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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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배신자와 변절자들로 넘쳐나는 이 낙양에서 계속 웅거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다.
조사와 수색을 벌일 때마다 반기를 든 관동 제후들과 빈번히 내통했던 인물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저잣거리에서 극형에 처하거나 처절한 고통을 주는 고문을 가하는 등, 참혹한 형벌들로 두려움을 가하려 하였으나 처형과 고문을 통한 공포통치는 도리어 더 큰 저항을 낳을 뿐이었다.
“이 낙양은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구더기들이 들끓는 썩은 고깃덩이일세! 아주 넌덜머리가 나는군!!”
상석에 앉은 동탁이 책상 위에 놓인 죽간들을 모조리 쓰러트리면서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낙양 놈들!
사직을 훔치려던 도적 떼들로부터 지켜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설쳐 대는 꼴이라니!
황실의 능묘들을 파헤치고 낙양 사대부와 호족들을 살해하여 재물을 빼앗았으며, 또한 죄 없는 백성들까지 죽였음에도 동탁은 여전히 자신을 한나라의 사직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명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없었다면 무맹도위 정원이! 흑산적과 백파적이! 저 승냥이 같은 관동의 지방관들이 군세를 동원하여 황실과 조정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이 동중영이 대의의 기치를 들고 거병하여 황실과 조정을 수호하였거늘, 어찌하여 낙양의 민심은 나를 배신한단 말인가!!’
낙양의 군권을 거머쥐기만 하면 백성들이 순종적으로 복종할 것이라고 여겼던 동탁은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반발과 저항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란이 벌어졌으며,
간사하고 교활한 조정대신들은 음흉한 흑막에 숨어 암약하고 있었다.
내환을 진압하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의 침입을 버텨 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동탁은 낙양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뒤에 본 거지인 서량 지역과 가까운 장안으로 천도하기를 바랐다.
“태위 어르신, 제게 하명하신다면 즉시 명을 봉행하겠습니다.”
"아직 자네는 요양을 해야 하는 몸이 아닌가. 자네에게 무리시킬 순 없네."
"어찌 이따위 상처가 저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거뜬히 창을 휘두를 수 있사오니 어르신께서는 저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대머리 거한이 거대한 위압감을 발산하면서 동탁의 명령을 기다렸다.
서량 제일의 용장,
화웅.
중원제일 검 이성휘의 참격에 뼈아픈 중상을 입었던 화웅은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는지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
“중원제일 검. 그중원제일 검이라는 놈 때문에 계속해서 골치를 겪고 있네! 자네에 이어 여포까지 쓰러트리다니…. 내 평생 그런 괴물 같은 놈은 처음 보는군!!”
말과 함께 화웅을 베어 버린 중원제일 검의 귀신 같은 검술은 동탁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난폭하고 잔인한 투사들이 우글우글한 서량 지역에서 제일(第一)로 군림했던 화웅이 낙양의 무관 따위에게 단 일격에 당해 버리다니!
서량 제일의 용장을 일격에 쓰러트린 중원제일 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오한이 날 정도였다.
“어르신, 부디 설욕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기필코 중원제일 검의 목을 가져오겠사옵니다!!”
화웅은 마치 굶주린 곰이 포효하듯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충직하면서도 무자비한,
패배의 굴욕을 어떻게든 되갚아주겠다는 의지에 찬 고함 소리였다.
두 눈을 부릅뜨면서 중원제일 검을 향한 살의를 토해내는 화웅의 모습에 동탁은 이제 서량 제일의 용장을 전선에 투입시킬 때가 되었다고 느꼈는지, 화웅의 호기로운 부탁을 받아들였다.
“화웅! 그렇다면 자네에게 궁궐의 금군(禁軍)을 맡기겠네! 궁궐의 정예병력을 이끌고 출격하여 중원제일 검의 수급을 당장 베어오게!!”
“존명!!”
화웅을 크게 신임하고 있었던 동탁은 대장군 하진의 심복이었으며, 또한 한나라의 최정예부대였던 금군의 지휘권을 맡겼다.
오로지 중원제일 검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무수히 많은 활약들을 쌓으면서 중원제일이라 불리게 된 놈을 죽인다면 관동 반란군의 사기가 푹 꺾이게 될 것은 물론, 내통과 변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버러지들의 기세 또한 잠잠해질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 *
사수관을 향한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전과 다를 바 없는 공세였으나,
공격 방침을 바꾸게 된 연합군에 다소의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먼저 선봉장이었던 손견이 후열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그 자리를 정북장군 원소가 대신하게 되었다. 또한 본영을 지키던 조조군 군세가 손견과 함께 후열에 편제되었다.
“숭산을 넘겠단 말인가? 숭산은 험준한 계곡과 골짜기들이 많아 위험하네! 귀관을 어떻게 그곳의 선봉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험준한 계곡과 깊은 골짜기들.
한 명의 병사로 천 명의 적들을 대적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는 우려 섞인 난색을 표했다.
동탁 군 장수들이 머저리 가 아니고서야 숭산 방면에 매복을 두지 않았을 리 없다.
숭산 골짜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사방에서 화살들이 빗발치면서 수천 명의 병력들을 단숨에 시산혈해로 만들어버릴 것이었다.
“숭산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야? 그럼 난 찬성! 위험하고 어려운 특공에 이 하후원양이 빠질 수 없지.”
만약 중원제일 검이 나선다면 자신 또한 나서겠노라며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사지(死地)를 횡단하는 특공.
실로 자기 취향에 맞는 전술이다.
