궐을 빠져나오게 된 여포는 시가지에서 낙양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을 장료와 시급히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적들이 그를 좌시할 리 없었다.

여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동탁 군 군세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어르신께서 베푼 은혜를 원수로 갚은 년이 바로 저기에 있다! 창검을 든 동탁 군 장졸들이 사나운 고함 소리를 내지르면서 여포를 노렸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붉은 갑옷을 두른 금발의 여인이 방천화극을 크게 휘두르면서 장졸들을 찢어발겼다.

호랑이가 마지막 포효를 하듯,

여포가 사력을 다해 용맹한 무위를 과시했다.

무자비한 저력을 뽐내는 여포의 맹위를 본 동탁 군 장졸들은 잠시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태세를 정비하고는 재차 여포를 노렸다.

“누님, 제가 막겠습니다!”

위속이 검을 휘두르며 여포에게 달려들던 장졸들을 강대했다.

“비장을 지켜라!”

“이 지긋지긋한 놈들! 모조리 덤벼라!!”

병주군이 여포를 지키기 위해 창검을 휘두르며 동탁 군을 향해 응전했다.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여포와 병주군은 이성휘가 활로를 뚫고 궁궐에 난입한 덕분에 아비규환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화불단행(禍不單行)처럼 끔찍한 위기들을 연이어 겪게 되었다.

“봉선! 아니, 중랑장! 중랑장이로군!”

용전을 치른 끝에 병주군이 가까스로 벌떼처럼 달려들던 동탁 군을 밀어냈을 때,

넝마를 걸친 한 남성이 다가왔다.

짐짓 여포를 향해 아는 척을 하며,

자신을 향해 창검을 뻗으면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병주군 장졸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어찌 동향 사람에게 창검을 들이대는가! 나도 병주 출신일세!”

다급함에 찬 남성의 외침을 듣게 된 여포는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라며 기시감을 느꼈다.

남성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넝마를 걷었다.

“동탁 따까리!”

남성의 얼굴을 본 여포가 소리쳤다.

여포에게 다가온 남성은 이숙이었다.

병주 오원군 출신으로,

낙양 군단에 배 속된 무관이었지만 동탁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휘하에 들게 된 인물이다.

“도, 동탁은 나를 낙양에 버렸네…! 내가 어찌 나를 불길 속에 버리고 떠난 동탁을 따르겠나! 지금은 다른 분을 섬기고 있네.”

“다른 분?”

여포의 물음에 이숙이 대답했다.

“사도께서…! 지금 사도께서 역도들의 추격을 피하여 외진 장소에 몸을 은닉하고 계시네! 중랑장, 부탁이니 사도를 구해주게!”

한나라의 사도,

동탁 군의 추격을 받는 사도 왕윤을 구해 달라는 이숙의 호소에 여포와 위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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