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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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에서 무려 사흘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격전이 치러지고 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체들이 산천에 널리 펼쳐져 있으며,
산을 통과하는 물줄기들이 모두 핏물로 물들어 피비린내가 날 정도였다.
숭산 도처에 줄지어 설치된 봉화대들을 통해 접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조조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려 사흘 동안이나… 사흘 밤낮으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숭산 방면을 방비하던 중랑장 우보와 7천의 군세를 격파했다는 승전보를 들었을 때, 흑발의 여인은 숭산의 전투가 쉽게 끝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를 배반하듯,
화웅이 수만 명에 달하는 군세를 이끌고 숭산을 탈환하기 위한 공세를 시작했다.
‘분명 화웅은 부관에게 깊은 중상을 입고 전선에서 물러났을 터…! 다시 회복하여 전선에 서게 된 것인가!’
게다가 화웅을 보필하는 부장들이 서량의 쌍두마차라 불리는 이각과 곽사였다.
서량에서 용맹을 떨친 맹장들,
숭산을 점거한 군세를 완전히 짓밟아버리려는 요량인지 동탁은 주력부대들을 진압에 투입했다.
“후발은 오지 않았는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하후연이 고개를 저었다.
“험준한 산세들을 모두 넘어야 하는 탓에… 전서응이 오기 쉽지 않습니다.”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탓에 조조 군은 전서응을 동원하여 소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용이하지 않았다.
높고 험준한 숭산의 산세는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정보는 화웅을 필두로 한 이각과 곽사의 군세가 숭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결국 기다릴 수밖에 없단 말이군.”
“…….”
숙연함에 물든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입을 연 조조의 말에 하후연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찌 걱정되지 않을까.
걱정과 우려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결국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걱정과 우려를 인내할 뿐이었다.
“숭산에서 치열한 격전이 오고 가는 모양이군요.”
휘황찬란한 갑주를 걸친 금발의 여인이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다소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찬연하게 빛나던 금발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였고 새하얀 얼굴 또한 거칠어진 상태였다.
이성휘와 손견이 무사히 숭산 방면에 침투할 수 있도록 군세를 이끌고 사수관을 며칠 동안 계속 군세를 지휘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중원제일 검이라면 무사히 해낼 거예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요.”
흔들림 없는 믿음.
한 점의 의심조차 보이지 않는 신뢰.
영광을 거머쥔 지배자를 상징하는 황금처럼 강렬한 휘광을 내뿜는 금발의 여인은 새하얀 뺨을 은은하게 붉히면서 이성휘를 응원했다.
그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마땅히 쟁취해야 될 승리를 거머쥐기를 기도했다.
“물론이다. 당연히 ‘나’의 부관이라면 능히 역적들을 토벌한 뒤에 당당히 개진하겠지. 나는 부관의 주군으로서 마땅히 누구보다 열렬하게 개진을 축하해 줄 것이다.”
날카로운 가시가 느껴지는 조조의 말에 원소가 눈웃음을 지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눈웃음이었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랜 벗이 질투와 시기를 보낼 때마다 인자함에 젖은 눈웃음만을 지었지만, 금발의 여인이 짓는 눈웃음 속에는 노골적으로 의심을 드러내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질투’를 품고 있었다.
* * *
비등하게 흘러가고 있는 전황은 화웅에게 불쾌감을 심어 주었다.
1만 7천의 군세를 동원했다.
그런데도 겨우 수천에 불과한 적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실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군세를 여럿으로 나눈 뒤에 사흘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맹공을 가했음에도, 숭산의 고지들을 점거하는 반란군은 태산처럼 무거운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런 악귀 같은 놈들…! 좁은 계곡과 골짜기에 웅거하고 있어 적들을 포위할 수가 없소!”
이각이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토해냈다.
험준한 산세들을 두른 숭산은 대군이 싸우기가 매우 불리한 지역이다.
계속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은 물론,
매복하고 있던 적들에게 선제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
수적 우위를 동원하여 이성휘와 손견을 쓰러트리려 했던 동탁 군은 도리어 수세에 몰리면서 사기가 뚝 떨어졌고, 사흘 밤낮으로 이어진 전투로 인해 체력마저 바닥을 치게 되었다.
“도, 도독!”
피투성이가 된 무관이 본영으로 달려와 급보를 전했다.
“호진 장군과 장룡 장군이 전사했습니다!”
전선을 지휘하고 있던 호진과 장룡이 적장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자기 부하였던 장룡과 화웅과 함께 낙양에서 증원군을 이끌고 참전한 월기교위 호진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에 이각은 침통함을 금치 못했다.
“장룡! 장룡마저 죽었단 말인가!”
서량에서부터 자신을 충실히 보필했던 장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비명을 내질렀다.
적들보다 훨씬 많은 대군임에도,
어찌 일군을 지휘하는 장수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병력의 우위를 동원하면 낙승을 점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과는 달리, 숭산의 혈투는 승패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난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호진과 장룡의 죽음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병사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숭산에서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잠시 뒤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
나흘 동안 이어진 혈투는 여전히 많은 병력을 자랑하는 동탁 군을 두려움에 빠트렸다.
푸른 녹음이 붉게 물든 시산혈해.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과 메마른 땅을 흠뻑 적시고 있는 핏물을 본 장졸들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량에서 수많은 전투들을 경험한 장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도독 화웅에게 철퇴를 권유하는 장수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들 다물라! 대군을 끌고 온 우리가 철퇴하게 된다면 이성휘와 손견은 기세등등하여 의양과 영녕을 공격하여 아군의 병참기지들을 불태우는 만행을 벌일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의양과 영녕의 병참기지들이 모두 잿더미가 된다면 후방보급을 잃은 사수관 전선은 적들의 맹공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오로지 사수관 전선에 거의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동탁 군에게 있어, 사수관 전선의 붕괴는 사실상 종언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화웅은 결단코 철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허나 겁을 집어먹은 장졸들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가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우락부락한 체격을 자랑하는 화웅이 두 눈을 부릅뜨자 철퇴를 권유했던 장수들은 고개를 돌리면서 시선을 회피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1만 7천에 달하는 군세를 진압에 투입했음에도 겨우 한 줌에 불과한 반란군에게 밀리고 있었다.
