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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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장 우보를 참살하고 숭산을 빼앗은 관동 반란군이 군세를 재정비한 뒤, 후방 병참기지들이 설치된 의양(義陽)과 영녕(永寧)을 도모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적들이 턱밑까지 접근해 왔다.
사수관에 막혀 쩔쩔매던 놈들이…,
낙양의 숨통을 붙잡기 시작한 것이었다.
숭산을 넘은 반란군을 어떻게든 몰아내야 한다.
금군(禁軍)을 이끌고 의양에 당도한 화웅은 이각과 곽사, 호진을 부장으로 삼아 숭산을 탈환하려 했다.
“어림총사 이성휘와 장사태수 손견이 중랑장 우보를 죽이고 숭산을 점거했습니다.”
“음.”
월기교위 호진의 보고에 화웅은 무거운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휘. 손견.
그들은 당대 최고의 맹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으며, 또한 동탁조차 두려워하는 적수였다.
두 맹장들이 중랑장 우보와 7천의 군세를 모두 전멸시키고 숭산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동탁 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되었다.
“어르신, 장졸들이 모두 중원제일 검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중원제일 검은…, 화웅과 여포를 모두 물리친 괴물이지 않습니까.”
이각의 사위이며, 또한 이각의 휘하 장수였던 호봉이 침통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동탁 군에게 있어 중원제일 검은 귀신보다 두려운 괴물이다.
서량 제일의 맹장을 단 일합에 쓰러트렸으며, 단기결전에서 여포를 쓰러트리지 않았는가.
맹수처럼 용맹하기로 유명한 서량 출신의 장졸들조차도 중원제일 검에게 벌벌 떨고 있었다.
“닥쳐라! 일군을 이끄는 장수라는 놈이 어찌 적장을 두려워하는 용렬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냐! 이성휘, 그놈은 우리 일가의 철천지원이다!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할 원수란 말이다!!”
중원제일 검 이성휘의 수급을 베어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두 조카들의 넋을 달래겠노라며 이각은 어느 때보다도 분기탱천한 모습을 보였다.
“전군 진격하라!”
이각이 크게 외치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그에 곽사의 병력은 물론,
낙양에서 급히 합세한 화웅의 병력 또한 진군을 시작하면서 고각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성휘와 손견의 군세를 몰아내고 숭산을 탈환하기 위한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숭산을 침범한 적들을 모두 격퇴하라.”
화웅이 언월도를 늘어뜨렸다.
뼈아픈 패배의 굴욕을 곱씹는 것처럼,
서량 제일의 용장은 어느 때보다도 격앙되어 있었다.
의양과 영녕에 주둔하던 병력과 낙양의 증원군까지 모두 합쳐 1만 7천에 달했다. 화웅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반란군을 격파하려 했다.
‘중원제일 검, 네놈을 죽여 낙양에서 입은 수모를 갚겠다.’
단 일합에 쓰러졌다.
용맹하던 명마와 함께,
중원제일 검이 내지른 일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량 제일의 용장이라 불리며 무명을 크게 떨쳤던 화웅에게 있어, 중원제일 검에게 입은 치욕은 평생 씻지 못할 수모나 다름없었다.
* * *
불과 2천에 불과한 군세로 1만 7천에 달하는 대군에 맞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독 화웅이 이끄는 금군.
또한 이각과 곽사가 이끄는 병력 또한 날래고 용맹하기로 유명한 서량군이다.
숭산을 단숨에 점령한 이성휘와 손견의 활약에 겁을 집어먹은 상태라고는 하나, 동탁을 따라 거친 변방을 종군했던 서량군은 한나라에서 손꼽히는 정예부대였다.
“공격하라!”
“반란군을 모두 소탕하라!”
이윽고 동탁 군이 비탈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숭산의 험준한 고지들을 점거하고 있던 군세가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커억!”
“놈들의 공격이다! 방패를 들어라!”
날카로운 화살들이 빗발쳤다.
높은 고지에서 쏟아지는 화살 세례들,
비탈길을 오르던 동탁 군은 주춤하게 되었다.
