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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34화 (134/616)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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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에게 있어 이성휘는 어떻게든 꺾고 싶은 맞수임과 동시에, 진심으로 가슴 깊이 존경하는 무인이기도 했다.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치욕스러운 패배를 입힌 상대였지만,

무인에게 있어 상처와 흉터들은 무가(武家)의 상사(常事)였으므로 그것에 원한과 증오를 품는 것은 치졸한 소인배나 할 옹졸한 짓이었다.

“이성휘!”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참혹한 고통을 애써 억누르고 있던 금발의 여인이 중원제일 검의 이름을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이성휘가 검을 휘둘렀다.

“번조. 네놈을 참살한다.”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보검을 치켜들고 있던 번조를 벴다.

우스꽝스러운 보검과 함께,

번조의 목덜미에 깊은 검흔을 새겼다.

“커헉…! 쿨럭!!”

머리에 쓴 투구를 떨어트린 번조가 피거품을 왈칵 토해내면서 제 목을 움켜잡은 채 쓰러졌다.

쿨럭…

쿨럭… 쿨럭…!

흙바닥에 쓰러진 번조가 몸을 꿈틀대면서 피를 연신 토해냈지만 이성휘는 일말의 동정조차 주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쳤다.

“윽!”

이성휘가 다가오자 위속의 부축을 받고 있던 금발의 여인이 침음을 삼켰다.

육신을 베었던 금속의 서늘함이,

방천화극을 가르고 내 몸을 찢어발겼던 차가운 살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공포.

두려움.

지금까지 결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눈앞의 사내에게서 느꼈다.

그에 여포는 침음을 삼키면서 공포를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애처롭게 덜덜 떨리는 손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낙양 백성들의 피난을 돕던 장료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문원에게…?”

장료를 언급한 이성휘의 말에 여포가 의아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황제 폐하를 찾고 있다. 황제 폐하께서 계신 곳을 안내해라.”

이성휘의 말에 금발의 여인은 말없이 두 눈을 끔뻑일 뿐이었다.

호기롭게 궁궐을 급습했으나,

미로처럼 어지러운 구조를 자랑하는 궁궐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이었다.

변방 출신이었던 여포가 궁궐 구조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궁중 생활을 오랫동안 한 궁녀들도 간혹 길을 잃을 정도로 궁궐 구조가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다.

“동탁이 황제 폐하를 대동한 채 궁궐을 탈출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입을 꾹 닫고 있던 여포를 대신하여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위속이 말했다.

그는 뜨거운 불길과 창검을 든 동탁 군을 피해 달아나던 궁녀에게 듣게 된 이야기를 이성휘에게 전달했다.

“그 정보를 누구에게 들었지?”

“도망치던 궁녀에게 들었습니다. 물론 궁녀의 신분에 대해선 듣지 못했습니다만….”

동탁이 얼간이가 아니고서야 명분과 정통성의 상징인 황제를 궁궐에 남겨둔 채 도망쳤을 리 없었다.

궁녀에게 들었다는 위속의 전언에 이성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황후 폐하를 구해야 합니다!”

“황후를?”

“제게 황제 폐하의 소재를 전한 궁녀가 뒤이어 말하기를… 동탁은 궁궐을 탈출하기 전에 교살을 목적으로 황후 폐하를 남궁에 유폐시켰다고 했습니다!”

위속이 전한 충격적인 소식에 이성휘는 물론, 월도를 휘두르면서 번조의 부하들을 베던 하후돈과 조인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궁궐 전역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또한 시가지를 중심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는 불바다가 궁궐을 향해 육박해 오고 있었다.

“사실이냐.”

“드, 들은 이야기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

위속의 대답에 한숨을 내쉰 이성휘는 궁궐 도처에서 치솟기 시작한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화재의 여파가 점점 커지고 있다.

만약 위속이 들은 정보대로 황후 당씨가 남궁에 유폐된 상황이라면… 빨리 서둘러야 했다.

“주, 중랑장이 죽었다!”

“젠장! 중원제일 검이 상대라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다! 모두 퇴각하라!”

중랑장 번조가 이성휘에게 살해된 것을 본 궁궐 장졸들이 질겁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여포를 다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하필이면 중원제일 검이 훼방을 놓다니….

장기전으로 몰아넣어 여포를 지치게 만든 뒤에 척살하려 했던 궁궐 장졸들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을 삼키면서 부리나케 도망쳤다.

“지금부터 남궁으로 간다.”

줄행랑을 치는 궁궐 장졸들의 뒷모습을 본 이성휘가 고개를 돌리면서 하후돈과 조인에게 말했다.

그에 하후돈이 어깨를 으쓱였다.

“낙양에 불을 지르자마자 동탁이 기병대와 함께 말을 타고 도망쳤다면 뒤를 쫓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황후라도 구할 수밖에.”

“하지만 저 말을 곧이곧대로 신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인이 고개를 저으면서 위속이 전한 정보를 믿기 어렵다는 의견을 꺼냈다.

여포를 섬기는 끄나풀의 말을,

양부를 배신하고 살해한 배신의 무장을 따르고 있는 무관의 말을 어떻게 덥석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병주군이 참화에 갇힌 낙양 백성들을 구출하는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형양에서 사투를 벌였던 숙적들의 말을 당장 믿을 순 없었다.