나흘 동안 밤낮으로 공세를 벌였건만,
궁지에 몰리게 된 쪽은 1만 7천의 군세였다.
천하에 다시없을 치욕이 아닌가. 이 참혹한 전투가 널리 알려지게 된다면 수많은 명사와 호사가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할게 분명했다.
“도독!!”
이렇다고 할 성과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갈 뿐인 전황에 화웅이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이각의 부하인 호봉이 군막에 들어섰다.
“숭산 전선에 투입된 아군 병력들이… 적의 기세에 밀려 비탈길 아래로 쫓겨나오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호봉의 보고에 화웅이 벌떡 일어나 일갈했다.
휘하 장수들도 크게 놀랐는지,
전선에 투입했던 아군이 병력이 도리어 적의 공세에 쫓겨 패퇴하고 있다는 소식에 경황을 감추지 못했다.
“곽사와 양정에게 지휘권을 맡겼거늘, 어찌 전선이 무너진단 말이냐!!”
험준한 산세에 의지한 채 웅거를 이어가고 있는 반란군을 압도하고도 남을 병력을 곽사에게 맡겼다.
곽사는 서량에서 손꼽히는 맹장이다.
그런 맹장이 나흘 동안의 격전으로 초주검이 되어 있을 반란군을 상대로 패퇴했다니, 화웅이 대경실색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직접 군을 이끌겠다!”
“안 됩니다, 도독!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선 안 된다고 전의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거운 언월도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화웅의 모습에 그의 부장이었던 왕방이 놀라 소리쳤다.
아직 중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다.
중원제일 검이 새긴 검흔이 여전히 서량 제일의 맹장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화웅은 총대장인 본인이 직접 나서겠노라고 고집했다.
곽사가 패퇴하여 비탈길을 내려온다면 숭산 방면을 크게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위병들은 모두 도독을 따르라!”
“아군이 패퇴하여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다! 전군은 혼란에 대비하라!”
삽시간에 둔영이 혼란에 휩싸였다.
설마 대군을 이끄는 아군이 패퇴할 줄은 몰랐기에, 경계를 서던 보초병 또한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 아군이 후퇴하여 내려온다!”
“곽사 교위! 곽사 교위를 먼저 찾아라!”
동탁 군 본영은 혼란에 대비할 틈도 없이 적군의 공세에 밀려 내려오는 아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병사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들고 나갔던 군기는 물론 손에 쥔 병장기까지 내던진 채 패주하고 있었다.
절박함에 찬 비명을 지르면서 내려오는 아군 병력의 모습에 창검을 쥔 채 경계를 서고 있던 보초병들 또한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였다.
“곽사! 대체 곽사는 뭘 했단 말이냐!!”
언월도를 치켜든 채 꼴사나운 패주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던 화웅이 분개하여 크게 소리쳤다.
대체 장졸들을 어찌 지휘했기에,
반란군의 몇 배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있었음에도 풍비박산으로 무너진단 말인가!
화웅은 당장 곽사의 목을 베어버릴 것처럼 언월도를 부르르 떨었다.
“적들이 내려오고 있다!”
“아군의 후미에 적들이 따라붙었다!!”
비탈길을 내려오고 있는 군세는 싸움에서 패주하여 처절한 도주를 하는 동탁 군만이 아니었다.
패주하는 동탁 군의 후미에,
조조군과 손견군이 맹렬하게 추격해 오고 있었다.
등을 보이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중원제일 검과, 수십 기의 기병들과 함께 용맹을 떨치고 있는 붉은 두건의 남성이 보였다.
“적들이다! 어서 활을, 활을 쏴라!”
“안 된다! 지금 활을 쏘면 패주하는 아군까지 휘말리게 된다!”
떼를 지어 패주하는 아군 병력과,
패주하는 아군을 맹렬하게 추적하면서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는 적들.
수천 명에 달하는 장졸들이 한꺼번에 뒤섞이게 되면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바닥에 넘어진 전우를 짓밟고, 앞서 뛰고 있던 전우를 사정 없이 밀치는 추악한 생존본능을 보게 된 동탁 군의 궁병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활시위에 화살을 내걸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선에 투입된 병력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이성휘와 손견이 본영에 쳐들어왔다!”
“예, 알겠습니다!”
이각이 부장 오습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소수의 결사대를 동원한 일 점돌파.
이성휘와 손견이 특공을 감행해 왔다.
숭산 방면을 포위한 동탁 군이 공격을 계속 중시했던 나머지, 본영의 수비에 취약하다는 것을 간파해낸 것이다.
“화웅을 죽여라.”
앞을 가로막던 동탁 군의 무관들을 베어낸 이성휘가 날카로운 칼끝을 들어 올리며 명령했다.
“놈을 죽이면 우리가 이긴다.”
학이 두 날개를 뻗는다면,
학의 몸통을 찢어발기면 될 뿐이다.
학익진을 크게 펼치듯이 좌익군과 우익군을 나눠서 포위망을 형성한 동탁 군은 본영을 수비하는 경계병들의 대열이 다소 옅어져 있었다.
이성휘는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었다.
적들이 포위공격에 전력을 집중할 때,
동귀어진을 각오한 수백 명의 결사대와 함께 총대장 화웅이 있는 본영을 급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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