장대비처럼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중원제일 검과 등을 맞댄 채로 무수히 많은 적들에 맞선다는 것은 매우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조조 군의 모든 장수들이 반대할 때, 오직 하후돈만이 이성휘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동탁은 사수관과 하내군의 방비를 굳건하게 다질 뿐, 결코 전면전을 벌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동탁이 내부의 혼란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숭산을 공격하여 낙양이 언제든 노려질 수 있다는 의심암귀를 동탁에게 심어 줘야 합니다.”
특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성휘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조조의 우려처럼 숭산의 골짜기에 발을 들이자마자 사방에서 가해지는 화살 세례에 전멸할 위험이 컸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성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수관의 철벽 같은 방어에 막힌 상황 속에서 연합군이 불리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숭산을 넘은 뒤에 의양을 점거한다면 능히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사수관을 함락 시켜지 않고도 낙양을 도모할 수 있는 공로(攻路)가 열리게 된다.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만약 특공이 성공하게 된다면 서영이 지키는 사수관의 방비만을 맹신하고 있던 동탁 군의 허를 찌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따로 없군….”
흑발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쉬지 않고 한 가지 일을 대성하면 마침내 큰 성과를 거두게 되리라는 사자성어였지만, 조조는 산을 옮기는 수준의 고난이라는 뜻으로 사자성어를 썼다.
“허나 귀관, 그 위험한 특공에 누가 나서려 하겠는가? 필시 저 샌님 같은 것들은 갖은 이유들을 대면서 특공에서 빠지려 들 걸세.”
“괜찮습니다, 2천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불과 2천의 병력으로 적진을 돌파하겠다는 이성휘의 호언에 조조의 침음은 더욱 깊어졌다.
물론 소수의 병력만 동원하는 편이 특공에 유리하겠지만 계속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역시… 가후, 그 여자인데….’
기민한 책략으로 관동 지역을 벌벌 떨게 하였던 동탁 군의 책략가.
음험하기 짝이 없는 책략가를 떠올린 이성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만약 가후의 노림수라면?
연합군이 숭산 방면을 노릴 것을 예상하고 정예부대를 미리 배치시켰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중원제일 검이 이 손문대를 직접 호명해주어 영광이로군.”
조조군 장수들이 특공의 위험성에 대해 논하고 있을 때, 붉은 두건을 쓴 남성이 휘하 장수들을 이끌고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는 손견이었다.
“손견, 너를 부른 것은 나다.”
상석에 앉은 흑발의 여인이 몸을 일으키면서 붉은 두건을 두른 남성을 노려보았다.
서슬 퍼런 칼날처럼 매서운 눈빛과 마주하게 된 손견은 에를 취하면서 조조에게 머리를 숙였다.
정동장군 조조.
수천에 불과한 병력으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도적 떼들을 격파하고 연주 지역을 석권한 당대의 여걸이다.
“잠시 결례를 범했군, 정동장군 어르신.”
손견이 큭큭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손견에게 이성휘가 다가왔다.
“손견, 낙양을 직접 도모하기 위한 특공에 너와 네 군세들의 조력이 필요하다.”
“사수관을 우회하여 낙양을 노릴 셈이군.”
이성휘의 말을 단번에 알아챈 듯, 손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향해 계속 머리를 부딪치는 것은 원숭이들이나 할 짓이지. 결국 사수관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낙양을 도모할 생각인가.”
“숭산을 넘겠다.”
“흐음, 숭산이라….”
숭산의 가파른 절벽과 험준한 산세는 손견 또한 익히 알고 있었는지 침음을 삼켰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강동의 호랑이는 중원제일 검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였다.
위태로운 공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휘하 장수들이 몸을 떨면서 손견을 만류하려 하였으나, 이미 확고한결심을 내린 손견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중원제일 검이 이 손문대를 직접 호명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특공을 위해서였군. 중원제일 검, 자네와 함께 숭산의 공세에 나선다라… 무인으로서 더없이 큰 영광이네.”
손견은 후장군 원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기에,
원술을 본영에 구금하고 군세와 물자를 모두 빼앗은 조조는 주군의 원수라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성휘는 원술의 목에 칼끝을 겨누지 않았는가.
하지만 손견은 이번 전쟁에서 큰 공훈을 세워 오군손씨 가문의 명성을 천하에 알리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원술을 향한 충정을 끝까지 관철한다고 하여, 누가 그 충정을 알아주겠는가.
손견은 중원제일 검과 함께 전장을 누빈다면 오군손씨 가문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라며 크게 기뻐했다.
‘중원제일 검은 단 한 번의 패주도 겪은 적 없는 맹장이다. 만약 이번 공세가 성공하게 된다면… 이 손문대의 이름은 역신을 무찌르고 한나라의 수도를 회복한 군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터. 우리 오군손씨 가문의 명성 또한 하늘을 찌르게 되겠지. 한 번 판돈을 걸어볼 가치는 있다.’
판돈은 물론 목숨.
무인에게 있어 목숨은 훌륭한 판돈이다.
도박에서 판돈을 잃게 된다는 것은 곧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지만, 항상 전투에 나설 때마다 목숨을 걸어온 승부사에게는 결코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
“같이 싸우게 되어 영광이네, 중원제일 검. 검 한 자루로 중원의 무인들을 제패했던 그대와 함께 전장에 선다고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는군.”
사내대장부가 향하는 길이 어찌 순탄한 꽃길이 될 수 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덩굴들이 가득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뾰족한 가시들이 발바닥을 사정 없이 찌르고 할퀴는 가시밭길이 바로 사내대장부가 걸어야 할 길이다.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난전은 손견이 항상 떠맡아왔던 고행이었다.
“숭산을 넘게 된다면 동탁 군 놈이 대경실색하여 자빠지겠군.”
손견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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