“자효 님의 말씀처럼 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조인의 말에 그리 대답한 이성휘는 번조가 지휘하던 궁궐 병력을 격파한 뒤, 황후 당씨가 유폐되어 있다는 남궁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금발의 여인의 격앙된 목소리로 이성휘를 불렀다.

“야, 야! 날 자꾸 무시해?!”

구하러 왔다고 말한 주제에,

자신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는 매몰찬 태도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부, 분명 날 구하러 왔다고…! 흥, 이 여봉선이 보호가 필요할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약해 보였나? 뭐, 방금 전에는 조금 위험했지만…!’

여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분함.

죽을 위기에 놓인 자신과 부하들을 구해 준 이성휘를 향한 고마운 마음이 공존했다.

또한….

귀신처럼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면서 나타나 자신을 향해 “구하러 왔다.”라고 말한 이성휘의 호언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저 녀석은 숙적이야! 이겨야 할 맞수라고! 물론 무인으로서 존경하고는 있지만… 그, 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받을 입장은 아니라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시선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장시간 무리를 한 탓인지,

쉴 새 없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심장 고동 소리 때문에 귀가 시끄러웠다.

“궁궐 바깥까지 이어지는 활로를 뚫었다. 먼저 군세를 이끌고 빠져나가라.”

“뭐, 나더러 이대로 가라고?!”

“서 있는 것조차 벅찬 너를 데리고 싸우긴 어렵다.”

이성휘는 매정하게 보일 정도로 매몰찬 말과 함께 여포에게서 등을 돌렸다.

궁궐 곳곳에서 치솟기 시작한 불길은 남궁을 향해서도 손을 뻗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남궁으로 가야 한다.

황후 당씨가 남궁에 유폐된 게 사실이라면 현재 뜨거운 화마의 위협을 받고 있을 터였다.

“큭!”

자신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냉정하게 고개를 돌린 이성휘의 행동에 여포는 분함에 찬 신음을 흘렸다.

나를 구하러 왔다고 말한 주제에.

조금은 상냥한 모습을 보여도 좋을 텐데, 일언지하에 끊어내듯 고개를 돌리는 이성휘의 모습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님을 걱정해서 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일단 빠져나가죠.”

위속의 말에 여포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고운 미간을 움찔 떨었다.

‘뭐, 나한테 먼저 궁궐을 빠져나가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를 완전히 악당으로 여기진 않는다는 뜻이겠지? 나를 구하러 왔다고도 말했고… 혹시라도 내가 다칠까 봐 걱정해준 건가. 흥, 이 여봉선을 감히 걱정하다니… 물론 기쁘긴 하지만.’

아둔하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 여포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 이성휘의 내심을 추측했다.

나를 구하러 왔다고 했으니까.

분명 위험에 빠진 나를 빨리 구해 낸 뒤, 궁궐 밖으로 피신시키려고 일부러 위악(僞惡)을 행하듯이 매몰찬 모습을 보인 것이리라.

‘나를 구하려고 일부러… 일부러 위악을 떨 정도로 날 그렇게 좋아하나? 내, 내 어떤 점이 좋다고…. 하, 하여간! 예쁜 건 알아가지고…!!’

부끄러움이 몰려들었다.

중원제일 검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자, 여포는 산발이 된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돈하는 등의 수줍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픔이 순간 멎었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순간이나마 잊을 정도로.

저 무뚝뚝한 남자가 자신을 남몰래 연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념(聯念)이 참혹한 아픔과 고통마저 억눌러버렸다.

“누님?”

위속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온몸을 난자하는 듯한 끔찍한 격통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고통스러워하던 누님이 돌연 실웃음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혹한 고통 때문에 잠시 맛이 간 걸까….

쑥스러움에 찬 실웃음을 흘리는 누님의 모습에 위속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 * *

마침내 고순이 이끄는 하내군 병력이 낙양에 도달하였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낙양의 참상을 보게 된 고순은 침음을 삼키면서 사태를 파악하려 했다.

척후병들을 낙양으로 보냈을 때,

증원부대와 함께 낙양에 당도할 고순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후가 무관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다가왔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군사! 기어코 동탁이 낙양에 불을 지른 겁니까!”

“네, 그렇죠.”

다급함에 찬 고순의 말에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양이 모두 불바다가 되었다.

수백 년의 영광과 영화를 간직한 낙양은 이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터. 만고의 역신에 의해 낙양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게 될 것이었다.

“고순 교위,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2만이 조금 넘습니다.”

“흐음, 2만이라….”

고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가후가 불바다에 잠긴 낙양을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여포와 장료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지금 중원제일 검은 뭘 하고 있을까.

1만의 군세를 이끌고 낙양을 급습하여 성문을 봉쇄하던 중앙군을 분쇄한 이성휘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5천의 병력을 낙양에 보내고, 나머지 병력은 하내군으로 통하는 길목에 배치하세요. 낙양의 참사 소식을 들은 도독 서영이 사수관 전선의 정예군단을 이끌고 올 테니… 낙양으로 빨리 빠져야죠.”

“알겠습니다, 군사.”

가후의 명령에 고순이 강행군을 거쳐 낙양에 당도한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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