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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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황금처럼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
갓 내린 눈송이처럼 새하얀 피부까지.
군막 내부를 밝히는 등잔불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연상하게 했다.
아름다움을 넘어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용모.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한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당대 최고의 조각사가 섬세하게 조각한 대작처럼 훌륭했다.
“후우, 계속 갑옷을 입었더니 덥네요….”
무거운 갑옷을 벗은 원소가 손부채질하면서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혔다.
땀에 젖은 그녀의 몸은 실로 육감적이었다.
흘러내린 땀 때문에 쫙 달라붙은 가슴.
둥근 형태를 한 커다란 젖가슴이 옷 너머로 출렁출렁 흔들렸다.
마치 만져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금발의 여인이 어깨를 흔들 때마다 커다란 유방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남성의 번뇌를 일으키는 못된 살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
“…….”
군막에 초대받은 이성휘는 땀에 젖은 채 손부채질을 하는 원소의 모습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홍을 통해 여인을 경험한 탓일까.
우아한 백조처럼 고결한 이 여인을 품에 안고 싶다는 음심이 마음을 옥죄어왔다.
분명 부드러운 살결을 자랑하겠지. 출렁출렁 흔들리는 가슴은 조홍보다 훨씬 컸다. 또한 옷 너머로 슬쩍 보이는 젖꼭지 윤곽은 이성휘의 강철 같은 마음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후후후.”
이성휘가 얼굴을 딱딱하게 경직한 채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원소가 음흉함에 찬 미소를 흘렸다.
망부석 같은 사내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귀여운 반응을 보여 줄 줄이야.
좀 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 원소였지만, 잠시 얄궂은 장난을 접기로 했는지 의자 위에 걸쳐둔 겉옷을 걸쳐 입으면서 땀에 젖은 자기 몸을 가렸다.
“성휘도 알다시피 방금 본영에 당도했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성휘에게 직접 전황보고를 듣고 싶어요.”
“제게… 말입니까?”
“후후, 그렇다니까요.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어서요.”
금발의 미녀가 요염하게 손짓 하면서 이성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책상 위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낙양을 비롯하여 사예주 일대가 모두 기록된 군사지도였다.
“형양 전투에서 비장 여포가 이끌던 주력부대가 패전한 이후부터 동탁 군은 방어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독 서영의 정예부대가 사수관을 철통 같이 수비하는 한편, 서량군과 낙양 군단은 낙양에 주둔한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성휘의 설명에 원소는 겉옷을 어깨에 걸친 채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에 이성휘가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각과 곽사의 공격으로 하내태수 왕광이 패주하면서 하내군은 동탁 군에게 떨어졌고, 왕광을 따르던 고을 들 또한 동탁에게 투항한 상태입니다.”
“낙양은 동쪽 방면에 사수관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지만 북쪽 방면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죠. 분명 동탁은 하내군을 점령함으로서 북쪽에 방어선을 두려는 속셈일 거예요.”
여포가 형양에서 패주했지만 동탁은 여전히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하내군과 사수관에 정예 병력을 주둔시켜 북쪽과 동쪽을 동시에 경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과연 서량의 영웅이라 불리는 동탁답게 전선을 지휘함에 있어 철두철미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의 휘하에는 서량 출신의 수많은 맹장들이 있었기에 낙양을 돌파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낙양에 심어둔 첩자들을 동원하여 내분을 조장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듯해요. 낙양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한 첩자들의 연락이 모두 끊어졌어요. 아마도 동탁이 낙양에서 내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하여 많은 병력들을 경계에 배치시킨 것이겠죠.”
원소는 낙양에 주둔하는 동탁 군의 상황을 염탐하는 것조차도 어렵게 되었다며 한숨을 토해냈다.
연락이 모두 끊어진 것은 물론,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한 관료들이 속속히 발각되어 동탁 군에게 처형되고 있었다.
시중(侍中) 주비와 성문교위(城門校尉) 오경이 저잣거리에서 극형에 처해진 것은 물론, 동탁은 의심되는 인원들을 모두 처형시켰다.
