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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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에 질려 패주해온 병력과 적의 공세에 응전하기 위해 나선 병력이 서로 뒤엉키면서 혼란과 무질서가 펼쳐졌다.
1만 7천에 달하는 군세의 와해.
사기가 떨어져 전의를 잃고,
전열이 붕괴되면서 전선이 흩어졌다.
“저, 적들이 바로 앞까지 왔다!”
“네놈들! 적을 앞에 두고서 감히 도망칠 셈이냐!”
용맹을 떨친 서량의 풍운아들은 무능한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패주하여 비탈길을 내려온 병사들이 퍼트린 공포와 두려움이 역병처럼 확산되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확산되면서 결국 본영을 수비하던 병력까지 흔들리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이 손견을 막을 자가 있느냐!!”
붉은 두건을 쓴 남성이 날카로운 도검을 휘두르면서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용맹한 포효를 내지르는 호랑이처럼,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뛰어든 손견은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벴다.
먼저 손견이 적진을 향해 용맹하게 뛰어들자 황개와 정보가 이끄는 병력이 그 뒤를 따르면서 동탁 군의 본영을 강타했다.
“역적들을 모두 참살하라!”
“앞을 가로막는 놈들은 다 죽일 것이다!!”
크게 고함치며 달려드는 조조군과 손견군의 공세에 동탁 군의 본영이 아비규환처럼 무너졌다.
본영의 경계병마저 탈주하기 시작했고,
병력을 지휘해야 할 장수들 또한 어찌할 바를 몰라 흔들렸다.
곽사가 패주하고 전열이 와해되었다는 사실에 이각은 두 조카들을 죽인 원수가 본영까지 쳐들어왔음에도 전열을 상실한 채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과, 곽사가 패주했다면 승산이 없다…! 나는 지금부터 포위에 투입된 부대들을 불러오겠다!”
말에 오른 이각은 포위망에 투입된 부대들을 불러오겠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에 호봉이 소리쳤다.
“교, 교위! 교위께서 본영을 비우시면 누가 병력을 지휘한단 말입니까!”
“큭! 누가 도망친다고 했느냐! 군사를, 포위망에 투입된 군사들을 불러 온다고 하지 않느냐!”
“전령이 해야 될 일을 왜 교위께서…!”
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각은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각이 본영을 비우고 달아났다.
그 모습을 본 이각의 휘하 장수들 또한 황급히 말에 오르면서 줄행랑을 쳤다.
적의 급습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을 어떻게든 반전시켜야 할 일선의 장수들이 전선을 이탈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이각과 장수들의 모습을 지켜본 병사들은 일말의 전의마저 내던진 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응전하라! 어떻게든 본영을 지켜야 한다! 이제 곧 포위에 나선 부대들이 돌아올 것이다!”
장수 왕방이 검을 뻗으며 소리쳤다.
적들의 병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해야 수백 명…, 한 줌의 전력에 불과했다.
본영이 공격받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지면 포위망에 투입된 다른 부대들이 지원군을 보내올 터.
그에 호응하여 반란군을 양면으로 공격한다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터였다.
“장군! 이각 교위가 휘하 장수들과 함께 전선을 이탈했다고 합니다!”
“대관절 그게 무슨 소리냐…!!”
용감하게 군진을 지휘해야 할 이각이 휘하 장수들과 함께 패주했다는 소식에 왕방은 혼란에 찬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이각이 달아났다.
전선을 이끌었던 곽사에 이어,
본영의 수비를 지휘해야 할 이각마저 달아난 것이다.
“자, 장군! 이미 전선은 틀렸습니다! 일단 화웅 도도독과 함께 후열로 물러나서….”
왕방을 향해 소리치던 무관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왕방에게 결단을 재촉하던 부장의 목덜미를 꿰뚫어 버린 것이었다.
“미간을 뚫으려고 했는데… 역시 묘재처럼은 안 되네.”
붉은 머리카락의 여걸이 활을 치켜든 채 왕방을 향해 다가왔다.
이내 활을 거두면서,
뒤따르던 무관에게 월도를 건네받았다.
날카로운 월도를 뽑아 든 하후돈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왕방에게 손을 까닥거렸다.
“조조 군의 무장인 하후원양이다. 보아하니 동탁 군의 장수로 보이는데… 당연히 한 번 붙어봐야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면서 월도를 겨누는 여걸의 위협에 왕방은 침음을 토하더니 고삐를 힘껏 당겼다.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했다.
아군 수십 명을 베고 본영에 난입한 괴물을 상대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여간 세상은 넓고 남자들은 많은데 깡다구가 좋은 대장부가 드물단 말이야.”
결투에 응하지 않고 달아나려는 왕방의 모습에 하후돈이 한숨을 내쉬었다.
칼자루를 고쳐 쥔 뒤,
왕방을 향해 무거운 월도를 힘껏 내던졌다.
뒤이어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날카로운 월도에 등이 찢겨나간 왕방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진짜 맹덕의 남자만 아니었으면….”
