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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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장 우보는 허영심이 깊고 오만한 성정을 가진 인물이며, 또한 점과 굿 같은 미신 따위에 계속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후사를 도모해야 하는 괘(卦)가 나왔다.
총애하던 점쟁이가 그렇게 점괘를 내놓자,
우보는 이번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기는 글렀다며 휴양을 취하듯 숭산의 산기슭 아래에 진영을 세운 채 장수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적습이다!”
“대체 누구냐! 어디서 온 놈들이냐!!”
비탈길을 내려온 정체불명의 군세가 산기슭에서 휴양을 취하던 우보의 장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화살을 쏘아 불을 지르는 것은 물론,
급습을 알리는 목소리에 급히 군막 밖을 나선 동탁 군 병사들을 거침없이 찔러 죽였다.
설마 숭산을 넘어 급습해 오리라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우보의 군영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커헉!”
술에 취한 채 허둥대던 동탁 군 병사를 단숨에 베어 버린 이성휘가 군영에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조인과 손견이 이끄는 군세가 밀물처럼 쏟아지면서 백주대낮부터 거나 하게 연회를 즐기던 얼간이들을 사냥했다.
“모든 적들을 척살하라.”
“손가의 군사들이여,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생명을 단숨에 짓밟는 유린이,
무자비한 살육이 숭산에서 벌어졌다.
끔찍한 단말마와 뜨거운 핏물이 솟구치면서 유쾌함에 찬 목소리와 풍악이 흐르던 산기슭 아래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으, 으아악!!”
비참하게 흙바닥을 기면서 도망치던 동탁 군 무관이 결국 조조군 병사들에게 발각되었다.
살려달라며 목숨을 구걸했으나 험준한 계곡과 골짜기를 오르면서 악이 받칠 대로 받친 병사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불이다! 불이 붙었다!”
“조조와 손견의 군사들이다! 어서 의양에 주둔하는 이각 교위에게 지원을 요청해라!”
산기슭 아래에 촘촘하게 세워져 있던 둔영들이 모두 불에 타올랐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솟구친 불길이 연이어 다른 군막들에 옮겨 붙게 되면서 연쇄적으로 참화가 벌어지게 되었다.
산바람,
산기슭 아래로 불어오는 산바람 때문이다.
“불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빌어먹을! 둔영이 모두 불타고 있지 않은가!!”
산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부채질을 한 것처럼 삽시간에 덩치를 키운 화마가 입을 쩍 벌리면서 동탁 군 장졸들을 집어삼켰다.
선선한 산바람을 만끽하고자,
산기슭 아래에 둔영을 친 우보의 선택은 도리어 장졸들을 불지옥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원양 님, 적장의 목을 베십시오.”
“알았어!”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이성휘의 지시에 화답하면서 부하들을 이끌고 둔영 내부로 침입했다.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두 벤 뒤,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적장이 있는 곳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적들이다! 막아라!”
“어서 중랑장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안일하게 여러 실책들을 저지른 우보는 호위병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피신하고 있었다.
하후돈의 앞을 막아선 장수는 우보의 장수였던 복호적아였다.
우보의 임지였던 홍농군(洪農郡) 섬현(陝縣)의 군대를 통솔하던 복호적아는 대패를 당한 우보의 뒤를 지키려 했는지 하후돈의 앞을 막아섰다.
“간교한 계집 같으니라고! 치졸하고 비겁하게 기습을 가해 올 줄이야! 네년은 복호적아가 막겠다!”
“복호… 뭐라고?”
월도를 치켜든 하후돈은 복호적아라고 이름을 밝힌 남성을 쳐다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담대한 기골을 자랑하는 장수였으나,
하후돈에게는 한낱 무명소졸로 보일 뿐이었다.
천하에 용맹한 무명을 떨친 무장들과 싸우기를 고대했던 그녀였기에 중랑장 우보의 따까리에 불과했던 복호적아를 시시한 적으로 취급했다.
“그 예쁘장한 얼굴에 벌집을 내주마!”
“용기는 가상하네! 물론 만용이겠지만!!”
복호적아가 창을 치켜들면서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그에 하후돈은 월도를 휘두르며,
멧돼지처럼 정면에서 달려든 복호적아의 목을 일합에 쳐 버렸다.
거대한 몸집으로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을 덮칠 것처럼 용맹을 부렸으나, 패국 제일의 맹장에게는 일초지적조차 되지 못 하는 송사리에 불과했다.
“우보라는 놈을 찾아라! 총대장을 죽이고 동탁 군의 진영을 모조리 불태운다!!”
복호적아의 숨통을 단 일합에 끊어 버린 여걸이 크게 일갈하면서 장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피가 뚝뚝 흐르는 월도를 치켜들며,
호위병들과 함께 달아난 우보의 뒤를 추격하게 했다.
혼란 상태에 빠진 놈들이 미로처럼 어지러운 숲길을 단숨에 빠져나갔을 리 없다. 산을 내려가는 길목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을 터.
“나를 따라와라!”
“예, 장군!”
하후돈의 호쾌한 명령에 병사들이 뒤따랐다.
항상 선두에서 싸우는 담대한 여걸.
불꽃처럼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걸은 장졸들의 경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씩씩한 미소와 호탕한 성정.
아름다운 용모와 늘씬한 몸매까지.
하후돈은 항상 무리한 명령을 내릴 때가 많았지만, 그런데도 장졸들은 거친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를 격렬히 추종했다.
* * *
이성휘와 손견의 병력이 숭산의 고지들을 점령하였으며, 추격에 나선 하후돈은 황급히 달아났던 중랑장 우보와 휘하 장수들을 모두 참하였다.
충격적인 급보를 듣게 된 이각은 급히 비상령을 내렸다.