그렇게 처형된 관료들이 무려 100여 명에 달하였으며, 비참하게 살해당한 낙양 백성들만 하더라도 수천 명이 넘을 정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두려워하고 있군요.”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그에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원소는 경직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의심에 휩싸이게 된 거죠. 분명 동탁도 은연중에 깨닫게 됐을 거예요. 낙양의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숙청과 처형을 반복하는 것만 보더라도 동탁이 얼마나 깊은 의심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병력들을 동원하여 낙양을 점령했으나,
낙양의 중앙 귀족들로부터 모멸감에서 비롯된 배척을 받고 있었다.
동탁의 가장 큰 적은 사수관을 위협하는 관동 제후들이 아닌, 관동 제후들에 호응하여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낙양 내부의 중앙 귀족들이었다.
‘결국 동탁은 증오에 찬 의심암귀로 둘러싸인 낙양을 포기하고 장안으로 달아나게 되겠지. 하지만 낙양을 버린다는 선택지를 쉽게 택할 수 있을 리 없다.’
낙양.
지도에 적힌 낙양(洛陽)이라는 글자를 유심히 쳐다보던 이성휘는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기 전에 직접적인 접전을 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동탁에게 투항한 낙양 군단의 장졸들은 대부분 사예주 출신이다.
만약 동탁이 장안 천도를 결정한다면,
당연히 사예주 출신이 대부분인 낙양 군단이 큰 불만을 가질 게 분명했다.
장안은 사예주에 속한 지역이지만 척박한 서쪽 지역들과 인접하여 있다.
메마른 모래바람이 부는 서쪽 지역에 있는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겠다는 포고가 발표된다면 낙양 군단들이 크게 반발할 터였다.
“계속 사수관에 목을 맬 순 없어요.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모해야 될 곳은 사수관이 아니라 낙양이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원소의 말에 대답한 이성휘는 생각하던 방책이 하나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생각해 둔 방안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성휘?”
금발의 여인이 두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여남군과 영천군을 급습했던 병주군은 분명 숭산 방면의 길목을 통과하여 관동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관동 제후들의 경계가 오로지 사수관 방면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노린 가후는 별동대를 동원하여 적의 거점을 타격하듯 병주군을 이끌고 무방비한 상태였던 영천군을 급습했다.
숭산(嵩山).
분명 병주군은 숭산을 넘어 관동으로 들어왔다.
파도를 가로막는 방파제처럼 외부의 적들로부터 낙양을 보호하는 숭산은 가파르고 험준하며, 또한 산세가 매우 우거진 곳이었다.
“그럼 성휘는 병주군이 숭산을 넘어 여남군과 영천군을 공격했던 것처럼… 숭산을 넘어 낙양을 공격하자는 말인가요?”
“하지만 숭산은 매복당할 위험이 너무 높은 곳입니다. 섣불리 군세를 이끌고 숭산에 들어섰다간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렇겠죠. 숭산은 우거진 계곡과 골짜기들이 많은 곳이니까요.”
당대 최고의 책략가인 가후가 그를 모를 리 없다.
그녀는 음험하고 신중한 성정이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 책략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고안한 책략이 역이용을 당할 것을 우려하여 파훼법 또한 마련했을 것이었다.
숭산을 통과하면서 소수의 병력을 배치하여 길목들을 막아 놓았으리라.
“본초 님.”
“네. 말씀하세요, 성휘.”
“제가 군세를 이끌고 숭산으로 가겠습니다.”
매복의 위험이 다분하다.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
숭산은 낙양의 턱밑과도 같은 곳.
만약 숭산이 공격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게 된다면 의심암귀에 빠진 채 보이지 않는 위협을 느끼고 있을 동탁은 더욱 초조함을 느끼게 될 것이었다.
“성휘, 숭산은 위험해요.”
“위험하지 않은 전장은 없습니다.”
“굳이 성휘가 모든 부담들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예요.”
직접 나서겠다는 이성휘의 발언에 원소는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제아무리 난폭한 호랑이라도 덫과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면 참혹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
만약 동탁 군이 숭산에 매복을 두었다면 이성휘에게 숭산은 사지(死地)가 될 터였다.