험준한 계곡과 골짜기들에 의지하여 공세를 벌이는 조조군과 손견군의 응전에 동탁 군은 초전부터 낭패를 당해야 했다.
“계속 진격하라!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각이 크게 소리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적들의 기세가 실로 사나웠다.
그러나 적들은 불과 수천도 되지 않는 소규모였다.
상세한 규모는 알 수 없었으나 놈들의 병력은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1만 7천에 달하는 군세를 계속해서 재촉하여 밀어붙인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모조리 와라! 이 하후원양이 상대해 주마!!”
장대비처럼 갈기던 화살들을 우여곡절 끝에 뚫어낸 동탁 군 병사들을 맞이한 것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걸이 이끄는 군세였다.
거대한 월도를 든 여인은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동탁 군 장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군세냐!”
군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숲의 그늘에 숨어 매복하고 있던 병력이었다.
신출귀몰하게 출현하여 강세를 떨치는 하후돈의 위용을 본 동탁 군은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교전을 벌여야 했다.
“카헉!”
“으아아악!!”
비탈길을 오르느라 크게 지친 병사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무거운 병장기와 무거운 갑옷.
거친 숨을 헉헉 토해내면서 비탈길을 올랐던 서량군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후열부대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가로막혀 진군을 정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후돈의 군세와 교전을 치르고 있는 병력은 쉽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응전하라! 응전하란 말이다!”
“놈들은 겨우 수천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
선봉을 지휘하던 장룡과 호진이 장졸들을 재촉하였으나 우세를 점하긴 쉽지 않았다.
동탁 군 병력은 크게 지쳐 있는 반면,
조조군과 손견군은 중랑랑 우보의 군세를 격파하면서 기세가 오른 상태였다.
“놈들이 비탈길을 오르지 못하게 막아!”
월도를 휘두르며 용전을 이어 나가던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크게 소리쳤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로,
거대한 월도를 휘둘러 동탁 군 무관의 목을 일합에 쳐 버렸다.
피와 살점이 물든 월도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용맹을 떨치는 하후돈의 모습에 창검을 든 동탁 군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는지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놈들의 시체를 아래로 굴려라!”
“더 이상 비탈길을 오르지 못하도록 주검들로 길을 막아 버려라!”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시체들이 위에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핏물에 범벅된 시체들이,
무려 수백 구가 넘는 시체들이 연이어 굴러떨어지는 광경은 무심코 토악질을 할 정도로 끔찍했다.
“큭!”
“이, 이놈들이…!!”
처참하게 당한 시체들이 떨어졌다.
검에 베이고 창에 찢겨나간,
피와 내장을 쏟아 내면서 흙바닥을 굴렀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본 동탁 군 병사들은 아연실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 또한 이 시체들처럼 끔찍하게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와라, 역적의 졸개들아! 내가 바로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문대다!!”
공포와 두려움에 빠진 동탁 군 병사들이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 확고하게 쐐기를 박듯 손견이 군세를 이끌고 하후돈에게 가세했다.
강동의 호랑이가 왔다.
수많은 반란들을 진압한 한나라의 맹장.
한나라 13주 전역을 누비면서 반란을 진압했던 손견은 서량에서도 널리 무명을 떨친 바가 있었기에 동탁 군은 강동의 호랑이를 크게 두려워했다.
“소, 손견…!”
“손견이다──!!”
붉은 두건을 쓴 남성이 등장하자 하후돈의 위세에 눌려 있던 동탁 군은 혼비백산하듯 비명을 내질렀다.
병사들은 손에 쥔 병장기를 내던지며,
절박함에 찬 비명과 함께 등을 돌렸다.
병사들은 줄행랑을 선택했다.
선봉을 지휘하던 장룡과 호진이 검을 휘두르며 장졸들을 재정비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사기가 완전히 꺾인 병사들에게는 그 어떤 명령도 들리지 않았다.
“물러서지 마라! 네놈들이 그러고도 서량의 자식들이란 말이냐!!”