숭산이 적들에게 떨어졌다는 것은 곧 사수관 전선을 지원하는 병참들이 있는 의양(義陽)과 영녕(永寧), 그리고 본진인 낙양이 반란군의 권역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영녕에 주둔하는 곽사에게 다급함을 알리는 파발을 띄워라! 또한 낙양에서 어서 파발을 띄워 증원군을 요청해라!”
“알겠사옵니다, 교위!”
병력을 이끌고 의양에 주둔하고 있던 이각은 죽는 그 순간까지 어리석은 모습들만 보였던 우보와는 달리 매우 기민한 대처를 보였다.
비록 화웅과 서영에 가려졌으나,
이각은 서량에서 무명을 크게 떨친 굴지의 맹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동탁과 함께 변방을 누비면서 많은 활약들을 해온 이각은 중랑장 우보와 그의 군세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 군중을 수습하면서 의양을 방어했다.
“이 의양에는 수많은 병참들이 설치되어 있다! 절대로 놈들의 침입을 허용해선 안 된다!”
휘하 장수들에게 단단히 명령을 내린 이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적들에게 숭산을 빼앗기다니,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험준한 계곡과 골짜기들을 품고 있는 숭산은 오합지졸에 불과한 병력으로도 십만 대군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런 천혜의 요새를 불과 반나절도 안 되어 빼앗겨 버린 우보의 안일한 무능함에 혀를 내둘렀다.
“교위, 문제는 적들의 규모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중랑장이 저항하지도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은 뛰어난 정예들이 숭산을 넘었다는 뜻일 겁니다.”
부하 장룡의 말에 이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병력을 지휘하는 장수는 누구인지.
또 숭산을 점거한 병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뛰어난 기동력으로 험준한 산세를 넘었으니 대규모 군세는 아니겠으나, 숭산을 지키던 중랑장 우보와 그의 군세가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것이 불안을 자극했다.
“중랑장의 병력이 어느 정도였느냐?”
“족히 7천은 넘었을 겁니다.”
장룡의 대답에 이각은 침음을 삼키면서 고심에 잠기게 되었다.
숭산에서 치솟았던 시뻘건 불길.
필시 놈들은 중랑장 우보의 둔영에 화계를 벌인 것이리라.
불길에 갇히게 된 우보의 장졸들은 저항조차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추풍낙엽처럼 무너졌겠지. 불지옥에 내던져졌을 장졸들의 비명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이게 대관절 무슨 변고인가!”
얼굴에 깊은 칼자국이 새겨진 남성이 험악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군막에 들어섰다.
우보의 패전 소식을 들었는지,
영녕에 주둔하고 있던 교위 곽사가 군세를 이끌고서 이각을 지원하기 위해 도착했다.
“중랑장 우보가 죽었네.”
“어르신께서 아신다면 펄쩍 뛰시겠군.”
무능하고 허영심 많은 성정의 우보가 일군을 지휘하는 중랑장의 지위에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동탁의 총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보는 동탁의 사위였으며,
또한 주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장수였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사위가 적들의 창검에 끔찍하게 살해됐다는 보고를 듣게 된다면 통한에 찬 피눈물을 쏟으면서 복수를 부르짖을 것이었다.
“대체 중랑장을 죽인 적장이 누구란 말인가.”
이각이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을 때,
둔영에 전령이 도착했다.
“중랑장을 시살하고 숭산을 점거한 적장은 어림총사 이성휘, 그리고 장사태수 손견입니다!
“중원제일 검이란 말이냐!!”
전령의 보고에 이각이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분노를 쏟아 냈다.
중원제일 검 이성휘.
어찌 그 원수 놈을 잊겠는가!
조카였던 이리 와 이섬은 낙양을 빠져나가려는 조조 군에게 급습을 가했다가 도리어 중원제일 검에게 반격을 당해 전사하고 말았다.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두 조카들을 떠올린 이각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책상을 꽝 내리쳤다.
“일가의 철천지원수가 저 숭산에 있단 말이군! 내 반드시 놈을 죽여 조카들의 원수를 갚을 걸세!!”
숭산을 넘은 적 병력은 그리 많지 않을 터. 기껏 해야 수천에 불과하겠지.
의양에 주둔하는 병력과 곽사가 영녕에서 끌고 온 병력을 모두 합쳐서 군대를 편제한다면 숭산에 있는 적들을 충분히 도모해볼 만했다.
“숭산은 산세가 깊고 험준하다. 군세를 이끌고 숭산의 계곡과 골짜기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섣부르게 군세를 움직이려는 이각의 모습에 곽사는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저 숭산은 미로와도 같은 곳,
수적 우위를 동원할 수 없는 험지였다.
치기를 못 이겨 군세를 이끌고 무작정 숭산으로 들어갔다간 적들에게 하나둘씩 각개격파를 당하는 끔찍한 치욕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이각! 곽사! 두 교위들은 어서 태위 어르신의 명을 받드시오!”
이각과 곽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을 때, 월기교위(越騎校尉) 호진이 둔영에 도착했다.
호진이 이각과 곽사에게 동탁의 명령을 전했다.
“도독 화웅이 금군을 이끌고 도착할 것이오!”
화웅이 한나라의 최정예부대인 금군(禁軍)을 이끌고 의양으로 오고 있었다.
사수관의 증원으로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숭산에서 비보를 듣게 된 동탁은 사위의 복수하기 위해서 화웅을 숭산에 급히 투입시켰다.
또한 숭산을 계속 방치했다간 병참기지가 있는 의양과 영녕이 반란군에 노려지게 될 것이며, 낙양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일 수 있기에 동탁은 화웅을 동원하여 한시라도 빨리 변수를 제거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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