위태로울 정도로 모든 부담들을 떠안으려는 이성휘의 모습에 원소는 가슴 깊은 심려와 함께, 조조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이성휘에게 야속한 마음을 품었다.
“맹덕을… 위해서인가요?”
“…….”
“성휘, 당신은 맹덕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군요.”
슬픔에 젖은 비애.
사랑하는 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맹렬히 사랑하는 이성휘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금발의 여인이 수심에 젖은 것처럼 눈꺼풀을 슬며시 내렸다.
입가를 숙연함으로 일그러뜨린 채,
슬픔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저는 정말 안 되나요?”
간곡한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오랜 벗을 사랑하는 남성을 향해.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금발의 여인이 본심을 솔직하게 내비쳤다.
“아니, 아니예요…. 지금 말은 잊어 줘요.”
어깨에 두른 겉옷을 강하게 움켜쥔 원소는 빗물을 뒤집어쓴 강아지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에 혼란을 느낀 듯,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연심에 두려움을 발산했다.
항상 냉철한 사리 분별로 만물과 만사들을 정의하고 판단해온 그녀였기에,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연심은 매우 두려운 미지(未知)였다.
“성휘.”
금발의 여인이 두 팔을 뻗었다.
가느다란 팔로 남성의 몸을 껴안으며,
자기 뜨거운 체온으로 남성의 품을 탐닉했다.
사르륵.
어깨에 두른 겉옷이 흘러내렸다.
땀에 젖어 버린 풍만한 여체가 품을 파고들면서 새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게 했다.
“성휘, 보고 싶었어요.”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남성의 품에 짓눌려 음란한 형태로 빚어졌다.
마치 남성에게 희롱당하는 것처럼,
강하게 껴안을 때마다 그 사이에 놓인 유방이 부드러운 탄력을 뽐냈다.
상냥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커다란 젖가슴이 남성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의복의 옷감이 얇았던 탓인지 딱딱하게 응어리진 젖꼭지가 뾰족한 첨단처럼 이성휘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본초 님.”
품에 안겨든 원소의 애정공세에 잠시 아찔함을 느낀 이성휘는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을 꼭 껴안은 그녀의 팔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그녀의 팔을 내리면서,
포옹을 풀어 줄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맹덕 님을 따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한,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의 거절이었다.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빙 둘러서 거절을 표현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이성휘는 만약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확고하게 답했다.
“…알아요, 그래서… 잊어달라고 한 거였다고요.”
이성휘의 철벽 같은 거절에 원소는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대답했다.
마치 실연을 당한 것 같은 상황에,
원소는 몹시 못마땅했는지 이성휘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불만을 표시했다.
“흥…! 성휘는 정말 가차 없는 사람이네요. 제 부탁을 거절한 게 대체 몇 번째인가요. 왜 매번 맹덕에게만…. 제가 설마… 얼녀라서 그런 건가요?”
이 매몰찬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원소는 그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일부러 자기 치부를 끄집어내어 투덜대듯이 따졌다.
“신분은 결코 중요치 않습니다.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뜻과 의지입니다. 하물며 지금은 난세, 얼마든지 마음속에 품은 뜻과 의지에 따라 신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면서 엄중한 반응을 보이는 이성휘의 모습에 원소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신분의 제약과 제한에도 굴하지 않고 웅대한 목표와 야망을 품으신 본초 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맹덕 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히 본초 님께 모든 것을 바쳤을 겁니다. 본초 님께서는 누구보다 빛나는… 마치 태양과 같으신 분이니까요.”
엄하게 꾸짖는 듯한,
강하게 야단을 치는 것 같은 이성휘의 말에 원소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찻주전자처럼 끓는 소리가 났다.
뜨거운 김이 새어 나오듯,
새빨갛게 달아오른 원소의 얼굴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두 눈은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앵두처럼 붉은 입술은 우물쭈물 달싹이고 있었다.
고백을 거절당한 입장이지만 마치 고백받은 것만 같은 상황에 금발의 여인은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애처로운 사랑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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