월도를 회수하고 왕방의 수급을 벤 하후돈이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인왕처럼 언월도를 치켜든 거구의 장사에게 달려드는 사내가 있었다.
어림총사 이성휘. 한 자루의 검에 의지한 채 적진에 뛰어든 사내는 적의 총대장을 도모하기 위한 칼날을 맹렬히 휘둘렀다.
“주, 중원제일 검…! 막아라!”
“단신으로 뛰어들다니, 무모한 놈!”
화웅을 호위하던 근위병들이 창검을 뽑아 들면서 이성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중원제일 검,
놈이 단독으로 뛰어들어왔다.
시리도록 빛나는 인광을 번뜩이면서 달려드는 이성휘의 모습에 화웅의 근위병들은 순간 겁을 집어먹은 반응을 보였으나, 각오를 다진 표정을 지으면서 반격을 감행했다.
“비켜라.”
청강검을 늘어뜨린 채 달려들던 이성휘가 허리에 차고 있던 의천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근위병들이 창검을 뻗었다.
“크하악!”
“큭… 커헉!!”
아래에서 분수가 솟구치듯,
이성휘를 향해 사방에서 달려들었던 근위병들이 속절없이 핏물을 쏟아 내며 쓰러졌다.
갑옷이 찢겨나가고 목이 달아났다.
두 자루의 명검들이 유려하게 휘둘러질 때마다 화웅의 호위병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중원제일 검! 걸음을 멈춰라!!”
화웅을 호위하던 무관이 호기롭게 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으나 금세 목이 달아났다.
일합을 막아 내는 것도,
걸음을 잠시 멈추지도 못했다.
이성휘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전진하면서 화웅을 호위하던 근위병들을 도륙해 버렸다.
“괴, 괴물 같은 놈!”
“저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며 30여 명의 근위병들을 모두 도륙한 모습에 화웅을 호위하던 무관들이 두려움을 토해냈다.
저게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일말의 흔들림도, 주저함도 없이 무자비하게 베어내는 모습은 귀신 그 자체였다.
검귀(劍鬼).
그 모습은 실로 귀신이었다.
“화웅, 이번에야말로 목을 쳐주마.”
“바라던 바다! 내 너를 죽여 지난날의 치욕을 씻겠다!!”
피를 뒤집어쓴 채 살의를 흩뿌리는 이성휘의 경고에 화웅은 용맹하게 맞섰다.
언월도를 두 손으로 쥔 채,
말에게 전력 질주를 명령하듯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
화웅이 휘하 무관들을 뒤로한 채 단기필마로 질주해 오자 이성휘는 의천검을 검집에 납검한 채, 두 손으로 청강검을 쥐었다.
낙양에서 치렀던 일전이 생각난 걸까.
언월도를 휘두르며 질주해 오는 화웅의 모습에 이성휘가 두 눈을 빛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벼락처럼 언월도를 내리쳐 네놈의 목을 취하겠다!!’
두려움 때문에라도 도망칠 법도 하건만, 화웅은 이성휘의 경고를 당당히 받아들였다.
무인으로서의 기협을 자극한 걸까.
같은 상대에게 두 번 패할 수 없다는 완고한 고집이 깃든 것일지도 모른다.
화웅은 중원제일 검과 낙양에서 일전을 치렀을 때처럼 언월도를 번쩍 치켜든 채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아아아아아──!!!”
팔척의 거구를 자랑하는 용장이 사력을 다해 고함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내가 이길 것이다.
같은 상대에게 두 번 패하지 않겠노라며 기염을 토해낸 화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격통을 억누르며 사력을 다한 참격을 휘둘렀다.
“화웅, 이번에야말로 너를 참하겠다.”
거센 울음을 토해내는 용마.
사력을 다해 언월도를 휘두르는 용장.
불길처럼 뜨거운 용맹과 혈기가 뭉친 서량 제일의 맹장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이성휘가 아래로 늘어뜨렸던 청강검을 휘둘렀다.
“─────!!!”
푸화아아악.
대량의 피 분수가 솟구쳤다.
거합처럼 일 거에 휘둘러진 날카로운 칼날이 용마의 두꺼운 목을 베어낸 뒤, 언월도를 날렵하게 휘둘렀던 용장의 몸을 베어 갈랐다.
마인참(馬人斬).
낙양에서 휘두른 일격은 말을 베었으되, 말에 올라탄 장수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인명들을 베며 지독한 무업을 쌓은 이성휘는 완전한 검예에 도달하여 있었다.
“화, 화웅 도독!”
“어떻게 말과 사람을 동시에…!!”
머리가 떨어져 나간 말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일격에 숨이 끊어진 장수 또한 흙바닥을 굴렀다.
말과 사람을 동시에 쳤다.
중원제일 검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던 장수와 말이 동시에 숨이 끊어진 것이다.
“중원제일 검이 화웅을 죽였다!!”
완전한 마인참을 달성해낸 이성휘의 무위를 지켜본 하후돈이 월도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서량 제일의 맹장이 죽었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화웅은 중원제일 검이 내지른 일격에 절명했다.
드디어 중원제일 검은 완전한 마인참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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