체격이 팔척에 달하는 거한이 고함을 쩌렁쩌렁 내지르면서 언월도를 휘둘렀다.
비명을 지르며 비탈길을 내려오던 병사들은 화웅과 금군 병력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다.
도망치는 놈은 결코 용서치 않겠다.
적들의 맹렬한 저항에 선두가 무너진 것을 포착한 화웅은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전선을 이탈한 비겁자들을 직접 참해 버렸다.
“전군, 도독을 따르라!”
“우리는 숭산의 적보다 훨씬 많은 대군이다! 결코 두려워 말라!!”
좌군과 우군을 지휘하던 이각과 곽사가 화웅을 뒤따르면서 전선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 * *
숭산의 싸움은 쉽게 결판나지 않았다.
어느 쪽도 낙승을 거두지 못한 채,
계속 지지부진하게 전선이 이어지게 되었다.
1만 7천에 달하는 대규모 군세를 이끄는 동탁 군도, 숭산의 유리한 고지들을 점거하고 있던 조조군과 손견군도 승기를 확고하게 점하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계속 응전하라!”
이성휘가 고함치면서 적들을 계속해서 벴다.
시뻘건 핏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그런데도 두 손으로 쥔 청강검은 예리한 은빛을 흩뿌리면서 위압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하핫! 아무래도 우리 제삿날 같은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칠갑한 여걸이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월도를 치켜들었다.
굳건한 용맹을 토해내고 있었으나,
계속된 전투에 많이 지쳤는지 칼자루를 쥔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분명 수십 명이 넘는 적들을 벤 것 같건만, 여전히 동탁 군은 수적 우위를 동원하여 조조군과 손견군을 압박해 왔다.
“적들 또한 크게 지쳐 있습니다. 계속 밀어붙인다면 적들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나흘.
무려 나흘 동안이나 숭산에서 싸웠다.
중랑장 우보를 참하고 숭산을 점거한 조조군과 손견군.
그리고 1만 7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숭산을 탈환하기 위한 공세를 시작한 동탁 군.
숭산에서 맞붙게 된 싸움은 어느 쪽도 승기를 점하지 못한 채 장기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나흘 밤낮으로 이어진 혈투는 전투에 참전한 모든 군세들을 광기에 빠트렸으며, 신선한 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숭산을 시산혈해의 무간지옥으로 만들었다.
“적장을 이 손문대가 벴다!”
동탁 군의 선봉장이었던 호진의 목을 벤 손견이 잘려 나간 수급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적장을 참했다!”
손견에 지지 않으려는 듯,
혈투에 뛰어들었던 조인 또한 이각의 부하였던 장룡의 숨통을 끊어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후우…. 후우…!!”
거친 호흡을 내뱉던 이성휘는 칼자루를 장시간 붙잡고 있던 탓에 상처가 생긴 제 손바닥을 응시했다.
그에 이성휘는 옷자락을 찢으며,
찢은 옷자락으로 제 손과 칼자루를 동여맸다.
죽기 전까지 결코 칼자루를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좀 쉬는 게 어때?”
“괜찮습니다….”
온몸에 피칠갑한 하후돈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이성휘는 피 웅덩이에 풍덩 빠진 것처럼 피칠갑하고 있었다.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흘 밤낮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칼자루를 움켜쥔 채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이 실로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저게 진짜… 사람이야, 귀신이야?’
주변을 시산혈해로 만든 이성휘는 거친 호흡을 토해내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싸워,
진짜 혈투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나흘 동안 무려 400명에 달하는 적들을 혼자서 참하였음은 물론, 가장 위험한 전선에서 무수히 많은 적들을 맞이한 채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원양 님.”
“어? 어…!”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적들을 또 베어낸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그에 하후돈은 무언가에 홀린 듯,
피와 살점에 물든 청강검을 늘어뜨리고 있던 이성휘를 응시했다.
“화웅을 호위하던 방어망이 다소 옅어졌습니다. 이제 화웅을 도모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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